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오공>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중국산 스탠드얼론 게임이 거둔 최초의 쾌거는 '중국 게임의 황금기'라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고, 업계는 일제히 '제 2의 <오공>' 찾기에 나섰다. 유력한 후보로 <팬텀 블레이드 제로>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한편, 그 이면에서는 강력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한 인디게임 씬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라부부' 아트토이의 열풍이나 자국에서만 천문학적인 흥행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너자 2>의 사례는, 중국 대중문화가 가진 '내수용'과 '글로벌'이라는 두 얼굴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공>의 성공 이후, 중국의 콘텐츠 산업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AAA 게임부터 인디 씬, 그리고 내수와 글로벌 시장의 경계에 선 중국 문화 콘텐츠의 현주소와 미래 가능성을 다각도로 짚어본다.
'제2의 오공을 찾아서'
중국 현지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오공>이 히트를 쳤다 보니 중국 현지에서도 '제2의 <오공>'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 인상이다.
<원신>을 필두로 한 일군의 '2차원' 서브컬처 게임들이 이미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스팀에서도 최근 들어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 <델타포스>, <듄: 어웨이크닝> 등의 라이브 게임이 많은 유저를 모았다. 시작과 끝이 분명한 싱글 스탠드 얼론 게임으로서는 <오공>이 최초로 성과를 냈다. 그래서 지난 5월에는 <오공>의 성공을 근거로 "중국 게임의 황금기가 왔다"는 자신감 넘치는 분석까지 나왔다.
그러다 보니 지금 중국 게임업계에서는 <오공>의 뒤를 이을 게임으로 여러 게임들이 언급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명말: 공허의 깃털>, 8월에는 <로스트 소울 어사이드>가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 두 게임은 '제 2의 <오공>'이라고 할 만큼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전자는 중국의 역사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후자는 소니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세상에 나왔다.
▲ 차이나조이의 <명말> 부스
안타깝게도 두 게임은 기대에 미치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듯하다. 기자가 중국에 있을 때는 <명말>이 이미 시장에 출시되었고, <로스트 소울 어사이드>가 발매되기 직전이었다. 이 무렵 현지 미디어 게임룩의 에릭 대표는 "고품질 게임에 대한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현지 게이머 사이에서도 크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게이머들이 생각하는 '고품질 게임'의 벽을 뚫으면, 가공할 만한 폭발력이 생겨난다. <오공>의 최대 동시 접속자는 222만 명이다.
소니는 수년간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라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서 콘솔게임 씬의 밑바탕을 닦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선정된 게임 중 아직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낸 게임은 많지 않지만, 중국 내에 콘솔게임 또는 스탠드 얼론 게임 개발을 경험한 개발자의 수 점점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프로젝트 발표회에 모인 개발자들은 모두 '파이팅'이 넘쳐 보였다. 이를 두고 아무개는 '중국인 특유의 허장성세'라고 얕잡아 봤지만, 자기 물건에 자신이 있어야 다른 사람도 설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로 성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SIE는 이 사업을 인도와 MENA(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도 확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이러한 소니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까. 네오위즈 <P의 거짓>, 시프트업 <스텔라 블레이드>, 민트로켓 <데이브 더 다이버>를 만드는 것을 보고 '알아서 잘 하는 시장'으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을까? 콘솔게임 불모지에서 지금의 토양까지 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경쟁자들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 SIE는 매년 차이나조이 개막 전날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의 발표회를 열고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현시점에 '제 2의 오공'에 근접한 타이틀은 베이징 소재 S-게임이 개발 중인 <팬텀 블레이드 제로>다. 내년 출시를 앞둔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유려한 액션과 화려한 연출을 담은 '쿵푸펑크'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다. 소울라이크 게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을 뿐 아니라 홍콩 무협영화의 선 굵은 액션을 담아내고 있다. S-게임은 지난 차이나조이는 물론 게임스컴에서도 해당 게임의 시연대를 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게임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오공>이 만들어낸 열풍 속에서 한 동안 출시될 게임들은 좋거나 싫거나 <오공>의 그늘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제 2의 <오공>'보다 중요한 것은 재밌는 게임이 많아지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 차이나조이의 SIE 부스. 가장 왼쪽에만 긴 줄이 있는데, 이 줄이 바로 <팬텀 블레이드 제로> 시연 대기열이다.
