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게임의 성장 폭이 갈수록 점차 둔화되고 있다는 말,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새로 내놓은 게임의 동시접속자수가 1만 명만 넘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탄력이 떨어진 시장에서 각 게임사들은 저마다 게임 띄우기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국 게임업계의 시선은 이제 중국을 넘어 동남아, 북미, 유럽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면 중남미 시장 쪽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런데 정보가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현지 게임시장을 조사한 해외 리서치 업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한국게임산업진흥원에서 매년 펴내는 게임백서도 올해 만드는 최신판에서야 중남미쪽 정보를 다룬다고 한다. 그마저도 분량이 타 권역에 비해 적다.
미지의 중남미 대륙에서 잘 나가고 있는 한국 게임이 있다고 한다. 바로 <건바운드>다. 국내 게이머라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남미 게이머라면 <건바운드>를 모르는 이가 없다. 현지에서 무려 6만여 명의 동시 접속자를 기록할 정도. 게임 인프라가 열악한 현지에서 그 정도면 가히 성공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공장형 빌딩. 그곳에 <건바운드>의 개발사 소프트닉스가 있었다. 디스이즈게임은 남미 시장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그곳을 찾았다. 장상채 사업총괄 이사와 김화경 PM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소프트닉스의 중남미 진출 초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이들이다. 그들과 <건바운드>의 성공에 담긴 이야기들을 나눠보았다. /디스이즈게임 황성철 기자
소프트닉스의 장상채 사업총괄 이사.
TIG> 중남미 게임시장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어떤 게임이 인기 있는지, 현지 게임 인프라는 어떠한지 알기 힘들다. 지금도 그런데 소프트닉스가 남미에 진출했을 때는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장상채: 2003년에 영어로 <건바운드>의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버를 한국에 두고 영어로 서비스하는 방식이다. 별다른 마케팅을 진행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입소문으로 동시접속자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 중에서 남미, 특히 페루 유저들의 비중이 높았다. 이를 계기로 2003년 말부터 스페인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후 2004년부터 2005년 동안 <건바운드>가 눈에 띄게 성장했다. 2005년에는 동시접속자수가 6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TIG> 진출 당시 현지의 인터넷 인프라는 어떠했나?
장상채: <건바운드>에서 페루 유저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페루의 PC 사양은 생각보다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동남아 보다 빨랐다. 특히 PC방이 상당히 많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PC방과는 달리 인터넷 전화방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현지 인프라는 괜찮은 편이었다. 패치를 할 때도 속도가 그리 느리지 않을 정도였다. 중남미는 PC 보급률이 낮기 때문에 PC방 이용율이 높다. 하지만 소득수준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점차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TIG> 페루에 현지 지사가 있다고 들었다. 서버를 한국에 두고 있는데 현지 지사를 세운 까닭은 무엇인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 서비스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장상채: 페루쪽 유통망이 미흡했다. 유저들의 요구들이 들어오는데 처리하기가 힘들어서 현지 사무실을 냈다. 고객지원 인력도 그곳에 있는데 현지 직원은 15명 수준이다. 브라질은 현지 퍼블리셔를 통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브라질 <건바운드>의 동시접속자수는 약 1만 명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TIG> 현지 시장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처음에 진출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장상채: 정보가 전무한 상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장이 있고 우리 게임을 즐길 고객이 있다면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는 벤처 기업이라 현지에 먼저 가서 시장 상황을 파악할 여력은 없었다. 일단 초기 세팅 비용을 수천 달러 정도 들고가서 사무실부터 얻고 법인을 등록하고 그랬다.
중남미 현지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는 소프트닉스의 대표작 <건바운드>.
TIG> 최근 국내 업체들이 남미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미 진출한 업체들도 여럿 보인다. 현지에서 최대의 경쟁작은 무엇인가?
장상채: 현지에서 한 달에 한번씩 100~200여 곳의 PC방을 찾아가서 점유율 조사를 한다. 우리가 서비스 중인 <건바운드>와 <라키온>을 합치면 점유율은 20%를 넘는다. 나머지 80%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워크래프트3> DOTA 모드, <카운터스트라이크> 등이 차지하고 있다. 다른 국산 게임으로는 <건즈>와 <뮤>등이 있는데 경쟁작으로 볼 수 있는 게임들은 그리 많지 않다.
