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은 뭘 하나 둘러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게임 하는 사람도 있나 하는 심리죠.
아주 드물게 책을 읽거나 주무시는 분들을 제외하면, 사실 열에 아홉은 휴대폰을 합니다. 정확히는 유튜브 쇼츠 릴스를 보고 중간중간 카톡이나 DM에 답하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모바일게임 하는 분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보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줄어간다는 인상이에요. 양안 시력 2.0인 기자의 눈에도 지하철에서 게임 하는 분들 이상하리만치 잘 안 보이니까요.
작년 말에 발표된 게임 이용자 실태 조사처럼 확실히 게임 이용률이 줄어들긴 한 것 같습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앞서 1편에서도,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윤태진 교수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핵심은 게임도 이제 그 시야와 경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번엔 그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고자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는데, 숏폼과 SNS 그리고 게임 사이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흐릿해져 있는지 한 번 짚어보려 합니다.
유튜브, 숏폼과 SNS에 이용자들의 '시간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살아남는 것은 어떤 게임이 될까요. 특정 생존전략은 '정답'이나 '정공법'이 되어주긴 할까요./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나이키의 경쟁사는 닌텐도, 넷플릭스다"

이용자들의 '시간 점유율'과 '시선을 끄는 경쟁'을 두고,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꽤 오래 전부터 닌텐도와 넷플릭스를 경쟁사로 언급해왔습니다.
사람들이 야외활동 대신 실내에서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시청하면 운동화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Wii나 스위치 조이콘처럼 동작을 인식하는 게임기가 스포츠와 유사한 게임까지 커버하는 것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한 면도 있었죠.
핵심은 이용자들의 '시간'과 '시선'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여가 생활에 쓸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긴 설명 없이도, 경험과 구성이 많이 다른 것 같은 게임, SNS, 유튜브, 숏폼이 왜 자연스럽게 '경쟁의 구도'를 갖는지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시선을 조금 넓혀볼까요. 게임 이용률뿐만 아니라 여가 생활이라는 큰 틀 안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TV 방송의 인기 저하는 물론이고, <왕과 사는 남자> 같은 아주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극장가에서도 고민이 많았죠.
이제 젊은 세대는 술도 잘 마시지 않습니다. 고물가 시대에 소주 한 병 5,000원 6,000원 하는 가격도 부담이고, 남들 앞에서 굳이 취하고 싶지 않다는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해외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라며 1월에는 술을 안 마시는 것이 유행이 된 때도 있습니다.
음주를 했었으니 절주도 하는 것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시간'을 이전과는 다르게 쓸 용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향한 곳은 어디일까요. 게임 이용자 실태 조사에선, 게임을 떠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꼽은 대체 여가 생활이 OTT, 유튜브, 숏폼 같은 '시청하는 형태의 콘텐츠'(86.3%)였습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 보기만 한다는 착각, 뭔가 하고 있다는 허상의 감각
유튜브, 숏폼, 스트리밍, OTT를 '보는 콘텐츠'라고 구분지어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이용자들의 '행위'만 똑 떼어놓고 바라보면, 꽤 재밌는 현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흐릿한 경계 안팎에 있는 상호작용이 매우 적은 게임 콘텐츠 중에선, 게임을 즐기는 유저의 손이, 숏폼을 보는 유저의 손보다도 덜 바쁜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위 아래로 밀어 다음 영상을 보고, 구독이나 좋아요를 누르거나, 조회수와 댓글을 확인하고, 영상 설명이나 관련 영상까지 찾고, 스트리밍에선 도네이션 슈퍼챗 따위를 쏘는 행위 모두, 느슨하고 넓은 의미에선 멀티플레이 소셜 게임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넓은 알고리즘 속에서 '로어'(Lore, 세계관이나 설정이 담긴 자료)를 찾는 어드벤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줄 때도 있어요.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반면, 게임 중에는 상호작용이 극도로 적은 게임들도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무비나 비주얼노벨 장르에서, 대사 선택 및 스토리 분기, QTE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아주 극단적인 경우엔 정말 대사를 넘기고 이미지를 넘기기만 하는 비주얼노벨 게임도 있죠.
심지어 대사와 이미지가 나오는 연출 속도도 변주 없이 끝까지 일정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삽화가 많은 e북과 [화면 구성]만 제외하면 경험의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부 방치형 게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식물이 자라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문자 그대로의 분재 게임도 있습니다.
방치형 중에서 요즘 흥행하고 있는 키우기류도 일부 측면에선 비슷합니다. 이들이 추구해야 할 재미는 부담 없이 해도 누릴 수 있는 [성장 커브에서 오는 성취감], [보는 재미] 정도일 텐데, 양쪽 모두를 닳고 닳은 [형식적 틀]의 반복에만 의존하는 경우도 많죠.
▲ 가장 최근에 출시한 키우기 게임 중 하나라서 인용했을 뿐입니다.
