"저희 같은 소규모(또는 개인, 학생) 인디 팀들한테는 기회가 잘 없어요."
인디게임을 만드는 분들이거나, 이 창작 씬을 응원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그간 많이 들어온 말일 겁니다. 함께할 팀원을 구하는 것부터, 퍼블리셔나 투자자를 만나는 것, 소비자에게 도달할 기회를 잡는 것까지 "기적"과도 같은 문을 거쳐야 하니까요.
안타깝게도 2026년 6월 현재의 상황은 객관적으로 그리 희망찬 환경이 아닙니다. 좋은 게임(기준이 사람마다 다르지만)을 만들면 시장의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결코 쉽게 드리지 못할 정도죠.
그래도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기적"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 최근 'FC모바일' 광고 모델로도 활약한 걸그룹 '리센느' (TMI. 기자도 리마인입니다)"기회를 잡는 것도 기회가 와야 잡을 수 있는 거야.", "기회는 그립감이 좋다!" -'리센느' 메이
중소 아이돌의 기적이라 불리며 알고리즘을 장악하고,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걸그룹 '리센느'가 대표적인 "기적"과도 같은 성공의 예시가 아닐까 싶어요.
'메이'가 농담처럼 말은 했지만, 리센느 또한 데뷔 이후 꾸준히 온갖 콘텐츠를 다 찍어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였을 때 더 큰 물살에 올라탈 수 있었고, 많은 노력 끝에 지금과 같은 기회도 만들어내고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인디게임 씬 안에도 명과 암이 있는 가운데, 작금의 현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두운 것인지, 어떤 노력과 새로운 물살이 등장하고 있는지 자세히 짚어보려 합니다./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현실적으로 모두가 살아남을 순 없다...하지만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최근 인디게임 전시 및 강연 현장에 취재를 나가면, 이전보다 유독 '생존'과 '기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곤 합니다.
대기업들은 AI(인공지능), AX(인공지능 전환) 등을 계속해서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신규 취업 및 재취업의 문은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업계 안에서 호흡하고 계시는 분들도 이직 과정에서 많이 체감하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아무래도 취업, 창업 또는 탈 업계 같은 중대한 기로 앞에 서있는 관련 전공 학생 및 교육자분들이 이 분위기를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긴 합니다.
"쿠팡 알바(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들의 게임을 개발하는 졸업생들도 있어요", "졸업 전까지는 팀으로 같이 하던 멤버들이, 각자 다른 생업을 찾아 떠났어요"와 같은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습니다. 당장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이야길 많이 들었을 정도니까요.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업계의 겨울이 길어지고 있는 환경에 대해선 구태여 긴 말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사실 정확하게는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표현하는 게 맞겠습니다.
2026년 1분기 게임사들의 실적 발표를 눈여겨 보셨다면,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한 회사들이 참 많았다는 걸 아실 겁니다. 분기 실적으로 조 단위의 매출을 달성한 곳들도 있죠.
그러나 그런 대기업들조차 내부에선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고, 채용을 줄이거나 동결하는 곳도 많습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네오위즈나 스마일게이트처럼 인디게임 생태계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기업들 외에도, 알려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많은 구원의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긴 합니다.
넥슨은 최근 K-게임의 씨앗을 키우겠다며, 국내 게임 초기 투자시장 공백 해소에 나서기 위해 '넥슨파트너스'를 설립하고 향후 5년간 총 2,500억 원 규모로 민관 합동 펀드를 출범해 초기 개발사 투자에 힘쓰겠다고 밝혔습니다.
크래프톤은 정글랩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참신한 게임을 개발하고 시장에 선보여 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투자기관이나 콘진원과 힘을 합쳐 대중소 상생에 힘쓰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한정된 지원사업이나 VC, 퍼블리싱 슬롯에 들어가는 것은 상위 팀들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고, 그 얼마 안 되는 기회마저 공정성 논란에 휩싸일 때도 있죠.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그렇다고 이번 글의 주제가 대기업들을 포함한 민관의 인디게임 씬에 대한 투자 규모가 늘어나는 게 능사라는 쪽으로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막연하게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는 '정말 잘 하고 있는 팀들에게 적절히 잘 쓰이는 방향을 더 모색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본인도 몇 년째 인디게임 씬을 응원하며 다양한 취재를 이어왔지만, 소신발언을 하자면 다른 창작 씬(그림, 음악, 연기 등)에 비하면 인디게임 씬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기회가 있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한 켠에 라면을 쌓아두고 그것만 먹으며 개발했다거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개발을 이어왔다는 인디 팀들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지만, 냉정하게 말해 다른 창작 업계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환경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게 현실이죠.
▲ 냉정하게 말해 모두가 풍족하게 창작할 수는 없는 게 현실입니다.(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어느 창작 업계나 문이 좁은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기회'나 '기적'이 먼 곳에 있다고만 생각하진 않습니다. 작은 노력이 모여 큰 걸음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대형 게임사들도 AI 웨이브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금의 현실 속에서, 게임 씬 안에서는 이전에는 적었던 작은 물결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디 개발팀'들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적잖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도 피부에 와닿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 기다릴 것인가 쟁취할 것인가...거리에서 시작되는 변화
▲ 지스타 2024 인디게임 쇼케이스
기자처럼 게임쇼 현장을 거의 모두 출석하는 분들은 크게 체감하시겠지만, 최근 플레이엑스포와 지스타 양쪽 모두 국내외 대형 게임사들의 참여가 전보다 다소 저조해지면서, 그 빈자리가 인디 팀, 학생 팀에게 조금 더 주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디 부스의 열기나 참신함이 더 돋보였던 건, 인디들에게 공간이 더 할애될 수 있던 최근이 아니라, 그 이전 행사들이었다고 느껴집니다.