중국산 인디게임, 어디쯤 왔나
2023년, 중국인디게임연합(CIGA)의 창립자 사이먼은 인터뷰에서 중국 인디게임이 글로벌 히트를 기록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지역색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국 문화나 전통을 소재로 한 인디게임이 많아 국제적으로 소구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격언도 떠오르고, '가장 중국적'인 <오공>의 성공도 오버랩된다. 무엇보다 중국은 막대 내수시장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만 '바이럴'이 터져도 100만 장 이상은 거뜬히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로스트 캐슬>이 그랬고, <중국 부모>가 그랬다. 마침 중국 인디게임의 현주소를 짚을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출장 기간 중 하이퍼그리프의 산하 브랜드 '코어블레이저'는 상하이에서 인디게임 페스티벌 '코어블레이저 게임 페스트'(CGF)를 개최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용산 아이파크몰 같은 복합쇼핑몰의 한 층 공간을 빌려 주말 동안 인디게임 전시를 연 셈이다. 신생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인의 시선에서 중국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다.)
▲ 상하이에서 열린 코어블레이저 게임 페스트. 한국의 네오위즈는 물론 <저니>와 <스카이>의 댓게임컴퍼니도 동참했다.
근 몇년 동안 인디게임 씬에서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인 한국의 네오위즈는 일찌감치 이 행사에서 일익을 차지하고 있었다. 네오위즈는 올해부터 자체 부스를 내고 <셰이프 오브 드림즈> 등 자사 인디게임을 홍보하는 한편, CGF에 출전한 게임 중 우수한 게임을 뽑아 어워드까지 시상했다. 최우혁 네오위즈 PC게임사업부장은 트렌드보다 지속적인 성장세를 강조했다.
기자는 그간 한 발짝 떨어져 인디게임을 취재하면서 트렌드가 다소 추종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인기를 끌었을 땐 <슬레이 더 스파이어> 같은 게임이, <하데스>가 인기를 끌었을 땐 <하데스> 비슷한 게임이 자주 보였다는 이야기다. 2010년대부터 스팀 플랫폼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면서 절대 다수의 게임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디포칼립스(Indiepocalypse) 현상이 나타났고, 이에 인디게임계에서도 생존을 위한 분투가 일정 부분 그런 방식으로 나타났다.
CGF에서 만난 게임들도 ⓐ 중국적이거나 ⓑ 추종적인 점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매년 게임을 만들려는 이들은 늘어나고 있다. 씬이 커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반대로 경쟁이 심화된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관계자는 "스팀 위시리스트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며 '앞서 해보기'의 유행과 함께 게임의 성패가 출시 전에 결정되는 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 인디의 고민을 중국 인디도 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발라트로>와 <스케줄 원>(Schedule I)의 대성공을 예견하지 못했듯, 지금도 어디선가 1인 개발자, 또는 소규모 개발팀은 담금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초 대박 인디 게임이 중국에서 탄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Thank You for Your Application)는 면접관이 되어 지원자들의 합격, 불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시뮬레이터다. 이 게임은 도쿄게임쇼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내수 전용과 글로벌: 중국산 대중문화의 두 얼굴
팝마트는 중국의 캐릭터 기업으로 '라부부' 등의 아트토이를 제작 유통하고 있다. 랜덤박스의 형태로 아트토이를 판매해 큰 돈을 벌었다. 원래는 디즈니와 마블 IP 캐릭터를 인형이나 키링 등의 상품으로 팔았지만, 유수의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면서 자체 캐릭터 지분을 점차 확대시키고 있다. '라부부'는 그 대표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6월 15일 항저우에서는 팝마트 새 매장이 문을 열었다. 현장에는 장사진이 펼쳐져 오픈 12분 만에 판매가 종료됐다. 문이 열리자 마자 리셀러들이 물건을 쓸어담아 모든 물건이 동이 난 것이다. 가장 인기가 있는 상품은 큰 눈과 주근깨가 특징인 토끼처럼 생긴 '라부부'였다. 라부부의 한정판 상품은 저렴하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도 거래가 이루어진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상품을 '가챠' 형태로 판매하기 때문에 희소성은 더 높다.
