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쿤 시티에 겁도 없이 발을 들인 그대들을 환영한다.
게이머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바이오하자드>라는 이름, 그리고 30년이라는 시리즈의 역사가 주는 무게감. 아마 게임을 구동하기 직전까지도 적잖은 망설임이 앞섰을 것이다. "전작을 하나도 안 해봤는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을까?", "공포 게임은 처음인데 내가 끝까지 엔딩을 볼 수 있을까?" 같은 걱정들 말이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 없다. 이 글은 무려 28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라쿤 시티에 발을 들인 그대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정보만 스포일러 없이 짚어줄 테니,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면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그대들은 행운아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번 작품이야말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입문하기에, 혹은 돌아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니 말이다.

# <바이오하자드 레퀴엠>, 이것만 알고 가자
이번 작품의 무대는 라쿤 시티다. 시리즈 첫 작품이 라쿤 시티 외곽의 대저택에서 벌어졌으니, <바이오하자드>의 거대한 서사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시리즈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지역이며, 3편 이후 무려 27년 만에 다시 등장한 반가운 이름이기도 하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처음 접한 누군가에겐 이런 걱정이 앞설 수 있다. "무려 9번째 정식 넘버링 타이틀인데, 전작을 다 해봐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필요 없다'.
물론 전작을 플레이했다면 더 깊게 다가오는 요소들이 있겠지만, 이번 작품만으로도 <바이오하자드>가 어떤 게임인지 느끼기엔 충분하다. 전작에 대한 방대한 지식 없이도, 시리즈 특유의 정체성과 스릴 넘치는 액션을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영리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스토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할까 우려되는 이들을 위해, 게임 시작 전 알아두면 좋을 최소한의 배경 지식을 준비했다. 복잡한 역사는 접어두고 딱 세 가지, '라쿤 시티', '레온', 그리고 '그레이스'만 기억하고 출발하자.

■ 라쿤 시티: 모든 악몽이 시작된 곳
앞서 언급했듯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시리즈가 이어지며 세계 곳곳이 무대로 등장했지만, 라쿤 시티만큼 유저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곳은 없다.
게임 내에서 라쿤 시티는 제법 크고 발달한 도시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설정상 본래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외진 산골 마을이었다. 특징이라고는 이상하리만치 상처 치료에 탁월한 허브가 자란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평범했던 마을이 어떻게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고, 인류 최악의 좀비 사태를 일으킨 시발점이 되었을까? 바로 다국적 제약회사이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속 만악의 근원 '엄브렐러' 때문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제약 회사였으나, 그 이면에서는 치명적인 생체 병기를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던 엄브렐러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모든 비극이 잉태되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이 곳에서 시작됐다. 엄브렐러가 연구하던 'T-바이러스'가 유출되면서, 인간과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감염시키는 이 끔찍한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갔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통제 불능에 빠졌고, 결국 미 정부가 열압력화기를 투하하면서 라쿤 시티는 지도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 레온 S. 케네디: 풋내기 경찰에서 인간 병기로
라쿤 시티에 T-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1998년 9월 23일. 공교롭게도 이 날은 신참 경찰 레온의 부임 첫날이었다. 이 앳된 풋내기 경찰관이 훗날 시리즈를 대표하는 '좀비 슬레이어'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운 좋게 초기 감염을 피한 그는 쑥대밭이 된 지옥도 속에서도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녔다. 감염된 딸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 아버지를 보며 가슴 아파하고, 사람들을 돕고 싶어 경찰이 되었다고 읊조리는 그의 초기 모습을 보면, 실력은 풋내기였을지언정 정의감만큼은 누구보다 앞섰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라쿤 시티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는, 이후 미 정부의 직속 특수 기관에 발탁되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혹독한 훈련을 거친다. 그 과정이 어지간히 험난했던 모양인지, 과거 소년 만화의 주인공 같았던 성격은 어느새 냉정하고 시니컬한 베테랑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 모습이 또 기가 막히게 멋지다.)