TIG> <건바운드>가 현지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장상채: 현지 네트워크 사정은 좋지 않다. MMORPG와 같은 안정된 회선을 요구하는 게임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다. 하지만 <건바운드>는 턴방식 게임이다. 3000~4000ms의 핑(Ping)이 나와도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신속하게 현지어 서비스와 운영 지원을 했다. 지금까지도 스페인어로 서비스되는 국내 게임들이 거의 없는데 우리는 2003년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으니 유저들에게 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TIG> <건바운드>의 경우 토너먼트와 같은 이벤트를 자주 개최하고 있다. 유저들의 참여도 활발한 것 같아 보인다.
김화경(오른쪽 사진): 중남미에는 26개국이 있다. <건바운드>의 장점은 중남미 게이머들이 모두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6년 대회 때는 90개국에서 100만 명이나 지원했다. 현지 PC방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PC방 대회를 지원하고 있다. 우승을 하면 해당 PC방에 상금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TIG> FPS 게임 <울프팀>도 현지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개발단계부터 중남미의 평균 PC 사양을 고려했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예상하고 있나?
김화경: 현지의 FPS 게임 유저들은 대부분 <카운터스트라이크>를 즐기고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현재 약 2천명 정도의 동시접속자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회사 내부에서는 1만 명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TIG> <라키온>도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들었다.
김화경: 현지에서 MMORPG를 즐기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네트워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유저들이 많다. 그래서 서비스가 쉽지 않다.
TIG> 초기에 진출했던 한국 MMORPG들이 부진했던 이유가 네트워크 문제라고 들었다.
김화경: 현지 네트워크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라키온>은 15,000명 정도의 동시 접속자 수를 유지하고 있다. 기대 이상의 성과다. 수익률(ARPU)도 높다. 1인당 약 12달러 수준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1/3 정도다.
늑대인간을 소재로 한 FPS 게임 <울프팀>.
TIG> 중국에 진출한 국내 업체들은 각종 규제 법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남미 현지는 어떤가?
장상채: 페루에 현지 지사가 있긴 하지만 그 역할을 페루 지역내 유통과 고객지원 서비스, 운영 관리 등에 국한하고 있다. 전체적인 사업은 한국에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인 마찰은 없다.
TIG> 앞으로도 소프트닉스는 중남미 시장에 주력할 계획인가?
장상채: 1차적인 타깃을 중남미 시장으로 잡고 있다. 자체적으로 중남미 게임시장의 파이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초까지 약 7개의 신작을 현지에 선보일 계획이다.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게임들을 준비하고 있다. 킬링 타임용 웹보드 게임은 물론, 현지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건바운드>의 캐릭터를 활용한 새로운 아케이드 게임과 3인칭슈팅(TPS) 게임 하나를 확정해서 개발 중이다.
퍼블리싱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자체 개발 중인 게임의 빈자리를 국내나 해외 개발사의 게임들로 채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동안 10여 개의 게임들을 살펴봤는데 성에 차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해서 좋은 게임을 찾는 중이다. 이러한 라인업의 확충을 통해 유저 풀을 더 넓혀나갈 계획이다. 또, 한국의 ‘한게임 PC’방과 같은 개념으로 현지 PC방 사업을 전개할 계획도 있다. 이를 위해 현재 15명인 페루 현지 지사의 직원 수를 30명으로 늘릴 생각이다.
TIG> 좀 거창한 질문이지만 향후 중남미 게임시장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
장상채: 국내 게임 회사들이 동남아 지역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지역의 국가들마다 큰 차이가 있다. 각각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많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관리하기 힘든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스페인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남미에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언어의 통일이 굉장한 사업의 효율성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득수준이나 시장 규모 면에서도 동남아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중남미 상황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자원 부국들답게 각 나라마다 세계 1위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들을 하나 둘씩 가지고 있다. 오일 달러와 같은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본다.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영어권 서비스보다 요금이 조금 더 비싸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시장 크기에 비해 아직 동시접속자수는 많이 낮은 편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