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신작이 쏟아져 나오는 게임 시장에서 10년 이상 서비스를 이어가는 장수 게임이 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국민 게임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해외 시장 공략에선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2013년 출시 이후 누적 매출만 13조 원인 엄청난 게임이다.
그러나 MIXI와 협력해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한 디럭스 게임즈의 직원은 100여 명 남짓밖에 안 된다. 매출 규모에 비해 직원 수가 많지 않은 디럭스 게임즈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잘 알려져 있듯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핵심 콘텐츠는 4인 협동 기반의 플레이와 퀘스트 콘텐츠다. 이번 NDC 발표를 위해 퀘스트 수를 세어봤더니 무려 4,500개가 넘는 콘텐츠가 있었다고 한다.
디럭스 게임즈도 처음엔 자신들만의 기업 문화와 가치 구분 안에서 능력 있는 직원들을 북돋아 주는 방식으로, 기획자들이 조금 더 노력하고 싶고, 더 노력할 수밖에 없는 환경도 만들어봤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끝내 찾은 해법은 의외로 '밖'에 있었다. <몬스터 스트라이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코어 유저들이 퀘스트 기획자로 정식 채용될 수 있게 오디션을 열었던 것이다. 단발성도 아니고 꾸준히 이런 시도를 이어왔다. 그렇게 뽑은 인력은 현재 디럭스 게임즈의 핵심 전력 중 일부가 됐다.
디럭스 게임즈의 유일한 외국인 임원인 정윤철 이사가, <몬스터 스트라이크>와 함께 성장해온 회사 안팎의 이야기들을 외부 강연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디럭스 게임즈는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회사가 생각하는 핵심 가치에 그 답이 숨겨져 있었다.


디럭스 게임즈는 일본에서 '데라게'로 불린다. '데라'는 일본어 사투리로 "엄청"이라는 뜻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도 이 사명과 비슷하다. 퀄리티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일본 유학 이후 GREE에서 일하다가 디럭스 게임즈에 입사한 정윤철 이사는, 디럭스 게임즈 면접 당시 <스트리트 파이터 2>와 <바이오 하자드> 등으로 유명한 캡콤 출신의 유명 개발자 오카모토 요시키와 만난 때를 먼저 소개했다. 콘솔 게임을 만들던 방식을 그대로 모바일게임을 만드는 곳에 접목한 디럭스 게임즈였다.
오카모토 요시키의 "미움 받지 않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던 개발 철학은 디럭스 게임즈에서 QE팀이라 불리는 퀄리티 인핸스 팀으로 빛을 발했다. 기획자들이 열심히 작업하면 QE팀의 피드백 안에서 다시 경쟁하는 방식이다. 디럭스 게임즈는 철저한 능력 주의 회사였다고 한다. 정윤철 이사도 입사 초기 매번 월급이 오르던 시기가 있었는데, 회사 전체 매출이 떨어지자 연봉이 크게 삭감됐던 경험도 해봤다고 한다.
능력 주의와 경쟁이라는 단어 표현만 들으면 팍팍해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 그 중심에 있는 건 '유저'와 '재미'에 대한 고민이었다. 정윤철 이사는 일본 특유의 '와(和) 문화'를 언급하며, 디럭스 게임즈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관계'였다고 말했다. 유저와의 관계, 유저끼리의 협동이 강조된 게임 콘텐츠에서도 볼 수 있듯 유저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였다.

우리말과 달리 일본어 표현에선 사장, 선생 뒤에 '님'을 붙이지 않는다. 아랫사람이 이들을 부를 때도 사쵸, 센세라는 표현만 사용한다. 그러나 고객에 대해 말할 때는 '객'이라는 한자 앞뒤로 존중의 의미를 담은 '오'와 '사마'(님)을 붙여 오갸쿠사마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 마디로 고객, 유저가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디럭스 게임즈가 협력사인 MIXI를 대하는 모습도 독특하다. 사내에 "MIXI 사람들보다 10분은 먼저 와있어야 한다"는 문화가 암묵적인 룰처럼 존재할 정도로, 함께하는 '관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정윤철 이사는 일본에서의 광고를 선보이며 <몬스터 스트라이크>가 가진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어색한 사이인 학생 둘이 남아 "할래?"라는 딱 한 마디를 하자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고 <몬스터 스트라이크>를 켜는 광고였다. 한국의 MMORPG가 경쟁과 표현(과시)의 공간으로 기능할 때가 많은 반면, 일본에선 교류와 협력, 다시 말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민 게임인 <몬스터 스트라이크>도 그 중 하나다.



