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첫날 박용현 부사장은 게임 업계의 현황을 짚으며, '빅 게임'에 도전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크게 강조했다. 빅 게임, 정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넥슨이 최근에 선보인 빅 게임 중 하나로 <프라시아 전기>를 꼽을 수 있다. 론칭까지의 개발 기간만 5년 3개월, 론칭 시점의 개발팀 인원만 200명이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피칭부터 론칭 이후 초기 서비스까지 7년 동안 <프라시아 전기>를 이끌어온 前 디렉터이자, 현재는 넥슨코리아 빅게임본부에서 <EL> 프로젝트 PD를 맡고 잇는 이익제 PD는, <프라시아 전기>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게임이 될 때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소개했다. 넥슨이 '빅 게임'을 하나 만드는 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최초의 아이디어에서부터 론칭 빌드까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으며 느낀 바는, 참 힘든 과정을 거쳐 나온 게임이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매 단계마다 이익제 PD는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확실한 인지를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기존 월드를 모두 버리고 더 밀도 있는 새로운 월드를 처음부터 만드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문제점을 마주했던 것일까.


<프라시아 전기>의 프로토타입 개발은 22명의 팀원들과 함께 2018년 1월부터 7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이 시점부터 팀장으로 함께한 이익제 前 디렉터는, 원 채널 심리스 월드의 MMORPG를 만들겠다는 계획과 함께 R&D에 착수했다.
이러한 초창기 단계에서도 기반 기술은 빠르게 개발됐다. 기초적인 평타 공격부터 몬스터 AI 등을 구현했고, 실시간 땅따먹기 기반으로 영지 경영을 한다는 콘셉트도 있었다. MMORPG에 SLG의 재미를 더해보자던 기획이었다. 다만, 이 기획이 처음부터 바라보던 방향이 '엔드 콘텐츠'에 있었다는 게 아쉬운 점이었다. 큰 규모의 게임에서 기존에 하지 않던 시도를 하다 보니, 게임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것도 어려웠고, 개발 난이도 측면에서도 어려웠다.
그렇게 장장 3차에 걸친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프로토타입 버전을 만들어 2시간 분량의 실제 플레이를 구현했다. 지도, 퀘스트, UI, 탈 것 등 여러 시스템과 전투 조작의 기반이 <프라시아 전기>의 초기 모습이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는 골자를 갖추게 됐다.
내부 테스트를 거치면서 게임의 아트 퀄리티나 최적화가 좋다는 긍정적 평가들을 받았다. 하지만 실시간 거점전의 모습이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는 피드백도 있었고, 다른 게임들과의 차별점이 무엇이냐는 냉혹한 평가도 있었다.

프리 프로덕션 2차 단계에선 총 75명으로 팀원이 늘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은 시기이기도 했다. <프라시아 전기>의 핵심 콘텐츠인 실시간 거점전을 만드는 게 목표였던 시점이다. 게임 개발 초기 단계에 이런 규모의 실시간 거점전을 만드는 게 흔한 일도 아니었고, <프라시아 전기>가 원하던 방향성에 대한 기존 레퍼런스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개발팀은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거점전 비전 영상을 제작했다. 말로 설명하면 복잡할 수 있는 거점전 플로우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고, 조직 안에서도 게임 개발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월드에 어떤 오브젝트와 레벨 구조가 필요한지 쉽게 전달할 수 있었고, 플레이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전략, 전술도 엿볼 수 있었다.

