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들도 예견된 미래도 정말 피부에 와닿게 큼직한 변화라는 게 느껴진다.
최근 게임 업계인들이 아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주제 중 하나는 단연코 소니가 예고한 '물리 디스크 사망 선언'이다. 2028년 1월 이후 발매되는 신규 게임은 디지털로만 판매하겠다고 한 소식 이후 파장이 컸다.
게이머들 사이에서의 격렬한 반발을 구태여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실 경제 측면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쪽은 게임 소매점 일명 '게임샵'들일 것이다.
Xbox와 닌텐도의 행보도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정말 최악의 가상 시나리오로 가게 된다면 게임샵에는 '콘솔 기기'와 '주변 액세서리'들만 남게 될 수도 있다.
▲ 디스크 사망 선언을 한 소니.
한편, 다른 실물 시장인 '카드게임' TCG 쪽은 이상하리만치 연일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게 진짜 팬덤에 발을 걸치고 있는 콜렉터든, 수익을 남기려 뛰어든 리셀러든 일단 수요가 그만큼 있다는 현상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밝히자면 기자 본인은 실물 디지털 양쪽에서 모두 카드게임을 오래 즐겨온 TCG 장르의 애호가다.
<하스스톤> 같은 게임들은 매번 전설 등반을 했고, <유희왕>, <포켓몬>, <디지몬>, <뱅가드> 같은 인지도 있는 카드게임 외에도 정말 안 유명한 카드게임들도 꽤나 즐겼었다.(<강철의 연금술사>도 카드게임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
사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주요 TCG 카드 수요 폭증 현상이 마냥 좋게만 보이진 않으면서도, 동시에 이렇게라도 이 장르나 시장이 커질 수 있다면 이 현상을 잘 활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디지털 다운로드 형태만 남는 것의 옳고 그름이나 장단점, TCG 카드 시장의 과열된 구매 경쟁 안팎의 문제점 등은 이번 칼럼에서 굳이 깊게 다루지 않으려 한다. 현재 시장이 보여주고 있는 '현상'만 봐도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자, 이제 본론이다. 일각에서는 '디스크'가 사라지고 난 이후의 게임샵에 '카드게임'을 포함한 실물 굿즈, 피규어, 캡슐 가챠 등이 깊게 침투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사실 해외의 게임스탑과 같은 공간은 긴 시간을 들여 이런 전환 및 확장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국내 또한 마찬가지로 디스크 진열보단 피규어, 카드, 가챠 등을 포함한 굿즈로 그 자리가 채워지는 업장들(특히 규모가 있는 매장 기준)이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였다.
소니의 디스크 사망 선언 이전에도 조금씩 드러나던 경향은 앞으로 더 가속화되며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게 '디스크'가 사라진 게임 소매점을 '게임샵'이라 불러야 할지 '굿즈샵'이나 '카드샵'이라 불러야 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것이고, 모든 게임 소매점이 다 같은 방식의 적응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시장 변화의 가상 시나리오로써는 언급해볼 만한 주제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질문은, 그래서 정말 TCG 수요가 '디스크'의 빈자리를 일부라도 채울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 얼떨떨하지만 시장 반응만 놓고 보면 TCG 전성시대...
▲ 사진은 디스이즈게임 회사가 위치한 선릉에 있는 카드샵 중 한 곳에서 촬영한 <포켓몬> 카드, 그 중에서도 고가에 팔리는 카드들이다.
좌측의 일본어 버전 제크로무는 카드 한 장에 60만 원, 중앙의 한국어 버전 뮤 ex 홀로그램 버전은 5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동네 카드샵에서도 이 정도 가격의 매물들이 있는 셈이다.
일단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현재도 이런 TCG와 굿즈 일부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카드샵들이 국내 각지의 곳곳에 있는 편이라는 것이다. 수요 공급이 맞닿는 온오프라인 공간들이 지금도 적잖게 있다.
▲ 일본어 버전 리자몽 ex 슈퍼레어 카드도 25만 원, 한국어 버전 블래키 ex 카드도 21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실물 제품이니 당연히 카드 상태도 중요하고, 정품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안목도 중요하다.
스테디셀러인 <포켓몬> 카드의 인기는 특히 올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앞서 '잉어킹' 프로모션 카드를 나눠준 온오프라인 행사들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인파가 몰려 오프라인 행사가 취소되기도 했던 것 또한 기억하시리라. 단순히 <포켓몬> IP의 인기가 아니라 '카드'에 대한 수요 또한 큰 영향을 줬었다.
포켓몬코리아 측에서도 카드의 인기를 잘 실감하고 있는 듯하다. 작년 여름에는 스탬프 랠리를 중심으로 진행했던 부산 포켓몬 메가페스타 이벤트에 올해는 '포켓몬 카드게임'과 관련된 콘텐츠를 다수 추가했다.
가령, 이번 여름 부산 도시철도 5개 역사에서는 '포켓몬 카드게임'으로 꾸며진 스크린도어를 만나볼 수 있고, 특정 기차역과 매장에서는 '포켓몬 카드게임'을 배울 수 있는 '포켓몬스쿨'이 진행되며, '포켓몬 카드게임'을 활용한 미니게임 체험존도 마련된다.
8월 1일에는 벡스코에서 부산교통공사와 함께하는 '포켓몬 카드게임 배틀 토너먼트'도 진행된다.
