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긍". 꼭 게임 기자가 아니더라도 게임 좀 즐긴다-하는 사람들은,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게임을 한 번쯤 눈여겨보곤 한다. 이미 압긍을 달성한 후에 소문을 듣고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 정도 게임이면 압긍으로 가겠구나"하고 예감하게 경우도 드물게 있다. 오늘 소개할 <스타베이더스>가 딱 그랬다.
"압권".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수많은 제출 답안 중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답안을 가장 위에 둔다 하여, 다른 글을 찍어 누른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이다. '덱빌딩 로그라이크'라는 장르가 과포화 상태라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인데, 경쟁작들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타이틀은 뭐가 달라도 다르기 마련이다.
<스타베이더스>를 해보면 그 남다름이 바로 느껴진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에 <인투 더 브리치>를 더한 듯한 외관을 하고 있지만, 실제 플레이는 훨씬 섬세하다. "아니, 이걸 어떻게 3명으로 구성된 인디 팀에서 만들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기믹이 참신하고 다양해서, 하나씩 해금되는 전략들만 천천히 음미해도 시간이 녹아 들어간다.
한 턴 한 턴이 묘수풀이다. 될 듯 안 될 듯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절묘하게 전략을 구사했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 매우 큰 게임이다. 재밌는 점은 실제 플레이를 하는 동안엔 <슬더스>와 <브리치>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명작들에 대해 "안 본 눈, 안 해본 뇌 구한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스타베이더스>를 하는 동안 마치 맨 처음 <슬더스>를 접했던 그때처럼 "두근거림"을 느꼈다.
▲ 비주얼의 첫인상과 달리, 플레이는 깊고 깊은 사골국이다. 일단 한술 떠보시라.
타이틀을 보고 벌써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스타베이더스>는 타이토의 고전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스타일을 일부 차용한 게임이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적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방식을 최초로 도입한 게임이었던 것처럼, <스타베이더스> 또한 상단에서 하단으로 내려오는 외계 생명체와 적들을 막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다. 그런 맥락에서 아케이드 게임기의 모습을 비추며 게임이 시작되기도 한다.
대신 조종하는 대상이 우주선이 아닌 '로봇'이다. 플레이어는 로봇을 활용해 원격 대리 전투를 하는데, 이하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로봇마다 싸우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이 기체를 원격 조종하는 파일럿 캐릭터마다 덱 구성이 달라서 전투 양상과 시너지도 각양각색이다.
턴이 지날 때마다 적들이 내려와, 최하단 세 줄 안으로 진입하면 '파멸'이라는 스택이 쌓인다. 5개까지 '파멸'이 쌓이면 그대로 그 도전은 종료된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사각 타일 위에서 덱빌딩 기반으로 디펜스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 있겠지만, 게임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한 명인데 적들은 수도 많고 공격 패턴도 악랄하다.



<스타베이더스>는 아주 기본적인 시스템부터, 다른 게임의 '중급자' 콘텐츠에 해당하는 룰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체력'의 부재(不在)다.
적들은 (매우 당연하게도) 가만히 내려오기만 하지 않고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다. 적에게 피격당하면 일반적인 게임에선 체력이 깎이겠지만, <스타베이더스>에선 덱에 '고물' 카드가 섞여 들어간다. 덱 순환을 방해하는 셈이다. 맞는다고 죽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시스템부터 전략적 판단을 요구한다. 패 말림이 생기는 걸 감수하고 포화 속에 들어가 적들을 빠르게 죽일 것인가, 다음 패 순환을 위해 템포 조절을 할 것인가.
여기에 행동 제약도 고려해야 한다. 이동, 공격, 전략 등 거의 모든 카드엔 '코스트'가 있어, 언제 어디로 이동해 누굴 먼저 공격할지 잘 선택해야 한다. 처음부터 활용하는 기본 로봇인 '거너'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3단계까지 '열기'가 쌓이면 '과열' 상태로 넘어가, 그 다음 행동엔 사용한 카드를 '태워버리고' 턴이 강제 종료된다. '불 탄' 카드는 덱 순환 이후 다음에 손에 들어왔을 때, 한 차례 사용할 수 없게 잠긴다.
