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의 계절 여름이 왔다. 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세션 중 하나가 바로 "공포 게임의 '진짜' 재미를 찾아서"라는 강연이었다. 넥슨이 공포게임에 대해 다루다니,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 한 사람들도 많았다.
강연에선 기대 이상으로 본질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뇌 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인지적인 측면에서 '공포'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설계하고 다뤄야 하는지부터, 연출과 모델링 등 실제 이를 구현하는 방법에 대한 디테일까지 소개됐다.
"소름은 끼치게, 상처는 남지 않게"라는 연사들의 표현이 이 강연을 가장 적절히 전해주는 것 같다. 임계치 이상의 자극은 장기 기억인 트라우마로 남고, 너무 반복적인 자극은 피로감만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적정한 수준이란 무엇일까?
※ 주제 특성상 무서운 장면 또는 혐오스럽거나 잔인한 묘사가 있는 장면들이 강연 자료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사를 보시는 동안에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강동섭 UX 분석가는 <사일런트 힐>로 공포게임에 입문했고, 그 이후로 '공포'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고 한다. 김윤경 캐릭터 모델러는 <라스트 오브 어스>를 시작으로 '공포' 요소가 들어간 콘텐츠에 흥미를 느껴, 현재는 <프로젝트 EL> 팀에서 크리처, 몬스터 모델링을 담당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공포게임'에 진심인 셈이다.
강동섭 UX 분석가는 공포게임의 본질적인 '재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귀신이나 좀비가 나오고 으스스하고 긴장되는 분위기만 있으면 공포인가, 그게 재미인가 의문이 계속 들었다고 한다.
1970년대 공포게임이 처음 등장한 시점엔, 탑뷰 위주의 게임이 많았고 공포 연출도 '점프 스케어'(깜짝 놀래키는 연출)이 도입된 초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장치에도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시청각적 효과가 크게 발전해, 연출 방식도 다양해졌다. 현재는 게임 속에서 경험하는 환경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수준까지 왔을 정도다.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든다. 기술의 발전은 반갑지만, 놀라게 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만 있진 않나. 공포게임의 긴장감을 경험하고 나면 피곤해지는 느낌도 드는데, 일종의 감정 소모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크라이 오브 피어>라는 게임을 다룬 논문이 소개됐다. 자해, 살인 묘사가 매우 사실적인 게임이다. 공포게임을 즐겨하는 사람도 15시간 이상 플레이했더니 장기 기억의 트라우마가 남았다는 논문 내용이었다.
유저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게임은 자극이 강한 게임은 맞지만, 잘 만든 공포게임이라 볼 수 있을까. "무서운데 진짜 재밌었어"라고 기억하는 게임은, 공포를 느끼긴 했지만 '몰입'의 경험을 기억하는 작품이다. 이런 게임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유저를 놀래킬 수 있는 기술적 장치들은 기존에도 꽤 있는 상태다. 여기서 핵심은 '유저' 즉 플레이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저를 이해하지 못한 채 UX를 설계하는 건, 지도 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강동섭 UX 분석가는 말했다. 공포게임은 '공포'라는 부정적 감정을 의도적으로 전달한다. 트라우마로 남지 않게 하려면, 유저가 어떻게 공포를 느끼는지 이해해야 한다.
뇌 과학적 측면에서 크게 4곳을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먼저 편도체는 공포 자극을 받으면 제일 먼저 활성화되는 기관으로, 일종의 공포 경보 시스템이다. 귀신, 어두운 골목, 스산한 분위기 등을 마주하면 긴장 상태를 느끼게 한다.
섬엽은 혐오감이 드는 대상을 봤을 때 활성화된다. 이 지점이 꽤 재밌었는데 '혐오'와 '공포'는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섬엽이 활성화되는 건 절단된 신체, 쏟아져 나온 내장이나 썩은 음식 등의 대상을 봤을 때다. 심리적 신체적 불쾌감과 연관되어 있다.
전두엽은 이성적 판단을 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포 반응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우리 신체는 두려움을 느끼면 그 공간에서 도망가기 위해 팔 다리로 혈류를 보내는데, 이때 공포 제어가 어려워지고 이 상태가 심해지면 빠른 사고가 힘들어지면서 패닉에 빠진다.
전두엽과 측좌핵이 연결되는 보상 회로에선 도파민이 나온다. 한 마디로 공포를 극복했을 때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 긍정적 보상의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포게임이나 영화를 즐기곤 한다.

공포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자극을 좋아하는 '아드레날린 중독자형', 공포 자체는 엄청 즐기지 않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을 좋아하는 '화이트 너클형', 그리고 자극도 좋아하고 성취감도 좋아하는 '다크 코퍼형'이 있다.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자극 해석 능력이 뛰어나고, 공포 상황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공포게임을 잘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뛰어난 편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든다. 더 무섭게 더 자극적으로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라는 게 결론이다.

