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번 '빌리빌리 퍼스트룩'에서 만난 마지막 타이틀을 소개할 차례다. <007: 퍼스트 라이트>. 이 작품만큼 행사의 화려한 피날레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게임이 또 있을까.
오는 5월 정식 출시를 앞둔 <007 퍼스트 라이트>는 이미 전 세계 게이머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기대작이다. "14년 만에 등장하는 새로운 <007> 게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원작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히트맨> 시리즈를 빚어낸 잠입 액션의 명가 IO 인터랙티브가 개발을 맡았다"는 수식어까지 붙는다면? 그 기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리라.
정말 운이 좋게도, 이번 행사에서 출시 전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비공개 시연에 직접 참가할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니 확신을 담아 말하건대 2020년 프로젝트 최초 공개 이후 6년이라는 긴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시연을 통해 맛본 그 경험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단단히 기대해도 좋다. <007>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에스피오나지(Espionage)'의 농밀한 정수를, <히트맨>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전에 없던 신선하고 강렬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완벽한 작품이 탄생했으니까.
🎮 빌리빌리 퍼스트룩에서 만난 게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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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입 액션 명가가 재해석한 Z세대 제임스 본드
<007 퍼스트 라이트>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노련하고 차가운 스파이로서의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그가 코드네임 '007'을 부여받기 전의 풋풋한 기원을 다룬다.
게임의 무대는 본드가 영국 비밀정보국 MI6에 공식적으로 입문하기 이전, 26세의 해군 항공요원으로서 009를 추격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이국적이고 위험한 첩보 세계를 처음 경험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냉소적으로 변한 기존의 본드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아직 모든 것을 겪지 않아 더 희망적인 시각을 가진 '젊은 본드'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새로운 본드의 목소리와 연기는 패트릭 깁슨(Patrick Gibson)이 맡았으며, 조력자인 미스 로스 역의 나카이 노에미(Noémie Nakai)를 비롯해 레니 크라비츠, 젬마 챈 등 쟁쟁한 할리우드 캐스팅이 작품의 무게를 더한다.
▶ <007 퍼스트 라이트>의 젊은 제임스 본드(왼쪽)와 성우를 맡은 배우 패트릭 깁슨(오른쪽)
장르적으로는 IO 인터랙티브가 지난 20년 넘게 <히트맨> 시리즈를 통해 쌓아온 잠입 액션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3인칭 첩보 액션 어드벤처를 표방한다. 게임의 흐름은 끊김 없는 스토리 기반으로 진행되지만 플레이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완급을 조절한다.
선형적이고 시네마틱한 연출 속에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긴장감을 만끽하는 '가이드형 플레이'가 한 축을 담당한다면, 장비 사용부터 은신 및 전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플레이의 결정권을 플레이어에게 넘기는 샌드박스 방식의 '코어 플레이'가 다른 한 축을 지탱한다.
첩보 활동의 정수를 경험하게 해줄 시스템은 크게 네 가지 기둥으로 설계되어 플레이어의 창발적 플레이를 요구한다. 군중 속에서 대화를 엿듣거나 소매치기로 핵심 정보를 빼내는 등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잠입에 필요한 정보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Q-Lab'에서 제공하는 첨단 장비들은 상황에 따라 무궁무진한 전술적 옵션을 제공한다. 특히 핵심 아이템인 다기능 '오메가 시계'는 환경 스캔과 해킹은 물론 연막탄 및 다트 발사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사실상 전장의 마스터키 역할을 한다.
전투 시스템 역시 기존 잠입 게임과는 결을 달리하는 호쾌함과 즉흥성을 자랑한다. 자유도 높은 근접 전투를 통해 적의 총을 발로 차 올려 집어 들거나 팔꿈치 공격으로 무기를 빼앗는 등 본드 특유의 세련된 액션을 직접 조작할 수 있다.
특히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한데, 탁자 위의 커피잔을 던져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소화기, 당구대 등 눈에 보이는 사물을 즉흥적으로 전투에 활용하여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적이 명확한 살해 의도를 보일 때만 활성화되는 '살인 면허' 시스템이다. 이는 본드가 아직 미숙한 요원이라는 설정을 반영한 메커니즘으로, 무분별한 총격전이 아닌 상황에 맞는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며 첩보물 특유의 긴장감을 더한다.
▶ '살인 면허'가 허가됐을때만 무기 사용이 가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살인 면허만 있으면 이렇게 호쾌한 건파이팅이 가능하다는 것.
# <007> 게임에서 느껴지는 진한 <히트맨>의 향기
드디어 시연의 소감을 풀어낼 차례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상세하게 전해보겠다.
이번 시연에서 체험한 구간은 총 세 곳이다. 게임의 도입부이자 튜토리얼 성격인 '아이슬란드' 챕터, 핵심 메커니즘을 샌드박스 환경에서 익힐 수 있는 '몰타' 챕터가 있다.
그리고 어엿한 요원으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펼치는 '켄싱턴' 챕터까지다. 참고로 챕터명은 편의상 배경이 되는 지역명을 붙였을 뿐, 실제 미션명과는 차이가 있다.
아이슬란드 챕터는 평범한 해군 항공요원이었던 제임스 본드가 어떻게 영국 비밀정보국 MI6에 합류하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작전을 돕던 본드는 정체불명의 적에게 공격받아 불시착하고, 사라진 요원들을 대신해 기밀 작전에 뛰어들게 된다.
<007> 시리즈의 팬들에겐 가슴 뛸 만한 순간이 많은 챕터이기도 하다. 일례로,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묘사했던 본드의 오른쪽 뺨의 흉터가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인지 그 기원이 밝혀지며, 우리가 알던 노련하고 침착한 스파이가 아닌, 무모하고 혈기 넘치는 젊은 본드의 거친 매력을 목격할 수 있다.

