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는 서브컬처 게임의 본질은 피상적인 아트 스타일이 아닌, 플레이어를 열성적인 '팬덤'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에 있다. 그리고 팬덤은 뛰어난 비주얼만으로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깊이 있는 캐릭터 '서사'와 플레이어가 몰입할 수 있는 세계관 구축이 그 핵심이다. 단순하게 아트 스타일만 집중하고 실제 게임은 평범한 RPG 혹은 액션 스타일인 경우 대부분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경우가 없었다.
유저는 처음에는 캐릭터의 매력적인 외형('섹시하다', '귀엽다')에 끌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단기적인 소비자를 넘어 장기적인 팬이 되는 결정적인 과정은,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 내면의 동기,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 등 서사에 감정적으로 깊이 투자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런 서사를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다수의 개발사들이 IP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블리치>, <귀멸의 칼날>, <드래곤 볼>, <에반게리온> 등의 IP를 확보해 이를 게임화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미 원작에서 만들어진 캐릭터와 서사는 완성되어있기에 게임에서 굳이 서사를 만들거나 캐릭터 성을 부각할 필요가 없다. 원작의 팬덤이 게임으로 옮겨오는 것도 쉬운 편이다. 이런 IP가 도처에 있는 일본 시장에서 어떤 IP를 확보하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애초에 새로운 IP를 브랜드로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일이다. IP와 서사 그리고 게임의 핵심을 관통하는 게임성을 모두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본 시장에 서브컬처 장르로 도전하는 많은 해외 개발사들은 '서브컬처'라는 용어를 애니메이션 풍의 미소녀 아트 스타일과 동일시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 캐릭터성, 서사, 유저와의 교감을 모두 이뤄내면서 IP의 브랜드와 사회현상까지 이끌어낸 타이틀의 교과서적인 게임이 <러브 플러스>라고 할 수 있다.
[관련기사]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① 플랫폼 시장의 변화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② 일본의 게이머 공략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③ 콘텐츠의 딜레마: IP, 서사(현재 기사)
▶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④ 일본 시장 진출 청사진
# 애니메이션 풍 미소녀 캐릭터만 있으면 서브컬처'? "서사가 팬덤을 만든다"
일본 현지에서 만난 스마일게이트 재팬의 이규하 실장은 게임 캐릭터의 서사를 통한 팬들의유입을 아이돌 그룹 아이브(IVE)의 장원영 같은 스타의 팬이 되는 과정에 비유한다. 처음에는 그녀의 뛰어난 외모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그녀가 겪어온 성장 과정, 성격, 그리고 무대 뒤의 스토리를 알아가면서 비로소 진정한 팬으로 거듭나는 것과 똑같은 메커니즘이 게임 캐릭터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현재 서브컬처 시장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한국 모바일게임의 대표사례가 바로 이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시프트업의 <니케: 승리의 여신>이나 넥슨게임즈의 <블루 아카이브> 같은 성공작들은 경쟁에서의 승리 그 자체보다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교감',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수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시나리오는 캐릭터 개별로 진행되기도 하고, 수많은 캐릭터들 사이에서 각자 나름의 스토리를 가지고 유저들의 관심을 얻고자한다.
일본 IP로는 <페이트 그랜드 오더>, <우마무스메>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우마무스메>의 경우 처음부터 일본 경마에서 서사를 만들었던 실제 경주마들의 이야기를 캐릭터에 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마다의 서사를 만들어 냈다. 이 서사를 게임속에서 시나리오 등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독특한 매력으로 품어냈다.
▶ 113연속 패배의 기록을 가진 실제 경주마 '하루우라라'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서사가 있고, 게임속 캐릭터로도 잘 반영이 되어있다.
일본 시장에서 서사는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라, 핵심적인 수익 창출 동력이다. 깊이 있는 캐릭터 스토리는 플레이어의 강한 감정적 투자를 유발하고, 이는 곧 높은 지출 의향으로 직결된다. 캐릭터의 서사에 깊이 몰입한 플레이어는 단순히 전투에서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팬심의 표현으로서 기꺼이 돈을 쓴다. 누가 게임에서 스토리를 보고 텍스트를 읽는가?라는 물음은 잘못된 사례의 대표적인 낡아버린 밈(Meme)에 불과하다.
이는 P2W 모델이 유발하는 파워 인플레이션과 유저 피로감보다 훨씬 지속 가능하고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따라서 개발팀은 작가와 내러티브 디자이너를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으로 대우하고, 그들에게 충분한 자원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캐릭터의 배경 설정, 세계관, 이벤트 시나리오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일본 시장에서 게임의 장기적인 상업적 생명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심적인 기둥이다.