공포의 강도와 즐거움의 상관 관계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일정 구간까지는 자극적일수록 재밌다고 느끼다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느끼는 즐거움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천체물리학에서 쓰이는 용어 중 골디락스 존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주 공간에서 인간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춥고, 적당히 따뜻한 공간을 말한다. 인지 과학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도 '적정 수준'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곤 하는데, 결국 공포게임도 자극과 재미 사이의 골디락스 존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다. 개인마다 가진 공포에 대한 역치도 다르고, 난이도나 협동 플레이 여부 등 게임적 경험에 따라서도 자극과 재미의 상관관계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다면 좋은 공포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공포(긴장)와 이완 사이의 적절한 리듬을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점프 스케어를 활용하더라도 15~20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배치하는 게 인지적인 측면에선 최적이라고 한다. <암네시아>나 <아웃라스트>처럼 추격하는 구간이 있는 게임은 1~3분 이상으로 과도하게 길게 긴장감 있는 추격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앞서 살펴봤던 전두엽의 역할이 여기서 다시 언급된다. 정상적인 사고와 인지, 판단을 하려면 회복이 필요한데, 편도체와 전두엽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치기 때문이다. 개발자 입장에선 귀신이 나타난 직후 방심한 틈을 노려 또 다시 자극하고 싶겠지만, 뇌과학적 측면에선 플레이어가 이를 받아들이는 효과가 생각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결국 적절히 쉬어가는 구간을 마련해줘야 자극도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몰입'을 만들기 위한 여러 장치도 있다. 시점과 사운드, 인터랙션이 대표적인 예시다.
공포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은 예측 불가능한 1인칭에서 재미를 더 느끼고, 비숙련자는 영화 같은 반응 즉 3인칭 연출에서 재미를 느낀다. 더 폭넓은 범위의 유저를 포함하려면 다양한 시점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운드도 중요하다. 오리지널 사운드를 만드는 게 힘들게 느껴진다면 '정적'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편도체는 익숙한 곳에서 안정을 느끼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태일 때 긴장을 느낀다. 음악이 나와야 할 것 같은 시점에 안 나올 때, <엘리제를 위하여>처럼 익숙한 멜로디를 예상치 못한 악기로 연추하거나, 선율을 비틀면 긴장하기 시작한다.
QTE도 긴장감을 유발하는 방법 중 하나다. 추격 받는 사이에 제한된 시간 안에 상호작용을 하라는 미션은, 적절히 활용하면 더 큰 긴장과 몰입을 유발할 수 있다.
공포 자극이나 점프 스케어 없이도 <사일런트 힐>처럼 유저가 스토리를 따라가고 세계관에 몰입하면서 공포를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너무 사실적인 묘사가 있는 게임들이 많아졌고, 이런 자극은 뇌에 충격을 줘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긴장감'의 경우, 미니게임 등으로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키거나 다른 화제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완시켜주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실적 묘사에 의한 시청작적 충격은 해마의 장기 기억을 자극하게 되기에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최신 게임들은 공포 요소를 아예 제거하는 옵션을 주거나, 등장 전에 경고를 주기도 한다.
넥슨의 <마비노기>에서도 거미가 많이 나오는 알비 던전에서도 거미를 아로마 베어로 바꾸는 '거미 디퓨저' 물약을 제공한 사례도 있다.
김윤경 캐릭터 모델러는 공포 크리처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소개했다. 첫인상에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압감과 공포감을 줘야 한다는 게 본인의 캐릭터 디자인 철학이라고 한다.
기술적으로도 여러 방법이 있다. 인체를 왜곡하거나, 공포스러운 설정을 외형에 담아내기도 하고, 섹슈얼리티와 공포를 조합해 공포스러운 존재에 끌리게 만드는 방법도 있으며,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겨 여운을 남기는 방식도 있다.




이를 만들기 위해선 소재를 선정하고 공포 세계관을 만들고, 아트로 시각화한 후에, 아트풍에 맞게 모델링도 한 뒤, 애니메이션 및 연출을 더한 후에 애샛 구현 및 적용을 하게 된다. <프라시아 전기> 캐릭터 모델링 당시에도, 해당 세계관 안에서 어떻게 하면 더 무섭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며 제작했다고 한다.
다만, 이 표현을 어디까지 하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게임 이용 심의 등급 분류에 있어, 선정성과 잔인함에 대한 기준은 명확한 편이나, 공포에 대한 기준은 모호한 측면이 있어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다. 국가마다 이 기준도 달라서 해외 서비스 유통 버전에 대해선 추가로 검열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강연에선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는 적정선에서 모델링하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공포 캐릭터 모델링을 하는 과정을 시연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무드등처럼 따뜻한 조명은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차가운 조명을 사용해 긴장감을 부여했다. 수술실이나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명으로, 최근엔 <8번 출구> 등의 게임에서 이러한 기법이 사용됐다.
신체 훼손은 심할수록 더 무섭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건 맞지만, 과도하게 훼손되면 오히려 재미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신체가 절단되거나 내장이 쏟아지는 등의 모습은 호기심은 자극할 수 있어도 게임의 몰입을 해치고 내용을 기억하기 어렵게 만든다. 적정 수위까지만 적용해야 한다.
피를 과하지 않게 사용하는 것도 관건이다. <모탈 컴뱃> 등의 게임을 다룬 논문에선 게임에 등장하는 피의 양에 따라 플레이어의 심박수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만큼 정신적인 부담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도의 과한 심리적 부담을 주려는 게 아니라면 신체 면적의 40~50% 안팎에만 유혈 연출을 사용하는 게 좋다. 피의 색깔도 채도가 너무 진한 붉은색이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채도를 낮추거나 배경에 푸른 계열을 섞는 게 도움이 된다.



두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 게임을 만들었는가에 그치지 않고, 그 무서움이 유저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까지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잘 만들어진 공포게임을 즐긴 유저들은 "첫 플레이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는 등의 정서적으로 잊혀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많이 보이곤 한다. 게임을 꺼도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들이 있다. 공포게임 즐기기 좋은 계절인 여름, 여러분들은 어떤 게임의 인상을 오래 기억하고 계시는가. 올해는 어떤 공포게임을 즐길 계획이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