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필수인 시대가 됐다. AI 툴과 적용 사례를 배우기만 해도 벅차다는 사람들도 적잖게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팬데믹 이후 길어지는 게임 업계의 한파도 문제다. 모바일에 머무르지 않고 PC 콘솔로 눈을 돌리는 기업이 많아졌다. 위기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AI에 대한 학습에서도 뒤쳐지지 말아야 하고, IP를 기반으로 여러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공교롭게 대선 국면이 겹쳐 있기도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정책적 뒷받침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기 마련이다. 국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이미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회사들도 정책적 테두리가 실무에 맞는 형태가 되길 원하고 있고, 인디 중소 업체들은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의 지원을 원하고 있다. 입법, 행정 기관에서도 K-게임의 경쟁력, 이용자와 게임 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9일) 숭실대학교에선 한국게임정책학회의 첫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단순히 학술 논문 발표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 꼭 필요한 주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업계의 현황을 분석하며 향후 어떤 정책이 도움이 되거나 필요할지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요즘 가장 뜨거운 주제들인 AI, IP 활용 및 확장, 서브컬처 BM, 웹툰 컬래버레이션까지 모두 다뤄졌고, 이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하기 위해 정계, 학계, 업계인들이 한 곳에 모였다.

2024년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포함한 각종 지표를 인용하며, 업계의 현황을 짚는 발제자가 많았다. K-게임이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PC 온라인 게임, 모바일게임에선 세계 3위의 수준의 매출을 보여주고 있지만, 콘솔과 아케이드 시장 등에선 다소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맥락이었다.
AI 시대로 넘어오며, 낮은 레벨에 그칠지라도 프로그래밍 작업과 아트 제작에 대한 접근성이 모두에게 열리면서, 게임 디자인과 기획적 역량이 더 부각되고 있는 분위기도 함께 언급됐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결국 생산성과 경쟁력이 필요한데, 이 맥락에서 AI와 IP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동양대 게임학부 김정태 교수는,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을 위해 들인 몇 년 간의 취재와 <포켓몬스터> 타지리 사토시가 유년 시절의 곤충 채집 경험을 녹인 사례를 언급하며 '게임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게임의 제작 방식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제작 방식과 비슷해졌다. 콘셉트 디자인 단계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도 장르와 스타일을 벗어난 기획적 발상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태 교수는, AI 활용에는 저작권 문제, 비용 문제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현황이나 아케이드 게임 시장 또한 <바다 이야기> 사태 이후의 그림자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등을 짚었다. 국산 게임들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국내에서 지역 연고 e스포츠 발전 등을 함에 있어 정책적 해결책 또한 필요한 배경을 언급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의 이도경 보좌관 또한 게임 산업 발전과 건강한 게임 문화를 위해 여러 정책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의 4개 분과인 ▲G(게임이용장애 국내 질병코드 도입 반대) ▲A(지속가능한 e스포츠 생태계 조성) ▲M(등급분류 제도 개선 및 이용자 권익 보호) ▲E(게임 정책 컨트롤타워 구축)를 통해 게임 정책 수립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소개했다.
당면 과제로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와 '국내 대리인 제도 보완'을 꼽았다. 이를 위해 해외 게임사 매출액 확인을 위한 조사권 부여 등을 검토 중이라 말했다. 이도경 보좌관은 입법 기관에서의 관심과 노력 외에도 '민의'(民意)가 반영되는 사례도 적잖게 있음을 언급했다.
'트럭 시위' 이후 이용자 권익 보호 법안 통과가 적극적으로 진행됐던 점과 '카나비 사태' 이후 e스포츠 표준계약서 관련 문체부의 입장 변화가 일어난 사례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동시에 균형에 대한 강조도 있었다. "이용자 중심 규제 외에도 산업 지원 입법 등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학계, 업계, 이용자 단체의 적극적 정책 제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승열 前 카카오게임즈 실장은 국산 IP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방법들을 언급했다. 그는 "보잉과 록히드마틴이 합작해 만든 ULA는 완벽을 추구하다가 로켓 발사체 회수를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실패를 계속 거듭하던 스페이스X는 발사체 회수에 성공했다"며, 게임 업계에서도 도전 끝에 성공했기에 IP로 자리 잡은 사례가 많음을 강조했다.
그는 오션드라이브의 <로스트 아이돌론스>의 사례를 들어, 특정 장르 팬층을 확보하고 확대하기 위해 비슷한 장르의 게임을 꾸준히 만든 경우도 있음을 언급했다.