PC/콘솔 개발 트렌드와 함께 개발 기간이 길어지는 인디 팀이 늘어나면서 같은 게임으로 여러 차례 참가하는 곳이 많은 것도 한몫을 하고 있고, 여력이 되는 팀이라면 가야만 하는 연례행사처럼 의무화되어 가는 경향도 한몫을 한 것 같아요.
▲ 비버롹스(버닝비버) 2025 현장
시선을 BIC(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나 비버롹스 쪽으로 돌려보면 조금은 상황이 나아지는 편이긴 합니다.
두 행사 모두 처음의 방향성에 비해 이제 규모가 너무 커진 감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참신함으로 무장한 신생 팀들, 기존 팀들의 새로운 도전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선,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인디게임쇼 현장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런 큼직한 행사들만으로 국내의 많은 인디게임 개발 팀들의 열정이 모두 소개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개발자'들이 주도해서 만든 게임 행사들이, 더 많은 일반 대중에게 닿을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 작년 10월 성수에서 열린 개발자 주도 행사 ALT+G
2025년 10월, 팝업의 성지인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개발자 주도의 인디게임 축제 'ALT+G'도 그 예시 중 하나였습니다.
골목마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은 곳에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인디게임 행사에 사람들이 들러줄까 했던 건 기우였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계기로 이 현장에 방문해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개발팀들을 응원했으니까요.
▲ 지난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인디게임 행사 '빌드 051'
2026년 6월, 바로 지난주에 부산시 서면에서 열린 '빌드 051'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부산의 핫플레이스에 개발자들이 나선 사례죠.
'인디라 부산'이 부울경 지역의 개발자들의 연결과 활성화를 위해 4회째 개최하고 있는 '빌드 051'은 올해 규모를 더 키워 50여 개 이상의 개발팀이 참여하고, 일반 시민들도 "재밌어 보인다"며 행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기성 게임쇼들과 달리, '똥똥배' 故 박동흥 인디 개발자의 온오프라인 추모로 그 의미를 더하거나, 게임 씬과 개별 팀들이 어떻게 상생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주제를 깊이 파고든 모습은 이런 신생 게임쇼들만 가질 수 있는 매력이라 느껴졌습니다.
▲ 이번 주 토요일(7월 4일) 판교에서 열릴 '서울게임타운 2'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토요일에 판교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서울게임타운'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게임을 선보이고 교류하고 싶은 마음에 직접 나선 행사들이죠.
이미 연례 행사가 된 대형 게임쇼들에 나가는 것도 물론 뜻깊은 일이겠지만, 열정 넘치는 동료를 구하거나, 씬에 함께 있는 개발 선후배들끼리 정보를 교류한다는 측면에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을지라도 개발자들이 주도한 행사들에 강점이 있습니다.
이 안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게임을 보여주고 싶거나, 도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적극적인 개발자'들이 있을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죠.
기자의 취재 경험을 돌이켜 봐도, 빛나는 원석 상태의 신생 팀을 만날 확률이 훨씬 높던 쪽은 지스타나 플레이엑스포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규모가 작은 행사들이었습니다.
▲ 빌드 051 행사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댄싱 좀비>
열심히 하는 개발자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일례로, 당장 지난주 부산 '빌드 051'에서 만난 많은 게임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겨 별도의 기사로 소개해드렸던 <댄싱 좀비>의 1인 개발자 바이러스(Vaeirus) 또한 이번 주 '서울게임타운 2'에도 <댄싱 좀비>와 함께 다시 참석합니다.
참고로 '빌드 051' 현장에서 <댄싱 좀비>에 대한 본지의 소개 기사가 나간 이후, 당일 저녁에 진행된 시상식에선 개발자들의 투표를 통해 <댄싱 좀비>가 학생 부문 1등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좋은 게임을 알아보는 눈은 모두 비슷했던 거죠.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국가 지원사업이나 특정 대기업의 퍼블리싱과 같은 좁은 문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디 개발사들이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고 찾아내는 모습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이런 교류와 탐색의 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열정을 함께 나누고 싶은 팀을 찾고 있거나, 좋은 선후배 동료들과 노하우를 나누고 피드백을 받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이런 행사나 각종 게임잼에 꼭 가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디어와 퍼블리셔, VC들도 기성 게임쇼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을지라도 더 참신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 행사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BIC가 처음 태동했을 때 또한,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도 작았고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오늘 소개한 현장들이 모두 제2의 BIC가 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적극적인 노력의 물장구를 치고 있는 팀들이 있을 확률은, 그 어느 곳보다도 더 높다고 말이죠. 아이돌 씬에서 '리센느'와 같은 "기적"이 나왔던 것처럼, 국내 인디게임 씬에서도 그런 "기적"이 나올 날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응원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