▲ 항저우 팝마트에서 판매 중인 라부부. 모든 라부부가 귀한 라부부는 아니고, 특별히 고가에 거래되는 라부부가 따로 있다고.
이에 인민일보는 같은달 20일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블라인드 판매 방식이 소비 자제력이 부족한 아동·청소년의 충동구매를 부추기고 있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사실상 중국공산당에서 팝마트와 라부부를 주시하고 있다고 메시지를 냈다는 분석이 나오게 됐다. 기자가 항저우 팝마트를 찾은 7월에 라부부 매대는 축소되어 있었다.
그러나 라부부에 대한 열광적인 인기는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기자는 열흘간 상하이와 항저우에 머물며 라부부 인형을 수도 없이 많이 목격했다. '라푸푸'나 '라보보'와 같은 가짜 라부부를 판매하는 매대도 곳곳에 발견됐다. 라부부 '짝퉁'은 라부부만큼 많아서 한국의 연예인들까지 짝퉁 라부부의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가방에 라부부 인형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중국인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 보면 한국인인 경우도 있었다.
항저우에서 150km 떨어진 이우(义乌)는 중국 최대 규모의 도매상가가 있고, 이곳에서는 한국인 업자까지 종종 사입을 하러 온다고 들었다. 그곳에서도 (짝퉁) 라부부는 인기리에 거래 중이라고 해서 방문하려고 했지만 인디게임 행사를 취재하러 가느라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포기했다. 도매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우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고 그랬다.
▲ 출장 중 어렵지 않게 팝마트의 '로보샵'을 만날 수 있었다.
차이나조이가 개막한 8월 1일, 텐센트와 라이엇게임즈는 중국 시장에서 <리프트바운드>의 서비스를 개시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오프라인 TCG로 8월 1일 전 세계에서 중국에 최초로 공개됐다. 개막일 리셀러들은 <리프트바운드> 부스로 달려갔고, 그날 곧바로 더우(得物), 셴위(閑魚) 등의 플랫폼에서는 <리프트바운드> 중고 거래 시장이 열렸다. 라부부 다음의 리셀 인기 트렌드가 <리프트바운드>가 된 것이다.
라부부가 중국에서 인기를 먼저 끌고, 한국의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전파가 시작된 것처럼 <리프트바운드>와 그 거래 시장도 중국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한국에 전파될까? 라이엇게임즈는 인터뷰에서 <리프트바운드>를 한국에 출시할 것이며, 대회 생태계 또한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리셀 시장에 대해서는 이들이 할 말이 많지 않을 것이다. 기자의 통역이 입수한 <리프트바운드> 실물 카드 팩에는 카드의 등장 확률이 표기되어 있었다.
▲ 8월 1일 차이나조이 개막일에 출시된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 실물 TCG <리프트바운드>
문화의 장벽을 넘고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콘텐츠가 한국에 넘어오는 일이 앞으로 더 많아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수용과 글로벌용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령 한국인은 <너자>(哪吒)를 모른다. <봉신연의>의 너자를 배경으로 한 중국산 애니메이션으로 최근 그 2편이 중국에서 초특급 흥행을 거두었다. <너자 2>는 중국 영화 최초로 100억 위안(약 2조 원)의 매출을 넘겼다. <너자 2>는 <인사이드 아웃 2>와 <겨울왕국 2>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너자 2>는 철저한 내수 상품으로 이 영화의 '애니메이션 매출 1위'를 위해 지역 주민들과 회사들이 단체 관람을 하는 문화가 생겨났다고 한다. 관영 매체에서는 아나운서가 감격한 목소리로 그 현상을 전했다. 한국적 콘텐츠를 담고 있지만 민족주의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너자 2> 열풍은 비교하자면 <케데헌>보다는 <디워> 쪽에 가깝다. 게이머라면 <오공>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고, 개중에 몇몇 사람들은 구매해서 해봤겠지만, <너자 2>는 이야기가 다른 것이다. (계속)
▲ <너자 2>는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지만, 중국 밖에서는 <케데헌>에 미치지 못한다. 이렇듯 내수용 상품과 외수용 상품의 성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당연히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외수 상관 없이 널리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너자 2>도 지난주 북미권에 개봉했다.
▲ 라부부는 이렇게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