대통령의 외동딸을 구출하고,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등 굵직한 작전을 성공시켜 왔지만, 그의 가슴 한편에는 '라쿤 시티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깊은 부채 의식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D.S.O. 소속 요원이 된 그는 라쿤 시티 생존자들을 덮친 의문의 질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시금 그 끔찍했던 악몽의 진원지로 발을 내딛는다.

■ 그레이스 애쉬크로프트: 시리즈 최초의 겁쟁이 주인공
구작의 팬들에게도, 시리즈에 처음 입문하는 유저들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다. 다만 골수 팬이라면 그녀의 성(Ashcroft)을 듣고 묘한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다. 과거 <바이오하자드 아웃브레이크>에서 열혈 신문 기자로 활약했던 '알리사 애쉬크로프트'의 딸이기 때문이다.
FBI 소속 분석관인 그레이스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8년 전 어머니가 살해당한 '렌우드 호텔'을 조사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역대 <바이오하자드> 주인공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정체불명의 위협에 쫓길 때는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떤다.
게임 내내 그레이스가 가장 많이 내뱉는 대사는 다름 아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다. 그녀는 과거 라쿤 시티의 참상이나 배후의 음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즉, 이 복잡한 세계관에 처음 발을 들인 신규 유저의 당혹스러움과 시선을 가장 완벽하게 대변해 주는 인물인 셈이다.
# 더 과격해진 인간 병기, 울분을 담긴 도끼질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이번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앞서 소개한 그레이스와 레온, 두 사람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그리고 누구의 시점인가에 따라 게임의 장르 자체가 뒤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레이스의 파트가 전통적인 생존 공포 게임이라면, 레온의 파트는 영락없는 '액션 블록버스터'다. 그레이스로 플레이할 땐 숨죽여 피해 다녀야 했던 무시무시한 변이체들도, 레온 앞에서는 추풍낙엽처럼 썰려 나갈 뿐이다. 공포 게임 특유의 옥죄는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끈한 액션이 도파민을 쉴 새 없이 터뜨린다.
▶ 그레이스 파트에선 피해다녀야 했던 거구의 괴물도 레온 앞에선 한낱 고기덩이일 뿐.
혹자는 "이러고도 공포 게임이냐?"라고 물을 수 있겠다. 이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원래 이랬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대 3인칭 숄더뷰 액션 게임의 교과서라 불리는 4편부터 6편까지의 결을 완벽하게 계승하고 있다. 마침 이 화려한 액션으로의 전환을 알렸던 4편의 주인공 역시 다름 아닌 레온이다.
과거 4편에서 정부의 정예 요원으로 거듭난 레온은 '저먼 수플렉스'로 감염자를 반으로 접어버리거나, 강력한 날아차기로 생체 병기마저 무릎 꿇리는 등 일명 '인간 병기'의 면모를 과시했다. 시점상 중년이 된 이번 작품에서도 그 압도적인 무력은 여전하다. 다만 4편의 액션이 절도있었다면, 이번 작품의 액션은 한층 벌크업된 그의 체격만큼이나 거칠고, 과격하며, 파괴적이다.
▶ 4편에서 보여준 레온의 액션이 절도있었다면,
▶ 이번 작품의 액션은 대단히 거칠고 과격하다.
이 무자비한 액션의 방점을 찍는 것은 레온의 새로운 근접 무기 '토마호크'다. 그는 등에 찬 이 묵직한 도끼로 변이체들을 장작 패듯 반으로 갈라버리고, 굳게 닫힌 빗장을 찢어발기며, 심지어 날아오는 로켓마저 튕겨내는 초인적인 반사신경을 보여준다. 전투 중 날이 무뎌지면 익숙한 손놀림으로 숫돌에 날을 갈아낸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적진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전사라는 말로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 허리가 많이 안좋으세요, 손님.
여기에 레온의 액션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는 본작의 상징적인 무기가 있으니, 바로 대구경 리볼버 '레퀴엠'이다. 실제 총기인 'RSh-12'를 모티브로 한 이 무기는 무려 50구경 철갑탄을 사용하는 괴물 같은 리볼버다. 일렬로 선 변이체들을 단 한 발에 꿰뚫어버리는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니, '진혼곡(레퀴엠)'이라는 이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다.