그렇다면 그 핵심에 있는 협력 콘텐츠와 퀘스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디럭스 게임즈도 처음엔 기획자들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그러나 직원들 사이의 능력과 성장 욕구에 대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일 잘하는 기획자가 일을 더 하는 경우도 더러 생겼고, 정윤철 이사도 한 번에 5개 퀘스트 콘텐츠를 동시에 철야로 작업하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이 방식으로 장기 서비스를 이어가면 회사와 콘텐츠 모두에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이 생길 때, "퀘스트를 꼭 기획자 출신인 사람만 만들어야 하나? 코어 유저들이 퀘스트에 대해 더 잘 이해하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회사 안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만드는 것과 즐기는 건 전혀 다르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 아이디어가 실패하면 옷 벗겠다"며 강하게 추진한 경영진도 있었다.
그렇게 2018년 처음으로 유저 오디션 '크리에이터즈 아카데미'를 실시했다.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응모 가능하고 3개월의 오디션 기간 동안 오리지널 퀘스트 5개를 제출해, 최종적으로 뽑히면 정사원으로 채용하는 구조였다. 지원자들은 게임 업계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학생부터 배우, 유튜버, 현직 교수, 여성 트럭 운전수도 있었을 정도다. 이들 중엔 모바일게임엔 익숙해도 컴퓨터와 관련된 지식은 전혀 없어서, 컴퓨터 전원을 켜고 끄는 법부터 아주 단순한 단축키까지도 다 가르쳐야 하는 인원도 있었다.
교육에도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오디션 기간 동안은 아카데미가 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기획에 필요한 여러 고려 사항들까지 전수하며 대규모 오디션이 진행됐다.


오디션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현재는 4기 크리에이터들을 채용 중이다. 이번 4기에는 224명이 4월부터 지원해 6월 말 최종 채용까지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다.
1기부터 지금까지 16명의 크리에이터가 채용됐고, 현장에서 퀘스트를 양산하는 팀의 64%가 오디션 출신으로 이뤄져 있다. 최상위 퀘스트 중 70%를 이들이 제작하는 중이다.
이들이 뽑히는 과정부터 퀘스트를 만드는 과정까지 모두 하나의 서사가 되어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 채널에서 다뤄지거나 소개됐고, 다음 퀘스트를 만들어주실 분들은 여러분이라는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선순환도 만들어졌다.
물론, 이러한 채용 방식에 장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심사숙고해 모신 분들이어도 성장 격차의 차이는 있었다. 또한 게임 업계 출신이 아니다 보니 퀘스트 제작이 아닌 영역에선 기획력이 부족한 측면도 있었다. 이제 디럭스 게임즈는 직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것에도 큰 가치를 두고 있다.
그렇게 시상식을 도입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디션에 응모해 마지막 채용 과정까지 치열하게 노력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돌아보면, 그들이 가진 게임에 대한 애정과 콘텐츠 제작에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정윤철 이사는 4개의 트로피를 보여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인 동시에 캐릭터 속성의 의미를 함께 담은 4색의 트로피였다. 게임사답게 이 트로피도 수집할 수 있는 도전과제를 만들어준 셈이다. 아직까지 4종류의 트로피를 모두 모은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소소한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의 국민 게임으로 자리 잡은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이런 노력 끝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디럭스 게임즈는 앞으로의 10년, 20년을 내다보며 글로벌 성공 또한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정윤철 이사는 윈스턴 처칠이 남긴 명언 중 하나인 "성공은 끝이 아니고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나가는 용기"라는 말을 인용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