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상반기 가장 화제가 된 타이틀 중 하나는 단연 <붉은사막>이었을 겁니다.
7년이라는 긴 개발 기간 끝에 세상에 나온 <붉은사막>은, 출시 직후 아쉬운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빠른 업데이트로 그 평가는 이내 반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광활한 오픈월드 안에 콘텐츠가 끝없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면서, 600만 장이나 판매되며 그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죠.
이 게임의 월드와 콘텐츠에 대해 감탄하거나 관심을 가진 건 유저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CEDEC 2026(Computer Entertainment Developers Conference 2026)에 펄어비스가 초청받아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이 강연을 보러온 정말 많은 개발자들 또한 <붉은사막> 개발 노하우에 관심을 가졌는데요. 강연의 핵심을 요약하면, 오픈월드 액션 게임의 재미를 만들고 좇아가는 과정입니다.
펄어비스는 몇 가지 매우 중요한 개발 방향성에서의 선택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이 광활한 오픈월드에 재미를 채울 수 있을 것인가-하는 질문이 그 중심에 있었는데요./일본 요코하마=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오늘(23일) 일본 요코하마 퍼시피코 컨센션 센터 CEDEC 현장에선 두승빈, 김현겸 <붉은사막> 게임 디자인실 총괄 실장이 "<붉은사막>, 대규모 오픈월드 개발을 위한 프로세스 구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두 사람은 개발진이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들인 이유가, <붉은사막>을 단순한 하나의 타이틀로만 본 것이 아닌, 앞으로의 작업들을 위한 '기반'으로 봤기 때문이라 말하며, 서둘러 만드는 대신 전체적인 워크플로우와 개발 과정을 개선하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 월드를 우선으로 한 접근 방식으로 변경하게 된 이유
두승빈, 김현겸 개발 실장은 '월드 우선(World-First) 접근 방식'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붉은사막> 또한 개발 초기에는 메인 퀘스트와 내러티브를 우선적으로 따라가는 형태의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퀘스트와 스토리를 먼저 설계하고, 그 퀘스트를 위해 필요한 환경을 만들고, 그 지역을 뒷받침하는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식이었죠. 이 방식은 작은 규모의 공간 구성에선 잘 작동했지만, 오픈월드 규모에선 계속해서 문제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스토리나 퀘스트 목표가 바뀌면, 환경과 콘텐츠도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제작 주기가 계속해서 길어진 동시에, 팀 간 의존성도 과도하게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펄어비스가 선택한 방식은 '월드'와 관련된 콘텐츠만 즐겨도 플레이가 가능한 기반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퀘스트가 모든 지역을 정의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환경 디테일 작업, 콘텐츠 배치, 퀘스트 개발이 모두 병렬적으로 동시에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런 선택이 팀들 사이의 소통을 하지 않는 방향을 의미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스토리와 퀘스트 팀은 여전히 환경, 콘텐츠 팀과 긴밀히 협업했죠. 중요한 스토리적인 요구가 있을 때는 지역을 조정했습니다.
두 사람이 강조한 핵심은, 한 지역의 출발점이 퀘스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펄어비스뿐만 아니라 오픈월드 게임플레이를 지향하는 개발사들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메인 퀘스트의 진척도와 관계 없이, 어느 곳에서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선택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죠.
탐험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게임플레이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오픈월드를 구현하기 위해 개발진은 월드를 레이어로 구축했습니다.
지형, 식생, 야생동물 등 '환경' 레이어, 아이템, 보물상자, NPC 스케줄, 요새, 도적 캠프, 퍼즐 구역 등 '콘텐츠' 레이어, 교역소, 세력 노드 등 '메타게임' 레이어 등으로 구분해 독립적으로 제작, 배치, 조정할 수 있게 했죠.
이런 레이어를 어떻게 월드 안에 배치하느냐 또한 관건이었는데, 각각의 요소 자체는 단순할 수 있어도, 채집 가능한 식물과 야생 동물과 도적 캠프가 함께 있는 계곡이 있다면, 이들의 조합이 싸우고, 수집하고, 발견할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따로 만들어진 레이어 요소들이 결합되는 것으로, 다양성과 밀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요소 및 콘텐츠 배치 과정에 대한 전략도 공유됐습니다. 자동 배치와 수동 스팟 배치를 결합했다고 하는데요.
대규모 환경 레이아웃에는 '후디니'를 많이 활용했고, 절차적 도구를 사용하면서 더 빠르게 만들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숲에 동물을 채우고, 물에는 물고기를 넣고, 지형 유형에 따라 식생을 분포하고, 도로를 따라 NPC를 배치하는 식이었죠. 이런 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밀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 강렬한 인상을 줄만한 순간을 넣을 땐, 스팟 배치를 사용하면서, NPC의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 스케줄 기반 활동, 이벤트 구간, 퀘스트 제공자 등이 배치됐죠.
넓은 범위는 자동화로 채우고, 강조가 필요한 부분은 수동 배치로 처리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고 합니다.