레온은 두 손으로 들기도 버거워 보이는 이 거대한 핸드캐논을 한 손으로 쥔 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적의 머리를 터뜨려버리는데, 그 묵직한 타격감이 가히 일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 환경과 상황을 십분 활용하는 임기응변 전투는 강렬함을 넘어 처절하기까지 하다. 벽 가까이 있는 적의 머리를 그대로 짓이기거나, 적들이 들고 있던 콘크리트 덩어리, 심지어 회전하는 전기톱을 역으로 빼앗아 주변을 일망타진하는 모습에서는 묘한 울분마저 느껴진다. 넋 없이 배회하는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는, 그가 평생 안고 살아가는 죄책감에서 기인한 분노 말이다.
▶ 불꽃튀기는 전기톱 싸움을 볼 줄이야...
이 외에도 속도감 넘치는 바이크 액션,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보스와의 숨 막히는 추격전 등 레온의 액션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은 차고 넘친다. 그레이스 파트에서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활짝 펴고, 총성과 타격음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레온의 통쾌한 '액션 테마파크'를 마음껏 즐겨보길 바란다.
▶ 오토바이 추격전은 꼭 한번 플레이해보시길.
# 입문자에겐 가장 친절한 초대장, 팬들에겐 최고의 헌사
레온 시점의 플레이가 시리즈 4편 이후의 통쾌한 액션과 맞닿아 있다면, 그레이스 시점의 플레이는 시리즈 초창기(1~3편)의 경험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한정된 자원과 주변 환경을 극한까지 활용해 난관을 돌파해 나가는, <바이오하자드>가 정립했던 정통 '서바이벌 호러'의 정수 말이다.
물론 이러한 서바이벌 호러의 문법이 입문자에게는 다소 낯설고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주치는 적을 모두 쓰러뜨리기엔 탄약이 턱없이 부족하고,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어둠 속을 도망쳐야 하는 경험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 제발 그냥 지나가주세요 ㅠㅠ
하지만 앞서 이번 타이틀이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입문하기 가장 좋은 기회라고 강조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공포 장르 자체에 첫발을 내딛는 유저들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만약 이 작품이 당신의 인생 첫 공포 게임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캐주얼' 난이도를 선택해 보길 권한다. 누구든 좌절 없이 긴장과 이완의 카타르시스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친절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캐주얼 난이도에서는 다른 게임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조준 보정을 지원한다. 시야가 빗나가 있어도 무기를 드는 순간 조준점이 적의 머리를 향하고, 적이 움직이면 마치 빨려들어가듯 조준점이 따라붙는다. 가히 '합법적 에임핵'이라 부를 만한 수준의 보정이 들어가니, 슈팅 게임에 자신이 없어도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이 정도면 '합법적 에임핵'
더불어 게임 내 자원 역시 '딱 부족하지 않는' 수준으로 제공되어, 개발진이 의도한 공포감을 충실히 맛보면서도 결코 막다른 골목에 갇히지는 않게 해준다. 이렇게 그레이스 파트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쫄깃한 긴장감이 있어야, 이어지는 레온 파트의 액션이 주는 도파민도 배가 되는 법이다.
반대로 구작을 섭렵해 온 팬들에게 이번 작품은 그 어느 때보다 진한 향수를 선사하는 선물 세트다. 생존에 치중한 그레이스 파트와 파괴적인 레온 파트를 나란히 병치시킴으로써, 지난 30년간 시리즈가 쌓아 올린 찬란한 유산을 한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인 언급은 아끼겠지만, 게임 전반에는 올드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할 전작의 오마주와 이스터 에그가 정성스럽게 흩뿌려져 있다. 이를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느껴지는 벅찬 짜릿함은 여러분의 과거 플레이 경험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동시에 신규 유저들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해 전작을 찾아보게 만드는 훌륭한 연결 고리가 되기도 한다.
▶ 전작의 팬이라면 전율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결국 당신이 이곳과 초면인지, 혹은 오랜만에 돌아온 구면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게임을 마주하는 순간, 오직 <바이오하자드>만이 줄 수 있는 독보적인 스릴과 카타르시스에 온전히 매료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28년 만에 다시 열린 지옥, 라쿤 시티에 첫발을 내디딘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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