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대, 한국 게임 산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24일 개막한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 2025(NDC 2025)에서 넥슨게임즈 빅게임본부를 총괄하는 박용현 부사장은 '우리가 빅 게임을 만드는 이유'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하며 한국 게임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이야기 했다.
최근 국내 게임 산업은 기존의 온라인, 모바일 게임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콘솔 게임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넥슨 역시 <카잔>, <빈딕투스>, <아크 레이더스> 등 다양한 타이틀을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 게임 업계가 마주한 상황을 위해서는 과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는 개척과 확장의 시대였다. 초창기 게임 시장은 각 지역에서 로컬 기업이 저마다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화, 제도, 경제, 기술적 요인으로 인해 다른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국내 게임 시장 역시 미개척지였다. 선도 기업 간의 경쟁은 지금만큼 치열하지 않았지만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업이 존재했다. 여기서 개척에 성공한 기업이 '빅 플레이어'가 되고 현재 국내 기준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만큼 개척이 활발한 시대가 아니다. 다양한 시장 지표를 보면 게임은 정체되어 있다. 국내 PC방 순위를 살피면 대부분이 5년 이상 서비스됐고 10년 이상까지 바라보는 게임이 많다. 글로벌 PC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도 인기 게임은 대부분 오랜 기간 서비스된 것들이다. 신규 게임의 진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가 지날 수록 오히려 시장에 새롭게 안착하는 타이틀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시장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지만 모바일 시장에서도 같다.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경우 신규 게임이 인기 차트에 오르는 것은 쉽지만 대부분 빠르게 순위가 하락한다. 미국이나 일본 시장 같은 경우는 새로운 게임이 인기 차트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모바일 앱 시장에서도 비게임 앱이 게임 앱의 규모를 앞지르고 있다.
패키지(콘솔) 게임 시장은 다르다. 패키지는 한정된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이 재밌고 뛰어나다면 다른 게임과는 관계없이 수익을 낼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시장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는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패키지 게임 시장도 쉽지는 않은 실정이다.
개발 비용이 과거와 비교해 말도 안 될 정도로 폭증했고 여기에 맞춰 소비자들의 눈도 높아졌다. 가령 해외에서 인기 있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경우에는 '뉴 노멀'이 된 게임 가격(70달러)로도 2천만 장 이상을 팔아야 개발비와 마케팅비를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투입된다. 개발비가 폭증한 만큼 유명 기업도 게임이 한 두 개 실패하는 순간 휘청인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현재 로컬 게임 시장은 포화 상태다. 그래서 각 기업들은 서로의 시장을 넘보고 있다. 가령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이전부터 라이브 게임과 비슷한 형태로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고, 워너 브라더스는 <호그와트 레거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차기작으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 게임도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한 게임을 다수 개발하는 중이다.
이전에 기업이 향유하던 로컬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는 이처럼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작은 게임 개발사라면 '틈새 시장'을 노려서 살아남을 수 있지만, '빅 플레이어'는 틈새 시장만을 공략해서는 살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빅 플레이어만이 개발할 수 있는 '빅 게임'으로 승부해야 한다.
여기서 빅 게임은 단순한 '대작 게임'이 아니다. 다른 유명한 글로벌 게임 타이틀과 대등하게 승부할 수 있는 게임을 뜻한다. 최근 '빅 게임'으로써 성과를 낸 게임의 예시를 들면 중국 게임 사이언스의 <검은 신화 오공>이나 체코 워호스 인터랙티브의 <킹덤 컴 2: 딜러버런스>를 들 수 있다.
<킹덤 컴 2>는 출시 당일에 개발비를 모두 회수하는 성과를 냈으며, 중국의 경우에는 <오공>의 성공을 타고 다양한 대형 회사가 막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글로벌 게임을 만드는 중이다. 국내 게임 시장의 비슷한 도전은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만이 가진 장점도 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엄청나게 고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아직 아니며, 서구권 개발사 대비 라이브 서비스 경험이 풍부하다. 최근 한국 문화가 글로벌하게 유행하고 있으며, 빅 게임을 만드는 경험도 차차 쌓아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몇 년이 지나면 이러한 장점도 희석될 것이다. 게임 개발비는 결국 상승할 것이며, 한국 문화의 글로벌 유행이 얼마나 갈 지도 알 수 없다. 해외 개발사들이 적극적으로 라이브 서비스에 도전하고 있는 만큼 앞선 경험도 언젠가 따라잡힐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도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익숙하지 않은 시장에서 글로벌 강자와 경쟁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도전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국내 게임 업계가 만들어 왔던 것과 아예 다른 게임을 만들고, 마케팅하고 팔아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로 비유하면 지금까지는 범선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컨테이너선을 만들어야 한다. 만드는 배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과정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배를 띄우고 운행하는 방법까지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가령 '게임을 파는 방법'을 이야기해보자. 국내는 새로운 게임을 출시할 때가 되면 사전 등록을 받고, 여기에 맞춰 스크린샷이나 트레일러를 노출시키고, 게임을 출시한다. 게임의 출시가 가까워져서야 인 게임과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반대로, 글로벌 콘솔 시장은 공개 자체가 빠르다. 유비소프트의 <더 디비전>은 출시 3년 전에 인 게임 플레이를 파악할 수 있는 트레일러를 공개하고, 년마다 새로운 트레일러를 공개했다.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빅 게임은 '장기적인 브랜딩'을 한다.


