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든 문화든 어느 분야에서나 시대의 맥락이 덕후와 만나면 종종 당대의 대작이 탄생해요.
'양덕'을 떠올리거나 드라마 <빅뱅이론> 네 주인공의 방을 떠올릴 때, 우주 이야기 못지않게 연상되는 소재가 바로 DC나 마블로 대표되는 슈퍼히어로물이에요.
앞서 스타트렉과 스타워즈가 그 시대 환경 속에서 덕후에 의해 완성됐다고 이야기했는데, 슈퍼히어로물도 마찬가지예요.
1929년 클리블랜드 글렌빌로 이사 온 조 슈스터는 1931년 글렌빌 고등학교에 입학해요. 슈스터의 초등학교 친구 제리 파인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기 사촌을 만나보라고 했고, 글렌빌 공립도서관에서 조 슈스터와 제리 시걸의 만남이 이뤄져요.
슈스터의 집에서 두 사람은 단번에 유유상종임을 알아보고 식탁에 앉아 SF 이야기로 꽃을 피워요. 둘 다 각각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이민 온 부모를 두었고, 안경을 썼으며, 샤이했고, 무엇보다 SF를 사랑했어요.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두 사람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요.
제리 시걸은 글렌빌 고등학교 신문 스태프였고, 조 슈스터도 이전 학교인 알렉산더 해밀턴 중학교에서 스태프 아티스트로 만화를 그렸었어요. 시걸이 슈스터를 학교 신문 스태프로 끌어들이며 협업이 시작돼요.
<Interplanetary Police>와 <Goober the Mighty>가 둘이 함께 만든 첫 작품이었는데, 시걸이 주로 스토리를 쓰고 슈스터가 그림을 그렸으며, 슈스터의 그림이 다시 시걸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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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에 촬영한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의 사진. 안경 쓴 사람이 시걸, 앉아있는 사람이 슈스터다.
1930년대는 미국 청소년들이 플래시 고든에 열광하던 시기였어요. 슈스터는 플래시 고든을 그린 알렉스 레이먼드를 좋아해 그처럼 그리고 싶어했고, 훗날 두 사람의 역사적 대작에도 플래시 고든이 큰 영향을 끼쳐요.
둘은 <Science Fiction: The Advance Guard of Future Civilization>라는 팬진도 함께 만들었는데, 역시 시걸이 글을 쓰고 슈스터가 삽화를 그린 뒤 시걸이 편집하는 형태였어요.
이 시기 시걸의 인생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요. 중고의류 판매점을 운영하던 시걸의 아버지가 가게에 든 강도 사건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거예요. 아직 고등학생이던 시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었고, 이 사건은 이후 그의 스토리에 큰 영향을 줘요.
아버지가 사망한 지 6개월 후, 팬진 사이언스 픽션에 '초능력과 지능을 가지게 된 가난한 대머리 부랑자가 세계를 지배하려다 실패하고 몰락하는 이야기'가 실려요. 제목은 <The Reign of the Superman>으로, 주인공 'Superman'은 악의 상징인 빌런이었어요.
이것이 100년간 전 세계에 덕후를 양산해 낸 히어로물의 첫 시작이자 '슈퍼맨'이라는 이름의 탄생이에요. '대머리', '초인적 정신능력', '세계 지배' 같은 키워드를 보면 이때의 슈퍼맨은 오히려 렉스 루터에 가까웠다는 게 재밌어요.

▶ <The Reign of the Superman>(1933).
몇 달 후 두 사람은 원고를 시카고의 Consolidated Book Publishers에 보내요.
이 회사의 대중출판 레이블 Humor Publishing이 막 추리물 코믹스 단행본을 내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던 중이라, 긍정적인 답을 듣고 기분 좋게 출판을 준비했어요. 출판돼 경제적 도움이 되면 대학도 갈 수 있었겠죠.
그러나 몇 달 뒤 애매한 거절을 받았고, 이 출판사는 코믹스에서 아예 손을 떼요. 두 사람은 좌절했고, 가난과 불행은 이후로도 둘 곁을 떠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가난한 둘은 대학에 갈 수 없어 여러 노동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함께 작품을 만들었어요.
전형적인 미국의 약자였던 두 사람은 슈퍼맨을 점차 바꿔, 악당으로부터 자신들 같은 약자를 구하는 영웅으로 만들어요. 이 외에도 두 사람의 인생이 슈퍼맨 설정에 큰 영향을 줘요.
슈퍼맨의 기본 설정은 당시 가장 유명한 SF 영웅이던 플래시 고든의 스타일을 이어받았어요.
슈퍼맨은 외계인이에요. 작가 두 사람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기 때문이죠. 고향별 크립톤은 파괴됐는데, 이는 1929년 대공황 이후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려던 유럽이 그 타겟을 유대인으로 삼은 현실과 닿아 있어요.
유럽 전체에서 유대인 차별이 심해졌고, 1933년 히틀러 집권 후 특히 중부·동부 유럽에서 박해가 극심해져요. 동유럽 출신에 유대인이던 두 사람의 가정은 부모의 고향으로 돌아갈 엄두도 낼 수 없었으니, 그 고향은 유대인에게만큼은 파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슈퍼맨은 하늘을 날아요. 제리 시걸은 어린 시절 '시걸(Seagull, 바다갈매기)! 날아봐!'라고 놀림받았다고 해요.

