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게임통계의 근본적인 문제점
5. 31 지방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길거리에서는 각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주요 교통로에는 알록달록한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습니다. 각 매체에서는 통계자료를 근거로 지지율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후보들은 숫자 몇 개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비단 이러한 지지율 통계 뿐만 아니라 각종 정책 결정에서도 통계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집값 버블 붕괴론'의 논란에는 항상 통계 수치가 따라다닙니다. 정부 관계자와 각 언론, 이익단체는 저마다 수집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과연 그 통계자료가 믿을만한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통계자료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알고 있습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숫자 몇 개만 달라졌다면 적어도 나라의 외환업무를 담당하는 국책은행이 해외 투기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게임업계에서도 통계는 무척 중요합니다. 각종 언론에서는 리서치 회사의 자료를 근거로 기사를 작성하며 정부기관에서조차 그들이 작성한 통계를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들 게임관련 통계자료, 특히 점유율 순위를 무조건적으로 신용할만한 근거가 있을까요?
■ 근본적인 문제점
현재 게임 점유율 리서치 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곳은 게임트릭스입니다. 게임트릭스의 통계자료는 각종 게임 관련 웹진 뿐만 아니라 중앙 일간지, 정부의 통계자료 등등에 사용될 만큼 널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료가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어느 누구도 확신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이 게임트릭스라는 업체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게임트릭스는 미디어웹 산하의 게임 통계 및 리서치 업체이며 모태가 되는 미디어웹의 주 사업범위는 PC방 게임유통, PC방 관리 소프트웨어, 게임 통계 등등이며 모든 사업이 PC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업분야는 바로 PC방 관리프로그램의 개발 및 배포입니다.
국내 20,000 여곳의 PC방은 다양한 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데 2003년 당시 게임뉴스(www.thegamenews.com)의 조사에 의하면 미디어웹이 개발한 미디어데스크(現 PICA 매니저)는 약 3,000여 PC방에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게임트릭스의 통계는 PICA 매니저가 수집하여 전송하는 각 PC 방의 게임 이용 자료를 근거로 작성됩니다. 그러나 낮은 점유율을 가진 업체에서 작성한 통계가 과연 시장 전체를 대표할 만한 신뢰도를 가지고 있을까요?
또한 게임트릭스의 통계는 여러모로 문제의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웹의 사업영역인 한게임 프랜차이즈와 게임 퍼블리싱 및 PC방 총판 영업등은 게임트릭스의 통계의 신뢰성을 의심케 합니다. 프로그램을 설치한 업소가 주로 NHN 의 한게임 가맹점이라면 그 통계자료에 관련 게임들의 점유율은 비교적 높게 나타나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트릭스의 홈페이지에서는 그 어디에도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문구로서 자사 통계자료의 신뢰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게임트릭스(www.gametrics.com)는 전국 20,000여 개 PC방 중 지역별 분포에 따라 표본 PC방을 선정하여 PC방 내 모든 클라이언트 PC(약 60,000여 대)에 자체 개발한 게임 실행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설치, PC에서 사용되는 모든 게임의 실행지역 및 실행시작 시간, 종료 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합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은 ‘전국 20,000여 개 PC방 중’ 이라는 말입니다. 조사 집단에 대한 지식이 없는 고객들은 마치 게임트릭스가 전국 대부분의 PC방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아직 영향력이 미미한 다른 업체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네티모 애니웨어의 경우, 게임리포트라는 통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게임트릭스의 설명에 숫자만 바꾼 격입니다.
‘게임리포트는 전국에 있는 20,893여 개의 PC방 모집단 중 각 지역에 따라 표본 PC방 4,000 개를 선별 선정하여 전국의 약 1,000,000 여 대의 게임 시작 및 종료 감지합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하여 각 게임별 비교 / 분석을 하실 수 있습니다.’
표 #1 의 점유율이 현재까지 큰 변동 없이 이어져왔다면 네티모의 주장 또한 교묘한 상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게임트릭스와 대동소이하게도 자사의 통계자료가 마치 전체 PC방의 통계로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일반인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합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들 관리 프로그램 개발업체들이 수집한 통계자료는 결코 전국 2만여 개 PC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사의 관리프로그램을 설치한 업소만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것조차도 표본집단을 어떠한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 통계자료의 신뢰도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 대안은 없는가?
유감스럽게도 현행 민간 주도의 방식에 따라서는 게임 통계의 신뢰도를 확보하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집단에서만 사용되는 관리 프로그램을 산출 디바이스로 활용하므로 그 집단 내에서만 신뢰할 수 있는 결과가 산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PC방에서의 게임 점유율 조사는 일반적인 설문조사와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조사대상의 규모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리서치 업체에서는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구통계학적 비율에 따라 표본 집단을 선정하여 그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PC방의 경우는 모든 PC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프로그램 하나로 사용자의 게임 이용량을 합산하여 중앙 서버로 전송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신뢰도의 통계를 얻기 위해서는 전국 PC방의 모든 PC에 프로그램이 설치되어야 할 것이란 조건이 전제됩니다. 생각해 봅시다. 어떠한 프로그램이 그러한 범주에 들어갈까요?
전국의 모든 PC방 사업주가 필수적으로 설치해야하는 프로그램에 백그라운드로 동작하는 조사기능을 추가한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통계가 나오게 됩니다. 예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10만 동시접속자 보도자료의 진위공방이 치열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러한 프로그램이 전국 모든 PC방에 설치되어 있었다면 어떠한 양상이 벌어졌을까요?
말 그대로 부정하지 못할 근거, 신뢰도 100%의 유일무이한 통계자료가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각 게임사들의 영업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현행 시장 나눠먹기식 민간 주도의 통계방식에서 이러한 일들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또한 정부에서 관련 법안을 입법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에 정부가 부적절하게 개입한다는 비판과 함께 기존 업체의 반발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거창한 대안을 한사람이 생각해 내기란 상당히 벅찬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덧붙임 #1
참고로 관련법안에 따라 전국 모든 PC방에 설치해야하는 유해물 차단 프로그램이 한때 게임통계 기능을 수행하다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프로그램의 중요도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
덧붙임 #2
게임트릭스를 비롯한 여러 게임통계의 신뢰도를 추정하기 위해 누군가가 전국 2만여 PC방의 관리프로그램 사용실태를 조사해주었으면 좋겠군요. 프로그램의 중요도를 인식하고 있던 그 단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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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러 BEST 11.12.19 10:39 삭제 공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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