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처럼 행동하며 인류의 틈 안에 스며든 비인간적인 존재, 창작자들에겐 대단히 흥미로운 소재다. 좀비, 뱀파이어, 외계인 등 여러 존재가 등장했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 즉 AI가 여러 미디어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언급한 존재들은 비현실적인 ‘판타지’인 반면, AI는 더 이상 허구적인 존재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처럼 우리가 철석같이 인간이라 믿었던 존재가 사실 인간이 아니라면?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우리 곁에 숨어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렐루게임즈의 신작 <미메시스>는 이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미메시스>의 비공개 베타 테스트에 참가해 본 소감을 전한다. 마침 오는 17일까지 진행되는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서 <미메시스>의 데모 버전이 공개되었으니, 관심이 생겼다면 직접 체험해 보시길 권한다. 기대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경험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니 말이다.
2023년 출시된 <리썰 컴퍼니>의 글로벌 히트 이후 비슷한 스타일의 게임들이 우후죽순으로 꾸준히 등장하지 않았던가. <미메시스>는 최대 4명의 플레이어가 트램을 타고 위험 지역에 들어가서 고물을 수집하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리썰 컴퍼니> 부류의 게임이다.

트램을 타고 미지의 장소에 들어가

각종 고물들을 주워 모으는 전형적인 <리썰 컴퍼니> 스타일의 게임이다.
<리썰 컴퍼니>가 범우주적 블랙 기업의 노동 착취를 소재로 했다면, <미메시스>의 이야기는 좀 더 미스터리하고 절망적이다. 밖에선 매일 밤 정체를 알 수 없는 오염된 비가 쏟아진다. 살아남기 위해선 비를 막아주는 트램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게임 속에서 모으는 돈은 이 트램을 수리하기 위한 것으로, 수리비를 충당하지 못하면 트램이 부서지면서 탑승자들은 비에 오염되어 죽게 된다.
이와 비슷한 <리썰 컴퍼니> 부류의 게임들, <콘텐츠 워닝>과 <헤드라이너>, <R.E.P.O.> 같은 작품들은 모두 각자의 분명한 차별점을 확보해 아류작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있었다. <미메시스>도 이들처럼 자신만의 차별점을 확실하게 드러내니, 앞서 언급한 AI가 바로 그것이다.
본작에선 ‘미메시스’라는 AI가 등장한다. 플레이어들과 똑같이 생긴 이들은 플레이어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며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다. 만약 방심한다면 이들은 순식간에 당신의 목을 꺾어버릴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주위 모두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독특한 긴장감은 <미메시스>만의 독특한 ‘킥’이다.

<미메시스>에선 고물을 모아서 트램의 수리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수리비를 모으지 못하면 트램이 산산조각나면서 모두 죽게 된다.
플레이어와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미메시스는 동료인 척 다가와 플레이어의 목을 꺾어버린다.
# 오염에 미메시스, 크리쳐까지… 수 많은 위험 요소들
게임을 시작하면 초기 자금으로 필요한 도구들을 구매한 뒤, 트램을 타고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트램에서는 2곳의 목적지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는데, 목적지의 위험도 및 오염도, 자원량을 고려해 목적지를 선택하게 된다. 아쉽게도 이번 테스트에선 어디를 선택해도 연구소 스테이지만 등장했다.
위험도는 익숙하지만, 오염도는 다소 낯설게 보일 수 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오염도는 오염 수치가 상승하는 정도로, 오염도가 높다는 것은 곧 가만히 있어도 상승하는 오염 수치가 높다는 의미다.
<미메시스>에는 체력 외에도 오염 수치가 별도로 존재한다. 오염 수치는 가만히 있어도 조금씩 상승하고 비를 맞거나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았을 때 크게 상승한다. 스테이지 로비에 있는 자판기에서 ‘디톡스 주스’를 구매해 마시면 오염 수치를 낮출 수 있으며, 오염 수치가 100이 되면 죽는다.
좌측 상단에 표시된 붉은 게이지가 오염 수치다.
스테이지 내 로비에 있는 자판기에서 '디톡스 쥬스'를 구매해 마시면 오염 수치가 감소한다.
그나저나 이름은 왜 '쥬스'이고, 병 모양은 잭 다니엘스 모양일까…
미메시스 외에도 현장에선 여러 크리쳐들이 등장해 플레이어를 위협한다. 귀여운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꽤 흉악하다. 고물이나 도구를 사용해 이들을 공격할 수 있지만, 워낙 강력한 탓에 섣부르게 다가갔다가는 맥없이 고꾸라지는 자신의 캐릭터를 보게 될 것이다.
참고로 크리쳐들에게 공격당해 죽었을 경우에는 미메시스가 등장하지 않지만, 오염 수치가 가득 차거나 미메시스에게 공격당해 죽었을 경우에는 시체에서 새로운 미메시스가 등장해 죽은 플레이어인 척 행동한다. 이렇게 생성된 미메시스가 많아지면 해당 게임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 바뀌게 된다.
미메시스 다음으로 우리를 괴롭혔던 토끼.
소리 없이 다가와서 공격하면 얄짤없이 한 방이다.
# 협동 공포 게임 베테랑들에게도 어려운 게임
기자는 평소 게임을 같이 즐기는 지인들과 함께 테스트에 참여했다.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하자면 우리는 <리썰 컴퍼니> 류 게임이 나오면 10시간 이상 함께 플레이하는 베테랑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첫 트램 수리를 무사히 마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스테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고물의 양이 많지 않다. 스테이지의 맵은 상당히 넓고 구조는 매번 무작위로 바뀐다. 그런데 정작 이 넓은 방에 고물은 몇 개 없으며 심지어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애써 모은 고물도 환전 액수가 적어서 첫 라운드 수리비인 190달러 조차 모으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만약 운이 좋게 고물을 한가득 얻었다고 해도 스테이지 곳곳에서 등장하는 위험 요소가 플레이어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대부분의 크리쳐들이 일격에 플레이어를 죽여버리고, 갑자기 비가 쏟아지거나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플레이어를 오염시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왼쪽 아래에 러버콘이 획득 가능한 고물이다.
고물이라는 표시가 따로 없고, 고물 획득 판정 범위가 좁아서 찾기도 무척 힘들다.
이 게임의 모든 '억까'가 한 자리에 모인 명장면.
소중한 청력 보호를 위해 비명 소리를 지워야 했다.
혹자는 구매 가능한 도구로 대응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다른 게임처럼 여러 도구가 등장하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고 효과가 크게 체감이 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전멸이 일상인데 값비싼 도구가 전부 무슨 소용이겠는가.
무엇보다 큰 문제는 미메시스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사람과 AI를 구분하지 못할 리가 없다!”라고 호언장담했던 기자는 단 몇 분 만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AI는 미메시스는 실제 사람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기자는 지인들과 한가지 약속을 했다. 일종의 암구호처럼 서로 미메시스인지 의심될 때는 감정 표현 기능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초반에는 제법 잘 작동하는 듯했지만, 이윽고 감정 표현이 다른 플레이어에게 표시되지 않는 버그가 발생하면서 대혼란이 찾아왔다.