▶ 평범한 군인이었던 제임스 본드가 MI6에 합류하는 과정을 다룬 아이슬란드 챕터.
이어지는 몰타 챕터는 정식으로 MI6에 합류한 본드가 훈련을 받는 과정을 다룬다. 동시에 플레이어에게는 이 게임이 어떤 문법을 가지고 있는지 체화할 수 있는 거대한 튜토리얼 공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 챕터에서 <007: 퍼스트 라이트>의 핵심 장비인 'Q-렌즈'가 등장한다. 다기능 오메가 시계에 부착된 이 기능은 주변 환경을 스캔해 적의 실루엣이나 상호작용 가능한 물체를 투시해 준다.
은폐와 엄폐가 생명인 잠입 액션에서 플레이어의 시야를 넓혀주는 든든한 아군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Q-렌즈는 부착된 레이저 장치로 자물쇠를 끊을 때도 쓰이고, 레이저를 적의 눈에 조준해 잠깐동안 적을 실명시키는 데에도 쓰인다.
그 뿐만인가? 멀리 있는 전자기기를 작동시켜 적들의 관심을 돌리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기능은 모두 전력을 소모하므로, 맵 곳곳에서 전력을 채워줄 장치를 찾을 필요가 있다.
게임 속 맵은 이처럼 상호작용 가능한 오브젝트로 밀도 높게 채워져 있다. 어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루트를 어떻게 개척할 것인지는 오롯이 플레이어의 자유다. 앞서 언급한 '코어 플레이'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구간이다.

▶ Q-렌즈를 사용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누군가는 이런 창발적 플레이에서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개발사의 전작 <히트맨>이 이를 쏙 빼닮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007 퍼스트 라이트>가 <히트맨>을 빼닮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히트맨>의 '에이전트 47'이 타겟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독한 암살자라면, 본드는 스파이라는 점이다. 불필요한 소란을 일으켜서도 안 되고, 무고한 희생을 발생시켜서도 안 된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무기는 없지만, 적이 떨어뜨린 총기를 노획해 사용할 수는 있다. 단, 오직 상대가 무장 상태이고 명백한 살해 의도를 보였을 때만 격발이 허용된다. 00 요원의 '살인 면허'가 시스템으로 구현된 흥미로운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제약 덕분에 <히트맨>보다 대인 격투의 비중과 밀도가 훨씬 높아졌다. 불청객을 환영할 적들은 없으니 말이다. 타격과 방어, 회피가 어우러진 격투 액션은 훨씬 정교해졌고, 적들의 AI도 상당히 영악해졌다. 특히 적을 제압할 때 터져 나오는 피니시 무브 연출은 영화 못지않게 역동적이고 통쾌하다.

