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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베트남 특집 3] 베트남은 어떻게 아세안 최고의 게임 강국이 됐나

임상훈(시몬) 2025-05-21 10:41:10
한국, 미국, 베트남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외국 앱을 차단하지 않는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자국산 메신저가 1등인 나라다. IT 영역에서 베트남는 결코 가볍게 볼 나라가 아니다.

게임 산업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은 한중일을 제외한 아시아 최고의 게임 강국으로 부상했다. 2023년 상반기 기준 베트남 게임은 전 세계 다운로드 순위 5위를 기록했고, 하이퍼캐주얼 게임과 NFT 게임 분야에서는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협력하려면 상대를 잘 알아야 한다. 베트남은 어떻게 게임 강국으로 성장하게 됐을까?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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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식품 가공회사에서 IT 거인으로

베트남 내 모든 산업의 성장은 1986년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도이머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83년 달랏 회담에서 호치민시 서기장 응우옌 반 린이 계획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제안한 개혁은 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 정책으로 발전했다.

이 개혁의 성과는 즉각적이었다. 1988년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연간 4,500만 톤의 쌀을 수입했으나, 농경지 사유화 실시 1년 만에 100만 톤을 수출하는 쌀 수출국으로 탈바꿈했다. 1990년에는 세계 3위 쌀 수출국으로 도약하며 베트남 경제 전환의 효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1988년부터 1990년 피벗하기 전까지 쓰였던 FPT의 로고

산업 기반이 부족하던 시기, 베트남에선 식품 수출이 중요한 외화 획득 수단이었다. 1988년, 베트남 과학원 출신 과학자들은 식품 건조 기술 개발을 첫 번째 목표로 ‘Food Processing Technology’(FPT)를 설립했다. 그러나 FPT는 설립 2년 만인 1990년, 회사명을 ‘The Corporation for Financing and Promoting Technology’로 바꾸고 정보기술과 첨단 기술 분야로 사업을 전환했다. 이 과감한 변신은 이후 급성장한 베트남 경제와, 유연하게 대응해온 현지 기업들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FPT는 1997년, 베트남 최초의 민간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중 하나로 등록됐고, 2003년에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까지 시작하며 베트남 게임 산업 성장의 촉매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 KT의 ‘메가패스’가 온라인 게임 산업의 인프라를 제공했듯, 베트남에서는 FPT와 국영 우편전기공사(VNPT)의 ‘MegaVNN’이 그 역할을 해냈다.


# PC방에서 탄생한 게임 공룡들: VNG와 VTC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베트남에서도 PC방 문화가 확산됐다. 새로운 기회를 찾는 젊은이들은 1999년 김범수(카카오 창업자)가 한양대 부근에서 그랬듯 2003년 호치민에서 PC방을 오픈했다. 베트남 최대 게임 퍼블리셔 두 곳은 그런 젊은이들 손에 탄생했다. 레 홍 민은 이후 비나게임(현 VNG)을 설립했고, 한국 외국어대 베트남어학과 출신 이용득은 하노이에 VTC인터콤을 세웠다.

AI로 제작해 본 이용득 VTC 온라인 부사장. 베트남 게임씬을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이다.

2005년 비나게임은 중국 MMORPG <무림전기>를 부분유료화 방식으로 서비스해 남성 게이머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VTC는 한국의 <오디션>을 가져왔다. 2006년 1월부터 국영방송 VTC의 광고를 탄 <오디션>은 여성 게이머들에게 어필하며 성공했다. 이 두 기업은 초기 베트남 게임 시장에서 각각 MMORPG와 캐주얼게임 분야를 선도하며 시장의 기반을 다졌다.

김범수는 유니텔 출신 개발자들과 함께 PC방 한 곳에서 고스톱과 포커 게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한국의 대표적인 게임포털 ‘한게임’이 탄생했다. 반면 베트남의 창업자들에게는 게임 개발력이 없었다. 베트남산 게임이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시작해 2011년까지 강화된 베트남 정부의 게임 규제로 인해 베트남 게임 산업의 성장은 계속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깰 계기가 필요했다. 아이폰이 일으킨 모바일 패러다임 시프트가 이때 왔다.


# 모바일 시대를 이끈 군대, 모바일 시대 등장한 새로운 게임사들

베트남 모바일게임 산업 성장의 토대를 만든 회사는 비엣텔(Viettel)이다. 1989년 베트남 국방부 산하 군사 통신 장비 제조사로 출발한 Sigleco는 2003년 비엣텔로 사명을 변경하고 2004년 민간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했다.

베트남 국영 통신사 비엣텔은 KT나 SKT 같은 한국 통신사와 많이 다르다. 베트남 외에도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동티모르, 아이티 등에서 1등 사업자이고, 페루와 카메룬에서도 주요 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국방부 산하 기업의 특성을 활용해 군사 네트워크와 광섬유 인프라로 전국적인 이동통신 망을 빠르게 구축했다. 2009년 3G 서비스에서는 경쟁사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8,000여 개의 기지국과 저렴한 요금제로 시장 점유율 54%를 차지했다. 급성장한 무선 인터넷 인프라를 덕분에 2011년 베트남 최초의 모바일게임 <명주삼국>이 출시됐다.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모바일게임 시대가 열렸다.

새로운 모바일게임 회사들이 속속 등장했다:

2011년 SohaGame: 디지털 광고와 e커머스 기업 VCCorp의 게임 퍼블리셔

2012년 Joy Entertainment: 게임로프트 출신 개발자 4명이 설립한 개발사
2013년 Gamota: 디지털 광고와 결제 기업 Appota의 게임 퍼블리셔

2014년 Amanotes: 음악과 테크에 열정이 높았던 젊은이 둘이 설립한 개발사


이 외에도 많은 회사들이 세워졌고 여러 게임 나왔다. 하지만 베트남 게임씬을 결정적으로 바꾼 ‘역사적인 게임’은 따로 있었다.