▲ 올해는 부산의 주요 역들이 이런 식으로 포켓몬 카드게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이제 자연스럽게 뛰따라붙는 질문은, 그건 <포켓몬> 카드가 인기가 많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는 것이다. <포켓몬>, <유희왕>, <원피스>는 현재 실물 TCG 3대장이니까 체급이 달라서 그런 걸까. 그렇지만은 않다.
다른 카드게임들에서도 '인기 카드'는 꽤 높은 가격대에 단가가 형성되어 있다.
▲ 사진은 <승리의 여신: 니케> 실물 카드게임 <니벨 아레나>의 카드들이다. 중앙의 '레드 후드' 싸인 카드는 28만 원이다.
물론 실물 TCG에선 특히나 한정 수량의 레어한 카드, 홀로그램 여부, 싸인 및 넘버링의 존재, 아트가 다른 카드 등 여러 조건과 함께 가격이 형성된다는 걸 기자도 잘 안다.
일단, 로컬 매장에서도 이 정도 가격선의 카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 비슷하게 좌측은 <드래곤볼 슈퍼 카드게임 퓨전 월드>로 한 장에 21만 원에 팔리는 카드가 있다.
중앙의 15만 원에 판매되는 '징크스' 카드는 <리그 오브 레전드> IP를 기반으로 만든 실물 TCG <리프트바운드>의 중국어 버전이다.
<리프트바운드>는 9월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고, 현재까진 중국과 영미권에서 먼저 출시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리프트바운드>는 국내 출시 과정에도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특히나 한국 시장에서의 반응 및 가격 형성에 이목이 모일 듯하다.
사실 여기까지도 TCG 시장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거나, 굉장히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인기 카드게임'들의 이야기였다고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래부터는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 TCG에 시장성 또는 사람들의 관심도가 있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틀 전 카드몬스터 손수현 대표는 자신의 링크드인 게시물을 통해, 크래프톤과 공식 파트너십을 맺어 <PUBG>(배틀그라운드)를 오프라인 카드게임 제품으로 만드는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아직 구체적인 제품 정보가 공개되진 않았으나, 해당 카드게임이 단순한 보드게임 형식에 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게시물의 하단엔 "#TCG"라는 태그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트레이딩'이 가능한, 일반적으로는 카드 팩에서의 뽑기와 레어도가 있는 형태의 게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는 <배그>의 이미지라면 카드를 수집하는 형태와 아주 상성이 잘 맞는지는 다소 의문이 들긴 하지만, 일단 크래프톤 또한 이 카드게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 집중해보자.
이쪽도 다소 의문이 드는 카드 출시인데, 엔비디아는 오늘(16일) '지포스 트레이딩 카드 시리즈 1'을 소개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카드는 엔비디아가 카드 팩으로 매출을 내자고 출시한 것도 아니고, 트레이딩 카드 '게임'도 아니긴 하다.
엔비디아와 제품 그리고 이용자들 사이의 기억을 기념하는 일종의 '이벤트성 무료 배포 카드'다. 주요 게이밍 행사와 커뮤니티 이벤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이 카드 상품에 붙인 '이름 표현'이 눈길을 끈다. 한정적인 상황에서 무료 배포를 할 것이라면서도 굳이 '트레이딩 카드'라는 표현을 썼고, 총 14장으로 구성된 카드를 '모두 모아보라'는 문구도 활용됐다.
'시리즈 1'이라는 표현이 붙은 건, 앞으로도 이런 카드를 계속 선보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 엔비디아 트레이딩 카드 소개 영상의 마지막 문구
물론, 대부분의 댓글은 엔비디아 트레이딩 카드에 대해 "철 지난 만우절 장난인가?"라는 반응을 보였고, 엔비디아 또한 유쾌한 이미지를 가져가기 위해 이런 이벤트 카드를 만든 것처럼 보여진다.
다만, 한걸음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이런 해석도 할 수 있다.
마케팅적 유머의 대상이 된다는 건, 그만큼 TCG 시장 또는 문화가 보편적 공감대로 통하고, 이목을 끄는 소재가 됐다는 뜻이다.
지금 시점에 이런 이벤트 카드를 발매하는 것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정도로 카드게임에 대한 인기가 높은 때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 디스이즈게임 회사 인근에 위치한 카드샵에서 찍은 사진
이제 결론이다. 소니의 디스크 종말 선언 이후 게임 소매점에 큰 타격이 예고된 가운데, 게임샵들의 미래에 대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물론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콘솔 게임과 관련해 대단한 실물 상품 구성이 추가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한 다수의 소매점은 폐업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소매점들 중 일부는 TCG, 캡슐 가챠, 피규어, 굿즈 등을 비롯해 기존 실물 상품들을 어떻게 더 적극적으로 매대에 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벌써 하고 있는 중이고,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그런 형태의 업장들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정말 카드게임을 플레이하고 즐겨서 구매하느냐와는 무관하게, 일단 카드 팩을 사거나 특정 카드를 거래하는 것에 대해 이전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보는 요즘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 또한 한 명의 TCG 팬으로서, 인접한 현상의 병기에 그치지 않고, 정말로 실물 카드게임이 제대로 된 인기를 얻거나, 게임샵이 생존할 다른 뚜렷한 활로가 더 나타나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PS5 디스크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 2028년 1월까지, 과연 시장 상황은 어떻게 변해갈까. 게임 업계 안팎에서 여러 대안을 두고 머리를 함께 맞대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