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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C 2022]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 그만할 때가 됐다

서울미술관 류임상 학예연구실장 강연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2-09-02 16:35:26

“벌써 오륙 년째 이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슬픕니다.” 2022년 BIC 이튿날 행사에서 ‘새로운 예술의 시작,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에 나선 서울미술관 류임상 연구실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게임의 예술성’을 논의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그동안 꾸준히 여러 방법을 통해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 게임이 과연 예술인가 아닌가, 혹은 예술이어야 하는가 아닌가의 갑론을박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여기에는 업계 내부의 인식도 영향을 미친다. 류임상 연구실장은 “게임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게임 밖에만 있지 않다. 예술일 필요가 있는지 묻는 사람은 게임계 안에도 많이 계신다”고 말한다.

 


 

 

# 예술성의 '유무'가 아닌 '정도'를 따지자

 

하지만 게임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두고 벌이는 이런 논박은 ‘무한 루프’다. 끝나지도 않고 무의미하다. 이제는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게임 자체가 예술로 치환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게임에 이미 내재하는 ‘예술성’(Artistry)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예술성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정도를 논해야 한다. 몇몇 게임의 예술성이 매우 낮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게임 전체가 예술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형제 미디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영화의 예시를 들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포르노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포르노가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영화 전체가 예술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논리로, ‘바다이야기’ 때문에 게임이 예술이 아니게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어떤 게임이 예술적인가?

 

그렇다면 어떤 게임에 예술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예술성을 측정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의도, 능력, 소통이 있다. 창작자에게 의도가 있어야 하고, 이를 표현해낼 능력이 있어야 하며, 이것이 수용자에게 원활히 전달(소통)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셋 중 무엇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예술성이 높다고 말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대표적 사례다. 게임성과 기술력은 높다. 하지만 디렉터 닐 드럭만의 태도와 디자인 기조가 게이머들의 정서가 충돌하면서 아직도 많이 비판받으며, 1편만큼의 인정을 끝내 받지 못했다.

 

반면 셋 다 충족한 게임의 예시도 있다. 전쟁의 비정함 탁월한 게임플레이 메카닉으로 전달한 <디스 워 오브 마인>, 영화에서는 불가능한 다선형 스토리텔링에 성공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그리고 류임상 연구실장이 ‘어떤 장면을 캡처해도 바탕화면이 된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올드 맨스 저니> 등이다.

 


 
# 구분할수록 명확해지는 게임의 예술성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시도에 나선 기점부터 게임계는 게임은 예술이라는 주장에 열심이었다. ‘나쁜 것’인 중독에 대항하는 ‘좋은 것’으로서의 예술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예술인지 아닌지’ 여부가 중요해진 경향이 오히려 강화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질병화 논란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자연스럽게 예술로 편입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미국 미술관들이 게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창작자가 자기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란 측면에서 게임은 그 자체로 예술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때 게임의 예술성을 조금 더 세심한 분류로 접근하면 각각을 더 명확하게 바라보고 대우할 수 있게 된다.

 



 

류임상 연구실장에 따르면 우선 ‘아트게임’과 ‘게임아트’는 각각 다르지만 둘 다 예술의 한 형태다. 시멘트라는 한 가지 연료가 어떤 경우엔 조각이 되고 어떤 경우엔 건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조각상과 같은 예술품으로 의도하고 만든 것이 ‘아트게임’이라면, 게임아트는 아름다운 건물에 비유할 수 있다.

 

또한, 아티스트의 예술적 의도로 만들어지는 ‘아티스트 게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닌텐도 DS 시절 이와이 도시오라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일렉트로플랑크톤>이라는 게임을 출시해 성공시켰다. 코지마 히데오의 <데스스트랜딩>도 여기 해당한다. 코지마 히데오가 아티스트의 관점에서 접근해 사운드트랙, 이야기, 컷씬을 이용해 만든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의 흥미로운 경향으로는 ‘아트 모드’를 들 수 있다. 게임사가 만든 게임이라는 물감과 캔버스로 유저들이 예술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얘기한다. <동물의 숲>의 잘 꾸며진 섬이나 <스카이림>의 유명 모드 <포가튼 시티> 등이 여기 해당한다.

 

 

 

# 결론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예술은 이미 게임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러니 이제는 게임에 예술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논의하는 것은 중단하고, 예술성의 정도를 얘기해야 할 때가 됐다.

 

영화의 예시를 보자. ‘니켈 시네마’라는 초창기 영화의 형태가 있다. 동전을 넣고 잠깐 출력되는 영상을 감상하는 자극적인 여흥 도구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러나 영화는 예술로 통한다. 게임 역시 인디씬의 다양한 노력을 포함, 여러 시도를 통해 새로운 예술로서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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