말로만 들으면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면 금방 적응하는 시스템이다. 기본 메카인 '거너'는, 피격당해 섞여들어가는 '고물' 카드를 태우거나 배제(제외)시키는 방식으로도 싸우고, 행동력 제한을 넘어 '과열' 상태에서 최대 화력을 쏟아붓게 하는 유물 강화 루트도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시스템 하나하나가 모두 각기 다른 전략의 방향성 안에서 극한까지 활용되는 것이다.

그럼 다시 원래의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 행동력 제약 속에서 혼자 어떻게 다수의 적을 다 잡아낼 수 있을까? <스타베이더스>가 제안하는 전략은 이 지점에서도 매우 다양하고 흥미롭다.
T자 공격, 대각을 포함한 세 방향 공격 등 여러 방향으로 공격하는 카드를 습득하고, 유물 능력과 카드 강화, 카드끼리의 시너지 및 순서 등을 활용해 코스트를 낮추는 방식이 가장 기본적이다. 한 턴 안에도 덱을 순환시키며 공격 카드들을 모두 쏟아붓는 방식도 있다.
초심자에겐, 폭탄이나 화염 방사처럼 여러 타일을 동시에 커버해주는 카드를 먼저 챙겨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폭탄 빌드도 폭탄의 종류, 개수 제한, 적이나 폭탄을 강제로 이동시켜 서로 대미지를 입게 해 터트리는 방식, 폭탄이 터진 자리에 다시 폭탄이 생기게 하는 카드 등 깊은 이해를 요구하지만, 다른 빌드에 비하면 학습 난도가 낮은 편이다. 초기에 해금된 카드로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스타베이더스> 정식 출시 버전에는 총 10명의 파일럿과 3가지 메카(로봇)이 있고, 400개 이상의 카드와 유물이 있다. 이걸 다 해금하는 데 드는 도전의 횟수와 시간만 해도 엄청나다.
같은 '거너' 메카를 조종하는 3명의 파일럿의 플레이 양상이 완전히 다른 것도 매우 재밌다. '록시'는 과열 상태를 적극 활용하며 전방으로 원거리 공격을 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노엘'은 카드를 냉각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고 후방에서 역으로 공격하는 방식도 활용한다. '지크'는 덩어리진 카드를 부품으로 쪼개 0 코스트 카드를 여럿 만들어 기믹들의 연계를 잘 활용해야 하는 파일럿이다.
이러한 도전 과정 안에서 개별 파일럿의 스토리가 파편적으로 소개된다. 죽을 때마다 새로운 텍스트를 마주한다는 측면에선 <하데스>의 연출이 일부 연상되기도 한다.
유저 리뷰를 살펴보면 난이도에 대한 의견이 제각각이다. <슬더스> '승천'이 익숙한 사람들에겐 "적응하면 금방이지" 싶을 수 있고, 이 장르에 안 익숙한 사람들에겐 <스타베이더스>의 '묵시록' 단계 클리어는 꽤나 어려우리라 예상된다. 기자는 이런 카드게임에 매우 친숙한 유저라서 '적절히 어려움'에서 '조금 어려움' 사이라 느꼈지만, 새로운 기믹을 만날 때마다 여러 차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건 코어 게이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도전 과정을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건, 잘 만들어진 골조다. 요리로 따지면 '육수'부터 진국이다.