많은 업체들이 스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스팀 페이지를 미리 개설하고, 스팀 넥스트 페스트를 활용하고, 디스코드 등을 통해 유저와 소통하며, 트렐로로 마일스톤을 제시하기도 하며, '키 메일러'처럼 인플루언서로부터 키 요청을 받는 플랫폼도 활용하는 사례 등을 언급했다.

크래프톤 이승현 팀장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AI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틀그라운드>와 <인조이>에서의 AI 기술 적용 사례, 렐루게임즈의 <언커버 더 스모킹 건>과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 등 크래프톤이 게임에서 AI를 활용한 사례와 딥러닝 팀의 이야기도 소개했지만, 일반적인 AI 활용에 대한 사례들도 함께 언급됐다.
가령 '커서' AI로 간단한 <포트리스> 게임을 만들면, AI가 <포트리스>라는 게임의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간단한 게임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자료를 만들고, 초기 테스트 단계에서도 큰 도움이 되어 생산성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승현 팀장은 AI 시대에 맞는 인재 양성 과정과 함께 AI 사용을 독려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말했다. 또한 대기업의 연구개발 외에도 중소규모의 회사에서도 AI 툴을 적극 활용해보고 노하우를 쌓고, 이런 경험의 공유가 이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신구대 게임콘텐츠과 허준 교수는, 챗GPT와 서버로 연결하는 방식이 아닌, 온디바이스에서 경량 모델을 적용해 유니티 센티스 안에서 구동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대형언어모델을 그대로 사용하면 계정마다 API 할당량이 제한되거나, 호출할 때마다 드는 비용, 응답 지연 문제 등을 겪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경량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허준 교수는 SKT의 koBERT 모델을 유니티 센티스 안에서 실행하고 조정해, 챗GPT 서버 통신 없이 자연어 입력으로 명령을 입력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다만, 모델의 크기와 정확도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에서 든 노력과 시간, 디바이스 성능에 대한 의존성, 경량 모델을 처음 개발할 때의 비용 등의 넘어서야 할 한계 측면에서, 이런 경험들이 여러 사람들을 통해 공유되고, 개선점을 함께 찾을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오산대 디지털콘텐츠디자인계열 이경은 교수는 게임 BM 연구에 대한 시선을 확장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 <블루 아카이브>, <원신>의 사례를 들어 서브컬처 게이머들의 소비는 '기능적 가치'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이경은 교수는 기능적 가치 하나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소비 가치 이론'을 언급하며, 서브컬처 게임에선 비기능적 가치가 BM에 영향을 많이 주고 있고,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말했다. <니케>의 스토리와 성우 연기, <블루 아카이브>의 키보토스 세계관과 캐릭터에게 느끼는 유대감, <원신> 판타지 세계의 독자적 경험은 플레이어에게 소속감과 감정적 가치를 크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용자들의 몰입은 커뮤니티 참여로 이어지고, 소비 또한 자기 표현과 정체성 표현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이다. 단기적 게임성(성능)보다 장기적 팬심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에, 유저와의 소통, 온오프라인 행사, 굿즈, 컬래버레이션 등 다양한 이벤트 과정도 이용자들의 소비와 게임의 BM에서 멀리 있지 않았다.
정책적으로는 IP 확장을 돕는 생태계 조성, 팬덤 기반 커뮤니티 육성 지원, 비기능적 가치 중심 BM에 대한 연구 투자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상명대 디지털만화영상전공 김병수 교수는 게임과 만화에 대한 관계를 다시 한 번 짚었다. 국산 온라인게임 중 초기에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로 <리니지>, <바람의 나라>, <라그나로크>를 언급하며, 세 게임이 모두 만화가 원작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작년에 출시된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의 성공 사례도 마찬가지다.
김병수 교수는 <바디캠>처럼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이 매우 발전한 사례도 있지만, 프랑스 게임인 <시너지>가 유명한 프랑스 만화가 '뫼비우스'의 그림체에서 영향을 받아 독특한 화풍을 만든 사례를 소개했다. 그래픽의 발전 방향이 실사라는 한 가지 방향으로만 뻗어가고 있지 않고, 여러 스타일로 분화되고 있는 점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스타타이탄>이라는 4X 장르 게임에 웹툰을 적용하며, 김병수 교수가 직접 도전해본 사례도 소개했다. IP의 확장과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공통된 주제 안에서, 웹툰 또는 게임 원작 콘텐츠로서의 장르간 교류 외에도, 그래픽과 표현적인 측면에서의 교류도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