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화에서는 프리미엄 패키지 게임을 만든다는 일이 결국 “발견과 신뢰의 구조”를 먼저 설계하는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2화에서는 그 발견이 점차 브랜딩의 문제로 모인다고 썼습니다.
유저는 게임을 오래 붙잡고 판단하기 전에, 짧은 인상과 몇 개의 단서로 “이 게임이 어떤지”부터 먼저 가늠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이어집니다.
좋은 첫인상을 만든 게임은, 그다음에 어떻게 실제로 사람들 앞까지 가게 될까요.
어떤 게임은 행사, 기사, 쇼케이스를 계기로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반면 비슷한 완성도를 갖추고도 조용히 묻히는 게임도 있습니다.
좋은 게임이 시장에서 힘을 얻는 순간에는, 항상 누군가가 그 게임에 ‘들여다 볼 이유’를 붙입니다. 저는 이를 설명하는 말로 ‘큐레이션’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 편집자 주: 행운처럼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게임을 만나기까지 굉장히 많은 변수가 작용합니다.(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이번 글에서 다루는 큐레이션은 무엇을 먼저 보여줄지, 어떤 문맥과 어떤 자리에 올려놓을지, 어디까지 자기 이름을 걸지를 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 구조는 애초부터 완전히 공정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앞에 세우는 순간, 다른 누군가는 같은 자리에서 밀려나기 때문입니다.
한편, 유저 입장에선 수많은 게임을 하나하나 다 검토할 수 없으니, 누군가의 선택을 참고해 판단 부담을 덜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큐레이션은 누가 먼저 보일지를 가르는 힘이면서도, ‘적어도 한 번은 믿고 볼 만하다’는 인상을 짧게 건네는 장치이기도 합니다./기고=스튜디오 BBB 임권영 대표,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1. 발견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스팀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자유로운 상점입니다.
등록비를 내면 누구나 게임을 올릴 수 있고, 유저는 검색과 태그, 추천 탭을 넘기며 스스로 게임을 찾아다닙니다. 시장이 알아서 좋은 게임을 골라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저는 분명 주도적으로 탐색합니다. 다만, 그 탐색 역시 플랫폼이 미리 만들어 둔 판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추천 탭, 장르 축제, 위시리스트 알림, 개발자 페이지, 큐레이터 추천 같은 구조가 먼저 있고, 유저는 그 안을 돌아다닙니다.
훌륭한 게임이 온전히 스스로 떠오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개는 누군가가 해당 게임을 시야에 닿는 자리에 올려놓고, 그 이후 유저의 선택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게임의 발견을 순수한 실력이나 운의 결과로만 단정할 수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늘 매개가 존재합니다. 누가 먼저 보이게 했는지, 어떤 자리에서 눈에 띄었는지, 어떤 문맥과 함께 소개됐는지가 실제 시장에서 큰 차이를 만듭니다.
#2. 큐레이션은 권력이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큐레이션을 그저 ‘좋은 게임을 소개하는 일’ 정도로만 보기에는 현실이 훨씬 복잡합니다.
어떤 게임이 행사 메인 무대에 오르고, 어떤 게임이 스토어 첫 화면에 걸리고, 어떤 게임이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묶이는지는 성패의 방향을 크게 바꿉니다.
특정 작품을 앞줄에 세우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다른 작품의 자리를 줄입니다. 큐레이션은 취향의 반영이면서, 시장 노출을 배분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이 권력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 의도로 작동하는 큐레이션이 더 많습니다.
예컨대 Day of the Devs는 비영리 조직으로서 “창의성과 다양성을 기념하고, 과소대표된 개발자에게 목소리를 주며, 플레이어와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웁니다.
다만, 선의에서 출발한다고 해서 그 힘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누가 먼저 보일지를 정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큐레이션은 시장 안의 중요한 권력입니다.

어워드 수상이나 노미네이션도 비슷합니다. 수상이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누군가의 심사를 통과했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기사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사 한 편이 매출을 바로 만들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이미 한 번 걸러진 게임”이라는 판단 근거가 됩니다.