"만나면 1번 감정 표현 쓰자" "ㅇㅋ"
미메시스는 플레이어를 만나도 곧장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는다. 의심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거리를 두고 서기도 하고, 등을 돌린 상태로 조금씩 다가오기도 한다. 심지어 이 녀석들, 다른 게임들과 달리 건물 밖까지 나와서 플레이어를 추격하기도 한다.
그나마 미메시스를 구분할 수 있게 만드는 건 음성이다. 이미 플레이어들이 낸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다 보니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나 목소리가 나오면 미메시스를 구분할 수 있다. 또 유저들에 비해 출력되는 음성이 커서 소리로는 미메시스 구분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 음성 모방 시스템 덕분에 재미있는 장면이 여럿 펼쳐진다. 이를테면 플레이어들이 무심결에 뱉은 비명과 육두문자를 학습한 미메시스가 강렬한 된소리로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등장한다든지, 우연히 미메시스의 말과 상황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져서 플레이어를 깜빡 속인다든지 하는 장면들 말이다. 관전 모드로 지켜보고 있으면 코미디 프로그램이 따로 없다.
트램 입구에서 유저인 척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미메시스.
결국 트램 안 까지 들어와서 출발 레버를 당기던 기자를 죽였다.
최적화 문제와 게임 진행이 막히는 수준의 버그, 반복되는 게임 진행 같은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베타 테스트임을 감안하면 이런 문제들은 충분히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정식 출시 전에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대망의 첫 트램 수리에 성공했나 했는데

다른 플레이어 화면에선 버그로 트램이 완전 증발해버렸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게임의 전체적인 조작감이 굉장히 미묘하다. <리썰 컴퍼니>를 의식한 것인지, 이와 비슷하게 조작이 매끄럽지 않다. 문제는 <미메시스>에서는 크리쳐와 미메시스에게 쫓기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이런 불편한 조작감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불쾌한 경험을 낳는다는 것이다.
앞에서 다룬 난이도 문제도 크다. 스테이지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재화는 적은 것에 반해, 적들은 지나치게 빠르고 강력해서 전멸이 자주 발생한다. 큰맘 먹고 값비싼 도구로 무장을 해도 순식간에 다가온 적에게 당해 전멸하면 애써 모은 재화만 허망하게 날리게 된다.
처음에는 무력한 오합지졸로 시작해서 열심히 재화를 모으고, 도구를 구매해 난관을 하나둘씩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이 이 장르를 즐기게 만드는 원동력 아닌가? 아쉽게도 이번 테스트에선 이런 원동력이 플레이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오히려 힘들게 모은 재화를 한 번에 날렸다는 상실감과 주어진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트램 수리비 내기도 빠듯한데 샷건 같은 무기는 그림의 떡이다.
큰 맘 먹고 사도 토끼나 미메시스한테 뒤통수 맞고 잃어버릴 게 뻔하니 욕심조차 들지 않는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이미 유사한 게임들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 이 게임이 나름의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자는 “가능성은 있다”고 답하고 싶다.
분명 불쾌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숱한 전멸과 재시도 끝에 트램의 첫 수리를 무사히 마쳤을 때는 (아쉽게도 버그로 수리 직후 트램이 증발해버렸지만) 장르적 재미를 나름 잘 살렸음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동료들의 정체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상호작용, 그리고 어설프게 따라 해서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는 미메시스와의 추격전은 오직 <미메시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관건은 앞으로일 것이다. 부족한 콘텐츠와 성취감은 채우고,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원동력만 충분하게 제공해 준다면 긴장과 공포, 그리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훌륭한 파티 게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게임을 하다보면 "너 누구야!", "오지마!" 같은 단말마와 비명 소리가 정말 많이 들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
고물로 주워온 시한 폭탄을 누가 실수로 작동시켜서 전멸했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해서 게임 내내 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