개발진은 이런 접근법이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이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월드와 콘텐츠 레이어가 먼저 구축되어, 때때로 내러티브가 탐험, 전투, 시스템 기반 게임플레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간에 맞춰들어가야 할 때가 있었죠.
일부 플레이어들은 스토리 진행이 기대만큼 강하거나 응집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개발진 또한 월드 환경 및 콘텐츠의 생산성과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메인 스토리가 더 강한 존재감을 갖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전히 열린 과제이며, 완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논의하고 테스트하고 개선하려 노력하는 중이라 설명했습니다.
▲ CEDEC 현장에서 발표를 진행한 두승빈, 김현겸 <붉은사막> 게임 디자인실 총괄 실장.
# 더 생동감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두 사람은, 월드와의 상호작용에 대해 특히 강조했습니다.
플레이어가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월드의 어떤 부분이 반응하는가, 크게 두 가지 축이 중심에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게임에서 풀과 나무는 그저 환경을 채워둔 장식처럼 존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식생도 상호작용하는 월드의 일부가 되길 바랐던 것도 그런 방향성 중 하나였습니다.
뛰면 흙과 파편이 튀고, 풀과 얇은 나무는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무기로 풀과 나무를 베거나, 나무를 휘게 해 그 반동으로 도약할 수도 있었죠.

오브젝트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적인 소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에 적절한 반응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가까이 가면 반응하는 함정, 들어올릴 수 있는 상자처럼 단순한 것부터 여러 부품이 함께 움직이는 복잡한 크레인까지 층위도 다양했습니다.
이를 대규모로 적용하기 위해 커스텀 XML 스크립팅 시스템을 구축해, 디자이너가 각 사례를 처음부터 코딩하지 않아도 각 기믹 동작을 쉽게 정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동 오브젝트 교체 기능도 지원해서, 환경 아티스트가 일반 오브젝트로 월드를 구축하는 동안, 디자이너는 별도로 상호작용 버전을 준비할 수 있었죠. 병렬로 일을 한 셈입니다.

더 스케일을 키워서 보면, 플레이어의 진행에 따라 월드 자체가 변하는 '페이즈(위상) 변화'도 적용되었습니다.
적들이 점령하고 있던 요새가, 플레이어가 요새를 클리어한 후에는 아군의 전초기지가 되기도 하고, 플레이 진행에 따라 마을이 더 번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죠.
이를 위해 고정되는 부분과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을 분리해 '위상 변화'를 적용했다고 합니다. 가변 데이터만 플레이 진행에서의 변화에 반응하게 한 것이죠.
이를 통해 일반적인 게임에서의 완전히 다른 버전의 맵을 만들어 상태가 바뀔 때 로드하는 방식과는 달리, 같은 장소가 시간과 진행에 따라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병렬 진행 속 협업
▲ CEDEC 현장에서 발표를 진행한 두승빈, 김현겸 <붉은사막> 게임 디자인실 총괄 실장.
개발진은 커스텀 XML 데이터와 스크립트를 적극 활용했다고 합니다. 콘텐츠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차트 포맷을 정의해 사용해 각각 조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접근 방식은, 제작 과정을 단순화하고 기술적 장벽을 낮춰줘, 디자이너가 작은 변경을 할 때마다 엔진 코드를 작성할 필요가 없게 해줬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로토타이핑과 반복 작업도 빨라졌죠.
이런 구조화된 데이터는 파이썬이나 루아 같은 스크립트 언어보다 비프로그래머가 읽고 배우기도 쉬워, 팀 사이의 협업도 용이했습니다.
개발진 또한 처음엔 스프레드시트 같은 형태의 데이터 관리 방식도 사용해봤으나, 칼럼 수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등 복잡도가 높아지고, 변경 사항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아쉬움 때문에 커스텀 XML 등을 적극 활용하게 됐다고 합니다.

CEDEC 현장에서는 개발자 컨퍼런스답게, 후디니나 XML 등의 도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재밌는 질문 중 하나는 <붉은사막>처럼 스케일이 크고 콘텐츠가 많은 게임을 어떻게 200명이 만들었냐는 것이었죠.
가장 인원이 많았던 시기에도 300명을 넘지 않았던 <붉은사막> 개발진은, 오늘 강연에서 소개한 것처럼 여러 시행착오와 방향 설정 끝에, 월드와 콘텐츠를 채울 수 있는 자신들만의 방법을 고민해왔습니다.
두승빈, 김현겸 <붉은사막> 게임 디자인실 총괄 실장의 말처럼, 이 모든 선택이 완벽하진 않았더라도, 처음 시도하는 싱글플레이 오픈월드 PC 콘솔 게임 개발 과정에서, 각각의 선택들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확실히 체감할 수 있던 시간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