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략 몇 년 전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했던 MBTI는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의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지표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의 MBTI를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것은 물론이고, MBTI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가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각 MBTI의 성향 및 장단점, 심리 분석은 물론이고 각자의 행동 패턴을 재치 있게 풍자한 코미디 영상에 이르기까지 콘텐츠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 그리고 몇몇 MBTI의 특징을 잘 잡아낸 콘텐츠가 인기를 끌기도 하고, 나아가 밈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한다.
MBTI를 나타내는 여덟 가지 알파벳 중 가장 화두에 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사고형'을 상징하는 T가 아닐까 싶다. 항간에서는 이 T 성향을 지닌 이들이 매사에 냉철한 관점을 유지하며 감정적인 공감보다는 이성적인 논리에 충실하다고 인식한다. 이로 인해 이미지가 굳어지거나 상대적으로 공감이 부족하다는 점을 근거로 농담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T 성향을 지닌 이들로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농담은 농담으로 웃어넘기고 스스로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강점에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게임 리뷰에 어울리지 않을 잡설이 너무 길었다. 특히나 T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아마도 오늘 소개할 게임이 선천적으로 T의 운명을 타고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 '<투 어 티>(To a T)'이기 때문일 것이다. 딱히 MBTI의 T와는 별로 관련이 없을 T 소녀의 이야기는 얼마나 재미있을지, 혹은 얼마나 감동적일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작성=쿠타르크(인디게임 블로거), 편집= 정우철 편집장
※ 편집자 주: 영미권에서 "to a T"는 완벽한(Perfectly), 딱 맞게 적절한(Precisely)과 같은 의미의 관용구로 쓰이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 정서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게임명이기도 하다.


타카하시 케이타의 첫 데뷔작과도 같은 괴혼(Katamari Damacy)에서부터 가장 최근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와탐(Wattam)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았던 몽글몽글한 비주얼과 쫀득쫀득한 사운드트랙은 이번 <투 어 티>에도 여전한 가운데, T자로 굳어져버린 몸으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해프닝을 담은 스토리, 그리고 T자 몸을 다방면으로 활용하게 되는 기상천외한 게임플레이로 독특한 게임성을 표방하고 있다.
T자 몸 이외에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다면 게임의 구성이 에피소드 단위로 나뉘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기본적으로는 주인공 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일부 에피소드에서는 조작 대상이 틴의 주변 인물로 잠시 바뀌기도 한다. 여기에 각 에피소드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별도의 오프닝 및 엔딩 영상이 흘러나온다.
각 에피소드마다 영상의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흘러나오는 곡은 모든 에피소드마다 동일하다. 아무래도 1쿨 단위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 느낌을 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데, 보컬곡의 완성도가 워낙 좋아 여러 번 감상해도 크게 물리지 않는다.


이러한 제약을 간단한 버튼 조작과 약간은 불편한 조작감을 바탕으로 한 미니게임으로 승화시킨 모습인데,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T로 굳어져버린 몸을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한편 몸이 T자로 굳어져버린 틴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또 공감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대체로 미니게임의 난이도가 (T자로 굳어진 몸이라는 설정에 비하면) 다소 쉬운 편이기도 하고, 네 종의 음식 먹기 챌린지는 나름 기록과 보상까지 걸려있어 기록 경신에 도전하는 재미도 있다. 이렇듯 T자로 굳어져버린 몸이라는 별난 설정과 이를 각양각색으로 풀어낸 미니게임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를 창출했다는 점은 분명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횡단보도를 지나거나 갈림길에서 다른 쪽 길로 진입하거나 하는 상황에서 카메라가 특정 시점으로 강제로 이동하는데, 게임을 구경하는 입장에서야 좋게 보일지 몰라도 직접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번거롭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지도 기능이 잘 갖춰져 있긴 하나 카메라 구도가 워낙 제멋대로 바뀌는 지라 지도를 보고 위치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플레이어가 카메라를 직접 움직이는 데에도 제약이 큰 지라 이 단점이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최적화도 그다지 좋지 않아 게임을 오래 플레이하다 보면 조금씩 게임이 버벅이기까지 한다. 이런 T자 몸과는 딱히 상관없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게임 진행에 치명적일 뿐더러 그다지 이해되지도 않는다. 이로 인해 캐릭터와 스토리와는 별개로 전반적인 게임플레이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기가 힘들다.


여기에 주인공 틴의 심경 변화도 꽤나 설득력 있게 묘사되는 편이다. 최소한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틴처럼 T자로 몸이 굳어진다면 똑같은 고통을 겪고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충분히 틴에게 몰입하고 또 공감하게 된다.
타카하시 케이타 특유의 기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감각 또한 여전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각종 먹거리를 파는 기린들은 비록 인간은 아니긴 해도 인간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당당히 세계관의 한 구석을 채운다. 양팔을 굽히지 못하는 틴이 돌연 특별한 능력을 깨달으며 주변의 비난을 환호성으로 바꾸는 전개는 조금은 황당할 수 있어도 나름 유쾌하게 받아들일 만하다. 어찌 보면 T자로 굳어진 몸과는 다르게 속은 이해와 공감으로 채워진 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틴의 출생과 관련된 사연이 포함된 외계 생명체의 이야기는 전반적인 게임의 분위기가 다소 명랑하고 유쾌하다는 것을 감안해도 다소 황당하고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다. 오프닝 보컬곡을 포함한 게임 전반에 걸쳐 T라는 글자와 완벽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며 의문을 증폭시킨다. 한편 게임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좋았지만, T라는 글자와 완벽이라는 두 가지 소재가 썩 매끄럽게 연결되는 모양새는 아니다.
스토리는 유연성이 다소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T자로 몸이 굳어진 틴의 고민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외계 생명체의 등장 및 완벽에 대한 갈망과 그런 갈망을 해소하려는 듯한 결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해 억지로 넘어가려는 듯한 흐름을 보인다.
항상 유쾌하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정색하며 자신의 소견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좀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어떻게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간에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모호함 내지는 어색함이 느껴진다. 마치 주인공 틴의 T자로 굳어진 뻣뻣한 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T자로 굳어진 몸이라는 설정을 벗어난 곳에서도 이동이 다소 뻣뻣하고 각종 버그 및 최적화 이슈가 산재해 있으며,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등 단점 역시 뚜렷하다. 특히나 완벽이라는 키워드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드러내는 결말은 누군가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강요에 가까운 설파로 다가올 여지도 다분하다.
- 괴혼 시리즈 이후로 한결같은 타카하시 케이타 감성
- T자 몸을 재치있게 반영한 여러 가지 미니 게임
- T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소녀의 감성적인 이야기
- 조금은 난해하고 급발진에 가까운 스토리
- 후반부에 유독 드러나는 버그 및 최적화 문제

- 쿠타르크
2014년부터 11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