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 편의 기사를 통해 우리는 일본 게임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추적해왔다. 플랫폼의 다변화, 일본 게이머들의 새로운 요구, 그리고 시장을 관통하는 IP와 서사의 힘을 심도 있게 조명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변화의 파도에 올라탄 일본 시장, 과연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가?
물론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완벽한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유연한 대응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만 얽매이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임이 자명하다. TGS 2025에서 만난 한국의 개발사들은 이러한 변화를 직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며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그들은 이미 새로운 시장의 언어를 이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답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달라진 일본 시장의 문을 열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마지막 열쇠는 무엇일까? 총 4부작으로 이어진 기획의 마지막 편인 이번 기사에서,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와 현지 업계 종사자들의 조언을 통해 그 청사진을 그려보고자 한다.

[관련기사]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① 플랫폼 시장의 변화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② 일본의 게이머 공략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③ 콘텐츠의 딜레마: IP, 서사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④ 일본 시장 진출 청사진 (현재 기사)
# 게임의 장르를 명확이 파악하고 이해하자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은 초기 일본서비스의 퍼블리싱을 요스타(Yostar)를 통해 진행했다. 한국에서 서비스를 먼저 시작한 <에픽세븐>은 우리가 알기로는 2D 미소녀 캐릭터가 나오는 수집형 RPG, 즉 서브컬쳐 장르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 처음에는 요스타와 손잡은 스마일게이트
하지만 스마일게이트는 <에픽세븐>의 일본 퍼블리싱을 독자 서비스로 전환했다. 주요 게임의 일본 서비스를 기존 퍼블리셔로부터 회수하여 직접 운영으로 전환한 것은, 단순히 비용 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의 정체성과 유저와의 소통, 즉 내러티브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중요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의 전략은 <에픽세븐>의 경우 서브컬처 장르가 아닌 RPG 라는 장르로의 재분류를 통해 다시 한번 타켓 유저를 설정하고 마케팅과 홍보, 라이브 서비스의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퍼블리셔는 게임의 핵심 정체성을 오해(예: 경쟁 중심의 RPG를 단순히 아트 스타일만 보고 '서브컬처' 게임으로 분류)하여, 잘못된 타겟 고객에게 어필하는 마케팅과 라이브 운영 전략을 펼칠 심각한 위험이 있다.

현재 일본 시장이 요구하는 깊이 있는 양방향 소통 전략은, 게임에 대한 철학과 이해도가 부족할 경우 제3자 퍼블리셔를 통해서는 진정성 있는 서비스가 매우 힘든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TGS 2025를 통해 일본에 선보인 한국 게임들은 대부분 자체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퍼블리셔가 아닌 독립부스로 출품하고 일본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니케>의 레벨인피니트, <블루아카이브>의 요스타처럼 퍼블리셔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장르에 최적화된 게임을 서비스한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타킷층에 맞는 게임을 제대로 개발사가 인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사실 여부다.
▶ 게임만 서비스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2차 시장으로의 확장도 염두에 두어야...
# 퍼블리셔가 아닌 직접 서비스의 의도
개발사가 자신들의 게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퍼블리셔는 개발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는 유저와의 신뢰 관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 현재 일본 시장에서 퍼블리셔의 역할은 단순한 마케팅 및 운영 파트너에서, 게임의 본질 및 개발사의 소통 철학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전략적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시장은 이제 개발자의 얼굴이 보이는 진정성 있는 소통을 요구하는데, 제3자 퍼블리셔는 개발사와 팬 사이에 불필요한 장벽을 만든다. 직접 서비스를 통해 개발사는 자신들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팬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모든 운영 결정이 게임의 본질과 커뮤니티의 정서에 부합하도록 보장할 수 있다.
이는 유저 피드백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개발에 반영할 수 있게 하여,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더 많은 초기 자원과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 작지만 전문성 높은 직접 서비스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장기적인 브랜드 구축과 팬덤 관리 측면에서 상당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운영 방식의 변경이 아니라, 일본 시장의 새로운 규칙에 맞춰 게임의 본질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선언이다.
▶ TGS 2025에서 첫 선을 보인 한국 게임들은 대부분 독립부스로 출전했다. 스마일게이트의 <미래시>가 대표적인 사례.