이번 칼럼의 취지는 '상호작용이 극단적으로 적은 게임'이 나쁘거나 숏폼 시대에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에 와서는 혁신이 부족한 게으른 기획에서 탄생하는 타이틀이 많은 장르가 됐지만, 초기에 저러한 장르들을 개척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불필요한 상호작용을 덜어내면서도 재미를 주는 것]이 엄청난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숏폼과 SNS,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대세가 된 시대에 반문해볼 수는 있겠죠. 최소한 '상호작용'이라는 게임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 중 하나의 영역에서, 단순 비교가 어려운 게임 장르들도 있구나.
이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전통적 의미에서 '게임'이란 무엇이고, '게임만 줄 수 있는 재미'는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앞서 살펴보신 것처럼, 지금까지도 게임의 경계는 여러 차례 허물어져 왔습니다. 획일화된 게임의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죠.
일반적으로 게임은 ▶ 승패 또는 성공 실패가 있는 편이며 ▶ 규칙이 있어야 하고 ▶ 그 규칙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상호작용(Interaction)이 있는 '놀이' 전반을 말합니다.
사람들에 따라선 그 변화가 ▶ 진척 또는 진행(Progression)의 형태로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단위에서는 수치적으로 정량화 할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갤러그>나 <벽돌깨기>, <지뢰찾기>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게임들에서부터, 지금 우리가 아는 수많은 장르로 분화하고 진화해오기까지 정말 많은 혁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논리를 조금 비약해보면 이런 접근도 가능합니다. e북 같은 경우에도 좌우로 넘기는 최소한의 규칙이 있고, 메모도 가능하고, 읽은 페이지 수나 가지고 있는 서적의 양으로 진척도(?)가 쌓이는 게임의 구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죠.
숏폼이나 SNS도 넓은 의미에선 게임과 닮아있다고 볼 수 있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게임'과 '게임이 아니었던 콘텐츠'들은 경계선상에서 서로의 특징을 흡수하기도 하고 모방하기도 해왔습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 게임을 찾아오게 만들 이유, 게임만의 강점에 대한 고민
비슷한 측면들을 먼저 다뤄서 그렇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숏폼과 게임은 다른 경험을 주는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용자들이 기대하는 바도 다르죠.
한동안 게임을 하지 않다가 최근 다시 게임을 하고 있는 게이머 A는 "시간이 애매할 때는 쇼츠를 보기도 하지만, 쇼츠는 너무 소모적이라고 느껴진다. 게임 쪽이 오히려 여운이 더 길고 의미 있는 시간 같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사람들이 흔히 "도파민"이라 부르는 자극의 주기나 빈도와 "몰입"의 차이일 것 같습니다.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매일 올리는 콘텐츠, 짧은 영상 안에 촘촘히 넣은 자극을 게임이 '콘텐츠 제공 속도'로 당장 따라가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뤼튼의 <크랙> 같은 인공지능 롤플레잉 채팅 서비스도, 어떤 의미에선 게임사들이 시도하고 있는 AI를 플레이에 접목한 게임들보다 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크랙>
게임이 경쟁 우위를 가져갈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도파민'을 제공하는 개별 세션 단위를 더 짧고 촘촘하게 배치하는 것으로, 원래의 강점인 '몰입감'을 극대화하면서, 전체 호흡의 길이를 소화하기 용이하게 만드는 것도 고려할 만한 사항입니다.
게임의 규모와 장르에 따라 접근법이 다르겠지만, 상대적으로 긴 시간 체류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캐릭터, 세계관, 스타일을 포함한 IP에 대한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다른 콘텐츠 포맷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자유로운 탐색, 경쟁, 비선형적인 흐름, 랜덤성,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는 감각 등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큰 축이 될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앞서 게이머 A는 쇼츠에 대해 "소모적이라 느껴진다"는 표현을 썼죠. 똑같은 TTS, 비슷한 주제와 구성에 올리는 사람만 다른 영상들, 깊이가 없는 내용들까지 세밀한 이유는 많을 겁니다. 핵심은 '깊이 없이 반복된다'는 것이죠.
한편, [형식적 틀]이 반복되고 있는 게임들, 여러분의 머릿속에도 여럿 스쳐 지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용자는 냉정합니다. 구구절절한 게임의 정의를 생각하지 않고 "재미"만 느끼고 기억하죠.
게임이 반복적으로 사용해왔던 [틀]이 계속해서 비슷한 재미를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게임도 "소모적"이라는 말 대신 "의미 있다"는 말을 더 오래 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3편에서는 그 이야기를 이어가보고자 합니다.(다음 편에 계속)
TIG 창간 21주년 특집 기사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
▶ ① 숏폼에 밀리는 게임? "영원한 제국은 없어요, 경계를 넓혀야죠" (바로가기)
▶ ② 넓은 의미에서 숏폼도 게임적 경험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현재 기사)
▶ ③ 형식과 IP,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