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집을 배경으로 한 작은 무료 인디게임이 올해 베트남 최대 게임 시상식에서 두 개의 트로피를 들었다. ‘올해의 베트남 게임’과 ‘올해의 베트남 인디게임’.

대형 개발사도, 화려한 그래픽도 아니었다. 베트남식 생활감, 로컬 유머, 공포 코드의 결합. <하이 형의 쌀국수 식당>이 만들어낸 바이럴은 베트남 게임계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익숙한 우리의 것을 담았을 때, 세계가 반응할 수 있는가.
5월 8일부터 9일까지 호치민 SECC에서 열린 ‘게임버스 2026’은 그 질문에 대한 업계의 대답이 모인 자리였다.
올해 모토 ‘Do Local, Go Global’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었다. 전시장 입구의 문구로, 포럼의 주제로, 어워드의 결과로, 개발자들의 발표와 피칭 속에서 같은 방향을 반복해서 가리켰다. 베트남 게임산업이 “많이 만드는 나라”를 넘어 “자기 이야기를 담아 세계로 나가는 나라”를 본격적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 흐름은 이미 지난해 게임버스 때부터 감지됐다. 베트남 게임계 인사들은 한국의 한류를 자주 언급했다. K드라마, K영화, K푸드, K팝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것처럼, 베트남도 게임을 통해 자국의 문화와 생활, 역사와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했다.
올해 게임버스 2026은 그 바람이 구호를 넘어 실제 게임과 수상 결과, 피칭 프로그램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호치민=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두 개의 트로피, 두 개의 방향
<하이 형의 쌀국수 식당>의 2관왕은 단순한 흥행 사례로 소비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이 작품이 왜 바이럴됐는지를 다루는 별도 세션이 열렸다. “베트남적인 것이 어떻게 세계와 만날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자리였다.

‘올해의 베트남 게임’ 부문은 <아케인 헌터: 소울 서바이버>도 공동 수상했다. VTC 인터컴 산하 ITC 스튜디오가 개발한 이 게임은 더 본격적인 장르와 상업적 완성도로 시장을 노리는 방향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로컬 생활감과 바이럴을 무기로 삼는 ‘하이 형’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코어 장르를 향해 나아가는 작품이 있다. 올해의 수상 결과는 베트남 게임의 가능성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점도 함께 드러냈다.
하지만 올해 게임버스에서 더 눈에 띈 것은, 베트남 문화와 역사를 다루는 게임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묶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신화, 설화, 생활 — 베트남 역사가 게임이 되는 방식
고수 온라인 산하 Gihot 스튜디오가 ‘유망 게임 개발사상’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Gihot은 베트남 역사를 다룬 게임 <하오키동아>를 개발 중인 팀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게임 포럼에서도 비중 있게 개발 상황이 소개됐다. 완성된 게임이 아니라 개발 중인 프로젝트가 2년 연속 게임버스의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조명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베트남 게임계가 단순히 결과물만이 아니라, 자국 역사를 게임화하려는 시도 자체를 산업적으로 키우려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임포럼에서는 <하오키동아> 외에도 베트남의 역사를 소재로 한 디펜스 게임 <베트남 역사 수성전>(Thủ Thành Sử Việt)이 소개됐다. 시기별 장비와 아이템, 전장별 지형과 기후 등이 게임 내에 반영된다.
게임 프로젝트 피칭 프로그램인 ‘게임허브’에서도 같은 흐름이 보였다. 올해 탑5 프로젝트 가운데 4개가 베트남의 신화, 역사, 생활 문화를 다루는 작품이었는데, 이 셋은 소재도, 장르도, 다루는 시대도 모두 달랐다.

