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는 단순한 지적 재산권을 넘어, 어떻게 감정적 경험과 문화적 가치를 형성하는 브랜드가 되는가?"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025에서 유니버설코리아의 곽경원 지사장이 강연했다. 삼성전자와 월트디즈니를 거쳐 현재 유니버설 프로덕트 & 익스피리언스 코리아 지사장으로 재직 중인 곽 지사장은, 브랜드가 기업의 일방적인 메시지를 넘어 소비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공동 자산'임을 강조하며 팬덤 구축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곽 지사장은 강연을 시작하며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라는 용어가 한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특이한 개념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이미 OSMU를 당연한 전략으로 내재화하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그 단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곽 지사장은 1919년 세계 최초의 캐릭터 '펠릭스 더 캣'이 탄생한 이래, 월트 디즈니, 컴캐스트 유니버설 등 미국 주요 미디어 기업들이 어떻게 100년 간 브랜드를 확장해왔는지를 설명했다. 이들 기업은 미디어 사업, 필름, 스튜디오 네트워크 등 다양한 플랫폼을 커버하며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했고, 100년 전 할리우드에서 시작되었다.
유니버설은 지난해 약 160조 원, 디즈니는 100조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디즈니의 경우 매출의 34%가 '파크, 경험, 제품(Parks, Experiences and Products)'에서 발생할 정도로 브랜드 확장은 핵심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연령 세분화(Age Segmentation)' 전략이 있었다. 일례로 디즈니는 유아부터 임산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타겟군을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는 것처럼,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광범위한 연령층을 아우르는 전략을 구사한다.

브랜드 확장을 위해서는 꼼꼼한 연령 세분화 전략 설정이 필요하다
반면, 한국의 100년 된 브랜드인 '동춘 서커스'를 예로 들며 '재미'와 '팬'의 차이를 설명했다. 동춘 서커스는 한때 대단한 인기를 끌었지만, 휘발성 있는 재미에 머물러 현재는 큰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역시 30억 뷰 이상을 기록한 세계적인 히트곡이지만, 사람들이 콘서트 현장의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것이지 싸이 개인의 팬으로서 '소장'하고 싶은 니즈는 약하다고 곽 지사장은 지적했다.
대조적으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1984년 창립되어 연간 약 1조 5천억 원의 매출과 1,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특정 공연이 아닌 '브랜드' 자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팬덤을 형성했으며, 이는 '재미' 중심에서 '팬'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한 사례라고 곽 지사장은 분석했다.

브랜드가 된 태양의 서커스와

그렇지 못한 동춘 서커스
곽 지사장은 현재 케이팝(K-POP) 시장의 포토카드 문화를 언급했다. 현재 이 문화는 단순한 흥미(fun)를 넘어 씬의 핵심 동력처럼 여겨지고 있다. 초등학생들은 몇몇 인기 포토카드를 현금처럼 여기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케이팝 팬덤이 형성되는 과정은 '브랜드와 소비자의 커넥션'으로 설명된다.
또한, '시리즈물' 콘텐츠가 현재 시대에 전 연령대(MZ세대부터 4050세대까지)를 아우르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유니버설은 영화 <위키드> 1, 2편을 동시에 제작한 것처럼,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는 IP에 대한 투자와 확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겨울왕국>이 2,0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미니언즈>가 700억 원 제작비로 총 9조 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는 등, 미디어 콘텐츠의 거대한 파급력을 예로 들며 IP의 가치를 설명했다.

모든 IP 홀더들이 막대한 파급력을 지닌 시리즈화를 노린다. 그러나 성공하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다.
특히 주목할 점은 IP를 가진 브랜드들이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레고가 2014년 부도 위기에서 <스타워즈> 등과의 협업을 통해 높은 브랜드 가치를 회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레고는 경영진을 교체했고 강력한 IP 파트너십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며 세계 1위의 장난감 리테일 업체 지위를 다시금 차지했다.
곽 지사장은 한국 시장에서 SF나 정글, 말(Horse)이 주인공인 콘텐츠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우주에 대한 로망', '정글 경험', '말과 교감 경험' 등 소비자들과의 '커넥션' 부재를 꼽으며, 강력한 커넥션이 없는 콘텐츠는 브랜드화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콜라보레이션은 단순한 마케팅 수단을 넘어, '나의 브랜드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이 된다. 불경기일수록 인지도 있는 브랜드가 더 잘 팔리는 경향이 있으며, 바이어들도 검증된 브랜드를 선호하기 때문에 브랜드 리콜(Brand Recall)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레고의 비즈니스 파이프라인 캔버스
허쉬 초콜릿 아이스크림(국내 생산),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이크(SPC 생산)처럼, 라이선싱은 기업이 막대한 투자를 들이지 않고도 브랜드를 확장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다. 전 세계 라이선싱 시장 규모는 약 500조 원으로 게임 시장 규모(약 180조 원)를 훨씬 상회하며, 특히 아시아 시장의 성장이 빠르다.
곽 지사장은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와의 파트너십 없이는 현재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모든 브랜드를 혼자 만들려 하기보다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브랜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나이키가 자신보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면 과감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힙'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을 잘 활용한다고 덧붙였다.

라이선싱을 잘 활용하면 이렇게 좋다. 이 아이스크림에는 허쉬 초콜릿이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곽 지사장은 국내 기업들이 특정 영역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아쉬워하며,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이 A부터 Z까지 모든 영역을 커버하려는 '화이트 스페이스' 전략을 통해 전방위적인 마케팅과 브랜드 빌드를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모든 것을 혼자 잘하려는 스티브 잡스식 사고보다는 협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곽 지사장은 "우리는 IP를 어떻게 만들지 보다는, 나는 브랜드 빌더야, 내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고 이 브랜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면 더 수월하게 브랜드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며 강연을 마쳤다.

세상에 브랜드는 이렇게나 많다
Q&A에서 영화 개발비에는 수천 억이 쓰이지만, 왜 게임 개발비에는 그만한 돈이 쓰이는 것이 문제시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곽 지사장은 "영화는 스토리 전달에 강하며, 비주얼적 아름다움과 각색을 통해 커넥션을 만드는 반면, 게임은 인터랙티브 요소와 몰입이 강해 개발비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고 대답했다.
주목하는 브랜드에 대해서는 본인이 재직 중인 유니버설을 꼽으며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5개의 독립 영화사가 뭉쳐 만들어진 회사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스'처럼 'S'가 붙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방적인 플랫폼 정책을 쓴다. 디즈니 테마파크가 폐쇄적인 반면, 유니버설은 해리 포터(워너 브라더스 IP), 닌텐도 월드(닌텐도 IP) 등 타사 IP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브랜드의 탄력성과 속도를 보여준다"고 자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