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일본 게임 시장은 하나의 역설을 마주하고 있다. 세계 3대 시장이라는 위상과 높은 가치를 지닌 성숙 시장이라는 안정적인 외피 아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 콘솔 중심의 예측 가능했던 일본 게임 시장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일본 게임 시장에서의 성공은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플랫폼의 혁명(PC의 부상), 콘텐츠 창출의 위기(IP의 정체), 그리고 플레이어 심리의 진화(진정성 있는 소통에 대한 갈망)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변화의 축이 서로 맞물리며 일본 게임 시장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에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일본 현지를 찾아 취재를 진행했다. 현장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일본지사(스마일게이트 등 6개사) 실무 책임자를 비롯해 C레벨 임원들, 그리고 오랫동안 일본 시장을 관찰해온 현지 미디어(패미통 등 3개사)와 직접 현장의 이야기를 나누며 일본 게임 시장을 분석했다.
도쿄게임쇼를 앞둔 지금 이례적으로 한국의 게임사들이 대거 참가를 결정한 지금. 과연 일본 시장의 현재 상황은 어떠할까? /(일본=도쿄)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관련기사]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① 플랫폼 시장의 변화 (현재기사)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② 일본의 게이머 공략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③ 콘텐츠의 딜레마: IP, 서사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④ 일본 시장 진출 청사진
# 멈출 수 없는 PC 플랫폼의 부상: 새로운 시대의 서막
과거 일본 게임 시장의 문법은 명확했다. 콘솔은 고품질의 프리미엄 경험을, 모바일은 접근성 높은 대중 시장을 양분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가장 구조적인 변화는 바로 PC 게임의 폭발적인 부상이다. <디아블로>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안 팔리던 나라 일본.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PC 게임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업계의 상식처럼 여겨졌지만, 이제 이 고정관념은 완전히 깨졌다.
수치적 변화는 명확하다. 콘솔의 왕국이라 불리던 2010년 후반부터 모바일게임의 왕국에 가까웠다. 일본은 코로나 19가 휩쓸던 2019년경 전체 게임 플랫폼 시장의 약 76%를 모바일게임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위상을 자랑했던 모바일게임의 비중은 2023년 66%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 감소분은 고스란히 PC 플랫폼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5%에 불과했던 점유율이 2023년 기준으로 13%로 급증했다.
일본의 대표 게임 미디어 패미통 역시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취재를 위해 만난 패미통 측은 2023년 기준으로 콘솔(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스위치) 유저는 약 3,800만 명 이상, 모바일게임 인구가 약 4,000만 명 이상으로 여전히 가장 큰 사용자 기반을 유지하고 있고 말한다. 그럼에도 PC 게임 인구는 약 1,500만 명이라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급성장했다.
인구수가 아닌 시장 규모만 따진다면, 콘솔은 2023년 기준으로 약 3,865억 엔(약 3조 6,500억 원), 모바일게임은 약 1조 2천억 엔(약 11조 3,000억 원), PC게임은 약 2,364억 엔(약 2조 2,3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성장률 면에서는 PC게임 시장은 4년간 300%라는 경이로은 성장세를 보이며 타 플랫폼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지각변동의 직접적인 기폭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려 발생한 플레이스테이션 5(PS5)의 극심한 공급 부족 사태였다고 패미통 측은 분석하고 있다. 고품질의 게임 경험을 갈망했던 젊은 세대는 기약 없이 PS5 추첨 판매를 기다리는 대신, 게이밍 PC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 코로나 19 팬더믹을 파고든 STEAM과 PC 플랫폼
이 외부적인 하드웨어 공급 충격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일본의 콘솔 중심적 사고방식에 균열을 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게이밍 PC는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도구를 넘어, 다른 작업도 가능한 다목적 기기로서의 부가가치를 인정받으며 빠르게 보급되었다. (※ 일본에서 PC는 사무용 기기의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게임을 즐기는 PC를 게이밍 PC로 구분하고 있다)
사용자 측의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개발사의 전략 선회로 이어졌다. 사이게임즈, 코로프라와 같은 전통적인 모바일 게임 강자부터 반다이남코와 같은 콘솔 명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주요 게임사들은 "내수 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 도쿄게임쇼 2025 특별 페이지도 스팀에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글로벌 퍼블리싱 계약을 거치지 않고도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에게 직접 게임을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통로로 스팀(Steam)을 주목했다. 이제 스팀은 단순히 기존 콘솔 게임을 이식하는 부차적인 플랫폼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핵심 출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반다이남코의 기대작 <학원 아이돌마스터>와 같은 주요 타이틀조차 콘솔을 배제하고 모바일과 윈도우 버전 개발을 최우선 순위로 고려했고, 기타 메이저 업체들의 신작들도 콘솔과 스팀 버전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PC 게임의 부상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시장의 구조적 재편이 시작되고 있다는 실질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실제 PS5를 내놓고 있는 SIE 역시 완전 콘솔 독점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다. 동시 발매는 아닐지언정 1년이라는 시간 뒤에 PC 버전을 선보이고있으며 이는 과거와 달리 퍼스트 및 세컨드 파티에도 적용되고 있다. 물론 코나미, 캡콤, 코에이 등도 <몬스터 헌터>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 <파이널판타지> <드래곤퀘스트> 등의 멀티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 스팀의 일본 시장 확장에는 스팀덱의 역할도 컸다.