그래서인지 유독 도쿄게임쇼 2025(TGS)에는 퍼블리셔가 아닌 직접 부스를 낸 한국의 개발사들이 눈에 띈다. 넷마블을 비롯해 펄어비스, 넥슨, 컴투스, 스마일게이트 등은 3자 퍼블리셔가 아닌 직접 부스를 내고 게임을 선보이고 소개하고 유저들에게 직접 다가가고 있다.
▶ 서브컬쳐가 아닌 AAA 게임으로 독자적인 서비스와 마케팅에 나선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
# 마케팅 '예산'이 아닌 마케팅 '인내'의 중요성
일본 시장 공략은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닌,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이다. 한 달간의 대규모 사전등록 캠페인으로 단기간에 승부를 보는 한국 시장과 달리, 일본에서는 신규 게임을 시장에 제대로 안착시키기 위해 최소 6개월, 이상적으로는 1년의 장기적인 사전 마케팅 및 커뮤니티 구축 기간이 필요하다.
해외 기업, 특히 한국과 중국 게임사는 서비스를 조기에 종료할 것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시작부터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따라서 모든 마케팅과 소통 전략은 이러한 '신뢰 격차'를 극복하는 데 최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 한국 게임을 서비스하는 중국 퍼블리셔라는 미묘한 위치에 있는 레벨 인피니트가 일본 시장에 쏟아 부은 노력은 신뢰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매달 이 시간에 라이브 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약속하고 그것을 어김없이 지키는 것, 유저들의 날카롭고 불편한 질문도 피하지 않고 투명하게 답변하는 Q&A 세션, 그리고 장기적인 서비스에 대한 의지를 로드맵 발표 등을 통해 꾸준히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PR 활동이 아니다. 이는 유저들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이 게임에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필수적인 비즈니스 활동이다.
일본에서는 마케팅 '예산'보다 마케팅 '인내'가 더 중요하다. 시간과 꾸준함이야말로 신뢰를 구축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단기 광고 폭격은 초기의 다운로드 수치를 부풀릴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게임의 흥망성쇠를 지켜봐 온 현명한 일본 유저들이 장기적으로 투자하도록 설득하지는 못한다.
▶ 아키하바라 광고판을 연간으로 계약해서 진행하는 것은 예산도 예산이지만 유저에게 항상 저기엔 그 게임 광고가 이어진다는 의식을 갖게 만든다.
# 외국계 개발사라는 원초적인 약점 극복은?
그들은 너무나 많은 해외 게임들이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6개월 이상 꾸준히 이어지는 X 활동, 개발자 노트, 라이브 스트리밍은 단기 '치고 빠지기'식 운영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의 헌신을 보여준다. 이 지속적인 존재감 자체가 "우리는 이 시장에 진심이며, 오랫동안 함께할 것입니다"라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메시지가 된다.
기업들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사전 출시 단계를 위한 예산과 인력, 그리고 계획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이 단계의 목표는 단순히 사전등록자 수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출시와 함께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줄 초석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회사의 평판을 신뢰할 수 있는 장기 파트너로 각인시키는 것이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는 격언이 그 어느 곳보다 절실하게 적용되는 시장이 바로 일본이다.
▶ <붉은사막>의 펄어비스 부스는 TGS 첫 참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2025년 일본 게임 시장은 세 가지 거대한 변화의 축으로 정의된다. PC가 콘솔의 대안을 넘어 핵심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멀티 플랫폼 현실, 역설적으로 현명한 IP 협상가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정체된 콘텐츠 지형, 그리고 무엇보다 피상적인 자극이 아닌 진정한 커뮤니티와 서사의 깊이를 중시하는 플레이어 기반이 그것이다.
이제 성공 공식은 더 이상 막대한 마케팅 예산이나 유명 IP의 후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성공은 인내, 문화적 뉘앙스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플레이어와의 양방향 소통에 대한 진정한 헌신의 함수가 되었다. 앞으로 승리할 기업들은 플레이어를 단순히 수익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소통하고 성장시켜야 할 소중한 팬덤으로 대하는 곳이 될 것이다.
▶ NHN에서 일본 게임시장을 노리고 준비한 <어비스디아>는 초기부터 버튜버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 시장의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지만,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콘솔 독점과 폐쇄적인 유통이라는 과거의 물리적인 벽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신뢰, 소통, 그리고 콘텐츠에 대한 깊은 공감대라는 새로운 무형의 도전 과제가 들어섰다.
이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마스터하고,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승부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고 충성스러운 게임 시장 중 하나인 일본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