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중국 상해에서 열린 '빌리빌리 퍼스트룩(Bilibili Firstlook)' 행사에 다녀왔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중국에서 개발 중이거나 출시를 앞둔 신작들을 미리 만나보는 자리다. '빌리빌리 월드' 같은 대규모 B2C 행사가 아닌 현지 미디어와 인플루언서 위주의 소규모 행사였지만, 참신한 인디 게임부터 글로벌 AAA급 게임까지 출사표를 던지며 행사를 빛냈다.
그중 가장 먼저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게임은 중국의 인디 개발사 디지털스카이(DigitalSky)가 개발 중인 신작 <맨데이트 오더>였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20명 남짓한 소규모 인력이 단 1년 만에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와 볼륨을 자랑했다.
▶ 빌리빌리 퍼스트룩 행사 현장. 국내외 미디어와 인플루언서들이 참여했다.
# 토탈워+문명+심시티?
<맨데이트 오더>는 앞서 언급했듯 고대 중국, 정확히는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보통 중국 역사를 다룬 시뮬레이션 게임은 삼국시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게임은 기존의 흐름을 답습하는 대신,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이행하며 수많은 사상이 분출되던 격동의 춘추전국시대를 주 무대로 선택했다.
실제로 당대의 핵심 키워드인 '제자백가(諸子百家)'는 게임 내 '문객' 시스템으로 흥미롭게 구현됐다. 중국의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 중 한 명인 위(魏)나라 '신릉군'이 3천 명의 문객을 거느렸던 역사적 사실에서 영감을 받은 시스템이다. 어떤 사상적 학파를 채택하고 어떤 문객을 등용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 특징인데, 예를 들어 적 병력을 많이 처치하면 군사를 관장하는 '병가'의 문객이 찾아오고 농사를 장려하면 '농가'의 문객이 찾아오는 등 유저의 통치 스타일에 따라 다채로운 문객을 등용할 수 있다.
농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맨데이트 오더>의 가장 큰 차별점은 동양 농경 문명의 정수를 시뮬레이션 시스템에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점이다. 단순히 생산 시설을 지어두면 자원이 무한히 증식하는 방식이 아니다. 봄에는 밭을 갈고 여름에는 김을 매다가, 가을에 수확한 농작물로 혹독한 겨울을 버티는 계절의 순환이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러한 사계절의 흐름 속에서 한정된 노동력과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이 이 게임만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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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실제 영지 풍경의 모습도 달라진다.
게임의 전투 시스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인데, <맨데이트 오더>의 전투는 <토탈 워> 시리즈의 그것과 제법 유사하다. 기본적으로 수십, 혹은 수백 명의 군대가 치열하게 맞붙는 대규모 실시간 전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마우스를 드래그해 병종별 진형을 직관적으로 구축해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고지대에서 활을 쏘면 피해량이 증폭되거나 전차를 돌격시켜 적들의 진형을 무너뜨리는 등 현실적인 전략적 요소들도 구현되어 있어 이를 활용해 역사적인 전투를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 <토탈 워> 시리즈와 비슷하게 다양한 병종들로 진형을 갖춰 싸우는 대규모 실시간 전투가 펼쳐진다.
# 동양의 <매너 로드>를 꿈꾸며
여기까지 살펴본 특징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맨데이트 오더>는 앞서 출시된 시뮬레이션 게임 <매너 로드(Manor Lords)>와 상당히 비슷하다. 실제로 개발진은 자신들이 <매너 로드>의 팬임을 고백하며, 그에 깊은 영감을 받아 "동양판 <매너 로드>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 현장에서 만난 <맨데이트 오더>의 개발진들
실제로 게임의 데모 버전을 플레이해 보니, 개발진이 의도한 방향성이 명확히 느껴졌다. 게임의 목표는 무조건적인 정복만이 아니다. 천하통일을 이뤄 스스로 천자(天子)가 되는 길도 있지만,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 인구수 1,000명을 달성하거나 '명도전' 같은 화폐 100만 개를 모아 부를 축적하는 식의 다채로운 승리 조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게임의 초반부는 간단한 튜토리얼과 함께 시작된다. 벌목장, 채집장, 채굴장 등을 건설하고 천막을 지어 백성들의 수를 늘리며 영지를 다스리게 된다. 주의할 점은 건물이 완성됐다고 무한정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물을 운반하는 데도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물류와 생산 사이의 정교한 인력 줄타기가 필수적이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순수한 의미의 '민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대 중국의 군사 편제 단위인 '오(伍)'를 기반으로 모든 백성이 곧 민병대이자 군인으로 취급된다. 논과 밭을 일구던 농민들이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나서기 때문에 병력 양성은 곧 극심한 노동력 손실을 의미하므로,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전략적으로 병력을 생산하고 활용해야 했다.