# 바뀌기 시작한 개발의 유통 흐름
외부의 하드웨어 공급 충격이 촉매제가 되어 '더 많은 고품질 게임 경험을 원하는 사용자 → 게이밍 PC 구매 증가 → PC 게임 인구 확대 → 더 많은 개발사의 스팀 참여 → 풍부해진 콘텐츠 라이브러리 → 더 많은 신규 사용자 유입'이라는 강력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현지에서 만난 업계인들은 하나같이 일본의 이흐름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개발사들이 내수 모바일 시장의 과열 경쟁, 그리고 PS5 물량 부족으로 인한 게임 판매 부진을 PC 버전을 통해 글로벌로 진출하는 방향성이다. 즉 스팀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특히 게이밍 PC 보급이 활성화 되면서 고사양으로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유저들이 그래픽이 더 뛰어난 게이밍 PC로 이동했고, 과거 콘솔 독점 게임의 경계가 허물어 졌다. 이른바 킬러 타이틀이 멀티플랫폼으로 출시되면서 특정 플랫폼에 얽메이지 않는 유저가 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일본 유저들도 PS5를 구매해 게임을 즐기는 것 보다 보다 편하고 고품질이면서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PC 버전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해외 기업 입장에서 이는 명확한 전략적 시그널을 던진다. 현재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전략은 PC와 모바일 크로스 플랫폼이다. 가장 큰 수익 풀(pool)을 가진 모바일 시장과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PC 시장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즉,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게임업계의 흐름이 스팀 게임의 라인업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게임 유저들오 스팀으로 이동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 게임 시장은 효과적인 양동작전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 PC를 통해 코어 팬덤을 구축하고 게임성을 입증한 뒤,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방식은 이제 일본 시장 성공의 새로운 방정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 한국과 달리 일본은 조립 PC라는 개념은 매니아 혹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이런 이유로 완제품 게이밍 PC가 주력이며 DELL의 에일리언 웨어가 이 시장을 노리고 뛰어 든 상태다.
# 모바일의 화려한 감옥: 고수익의 레드오션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모바일은 여전히 일본 게임 시장의 흔들리지 않는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아래를 들여다보면, 성장이 멈춘 채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는 '레드오션'에 가깝다. <몬스터 스트라이크>나 <퍼즐앤드래곤>, <페이트 그랜드 오더>와 같은 출시 10년이 넘은 터줏대감들이 지난 5년에서 10년간 매출 최상위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신규 타이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고인물' 게임들의 핵심 생존 전략은 'IP 콜라보레이션'이다. 이들은 순위가 하락할 때마다 <귀멸의 칼날>과 같은 인지도 높은 A급 IP와의 협업을 통해 매출을 폭발적으로 급등시키고, 게임을 떠났던 휴면 유저를 복귀시키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극심한 경직성과 신규 진입에 필요한 막대한 마케팅 비용 때문에, 일본의 주요 게임사들조차 전략적으로 모바일 사업부의 비중을 줄이거나 팀을 해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모바일 시장이 더 이상 새로운 성공 신화를 쓸 수 있는 성장 시장이 아닌, 기존의 유산을 지키고 관리하는 유산(Legacy) 시장으로 변모했음을 시사한다.
이곳에서의 성공은 파괴적 혁신이나 신규 유저 확보가 아니라, 기존에 구축된 거대한 유저층의 이탈을 방지하고 이들의 만족도를 극대화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상위권 게임들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게임을 넘어선 거대한 충성 커뮤니티를 구축해왔다.
▶ 일본의 모바일게임 시장 매출 순위도 정체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
# 멀티플랫폼으로 진출해야 하는 일본 게임 시장
신규 게임은 이러한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와 브랜드 충성도를 단기간에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기존 강자들은 이미 확보된 수백만 명의 유저풀을 대상으로 'A급 IP 콜라보'라는 가장 효과적이고 검증된 무기를 계속해서 공급하며, 신규 진입자들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제 막 일본 게임 시장에 진출하는 게임의 입장에서 모바일 플랫폼 단독으로 기존 강자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은 승산이 매우 낮은 전략이다. 신규 진입자는 모바일을 단독 플랫폼이 아닌, 앞서 언급한 멀티 플랫폼 전략의 한 축으로 간주해야 한다. 모바일은 더 이상 첫 번째 전장이 아니다.
▶ 모바일에서 교두보를 마련하고 스팀 버전을 선보인 <블루 아카이브>.
모바일 혹은 PC에서 확보한 교두보를 바탕으로 진격하는 두 번째 전장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PC 버전을 통해 게임의 깊이와 독창성을 먼저 입증하고, 이를 통해 핵심 커뮤니티와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한 뒤, 그 힘을 바탕으로 모바일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고 확률이 높은 접근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멀티플랫폼으로 출시를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달리 일본 게임 시장의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일본 유저들의 행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단순히 라이브 서비스를 하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여기에는 콘텐츠와 유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계속)
| 특성 | 과거의 패러다임(2020년 이전) | 현재의 패러다임 (2025년~) |
|---|---|---|
| 주요 플랫폼 | 콘솔(프리미엄), 모바일(대중) | PC/모바일 크로스 플랫폼 |
| 핵심 성공요인 | 강력한 IP / 브랜드 인지도 | 깊이 있는 팬덤 / 커뮤니티 관리 |
| 사용자 동기 | 콘텐츠 소비 (과정 중심) | 콘텐츠 + 사회적 연결 (팬덤) |
| 마케팅 접근법 | 단기 임팩트 중심의 론칭 캠페인 | 장기적인 신뢰 구축 (마라톤) |
| 퍼블리셔 전략 | 내수 시장 지배 | 스팀을 통한 글로벌 진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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