여럿 중 하나를 고르는 순간, 큐레이션은 중립일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인정해야 뒤에서 말할 ‘신뢰’의 문제도 더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기고문을 쓰고 있는 임권영 대표의 스튜디오 BBB는 개발 중인 <모노웨이브>로 여러 상을 수상하거나 수상 후보에 올라 많은 관심을 받은 개발사이기도 합니다.
#3. 사람들은 왜 큐레이션을 신뢰하는가
이유는 단순합니다. 유저가 모든 게임을 직접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게임 구매는 시간, 비용, 그리고 관심이 함께 들어가는 결정입니다. 유저는 매번 새로운 리스크를 처음부터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앞서 확인하고 “골라두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됩니다.
큐레이션은 단순한 취향의 추천을 넘어섭니다.
스트리머, 평론가, 심사위원, 퍼블리셔, 미디어가 자기 이름과 이력, 브랜드를 걸고 게임을 선택할 때 그 행위는 일종의 ‘보증’으로 기능합니다.
절대적 무결성을 증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해당 주체가 “이름을 걸 만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아무 게임이나 집어들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 내가 신뢰하는 행사나 퍼블리셔가 아무 게임에나 자기 이름을 얹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가 작동하죠.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스팀 생태계에서는 여기에 유저 리뷰라는 집단 검증의 층위가 더해집니다. 사용자 평가는 기본적으로 “추천/비추천”의 직관적인 구조를 가지며, 유용성 투표와 최근 평가 지표를 통해 노출 순서에 영향을 줍니다.
밸브 역시 리뷰의 목적을 “다른 고객의 더 나은 판단(구매)을 돕는 것”으로 명시합니다. 스팀은 플랫폼이 틀을 만들고, 유저가 그 안에서 다시 평가를 덧씌우는 구조를 가진 시장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게이머 스스로도 큐레이션의 주체라는 점입니다.
콘솔 패키지를 책장에 꽂아두고, 스팀 라이브러리를 자기 취향의 게임들로 채우고, 아직 하지 않은 게임까지 사두는 일에는 단순한 소비 이상의 감각이 섞여 있습니다. ‘나는 이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자기 취향과 정체성을 정리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발견과 신뢰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쇼케이스 선정이 미디어 보도를 낳고, 기사가 스트리머의 플레이 근거가 되며, 이 반응이 플랫폼 피처드를 견인합니다. 퍼블리셔가 개입하면 인터뷰의 문맥이 재편되고 추가적인 기회가 파생됩니다.
이렇듯 게임의 가시성은 여러 층위를 거치며 연쇄적으로 증폭됩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4. 큐레이션에도 층위가 있다
플랫폼, 퍼블리셔, 행사, 어워드, 미디어, 스트리머는 모두 큐레이션의 층위에 속합니다. 다만, 작동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스팀은 누구나 진입 가능한 개방적인 시장 안에 태그, 추천, 행사, 위시리스트, 리뷰 등의 필터링 구조를 겹겹이 배치하여 가시성을 재정렬합니다. 자동화된 추천 알고리즘과 유저의 자발적 탐색, 집단 검증이 맞물려 움직입니다.
반면 콘솔의 작동 방식은 다릅니다. 실물 패키지와 리테일 유통 중심이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돌아보면, 당시 콘솔 시장은 누가 게임숍의 앞줄 진열대를 차지하느냐를 두고 훨씬 더 직접적으로 경쟁하던 구조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게임샵 사장과 리테일 바이어가 지금의 플랫폼 홈 화면이나 추천 영역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큐레이션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 규모와 방식만 달라진 채 오래된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은 콘솔 플랫폼도 디지털 스토어를 중심으로 재편됐고, 유저도 굳이 게임샵에 가지 않고 스토어에서 게임을 고릅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제조와 물류 부담이 줄었고, 플랫폼도 물리적인 유통 비용을 덜게 됐습니다. 이 변화는 분명히 진입장벽을 낮췄습니다.
