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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텐센트 게임제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3/7

굴기: 도광양회에서 굴기로, 텐센트의 영리한 해외진출

임상훈(시몬) 2016-07-07 15:25:11

텐센트가 슈퍼셀을 인수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한국 게임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 텐센트는 한국 게임과 회사를 벤치마크하며 커왔습니다. 많은 질문을 들었고, 답변을 해줬습니다. 역전됐습니다. 이제 우리가 묻고, 벤치마크해야 할 때입니다. 10여 년 봐왔던 텐센트 이야기를 씁니다. 허접한 글이지만, 묻고 벤치마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1. 생존: 중국의 수치, 텐센트의 실패

2. 수성: 중국 게임 시장의 정리와 텐센트의 1위 등극 

3. 굴기: 도광양회에서 굴기로, 텐센트의 영리한 해외진출

 

 

#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굴기’(崛起)


덩샤오핑 시절 중국의 외교정책은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한 뒤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중국은 힘을 길렀다. 후진타오와 시진핑의 외교정책은 ‘굴기’(崛起, 우뚝 일어선다)다.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삼국지>에 나온 사자성어다. 유비가 조조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남기 위해서 취했던 태도다. 조조가 유비에게 영웅은 자신과 유비 둘뿐이라고 하자, 유비는 깜짝 놀란 척하며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마침 번개가 치자 상 밑으로 재빨리 들어가 벌벌 떨었다. 조조의 경계를 누그려뜨렸고, 목숨을 지켰다.

 

내부적으로 힘을 기른 중국 게임회사들은 이제 해외 진출에 나섰다. 중국신문출판총서가 적극 지원했다. 해외 진출하는 게임에게는 지원금이 주어졌다.


중국 회사들의 해외 진출이 늘었다. 상하이 업체보다 베이징 업체의 해외 진출이 활발했다.


일부 업체들은 이미 서울 테헤란로에 지사가 있었다. 한국 게임을 소싱하거나 그래픽 작업을 위한 목적이었다. 인바운드(inbound)였다. 정부의 바람과 달랐다. 아웃바운드(outbound)였다. 정부는 중국 게임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원했다. 주로 외산 게임을 퍼블리싱해왔던 업체들은 그럴 여건이 안됐다. 내보낼 자체 타이틀이 없었다.


자체 라인업이 있던 베이징 업체들은 달랐다. 퍼펙트월드나 창유는 미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에 지사를 속속 설립했다. 한국 온라인게임 회사들의 전성기에도 보지 못한, 적극적인 해외 공략 행보였다. 그만큼 국내의 현금 플로우가 좋았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중국 MMORPG는 해외에서는 잘 안 받아 들여졌다. 대부분 <삼국지>와 <서유기>를 몰랐다. ‘의’(義)와 ‘협’(俠)도 몰랐다. 중화풍 그래픽은 이질감을 줬다. 중국식 운영과 비즈니스모델도 현지 정서와 맞지 않았다. 일부 예외적인 국가(베트남)을 제외하고는 성공하지 못했다.



# 텐센트의 남달랐던 굴기


텐센트도 해외로 눈길을 돌렸다. 방식은 달랐다. <던전앤파이터와>와 <크로스파이어>의 성공으로 확보한 현금을 바탕으로 해외 업체 투자에 나섰다.


투자의 목표는 좋은 게임의 확보였다. 참 영리하게 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알았다. 그때는 몰랐다. 돌이켜보면 감탄스럽다.


1. 한국 개발사 - 세계에서 한국 게임회사에 가장 많이 투자한 회사


2008년 2월 텐센트는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투자 활동을 시작했다. 송은강과 함께였다.


송은강은 카이스트에서 전산학 석사를 마친 엔지니어였다. 2000년부터 MVP창업투자의 대표를 맡았다. 2000년대 초중반 MVP창투는 게임계에서 유명했다. <팡야>, <스페셜포스>, <서든어택>에 투자했고 대박이 났다. 2000년대 중반 최고 수익의 심사역 중 한 명이었다.


2007년 그는 황태철, 최화진과 벤처캐피털 캡스톤파트너스를 만들기로 했다. 게임 쪽 투자를 강화하고 싶었다. 투자자를 찾았다. 텐센트와 닿았다. 이듬해 2월 400억 원 규모의 초기전문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초기전문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2007년 텐센트는 여전히 한국 온라인게임 소싱이 어려웠다.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가 나오기 전이었다. 인지도도 없었다. 아군도 없었다. 샨다와 더나인 등은 오래 전부터 한국에 ‘꽌시’를 쌓아왔다. 실적도 있었다. 부러운 자산이었다.  


아군이 절실했다. 업계에서 밀어줄 든든한 파트너가 필요했다. 찾은 답은 게임 전문 벤처캐피털이었다.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마침 송은강이 추진하던 다른 중국 투자자(샨다)와 딜이 부러진 때였다. 텐센트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한국 게임 시장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가진 투자 전문가를 파트너로 잡았다.

 

 

이후 텐센트와 캡스톤은 적극적으로 한국 게임 개발사에 투자했다. 2010년 한 해에만 올엠(약 68억 원), 리로디드 스튜디오(약 55억 원), 아이덴티티게임즈(약 40억 원), GH 호프아일랜드(25억 원), 레드덕(15억 원), 탑픽(15억 원), 넥스트플레이(15억 원), 스튜디오 혼(14.5억 원) 등에 투자했다.

