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방한한다. 국내 게임업계 CEO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엔씨의 김택진 대표를 만난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회동을 넘어 양사의 미래 먹거리와 기술적 교류가 맞물린 비즈니스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특히 그 중심에는 엔비디아가 LLM 이후의 차세대 무대로 점찍은 '피지컬 AI'가 있다.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 밖으로 시장을 넓히려는 지금, 왜 한국의 대표 게임사들을 파트너로 주목하고 있는지 그 배경과 생태계 변화를 분석했다.
엔비디아가 그리는 피지컬 AI의 빅픽처
엔비디아가 피지컬 AI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LLM 이후의 성장 시장을 찾으려는 계산이 있다. 챗봇과 생성형 AI는 AI 대중화를 이끌었지만, 그 무대는 주로 데이터센터 안에 머물렀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AI가 데이터센터 밖으로 나가야 다음 수요가 열린다.
그 다음 시장으로 제시되는 것이 피지컬 AI다.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에서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AI를 뜻한다.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물류 자동화, 무인 국방 장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시장이 커질수록 엔비디아가 팔 수 있는 것도 GPU를 넘어 AI 서버, 시뮬레이션 플랫폼, 로봇용 컴퓨팅, 엣지 장비로 넓어진다.
이때, 젠슨 황 CEO가 강조하는 것은 '자율 에이전트'와 '로보틱스'다.
젠슨 황 CEO는 CES2025에서 에이전틱 AI와 로보틱스의 진전을 강조했다. 또한, “피지컬 AI 시대가 도래했으며, 모든 산업 기업은 로보틱스 기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엔비디아가 주요 축으로 제시하는 '자율 에이전트'와 '로보틱스'는 무엇일까?

피지컬 AI의 조건: 스스로 판단하고, 제대로 움직여라
자율 에이전트는 사람이 매번 지시하지 않아도 상황을 이해하고 다음 행동을 선택하는 AI를 뜻한다. 기존 챗봇이 질문에 답하는 데 그쳤다면, 자율 에이전트는 주어진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
로보틱스는 이 판단을 현실의 움직임으로 옮기는 영역이다. 로봇팔이 물체를 집고, 무인 장비가 장애물을 피해 이동하고, 자율주행차가 차선을 바꾸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율 에이전트가 “무엇을 할지”를 정한다면, 로보틱스는 그 판단을 실제 기계와 장비의 행동으로 바꾸는 셈이다.

엔비디아는 이 시장을 겨냥해 오므니버스와 코스모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옴니버스는 로봇과 자율주행, 산업 현장을 가상공간에서 시험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플랫폼으로 쓰인다.
코스모스는 로봇과 자율주행 시스템이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예측하도록 돕는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 플랫폼이다.
자율 에이전트와 로보틱스가 현실에 투입되기 전, 가상 환경에서 먼저 학습하고 검증할 수 있는 기반을 깔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와 에이전트 구축한 '크래프톤'
엔비디아는 이에 대한 한국의 파트너사로 크래프톤과 엔씨를 낙점했다.
실제로 젠슨 황 CEO는 2025년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와 만나 AI와 게임 기술 협력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방한에서는 엔씨 김택진 대표와의 회동도 예정돼 있다.
많은 게임사들 중 젠슨 황이 이 두 곳에 특히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래프톤은 엔비디아와 이미 게임 AI 협업 사례를 만들었다. 크래프톤은 CES 2025에서 엔비디아 ACE 기반의 CPC를 공개했다. CPC는 ‘Co-Playable Character’의 약자로, 이용자와 함께 플레이하는 AI 캐릭터를 뜻한다.
기존 NPC처럼 정해진 대사와 행동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와 상호작용하고 상황에 맞춰 반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엔비디아가 강조한 자율 에이전트 축과 연결된다.
크래프톤은 이후 피지컬 AI 적용 산업으로도 접점을 넓히고 있다. 회사는 딥러닝 본부 안에 피지컬 AI 팀을 만들고 로보틱스 전문가를 영입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피지컬 AI 공동 개발 및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했고, 쏘카 자율주행 법인에도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바르코' 엔씨의 AI 자산이 가진 가치
엔씨는 자체 AI 모델과 비전 AI 연구를 축적해왔다. 엔씨는 2023년 자체 대형언어모델 ‘바르코(VARCO)’를 공개했고, 이후 이미지와 텍스트를 함께 이해하는 ‘바르코 비전’ 계열 모델도 선보였다.
바르코 비전은 이미지·텍스트 이해, OCR, 공간적 지시 이해 등 자율 에이전트가 현실 장면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멀티모달 기술과 연결된다.

엔씨는 로봇과 비정형 환경을 다루는 AI 연구 경험도 갖고 있다. 엔씨의 비전 AI 조직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AI 그랜드 챌린지에서 복합 재난 상황을 AI와 로보틱스로 해결하는 과제에 참여한 바 있다.
더불어, 여기에 포스코DX와는 산업현장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공동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DX가 보유한 로봇 운영·제어 기술과 산업현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NC AI가 로봇이 작업 환경을 인식하고 지시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AI 모델을 개발하는 구도다.
최근에는 현대로템과 함께 국방과학연구소의 ‘피지컬 AI 기반 통합 시뮬레이터 및 모듈형 로봇 시스템’ 과제에도 참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단순 고객에서 기술 파트너로… 남겨진 과제는?
이번 회동 이후 주목할 지점은 엔비디아와 게임사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다.
그동안 AI 투자 사이클의 중심에는 반도체와 인프라 기업이 있었다. 게임사를 포함한 소프트웨어 기업은 이 흐름의 직접 수혜자가 되기 어려웠다. AI를 활용하더라도 인프라를 구매하거나 비용을 부담하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지컬 AI가 본격화되면 이 관계가 일부 달라질 수 있다. 엔비디아 플랫폼 위에서 산업용 AI 환경을 만드는 공급자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생긴다. 이 경우 게임사의 소프트웨어 역량은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활용되는 기술 자산이 된다.
그렇게 되면 관계의 무게중심도 바뀐다. 앞으로는 엔비디아가 플랫폼과 컴퓨팅 인프라를 제공하고, 게임사가 그 위에서 AI 에이전트와 가상환경을 구현하는 공동 기술 파트너 구도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직은 가능성의 단계다. 엔씨와 엔비디아 사이의 구체적인 공동 프로젝트, 매출 모델, 기술 적용 범위는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주가 반응이나 ‘AI 동맹’이라는 기대와 실제 사업 성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