▲ 닌텐도 스토어 예시
다만, 콘솔 시장이 스팀 같은 완전한 오픈 플랫폼으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콘솔은 예전보다 문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플랫폼 홀더의 심사와 기술적 요구사항, 일정 신뢰, 관계 관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시장에 가깝습니다.
예전처럼 극단적으로 닫힌 시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서 알아서 경쟁하는 시장도 아닙니다. 유통 장벽은 낮아졌지만, 보증과 관리라는 층위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행사와 쇼케이스는 “이번에 주목할 게임”을 무대에 올리고, 어워드는 “심사에 통과했다”라는 꼬리표를 붙입니다. 미디어는 게임을 해석할 언어와 이야기의 방향을 설정하며, 스트리머는 재미의 ‘실감’을 옮깁니다.
퍼블리셔는 특히 중요합니다. 유저에게는 취향의 단서가 되고, 개발사에게는 역할과 권한, 수익을 나누는 실제 계약 상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걸 한데 묶어 “홍보”라고만 부르면 정작 그 안의 층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지 않게 됩니다.
퍼블리셔를 플랫폼처럼, 미디어를 스트리머처럼 뭉뚱그려 대하지 않으려면 이 층위를 명확히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개발사도 각 단계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준비해야 할지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5. 광고는 기회를 확보해주고, 큐레이션은 이유를 붙인다
노출 구조를 논할 때 유료 광고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유료 쇼케이스, 크리에이터 협찬, PR 캠페인은 업계의 필수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광고와 큐레이션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광고는 도달률과 발견의 빈도를 기계적으로 확장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고, 더 자주 도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광고는 확실한 기회를 돈으로 확보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오가닉하게 올 수도 있었을 기회를, 비용을 써서 좀 더 확실한 형태로 당겨오는 셈입니다.
하지만 광고가 신뢰를 ‘보증’해주지는 않습니다.
광고가 붙는 순간 유저는 그 선택을 “안목에 기반한 추천”보다 “돈을 받고 보여주는 것”으로 보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고는 노출을 살 수는 있어도, 신뢰까지 자동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협찬 스트리머 방송을 ‘숙제’라고 부르는 문화도 이런 거리감과 연결돼 있습니다. “보게 만들 수는 있어도, 믿게 만들 수는 없다”는 의미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그렇다고 광고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광고는 분명히 작동합니다.
다만, 최대 효율은 이미 최소한의 신뢰와 문맥이 선행되어 있을 때 나옵니다. 신뢰도가 어느 정도 구축된 게임에 광고가 붙으면 파급력이 훨씬 커지고, 광고로 유입된 트래픽이 이후 기사나 스트리머 반응을 통해 다시 큐레이션의 힘을 얻기도 합니다.
여기서 하나 더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광고는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게임의 매력을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사람들 앞에 놓일 기회가 생기더라도, 그 게임 자체가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는 대전제가 없으면 그 기회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디게임에는 마케팅이 의미 없다”는 식의 단정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게임이 사람들 앞까지 가는 경로를 넓히고, 그 기회를 더 확실하게 만드는 일은 분명 존재합니다.
문제는 마케팅이 무의미하냐가 아니라, 무엇을 증폭시키고 무엇은 대신할 수 없느냐를 구분하는 일입니다.
#6. 퍼블리셔는 구원자가 아니라 역할과 책임을 나누는 파트너다
▲ (이미지 출처: 디볼버 디지털)
유저에게 퍼블리셔의 이름은 새로운 게임을 판단하는 1차 단서로 작용합니다. 특정 회사의 이름이 붙어 있다면, 유저는 그 브랜드의 과거 라인업과 취향을 바탕으로 게임을 살펴보게 됩니다.
Devolver, Finji, Raw Fury, Akupara 등 글로벌 인디 퍼블리셔들은 뚜렷한 브랜딩 정체성을 내세우며 유저와 일정한 기대 문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낯선 신작이라도 이들 브랜드 하에 놓이는 순간 "해당 퍼블리셔가 엄선한 타이틀"이라는 맥락이 부여되어 유저, 미디어, 플랫폼의 초기 검토 장벽을 크게 낮춥니다.