▶ 생산 시설은 건설 후에 적절한 수의 인력을 배치해야 생산이 시작된다. 생산품으로 창고가 가득차면 생산은 자동으로 중단된다.
▶ 생성된 분대는 우클릭 드래그로 진형을 짤 수 있다.
생산된 자원은 우선적으로 생산 시설에 저장되는데, 저장된 자원이 최대치에 달하면 생산은 중단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근에 생산 자원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소를 짓고, 해당 자원을 사용해 다른 자원을 생산하는 또 다른 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수레나 마차를 생산해 생산물이 운송되는 속도를 높일 수 있으며, 도로를 짓고 운송 시설을 배치하면 보다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앞서 언급한 사계절은 자원의 생산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겨울이 되면 대추 같은 농작물의 생산량이 0으로 감소해 혹독한 보릿고개를 맞닥뜨리게 된다. 계절의 순환은 화면 상단에 표시되는 다이얼을 통해 알 수 있으므로 이를 참고해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추가로 무작위로 발생하는 이벤트 중에는 가뭄이나 역병 같은 천재지변도 있는데, 이 역시 다이얼 위에 표시되니 사전에 준비를 해두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적절한 위치에 건물을 짓고 도로를 이어주는 <심시티> 플레이가 중요하다.
▶ 천재지변 시스템 덕분에 이런 유니크한(?)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고...
전체적으로 "이 정도 인력과 시간으로 이 만큼의 퀄리티를?" 이라고 감탄이 나올 만큼 준수한 완성도를 자랑했으나,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했다.
첫 번째는 튜토리얼의 불친절함이다. 위에서 언급한 도로 시스템은 건물의 배치와 자원 운송의 속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정작 게임 내 튜토리얼에선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게임 내 전략적 요소들을 다양한 것에 반해 이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은 아쉬웠다. 다행히 개발진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지해 초반 가이드 구간을 다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아쉬운 한국어 번역이다. 감사하게도 한국어를 정식 지원하지만, 그 퀄리티가 많이 아쉬운 상태다. 어째서인지 샌드박스 모드가 '종료'로 번역되기도 하고, 게임 내 건물들의 명칭이 가이드의 문구와 달라 맥락으로 유추해야 하는 상황이 잦았다. 소규모 개발사 특성상 AI 번역을 활용했기 때문인데, 개발팀은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전문 번역 업체에 맡기기보다는, 한국 유저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적극 수용해 번역을 개선해 나가고 싶다"며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였다.
▶ 대체 기교방은 뭐고 수송 마차 전환은 어떻게 하는 건데! 운송 마차는 어떻게 만드는 건데!!
▶ 저기 메뉴 화면 중 '샌드박스 모드'는 어디에 있을까? 답은 4번째 줄이다.
여담으로 게임의 총괄 프로듀서는 호주 유학 시절 한국인 룸메이트에게 <스타크래프트>를 배우며 전략 게임에 눈을 떴다고 밝힐 만큼 한국 게이머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존중을 표하기도 했다. <맨데이트 오더>는 현재 스팀에서 진행 중인 '중세 게임 축제'에서 데모 플레이가 가능하며, 오는 7월 진나라의 거대한 서사를 다룬 '장평대전' 캠페인 모드와 함께 얼리 액세스로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동양 배경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플레이해 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