# 베트남 게임 개발씬을 바꾼 두 게임: '플래피 버드'와 '엑시 인피니티'

베트남 게임씬의 운명을 바꾼 게임은 하노이 공대 출신 개발자 응우옌 하 동이 혼자 개발한 <플래피 버드>다. 2013년 5월 iOS, 2014년 1월 안드로이드로 출시된 이 게임은 글로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서 1위를 차지하며 광고로만 하루 약 5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플래피 버드>의 성공으로 모바일게임의 역사가 바뀌었다. 단순한 게임 매커니즘과 낮은 진입 장벽, 광고 기반 수익모델은 이후 많은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하이퍼캐주얼 장르의 성장에 기여했다.

응우옌 하 동은 게임의 중독성을 우려해 2014년 2월 10일 스스로 앱을 내렸지만, 그의 대박 성공은 베트남 개발자들의 마음에 이미 불을 지른 후였다. <리니지> 성공 이후 수많은 게임사가 생기며 한국이 MMORPG 강국이 됐듯, 베트남에서는 하이퍼캐주얼 게임이 쏟아지며 이 장르의 글로벌 개발 허브로 성장했다.

2023년 블룸버그는 전 세계 모바일게임 생산 상위 5개국 중 하나로 베트남을 꼽았다. 2023년 상반기 기준, 전세계에서 다운 받는 게임 25개 중 하나는 베트남 개발사가 만든 것이다.

<플래피 버드>에 이어 베트남 게임 업계를 뒤흔든 타이틀은 <엑시 인피니티>였다. 2018년 호치민의 스카이 마비스가 개발한 <엑시 인피니티>는 2021년 NFT 붐과 함께 폭발적 성장을 기록하며 동남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베트남에서는 P2E(Play-to-Earn) 게임 개발이 활발해졌고, 해외로부터 투자도 급증했다.

하이커스튜디오의 <HeroVerse>, Topebox의 <My DeFi Pet> 등 수많은 NFT 게임이 개발됐고, 베트남은 전 세계 5위 NFT 게임 시장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022~2023년 NFT 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많은 회사들이 사업 모델을 바꿔야 했다.


# '프리파이어' 등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는 베트남 게임들

글로벌에서 성공한 게임이 연달아 나오자 베트남 정부의 스탠스도 바뀌었다. 2016년부터 공식적으로 게임산업을 문화 사업으로 인정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베트남 내에도 판호를 받고 출시한 게임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국제적으로 성과를 거둔 게임들도 여럿 등장했다. Joy Entertainment의 <캡틴 스트라이크>는 2016년 싱가포르 Indie Prize에서 '최우수 멀티플레이어 게임' 상을 수상했다. 음악 게임 퍼블리셔 아마노츠는 <Magic Tiles 3>, <Tiles Hop>, <Beat Jumper>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2023년 센서타워가 선정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고의 음악 게임 퍼블리셔’로 선정됐다. 

2024년에도 베트남 게임의 성과는 대단했다. 센서타워 기준 다운로드 수 많은 게임 회사 25개 5곳이 베트남 게임사였다. VNG 게임스, iKame 게임스, ABI 게임 스튜디오, Bravestar 게임스, Xgame Global가 그들이다.

<배틀그라운드>의 경쟁작 <프리파이터>.  캐주얼하고 빠른 게임 플레이를 제공하며, 최대 50명의 플레이어가 참여한다. 그래픽은 상대적으로 단순하여 저사양 기기에서도 원활하게 실행돼 동남아와 인도, 남미 등에서 인기다.

그중에서도 글로벌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은 <프리파이어>(가레나)다.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와 경쟁 중이고 동남아와 남미를 꽉 잡은 이 게임은 베트남 회사 111 Dots Studio가 개발했다. 2019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됐고, 2021년 누적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런 성공 덕분에 글로벌 IT 기업들은 베트남 게임 산업의 잠재력을 주목하고 있다. 구글은 2023년 호치민과 2024년 하노이에서 '구글 Think Apps' 행사를 개최했고, 중국의 넷이즈는 비엣텔 미디어와 <Badlander> 공동 퍼블리싱을 진행했다. 틱톡은 올해 하노이에서 ‘게이밍 온 틱톡 서미트 2025’를 개최했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듯 베트남 게임 아웃소싱 업체들의 경쟁력도 글로벌에서 인정받고 있다. <포르자>, <니드 포 스피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는 호치민의 터치가 담겨 있다.

2024년 현재 베트남 정부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에 3만 5,000 명의 게임 개발자가 있고, 2,000개의 게임 스튜디오가 있다. 직접 게임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회사는 약 200개 정도이며 베트남 정부는 이를 400개까지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이번 베트남 특집의 본론

베트남은 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게임도 단순 소비 시장에서 글로벌 생산 허브로 진화했다. 한국, 중국, 캐나다, 폴란드, 핀란드 등 이런 트랙을 따라간 나라는 드물다. 각 나라마다 시기와 환경이 다른 만큼 성장 방식이나 과정도 달랐다. 그 과정이 계속 순탄하지는 않다. 한국처럼 한계에 부딪친 경우도 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게임 진흥과 규제를 총괄하는 정보통신부 방송전자정보국 레꽝뜨(Le Quang Tu Do) 국장은 베트남과 한국 게임사의 협력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베트남 게임계가 안고 있는 있는 약점을 한국 게임사들이 풀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기자는 레꽝뜨 국장의 관점에 동의한다. 더불어 한국 게임사들이 안고 있는 약점을 베트남이 풀어줄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 양국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게 이번 베트남 기획의 본론이다. 그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이어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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