▶ 호쾌한 근접 전투와 매끄러운 건슈팅의 연계. 전투가 기가 막히게 재밌다. 전투가 자주 발생하면 문제지만...
자, 이렇게 훈련을 마친 본드와 플레이어는 켄싱턴 챕터에서 본격적인 실전에 투입된다. 켄싱턴의 숙소를 덮친 암살자들을 제압한 후, 배후를 캐기 위해 시끌벅적한 연회장에 잠입하는 미션이다.
일차적인 목표는 보안이 철저한 2층 보안실에 잠입해 CCTV 기록을 확보하는 것이다. 앞서 감탄했던 코어 플레이는 여기서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2층으로 향하는 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기자는 우연히 엿들은 기업인의 대화를 힌트 삼아 기자를 사칭해 그녀와 함께 2층으로 직행하는 루트를 택했지만, 이 외에도 창의적인 우회로가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주어진 단서와 찰나의 기회를 어떻게 엮어내느냐에 따라 게임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은 압도적이었다.

▶ 훔친 카메라로 기자인 척 하며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이 구간에서는 게임의 또 다른 핵심 메커니즘인 '인스팅트'가 진가를 발휘한다. 잠입 중에는 적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교전 중에는 조준 시간을 벌어주는 '불릿 타임' 효과를 발동시킨다.
만약 정체가 탄로 날 절체절명의 위기라면? 순간의 재치로 적을 속여 넘기는 '블러핑'으로 상황을 능청스럽게 모면할 수도 있다.
이후 마주하게 되는 보스전은 그간 익힌 모든 시스템을 총동원해야 하는 테스트와 같다. 무장한 보스에게 발각되면 꼼짝없이 당하는 쫄깃한 긴장감 속에서, 어두운 창고를 은밀하게 누비며 보스를 유인하고 환경 오브젝트를 오작동시켜 괴롭히는 "스파이다운" 전투가 펼쳐진다.
여담이지만, 보스가 플레이어의 함정을 학습하고 먼저 파괴해버리는 기믹이 있어, 의기양양하게 파놓은 함정이 터져 나가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의심을 샀다면 능청맞은 연기를 활용해보자.
문제(기사의 분량을 생각하면 문제가 맞다)는 이 뒤로도 새로운 게임 플레이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반전, 조력자와의 조우, 무장 병력과의 대규모 총격전, 심지어 <히트맨>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속도감 넘치는 카체이싱 액션까지.
단 3개의 챕터만으로 이 정도의 볼륨과 밀도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시연을 마치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007: 퍼스트 라이트>가 남긴 잔상은 여전히 강렬하다.
그 짜릿한 잠입의 쾌감에 취해 결국 <히트맨> 시리즈를 다시 플레이했을 정도다. 정식 출시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007> 영화들을 정주행하며 이 달아오른 기대감을 달래려 한다.
다시 한번 단언컨대, 이번 작품은 <007> 시리즈의 팬과 <히트맨> 팬 모두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만약 둘 다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이 게임을 통해 양쪽 세계 모두에 흠뻑 빠져들게 될 테니까.
유난히 글로벌 대작들이 쏟아지는 2026년, 감히 예측하건대 5월의 진정한 승자는 <007: 퍼스트 라이트>가 될 것이다.

▶ 시원시원한 카체이싱 액션은 <히트맨>에선 볼 수 없던 <007 퍼스트 라이트>만의 매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