이 시점에 월드 청사진과 영지 기반 시스템, 퀘스트 및 스토리도 개발됐다. '거점전'에 대한 피드백은 긍정적이었다. <프라시아 전기>가 원하던 실시간 거점전이 무엇인지 알겠다던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개발팀 내부에선 고민이 많았다. RPG는 1레벨부터 엔드 콘텐츠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거점전은 후반 콘텐츠일 뿐, RPG로서 성장하는 재미의 측면에선 아직 아쉬움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3차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선 플레이 기준 처음 5일까지의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프로덕션 직전까지 왔으니 인원도 대폭 늘어 128명이 됐다. 2일 이상의 장기 테스트도 이 시점부터 시작됐다.
그 결과 어시스트 모드를 비롯한 여러 시스템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부정 평가도 여러 부분에서 들려왔다. 성장 과정의 재미가 전무하다거나, 퀘스트와 스토리가 아쉽다는 것이었다. 거점전이 재밌는데 거기까지 유저들이 가긴 갈까? 라는 뼈 아픈 평가도 있었다. 본격적인 프로덕션에 들어가기 직전인 상태에서 마주한 피드백이었으니, 게임을 개선하는 데 집중할지 콘텐츠 보강과 양산에 집중할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익제 前 디렉터는 결국 초강수를 두게 된다. 루즈한 감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기존 월드를 모두 버리고 밀도 높은 월드로 다시 제작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밀도 있는 새로운 월드로 모두 교체하면서, 레벨 디자인을 상당히 압축했고, 카메라도 기존보다 높게 올리면서 시야에 담기는 양을 줄여 최적화를 진행했다. 이런 변경과 함께 전투 시야 확보나 입체감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었지만 이 또한 개선해나갔다.
그렇게 실시간 거점전을 비롯한 <프라시아 전기> 고유의 재미도 확인시키면서, 레벨 1부터 거점 경영까지의 플레이를 연결하는 목표도 달성하게 됐다. 332명이 참여한 FGT는 8일 동안 접속 지표도 서버 안정성도 모두 좋았다. 다만, 조작이 불편하다거나 원하는 대로 타겟팅을 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고, 성장에 대한 피드백이 부족하고 편의성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었다. 다시 갈고 닦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2차 프로덕션 단계에선 개발팀이 205명 규모가 됐다. 개발 목표도 명확해졌다.
세부적인 전투 시스템과 전투 모션, 이펙트 등을 폴리싱했다. 그렇게 보는 재미도 함께 잡으면서 PvP도 추구했던 재미가 실현되게 다듬고, 대규모 컷씬도 만드는 등 영지 보스를 비롯한 메인 콘텐츠도 만들었다. UI 디자인도 모두 리뉴얼하면서 UX도 개선했다. 결사와 관련된 버튼이 많았던 상태라 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번 FGT에서는 400명 이상이 8일 간 플레이하면서, 연합 플레이도 자연스럽게 발생할 정도로 의도한 재미를 전달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초반 학습과 조작이 어렵고, 게임 난이도가 높다는 평가도 함께 공존하던 상태였다.
드디어 2022년 9월부터 2023년 3월 론칭 시점까지 7개월이 남은 때가 왔다. 225명의 팀원으로 론칭 전 팀 빌딩이 마무리됐고, DB 초기화 없이 라이브서비스처럼 장기 테스트도 진행했다. 론칭 직전 마케팅 애셋을 만들거나, 홍보 쇼케이스 준비를 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고 이익제 前 디렉터는 말했다.

이익제 前 디렉터는 만약 본인이 다시 신규 개발을 시작하는 입장이 된다면, 무엇을 먼저 신경 쓸 것인지 공유했다.
그는 팀 빌딩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더 선임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실력과 리더십도 중요한 덕목이지만, 솔직함과 팔로우십도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게임 개발은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에 체력 유지도 관건이었다고 한다. 정신력보다도 오히려 신체적인 체력이 중요한 때가 많았다고 그는 말했다. 또한 좋은 인재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키워나가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팀 인원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RPG를 만든다면 개발 진행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 수는 알 수 있으니, 그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프로토타입 개발과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충분한 인원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본격적인 프로덕션 단계에선 외주나 협업도 고려할 수 있지만, 그보다 앞선 단계에선 사람이 적으면 게임 콘텐츠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같이 일해본 사람들은 역량을 예측할 수 있어서 개발 속도 진전에 엄청난 이점이 있기 때문에, 성공한 팀은 물론이고 아쉬운 결과가 나왔던 팀도 아쉬운 부분을 보완하고 팀을 다회차 도전으로 이어가는 것에 유리함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그가 PD로 개발 중인 <프로젝트 EL> 또한 200명 이상의 인원이 만들고 있는 멀티플레이 오픈월드 액션 RPG다. 글로벌 PC 콘솔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데, 현재의 팀도 <프라시아 전기>와 <AxE>에서 호흡을 맞춰온 리더들이 함께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