# IP 쟁탈전: 정체된 시장이 만든 새로운 기회
현재 일본 게임 시장의 IP 생태계는 매우 흥미로운 역학 관계를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스퀘어에닉스와 같은 대형 게임 퍼블리셔들이 극도로 위험 회피적인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신규 IP 개발에 따르는 막대한 투자와 불확실성의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이미 검증된 기존의 성공 IP를 활용한 리메이크나 리마스터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향후 3~5년 내에 일본의 대형 퍼블리셔로부터 시장을 뒤흔들 만한 완전히 새로운 오리지널 IP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게 점치고 있다.

▶ 새로운 IP를 만들어내는 것 보다 성공한 IP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 사업적으로는 옳은 방법일 수도...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슈에이샤, 코단샤와 같은 전통적인 IP 홀더(만화 출판사,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의 거대 자본이 유입되면서 애니메이션 제작 단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는 신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들이 게임과의 협업을 자신들의 방대한 IP 포트폴리오를 수익화하고 그 생명력을 연장하는 매우 매력적인 수단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높은 문턱 뒤에서 개발사들의 제안을 기다리던 이들 IP 홀더들은, 이제 게임 개발사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IP 라이브러리를 제안하고 게임화를 타진하는 공격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로 변모했다.
시장의 이러한 전략적 불일치는 특히 해외 개발사에게 명확한 기회를 제공한다. 일본 게임 퍼블리셔는 신규 IP 창출을 주저하고, 전통 IP 홀더는 자신들의 기존 IP를 활용할 새로운 파트너를 절실히 찾고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 비용의 증가는 출판사들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
모든 유망한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는 없는 상황에서, 게임화는 상대적으로 낮은 리스크로 IP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즉각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이것이 그들이 과거의 수동적인 문지기에서 능동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로 변신한 근본적인 이유다. 이는 해외 개발사들에게 일본의 유력 IP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는 문이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 <장송의 프리렌>처럼 인기를 확보했음에도 아직 게임화가 안 된 IP는 콜라보레이션에 나름 적극적이기도..
# 콜라보레이션의 법칙: 신규 유저 확보가 아닌, 기존 유저 만족을 위해
IP 콜라보레이션은 일본 모바일 게임 시장의 핵심적인 생존 전략이지만, 그 목적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실제 데이터 앞에서 힘을 잃는다. 많은 기업들이 콜라보의 주된 목표를 '신규 유저 확보'에 두지만, 이는 잘못된 가정일 가능성이 높다.
10개 이상의 각기 다른 콜라보레이션 이벤트를 심층 분석한 결과는 놀라웠다. 콜라보가 어느 정도의 신규 유저 유입을 유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유입된 유저들은 잔존율과 결제율이 극히 낮았다. 콜라보 기간 동안 발생하는 매출의 압도적인 대부분(약 80%)은 '기존' 플레이어로부터 나왔다.
이 데이터는 IP 콜라보레이션의 전략적 목표가 '신규 유저 확보'라는 허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기존 유저층의 만족도 제고와 수익 극대화'가 되어야 함을 명백히 보여준다. 논리적으로도 타당하다. 신규 유저는 콜라보 IP 캐릭터만 얻고 나면, 게임의 핵심 시스템이나 다른 콘텐츠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문에 콜라보 이벤트가 끝나면 쉽게 이탈한다.
하지만 기존 유저는 이미 게임 시스템과 세계관에 깊이 투자한 상태다. 그들에게 콜라보레이션은 사랑하는 게임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자, 특별한 보상으로 작용한다. 이들이야말로 한정판 콜라보 캐릭터를 얻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핵심 고객층인 것이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콜라보 파트너 선정 방식은, X(트위터) 투표 등을 통해 현재 게임을 가장 열심히 즐기고 있는 커뮤니티에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돈을 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유저들이 원하는 IP와 협업함으로써, 이벤트의 성공 확률을 극대화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기업들은 IP 콜라보의 ROI(투자수익률) 계산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신규 유저당 획득 비용(CPI) 같은 지표 대신, 기존 유저의 결제액 상승률, 이벤트 기간 전후의 핵심 유저 잔존율, 그리고 X와 커뮤니티 전반의 긍정적 반응 등을 핵심 성공 지표(KPI)로 삼아야 한다. 콜라보레이션은 밖을 향한 확성기가 아니라, 안을 향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 어쩌면 콜라보의 대명사가 된 <하츠네 미쿠>.
다음은 마지막 기사인 2025년 일본 게임 시장 전략 분석 4 - '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청사진- 새로운 게임의 법칙'(10월 14일) 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