특히, 출시일보다 오래 전부터 게임플레이를 담은 트레일러를 선보인다. 소비자들은 그 영상을 보며 어떤 방식으로 동작하는 게임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개발팀에게 많은 부담이 간다. 개발의 일거리가 늘어나고, 개발이 진행되다 보면 게임에 대한 방향서이 바뀌면서 트레일러와 실제 출시되는 게임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알파 단계부터 게임을 공개하는 것이기에 조정이 들어가는데, 덕분에 트레일러와 게임 간의 퀄리티 차이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조정이 필요하지만, 아무리 늦어도 대부분의 빅 게임은 출시 1년 전에는 게임플레이 트레일러를 공개한다. 퀄리티가 확실해질 때까지 공개하지 않고 게임을 개발하는 국내와는 다른 것이다.
이는 한국의 마케팅 효율에서 기인한다. 한국은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다. 강남역에 광고만 달아도 하루 몇 십만명의 사람에게 게임이 노출된다. 해외 시장은 다르다. 세계적인 대도시도 서울만큼의 인구 밀도를 가지진 않는다. 그래서 돈으로 인지도를 사는 것은 가성비가 맞지 않아, 아예 IP를 돈 주고 사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더 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트레일러가 더욱 중요하다. 해외 매체에 기사가 나오고, 글로벌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관심을 보내며 기대할 여지를 주는 것은 트레일러다. 이것을 잘 한 나라가 중국이다. <원신>, <오공> 등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중국 게임은 출시 전부터 트레일러로 큰 충격을 주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었다. 최근에는 <팬텀 블레이드 제로>, <실버 팰리스>와 같은 게임이 트레일러 공개로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시장의 빅 플레이어가 되지 못한 국내 기업이 기존의 관성대로 '개발 막바지부터 트레일러를 공개'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는 게임을 팔 수 없다.

다음 문제는 퀄리티다. 퀄리티를 따라가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한 퀄리티에 다가가는 대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경우가 잦다.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플레이어와 개발자 간 퀄리티의 기준이 다르며 기존 게임 개발 경험의 방해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컷신이 있다. 글로벌 빅 게임은 등장 인물의 대화도 컷신을 통해 많은 공을 들여 연출한다. 그래픽은 노력을 통해 따라갈 수 있지만, 인물의 동작, 감정선 등 세밀한 디테일에서는 노하우가 떨어져 아무래도 부족해지기 쉽다. 열심히 배워서 극복할 수는 있지만, 기존의 '개발 가성비' 속에서 게임을 만들던 경험이 있으니 이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구현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악영향을 받는다.


해외 요리사가 생각하는 '비빔밥'과 '비빔면'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비빕밥을 알지만 비빔면은 모르는 요리사가 비빔면을 만든다면, 비빔밥의 재료에 밥만 면으로 바꾼 요리를 내놓는다. 지식의 저주인 셈이다. 이렇다면 차라리 비빔밥부터 모르는 것이 나았을 수 있다.
글로벌 빅 게임은 콘텐츠의 양도 차원이 다르다. 개발 리소스가 많이 들어가는 고퀄리티의 콘텐츠 개발은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AAA 게임은 개발자부터 수천 명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 개발자가 150명 이상으로 늘어나면 응집력을 잃기 쉽다. 그래서 여러 게임의 사례를 살피면, 150~200명 단위로 나뉜 글로벌 곳곳의 개발 조직이 별도로 게임을 만들고 합치거나, 기존의 개발 구조 대신 여러 개의 소규모 개발 조직이 콘텐츠 단위로 게임을 개발하곤 한다.
위 두 방법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저러한 방법을 사용한 개발사들은 그들의 환경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최선의 개발 구조를 찾아낸 것이다. 국내 개발 환경에서 무엇이 좋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새로운 개발 구조와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계속해서 여러 실험을 하면서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지 찾아야 한다.


개발자를 어떻게 모으냐도 문제다. 대규모 개발 조직은 구성부터 쉽지 않다.
현재 만들어야 하는 빅 게임은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것과는 다르기에,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머리에서 생각하는 방향이나 이미지는 다를 수 있다.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면 당연히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초기 트레일러 제작이 더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무슨 게임을 어떤 퀄리티로 만들고 싶은지를 알리고 같은 목표와 비전을 가진 개발자를 모으기 수월하다. <검은 신화: 오공>도 트레일러를 공개하고 나서부터야 개발자를 수월하게 모을 수 있었다.
이처럼, 빅 게임 개발은 미지의 영역과 같다. 어떤 일이 발생할 지 알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가 발견한 노운 언노운(Known Unknown)이다. 문제는 인식했지만 해답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존재조차 모르는(Unknown Unknown)이고 이런 문제들이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그나마 '언노운 언노운'의 경우 많은 경쟁자들이 우리보다 앞서 그 문제를 마주했기에 우리는 보다 효율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박용현 부사장은 "기회의 문은 아직 열려 있고, 닫히기 전에 반드시 뚫어야 한다. 시행착오가 중요한 만큼 여럿이 자신의 도전기를 설명하면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NDC를 오프라인으로 다시 진행하는 것이다. NDC 25가 도전의 해법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