<데몬 헌팅: 혼돈의 유령 시계>(Slaying Demons: Chaotic World of Ghosts)는 베트남 신화와 민속 신앙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용왕의 귀환: 수신 투이띤>(The Dragon King Returns: Thuy Tinh)은 손띤과 투이띤 설화를 현대 하노이를 배경으로 재해석한다.
<어린 시절 작은 마을>(Little Village of Childhood)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베트남 해안 마을의 삶의 리듬을 재현하는 게임이다.
신화, 설화, 생활. 호러, 어드벤처, 시뮬레이션. 누군가는 과거의 서사를 현재로 끌어오고, 누군가는 사라져가는 일상 그 자체를 게임 안에 보존하려 한다.
1945년 대기근을 소재로 한 서바이벌 호러 게임 <8월의 별>(August Star)까지 더하면, 베트남 젊은 개발팀들이 다루는 소재의 폭은 꽤 넓다.
공통점은 하나다. 자기 나라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번역하겠다는 의지다.
이미 누군가 걸어간 길, 베트남이 그 위에 선다
이런 게임들은 자연스럽게 몇몇 해외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알래스카 이누피아트 원주민 문화와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네버 얼론>(2014)은 게임이 특정 민족의 문화 보존과 전달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인도네시아의 <스페이스 포 언바운드>(2023)는 1990년대 인도네시아의 생활감과 청춘의 정서를 세계 유저에게 알렸다.

남인도 타밀 문화와 이민자 가족의 음식을 다룬 <벤바>(2023)는 음식과 가족, 언어가 어떻게 정체성이 되는가를 짧지만 강하게 보여줬다.
이들의 공통점은 미국이나 유럽 중심의 게임 문법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국가, 민족, 지역의 이야기를 게임이라는 매체로 세계에 전달했다는 점이다.
올해 게임버스에서 부각된 베트남 게임들은 바로 그 계보 위에 서려 하고 있다.
개발자의 의지만이 아니다 — 위에서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물론 이를 단순히 몇몇 인디 개발자의 개인적 취향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베트남 당과 정부가 게임산업을 디지털 경제의 한 축으로 보는 동시에, 베트남 문화와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허브 상위 프로젝트들은 투자자 매칭 등 실질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올해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역사와 문화를 담은 게임에 세제 혜택 등을 하기로 결정했다. 베트남 문화를 다룬 게임들이 “좋은 의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지원과 산업 프로그램 안에서 다음 단계로 연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행사장 분위기도 이를 뒷받침했다. 게임포럼에는 <베트남 역사 수성전>을 발표한 개발자는 아오자이를 입고 있었다. 기자는 아직까지 지스타에서 한복을 입은 개발자를 본 적이 없다. 게임버스 곳곳에는 베트남 전통 복장, 음식, 로컬 캐릭터, 지역적 감각을 활용한 전시와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글로벌 게임을 베트남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을 담은 게임을 글로벌로 보내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호치민과 김구가 꿨던 꿈, 게임이 그 무기가 된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 흐름은 낯설지 않다.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다. 오랫동안 외세의 압박과 침략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켜온 역사와 문화가 국가의 위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베트남 게임개발 연맹 응우옌마인꾸엣 회장(Nguyen Manh Quyet)은 지난해 게임 포럼 발표 마지막에 호치민 아저씨(Bác Hồ)의 글을 인용했다.

“베트남의 산과 강은 아름다워질까요? 베트남 국민들은 오대륙의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영광의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요?”
김구 선생도 『백범일지』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소망을 적었다.
두 지도자는 직접 만난 기록은 없지만 1919년이라는 같은 세계사적 순간에 각각 상하이와 파리에서 식민지 민족의 독립을 이끌던 동시대의 지도자였다. 그들의 바람이 닮아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만 베트남이 꿈꾸는 것은 한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베트남의 쌀국수집, 베트남의 민속 신앙, 베트남의 설화, 베트남의 근현대사, 베트남 해안 마을의 어린 시절을 게임으로 만드는 일이다.
한국이 K콘텐츠로 세계에 자신을 드러냈다면, 베트남은 이제 V게임으로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마치며
베트남 게임산업은 이미 하이퍼캐주얼과 모바일 다운로드에서 세계 시장에 존재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다운로드 숫자만으로는 산업의 다음 단계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래 기억되는 게임, 세계 유저가 “이 나라는 어떤 곳인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게임, 자국 개발자가 자기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만들 수 있는 게임이 필요하다.
<하이 형의 쌀국수 식당>의 2관왕은 그래서 단순한 인디게임의 성공담이 아니다.
<하오키동아>의 개발 과정이 계속 소개되는 것도, 게임허브에서 신화와 역사, 생활문화를 다룬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이것들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베트남은 게임으로 베트남을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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