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7월 20일 저녁,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역사적 첫발을 내디뎠어요.
25세의 한 청년이 TV로 이 장면을 봤는데, 그는 친하게 지내던 프랜시스 코폴라가 감독한 <빗 속의 연인>(The Rain People)의 마무리 작업 중이었어요. 그는 남들과 다른 의미로 감명받았어요. 그도 '진짜' 우주는 처음 봤거든요.
그의 어린 시절을 장식한 <플래시 고든>의 우주는 화려하고 깔끔했지만, 아폴로 11호가 보여 준 진짜 우주는 전혀 달랐어요.
사탕 비닐껍질과 빈 병이 무중력 속에 떠 있는 모습을 본 그는, 플래시 고든을 만든다면 기존 SF와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름때 묻은 우주선과 낡은 건물이 가득한 '낡은 미래' 느낌의 다큐멘터리 판타지가 그가 구상한 새 SF 스타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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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래시 고든>. (출처: 네이버 영화)
1970년, 그는 학생 시절 영화를 리메이크한 데뷔작 <THX1138>을 만들고 있었어요. 음악을 맡은 랄로 쉬프린에게 플래시 고든 재해석 구상을 이야기하곤 했어요. 쉬프린은 <미션 임파서블> 테마곡을 작곡한 사람이에요.
제작을 마친 그는 플래시 고든 판권을 가진 킹 피쳐스 신디케이트를 만났어요. 킹 피처스는 <뽀빠이>와 <블론디>로 유명한 당대 최강 신디케이트였죠.
그런데 청년이 원하는 스타일을, 혹은 히트작 없는 청년 자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매출의 80%를 요구했고, 청년은 판권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어요.
33세기를 배경으로 어린 공주와 드로이드, 거대한 악의 제국과 맞서는 제다이 전사들의 이야기인 이 시나리오가 훗날 <스타워즈>예요. 청년의 이름은 '조지 루카스'였어요.

▶ 젊은 시절의 조지 루카스(1986년 촬영).
루카스는 1971년 12월 루카스필름을 세웠어요. 코폴라의 조언으로 만든 <아메리칸 그래피티>가 성공한 뒤 다음 프로젝트가 스타워즈였지만, 제작은 순탄치 않았어요.
1973년 초 아메리칸 그래피티를 제작하던 유니버설은 너무 어둡고 제작비가 많이 든다며 거절했고, 그해 여름 모험 판타지에 호의적일 거라 기대한 디즈니도 같은 이유로 거절했어요.
스타워즈를 받아준 곳은 20세기 폭스사였어요. 크리에이티브 담당 부사장 앨런 래드 주니어는 아메리칸 그래피티를 높게 평가해 각본을 쓴 루카스를 크게 신뢰했고, 그 지원으로 스타워즈가 제작됐어요.
폭스사와 루카스가 충돌할 때마다 앨런은 루카스 편을 들었고, 1977년 5월 성공적 개봉을 이끌었어요. 스타워즈는 3억 1천만 달러를 벌어, 2년 전 스필버그의 <조스> 기록을 넘는 역대 최고 수익을 올렸어요. 이때 앨런은 이미 폭스사 사장이었어요.

▶ 1977년 당시 20세기 폭스가 발행한 소장용 포스터 속 로고. (출처: TCDLonDeviantArt)
스타트렉이 트레키라는 대규모 팬덤을 만들었다면, 그 지지를 바탕으로 전 세계적 팬덤을 만든 건 스타워즈예요. 과학적 개연성으로 Nerd의 지지를 받은 스타트렉과 달리, 스타워즈는 '검과 마법' 중심의 중세 판타지를 우주로 옮겨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어요.
그 결과 스타워즈는 서브컬처를 벗어나 주류문화에 올라섰어요. 그래도 수많은 병기와 세계관은 여전히 Nerd에게 매력적이어서 이를 파고드는 Geek을 양산했고, 이후 스페이스 오페라의 상업적 진입장벽이 낮아져 더 다양한 작품의 토양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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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희망'이라는 부제로 잘 알려진 영화 <스타워즈>(1977).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 기록이 세워지자 장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곧 또 다른 스페이스 오페라가 TV 시리즈로 제작돼요.
<600만불 사나이>에 PD로 참여했던 몰몬교도 글렌 A. 라슨은 몰몬교 신학과 SF를 결합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쓰고 있었어요. 원래 제목 Adam's Ark를 'Galatica'로 바꿔 진행하다, 스타워즈가 흥행하자 'star'를 넣어 <Battlestar Galactica>로 바꿨어요.
그러자 폭스사가 제작사 유니버설을 상대로 표절 소송을 걸었어요. 시청률은 성공적이었지만 표절 시비와 떨어지는 시청률 대비 비싼 제작비가 문제가 돼 1979년 24회를 끝으로 취소됐어요.
표절 문제는 제작사 간 합의로 마무리됐는데, 스타트렉 때처럼 SF팬들의 항의가 잇따랐어요. ABC가 스핀오프로 1980년 다시 방영했지만, 싸게 만든 갤럭티카 1980은 혹평 속에 10회 만에 끝났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Geek을 모았고, 2000년대 신 시리즈로 꾸준한 인기를 얻었어요.
이 밖에도 이탈리아·일본 등지에서 스타워즈 흥행에 업힌 스페이스 오페라가 여럿 나왔어요. 1980년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도 크게 성공하며, 제임스 본드식 '시리즈물'을 넘어선 산업적 '프랜차이즈 영화' 개념이 만들어졌어요.