처음엔 간결해 보이던 그래픽도, 여러 기믹에 대해 모두 조금씩 다른 시원시원한 연출로 확실한 '타격감'을 챙겨주는 걸 느끼는 순간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크게 한몫을 하는 게, 사운드와 BGM이다. 폭탄이 터질 때, 총을 쏠 때, 검으로 벨 때와 같이 다양한 공격에 대한 피드백이 확실하다. 실시간 입력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닌, 느긋하게 즐겨도 되는 턴제임에도 지루한 구간이 거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개발 팀이 적들의 기믹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도 눈에 띈다. 방어막을 재생하거나, 새끼를 낳고, 빠르게 침투하는 형태는 기본이고, 내 행동에 맞춰서 움직이는 적들도 있기 때문에 한 턴 안에서의 행동 순서도 매우 중요하다. 가령 플레이어가 움직일 때 같이 이동하는 적의 경우, 그 패턴을 읽어내서 예측샷을 날려야 할 때도 꽤 많다. 여기에 더해, 적은 여럿이 몰려오기 때문에 수 싸움을 잘 해야 해서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특히, 보스전이 일품이다. 여러 보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체스' 룰을 차용한 '그랜드마스터'였다. 퀸, 폰, 루크, 나이트, 비숍 기물을 모두 죽이거나 킹에게서 떼어내야 킹을 처치할 수 있는데, "이겼다!"라고 생각한 순간 3페이즈가 시작되고 있었다. 특정 스테이지나 보스전에선 한 번 엉키면 바로 파멸 5스택으로 게임 오버를 맞이하기 때문에, 영리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진 첫 번째 메카인 '거너'를 중심으로 소개한 내용이었다. '스팅어'를 비롯한 다른 메카(로봇)이 해금되면, 필드를 활용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스팅어'는 닌자 콘셉트의 로봇인데, 손패에 있는 카드를 적에게 던지거나 지정한 위치에 꽂는다. 이렇게 꽂힌 카드는 피뢰침처럼 활용되어 해당 카드에 인접한 적들에게 공격이 가게 할 수도 있고, 지뢰처럼 활용해 적이 밟으면 마비되게 만들 수도 있다.
'거너'가 필드 전체를 총, 폭탄 공격으로 휩쓰는 느낌이었다면, '스팅어'는 본인이 필드를 휩쓸고 다니는 쪽에 가깝다. 이동기도 많고, 이동한 경로의 적을 모두 베는 카드도 있다.
행동력에 대한 제한도, '열기'와 '과열'에서 '전력'과 '배터리' 방전 등으로 바뀌면서, 세부적인 활용 방식도 달라진다. 이렇게 '스팅어' 메카를 처음 만나게 되는 시점이 파일럿 캐릭터로 따지면 4명의 캐릭터를 해금한 때다. 총 10명의 파일럿이 있다고 한 것을 기억하시는가. 기믹의 양과 깊이가 남다른 게임이다.



덱빌딩 로그라이크 장르의 재미는 "빌드의 고점이 충분히 높냐"와 "각각의 빌드 사이의 밸런스가 적절한가"에서 갈리게 된다. 그 지점에서 <스타베이더스>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적응이 더 빠른 빌드가 존재하긴 하지만, 유물의 시너지나 시스템에 대한 세부적인 이해도만 갖춰지면, 한 가지 빌드를 고집할 이유도 전혀 없을 정도의 밸런스를 갖추고 있다.
특히 단순히 '리롤'의 개념으로만 쓰이지 않고, 턴을 되돌리는 방식으로도 쓰이는 '시간의 태엽' 기능이 새로운 기믹을 마주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를 크게 줄여주고 있다.
다만, 기자를 포함한 장르 애호가들이 이 게임을 재밌게 즐겼다고 해서, 모두에게 권할 만한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덱빌딩 장르를 거의 접해보지 않은 초심자거나, (운으로 고점을 크게 끌어올리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기믹에 대한 학습이 부담스러운 유저라면, <스타베이더스>를 어려운 게임으로 느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반대로, 웬만한 덱빌딩 로그라이크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계신 유저라면, <스타베이더스>가 <슬레이 더 스파이어 2>의 2025년 연내 얼리 액세스 출시 전까지 걸쳐 갈 최고의 게임이라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 깊은 맛, 기사를 보신 여러분도 한 번은 꼭 느껴보시길.


- BGM, 사운드, 화면 이펙트 등 확실한 피드백
- 어렵게 보스전 클리어하면 찾아오는 극한의 도파민
- 덱과 공간 모두 파악했을 때 오는 똑똑해진 기분
- 플레이엔 지장이 없지만 2% 아쉬운 한국어 지원
- 잘게 부서진 채 임팩트가 강하지 않은 스토리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