결국 퍼블리셔는 게임에 첫 문맥을 붙이고, 첫 신뢰를 조금 앞당기는 역할을 합니다.
▲ (이미지 출처: 로우 퓨리)
국내에서는 이 장면이 조금 더 복잡합니다. 독립적인 인디 전문 퍼블리셔 층이 해외만큼 두텁게 형성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대형 게임사의 플랫폼이나 퍼블리싱 사업 확장이 인디의 주요 접점으로 더 자주 보입니다. 그 결과 “큰 회사가 골라주면 길이 열린다”는 식의 구원 서사가 더 쉽게 붙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서사가 완전히 틀렸다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많은 대형 기업들이 산업 차원에서 지원과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고, 많은 개발자들이 거기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그런 흐름과 완전히 무관한 바깥에서 자란 건 아닙니다.
▲ (이미지 출처: 네오위즈)
다만, 이 관계를 ‘지원’이나 ‘상생’의 언어로만 보면 현실을 놓치기 쉽습니다.
퍼블리싱은 결국 사업이고, 사업은 역할과 리스크, 대가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큰 조직은 누구보다 사업적으로 움직입니다. 인디를 전면에 세우는 일 역시 브랜드 이미지, 포트폴리오 전략, 신규 IP 탐색, 시장 확장 전략이라는 계산과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실질적인 지원이 있더라도, 이를 무조건적인 호의로 해석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퍼블리셔의 선택을 “누군가 내 가치를 알아본 순간”처럼만 받아들이면 현실을 놓치게 됩니다.
애초에 게임이 좋다고 해서 퍼블리싱 협상이 자동으로 잘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 좋은 게임인지에 대한 기준부터 주관적입니다. 퍼블리셔마다 선호하는 장르와 미감, 시장 판단, 리스크 감수 수준이 다릅니다.
▲ 스마일게이트 퓨처랩이 주관하는 인디게임 행사 비버롹스(버닝비버)
여기에 사업적 타이밍도 크게 작용합니다.
목표 런칭 시기에 이미 비슷한 타이틀을 들고 있을 수도 있고, 내부 인력과 예산 배분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붙잡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같은 게임이라도 어느 시점에, 어떤 포트폴리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약은 결국 서로 덕을 보는 관계여야 합니다.
개발사는 퍼블리셔의 네트워크, 자본, 경험, 실행력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퍼블리셔는 그 게임이 가진 완성도와 잠재력 덕분에 자기 포트폴리오와 실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쪽만 이익을 보고 다른 쪽은 소모되는 관계라면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실제 퍼블리싱은 훨씬 실무적인 일입니다. 핵심은 결국 누가 무엇을 맡을지 정하는 데 있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 홀더와의 협상, 특정 장르에서 축적한 마케팅 경험, 예산을 써서 확산시키는 운영은 퍼블리셔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 핵심 세일즈 포인트를 짚어내는 일, 브랜드 톤을 지키는 일, 팬덤 커뮤니티를 오래 관리하며 ‘놀아주는’ 일은 개발사가 더 잘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둘 다 “마케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도 누가 더 잘할 수 있는지 갈립니다.
▲ 편집자 주: 그라비티도 인디 퍼블리싱에 적극적인 편이죠.
저도 최근까지 퍼블리셔들과 꽤 긴 시간 대화를 이어가면서, 퍼블리싱을 “한쪽이 다른쪽을 선택하는 일”로만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자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였습니다. 이 경계를 얼마나 솔직하고 선명하게 나누느냐가 중요했습니다.
협상 자리에서는 MG(미니멈 개런티, 최소 수익 보장)가 얼마인지, RS(수익 분배 방식)가 몇 대 몇인지 같은 질문이 먼저 나오곤 합니다. 어쩌면 가장 먼저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그 숫자가 계약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결국 역할 분배의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MG는 선행적 금전 지원에 가깝고, RS는 후속적 금전 배분에 가깝습니다. 퍼블리셔가 어떤 위험을 먼저 감수하고 얼마만큼의 비용을 앞당겨 넣는지, 그리고 출시 이후 어떤 기여를 근거로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를 숫자로 적어놓은 것입니다.