▶ 비행 능력을 보유한 슈퍼맨. 단편 애니메이션 <슈퍼맨: 빌리언 달러 리미티드>(1942)의 한 장면.
슈퍼맨은 정의의 수호자예요. 미국에서 겪은 차별과 무력감이 두 사람에게 사회의 불의를 느끼게 했고, 정부가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여겨 정의의 수호자를 바라게 됐어요.
슈퍼맨은 클라크 켄트와 슈퍼맨이라는 두 정체성을 가지고 슈퍼맨이라는 정체성을 숨기며 살았어요. 슈스터와 시걸도 미국에서 유대인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죠. 현대 한국인의 통념과 달리 미국에서도 유대인은 환영받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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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인 '슈퍼맨'이자 기자 '클라크 켄트'인 주인공. 단편 애니메이션 <슈퍼맨: 빌리언 달러 리미티드>(1942)의 한 장면.
클라크 켄트는 안경을 쓴 내성적 캐릭터인데, 두 사람이 실제로 그런 소년이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신문사 기자인 것은 둘 다 글렌빌 고등학교 시절 'The Glenville Torch' 신문 스태프였던 데서 왔어요.
그가 사는 도시 메트로폴리스는 조 슈스터의 고향 토론토가 모델이고, 그가 일하는 데일리 플래닛은 초기 코믹스에서 본래 '데일리 스타'였는데, 슈스터가 '토론토 데일리 스타'에서 신문 배달을 했었기 때문이에요.

▶ <슈퍼맨> 세계관의 신문사 데일리 플래닛. 기자 로이스 레인은 슈퍼맨의 아내다. 단편 애니메이션 <슈퍼맨: 빌리언 달러 리미티드>(1942)의 한 장면.
이렇게 캐릭터를 구체화한 두 사람은 Consolidated 외에도 벨 신디케이트, 퍼블리셔스 신디케이트, 유나이티드 피쳐 신디케이트, 에스콰이어 피쳐스 등 여러 신문 만화 신디케이트를 돌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어요. 거절 사례가 십여 차례에 이르러요.
그러던 중 처음으로 출판사에서 연재해 준 만화가 <닥터 오컬트>와 <앙리 뒤발>이었어요. 계약처는 1935년 창간된 '뉴 펀 코믹스'였는데, 이 잡지는 역사적 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기존 만화 잡지가 모두 신문 등에 연재된 코믹 스트립을 모은 단행본이었던 것과 달리, 뉴 펀 코믹스는 기존 모음이 아닌 오리지널 코믹을 공개한 최초의 코믹북이었어요.
1935년 여름 두 만화의 계약이 결정되자, 시걸과 슈스터는 뉴 펀 코믹스를 내던 '내셔널 얼라이드 퍼블리케이션즈' 사장 말콤 휠러니콜슨에게 슈퍼맨 샘플을 보내요.
휠러니콜슨은 10월에 컬러로 게재한 뒤 신디케이트에 팔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연재 중인 두 만화의 원고료도 못 받던 두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신디케이트에 팔고 싶어 그를 믿지 못하고 거절했어요.
이후로도 기회를 못 잡던 슈퍼맨이 빛을 본 건 전설적인 만화 출판가 '맥스 게인즈' 덕이에요. 그의 조수 셸던 메이어가 맥클루어 신디케이트에 접수된 슈퍼맨 원고를 마음에 들어 상사에게 그 진가를 열심히 설명했어요.
맥스 게인즈는 곧 창간될 ‘액션 코믹스’의 소유주 잭 리보위츠와 편집자 빈 설리번에게 슈퍼맨을 보여줬고, 창간호 원고가 부족했던 설리번이 리보위츠를 설득해 창간호에 싣자고 했어요.
리보위츠가 제리 시걸에게 제안하자, 끝없는 거절에 지친 두 사람은 동의해요. 그런데 액션 코믹스를 낸 리보위츠의 출판사 이름은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였고, 이 회사는 앞서 슈퍼맨 게재를 거절했던 '내셔널 얼라이드 퍼블리케이션즈'에서 시작된 회사였어요.

▶ 박물관에 전시된 '액션 코믹스' 초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