▶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1980).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스타워즈엔 미국이 아닌 다른 문화권, 특히 일본 문화의 흔적이 강해요. 루카스는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권 영화를 봤고,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를 즐겨 봤어요. 처음 본 작품은 <7인의 사무라이>, 스타워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이었어요.
이 영화는 공주를 호위하는 사무라이와, 둘을 도우며 티격태격하는 두 농부의 이야기예요. 각각 레아 공주와 오비완 케노비, C-3PO와 R2D2의 모델이죠.
광선검 대결도 구로사와 영화의 칼싸움에서 가져왔고, 스토리·연출뿐 아니라 편집에서도 흔적이 보여요. 다음 장면이 앞 장면을 닦아내듯 넘어가는 'Wipe Transition' 전환 역시 구로사와 대표작들에서 활발히 쓰인 기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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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인의 사무라이> 영화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앞서 말했듯 스타워즈는 중세 판타지를 우주로 옮긴 이야기이자 구로사와 사무라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어요. 또 타투인 등 사막 총격전은 미국 서부극을 떠올리게 하고, 한 솔로는 카우보이 그 자체죠.
타투인 원주민 '자와'와 '터스켄 족', 주택·시장 분위기는 중동 문화를 그렸고, 제국 병사들은 독일 나치 제복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어요.
공화정이던 은하의회에서 팰퍼틴이 전쟁을 이용해 권력을 집중시켜 황제가 되는 과정은 로마의 시저를, 은둔 현자 요다와 제다이 사제의 관계나 빛과 어둠의 균형은 일본보다 중국 무협·도교를 떠올리게 해요.
이렇게 스타워즈는 세계 곳곳의 문화 요소를 조화시켜 다채로운 문화적 테마파크가 됐고, 그것도 아폴로 11호에 영감받은 다큐멘터리적 판타지 세계 안에서 이뤄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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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타워즈>(1977)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런 일이 그냥 된 건 아니에요. 루카스가 남캘리포니아대학(USC)을 다니던 1960년대는 구로사와뿐 아니라 유럽을 중심으로 영화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어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서 출발한 프랑스 누벨바그의 여파로 제작자가 아닌 감독이 영화의 중심이 됐고, 러시아의 타르코프스키는 전에 없던 영상으로 찬사를 받았어요.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루카스 이전 세대는 알기 어려웠어요.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 이전 할리우드 5대 제작사가 상영관을 대부분 소유했고 이후로도 그 권력이 절대적이어서, 상영관은 미국 영화만 틀었고 해외 영화는 보기 어려웠거든요.
1950년대 말부터 미국 대학가와 주요 도시에 아트하우스 극장이 생겼어요. 제작사로부터 자유로운 이 극장들은 외국 영화를 집중 상영했고, 구로사와와 프랑스·이탈리아 거장들의 영화가 걸리기 시작한 게 마침 루카스의 대학 시절이었어요.
Nerd가 10~20대에 특정 취향에 빠지면 Geek이 되는데, 루카스는 그 시기 전 세계 영화의 세례를 흠뻑 받으며 독립 영화관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USC의 젊은 영화 Geek'이 됐어요.
게다가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책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를 접한 그는, 세계 신화의 여정을 하나로 묶은 우주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루카스는 캠벨을 '나의 요다'라 불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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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장편 영화 데뷔작 <이반의 어린 시절>.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한곳에 머무는 정착민에게 혁신은 오지 않아요. 혁신은 다양한 것을 접하며 이동하는 사람에게서 나오죠. 루카스의 성공은 덕후가 혁신을 만드는 과정의 전형이에요.
양덕을 사로잡은 두 요소 중 '스페이스 오페라'를 살펴봤어요. 스페이스 오페라는 판타지이면서 과학과 기계가 강조되는 SF예요.
양덕이 사랑한 나머지 하나는 과학·기계보다 지구 현실 공간에서 인간 중심의 판타지 자체가 강조되는데, DC와 마블로 대표되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물이 바로 그것이에요.
✍️ 스칼렛오하라 - 비덕
덕후는 아니지만 주변에 덕후가 많아 덕후들과 어울리며 결국 그들을 경외하고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해리포터에서의 머글과 같은 포지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