결국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가 어떤 역할과 책임을 전제로 붙어 있는지를 같이 봐야 합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그래서 저는 퍼블리싱을 “선택받는 관계”보다 “역할과 책임을 설계하는 관계”로 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끝까지 쥘지 분명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장 민감한 금전 조건도 결국 그 불분명함을 따라 흔들립니다. 숫자는 뒤에 따라오는 결과여야지, 앞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 게임의 흥망성쇠를 함께 맡는 관계에서 이 정도 역할 정리도 하지 못한다면, 그 계약은 시작부터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팀이 큰 조직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각자가 무엇을 더 잘하는지 냉정하게 나누고, 그에 맞게 역할과 책임, 권한을 설계하는 편이 더 현실적입니다.
인디는 인디답게 퍼블리싱해야 한다는 말의 뜻도 저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7. 누가 우리를 고를까보다, 어디에 설 것인가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여기서 하나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계속 “누가 우리를 골라주는가”로만 흐르면, 개발사는 수동적으로 보입니다. 개발사도 스스로 계속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행사에 나갈지, 어떤 퍼블리셔와 이야기할지, 어떤 빌드를 보여줄지, 무엇을 먼저 말하고 무엇을 감출지, 어떤 유저층과 먼저 만날지, 어떤 언어로 자기 게임을 소개할지 모두 개발사의 선택입니다.
다시 말해 개발사는 큐레이션을 그저 기다리는 쪽에만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어떤 자리에 들어갈지, 어떤 맥락 안에서 보일지를 먼저 골라야 합니다.
트레일러와 데모 빌드의 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행사 시연용, 퍼블리셔 피칭용, 스트리머용 자산의 성격은 같을 수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게임을 어떤 자리에 놓을지, 어떤 구조 안에서 보여줄지 먼저 고르는 일입니다.
결국 작은 팀은 막연히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기보다, 어떤 자리에서 자기 게임이 가장 제대로 보일지를 먼저 골라야 합니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 마치며
1화에서 저는 인디 시장 진입을 구조의 문제로 봤고, 2화에서는 발견이 결국 브랜딩의 문제 모인다고 적었습니다.
이번 3화의 핵심은, 시장에서 가시성과 파급력을 얻는 거의 모든 순간에 누군가의 선택과 보증, 즉 큐레이션이 개입한다는 사실입니다.
큐레이션은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동시에 유저의 검토 비용을 줄여주는 신뢰의 장치이기도 합니다.
플랫폼, 퍼블리셔, 어워드, 미디어, 스트리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게임에 문맥과 이유를 붙입니다. “이 게임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는 말을 각자의 방식으로 대신해주는 셈입니다.
퍼블리셔와 플랫폼도 그 구조 안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끝까지 쥘지 정하는 일입니다. 작은 팀은 막연히 기다리기보다, 어떤 자리에서 자기 게임을 보여줄지 먼저 골라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커뮤니티’를 다뤄보려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유저를 어떻게 코어 팬으로 전환하고, 스튜디오의 팬덤으로 남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다음 게임의 출발선이 되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스튜디오 BBB 임권영 대표
예술 전공을 바탕으로 HCI(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연구를 하다 인디 게임 스타트업을 창업해 배워가고 있습니다.
🎮 [인디설계노트] 5부작
① 프리미엄 인디는 왜 '발견과 신뢰의 구조'가 먼저인가 (바로가기)
② "발견되게 만드는 것"은 곧 "브랜딩"이다 (바로가기)
③ 누가 게임에 '들여다 볼 이유'를 붙이는가 (현재 기사)
④ '팬덤'은 어떻게 다음 게임의 출발선이 되는가 (바로가기)
⑤ 인디 '생태계'는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메마르는가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