 

2015년까지 캡스톤의 6차례 투자조합 결성에 텐센트는 5번 참여했다. 조합을 통해 함께 조성한 자금의 규모는 2,029억 원이다.


텐센트는 한국 게임회사에 가장 많이 투자한 외국 회사가 됐다. 개발사들이 샨다, 더나인, 텐센트 중 하나를 고르던 시절은 끝났다. 텐센트가 개발사를 낙점하는 시절이 됐다.



2. 글로벌 유통망 - 가장 강력한 글로벌 온라인게임 유통망을 갖춘 회사


2012년 11월 텐센트는 서울 역삼동에서 ‘글로벌 퍼블리싱 세미나’를 열었다.  


4곳의 해외 파트너 회사를 서울로 데려왔다. 대표 3명(벤 콜레이코, 포레스트 리, 래홍민)와 사업 담당 이사 한 명(디미트리 사브코프)이 연단에 섰다. 각자가 속한 해외 시장과 공략 전략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삿 인물이 아니었다. 각 지역의 맹주였다.

 

 

⬛ 레벨업(벨 콜레이코 대표): 2002년 필리핀 온라인게임 시장을 열었다. <라그나로크> 등을 서비스했다. 3년 뒤 브라질로 진출했다. <그랜드체이스>, <완미세계>, <컴뱃암즈> 등을 출시했다. 선점했다. 넘사벽 퍼블리셔가 됐다. 스페인어권 남미 국가로도 진출했다.


⬛ 가레나(포레스트 리 대표): 2009년 싱가포르에서 출발했다. ‘가레나 플러스’(Garena+)라는 대전 플랫폼 덕분에 급성장했다. <블랙샷>과 <피파 온라인 3>, 그리고 <LOL> 등이 이 플랫폼을 타고 서비스됐다. 단숨에 대만, 태국 등 동남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퍼블리셔가 됐다.


⬛ 메일닷루(메디미트리 사브코프 이사): 이름 그대로 이메일 서비스로 시작해 포털로 발전했다. 2012년 당시 러시아 포털 시장 점유율 84%를 기록했다. 온라인게임 시장에도 진출했다. <얼로즈>, <LOL> 등을 서비스하며 러시아의 리딩 퍼블리셔로 자리잡았다.


⬛ VGN(래홍민 대표): 베트남 최초의 온라인게임 회사다. 2004년 중국 킹소프트의 <무림전기>를 론칭하며 베트남 최대의 퍼블리셔가 됐다. PC방을 잡았다. 2012년 당시 2만 8,000여 개의 PC방에 60만 대의 PC에 관리 프로그램을 깔았다. 포털도 장악했다.

 

[취재] 텐센트 “앞으로도 한국게임 주력으로 서비스” 

 

네 회사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각 권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퍼블리셔였다. 또한 텐센트 또는 텐센트 최대 주주(내스퍼스)의 투자를 받았다. (내스퍼스는 메일닷루의 39.3%를 가지고 있다.)


모두 온라인게임 성장 전망이 좋은 지역들이었다. 텐센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글로벌 온라인게임 유통망을 갖춘 업체가 됐다. 1석 2조의 전략적 투자였다. 소싱 파워는 높였고, 리스크 확률은 낮췄다.


2012년 11월 초 서울 역삼동에서 그 실체를 보여줬다. 며칠 뒤 다섯 회사는 다시 부산에 등장했다. 지스타에 공동 부스로 출전했다.



3. 글로벌 개발사 -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온라인게임 개발사에 투자한 회사


텐센트는 2009년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LOL>을 만든 라이엇게임즈에 투자했다. 한국을 제외한 온라인게임 개발사에 투자한 첫 케이스였다.


과거 한국과 중국 게임회사들도 미국에 투자를 했다. 텐센트의 투자 및 운영 방식은 달랐다. 텐센트는 AAA급 개발사만에 집중해서 투자했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텐센트는 2011년 라이엇게임즈의 최대 주주가 됐다. 2015년 남은 라이엇게임즈 지분을 모두 샀다. 하지만, 라이엇게임즈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그대로 유지됐다. 독립적인 운영을 계속 했다.

 

 

2012년에는 에픽게임즈의 지분 48.4%를 인수했다. 창업자들과 지분을 반반 나눠 가지게 됐다. 에픽게임즈는 언리얼 엔진을 만든 곳이다. <언리얼> 시리즈와 <기어스오브워> 시리즈로도 유명했다. 텐센트 측은 이사 2명을 배정했다. 창업자들은 독립성이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2013년 텐센트는 액티비전블리자드가 비방디 유니버셜로부터 경영권을 찾아오고, 경영진이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줬다. 지분 6% 정도를 가진 소극적인 투자자가 됐다. 경영진과 확실한 꽌시를 맺었다.


텐센트는 ‘창조적 모방’으로 정평 나 있는 회사였다. 좋아하는 게임을 보면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1안은 모방하고 개선해서 직접 서비스하는 것이었다. 2안은 그 회사에 투자하고 인수하는 것이었다.


<LOL>, <기어즈오브워>, <콜오브듀티>, <WOW> 등은 모방해서 성공시킬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었다. 텐센트는 2안을 택했다. 투자한 회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이다. 텐센트는 <콜오브듀티 온라인>을 공동개발했고, <캔디크러시사가>를 퍼블리싱했다.


텐센트는 온라인게임 생태계에서 가장 강력한 개발사 두 곳의 투자자가 됐다. 가장 강력한 엔진 제공회사의 주요 주주가 됐다.

텐센트의 ‘굴기’(崛起)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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