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 키드>는 '옐로 저널리즘(황색언론)'이란 단어의 기원이 된 리처드 아웃컬트의 만화예요.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만화는 '말풍선'이라는 형식 혁신도 이뤘죠.
말풍선은 1897년부터 연재된 <The Katzenjammer Kids>에서 현대적 형태로 자리 잡았고, 현대적인 '만화 칸나누기'도 이 만화에서 처음 정립됐어요. 이후 서구권 만화는 대부분 이 형식을 따르죠.
1923년 일본 아사히신문은 영국 데일리머러, 뉴욕 데일리뉴스처럼 서구권에서 흥행하던 사진 위주 신문을 참고해 일본 최초의 사진 신문 주간 '아사히그래프'를 발행해요. 만화도 서구권 유행을 따랐죠.
창간 첫해엔 10여 년 전 미국 조지 맥마너스가 그려 연재한 <Bringing Up Father>의 일본어판 <親爺教育>과 가바시마 가츠이치의 <쇼짱의 모험>이 실렸는데, 둘 다 말풍선을 현대 만화처럼 본격적으로 쓴 작품이었어요. 이후 일본 만화도 이 형식으로 정착됐죠.

▶ 조지 맥마너스의 신문만화 <Bringing Up Father>.
만화계에 큰 변화를 준 다음 인물은 데즈카 오사무예요. 1928년생인 그는 1930~40년대 미국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고, 특히 <밤비>와 <백설공주>는 수십 번씩 반복해 봤죠.
데즈카는 애니메이션의 영화적 기법을 만화에 도입해요. 한 칸을 영화의 한 화면처럼 써서 클로즈업, 와이드샷으로 표현하고 앵글을 바꿔 역동적 장면을 연출했으며, 필름이 흐르듯 칸의 크기와 배치를 조절해 속도감이나 슬로우모션도 느끼게 했어요.
짧게 끝나던 만화에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한 긴 스토리를 담아 장편으로도 만들었죠. <베티붑>이나 <뽀빠이>처럼 과장되면서도 심플하게 정돈된 캐릭터 신체 표현 역시 데즈카의 특징인데, 그가 '플라이셔 스튜디오' 작품을 즐겨 봤기 때문이에요.

▶ 디즈니 극장 애니메이션 <밤비> 예고편의 한 장면(1942).
19세이던 1947년, 데즈카는 <신보물섬>을 발표해요. 제목처럼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에서 따온 이름이죠. 사카이 시치마가 스토리를, 데즈카가 그림을 맡았는데 40만 부가 팔리며 크게 성공했어요.
1949년 9월 15일엔 <메트로폴리스>를 발표해요. 1927년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를 연상케 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데즈카는 영화를 직접 보진 못했고 평론과 줄거리, 여성 로봇이 등장한 포스터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증언했죠.
실제로 여성 로봇 주인공에 미래 계급사회를 그리는 등 시대 환경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스토리는 독일 영화판과 매우 다른 만화예요. 여기 처음 나오는 여성 인간형 로봇 '밋치'는 데즈카 작품의 첫 로봇인데, 비행능력에 10만 마력의 힘을 내는 밋치의 개성과 형태는 3년 후 시작될 명작 <철완 아톰>에 큰 영향을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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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 프랑스 개봉 포스터.
메트로폴리스에서부터 데즈카의 '로봇'은 수십 년 후 로봇만화 전성시대의 로봇들과 사뭇 달랐어요. 스스로의 정체성과 인간과의 관계, 윤리를 고민하는 존재였죠.
그런 면에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에 큰 영향을 준 Eando Binder의 <I, Robot> 속 '아담 링크'와 비슷해요.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이르기까지 세계 대부분의 SF에서 로봇은 '프랑켄슈타인 콤플렉스'라 불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Eando Binder는 <I, Robot>에서 처음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하면서도 편견에 고통받고 정체성을 고민하는 로봇을 그렸죠.
이 개념은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으로도 이어졌어요. 데즈카가 이런 개념을 스스로 만들어 간 건 어릴 때부터 곤충을 좋아하고 의학을 공부한 영향으로 추측돼요.
필명 오사무(治虫)도 딱정벌레에서 딴 이름이라죠. 물론 SF를 좋아한 그가 어떤 경로로든 Eando Binder를 접했을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고요.

▶ 1953년의 데즈카 오사무.
이후 데즈카는 메트로폴리스와 함께 초기 3대 SF로 꼽히는 <로스트 월드>, <넥스트 월드>를 그렸고 <정글대제(한국판 제목: 밀림의 왕자 레오)>, <신세계루루> 등도 그렸어요.
그리고 1951년, 밋치에 이어 또다시 인간 같은 로봇이 나오는 만화를 내놓죠. 삐죽한 머리의 소년로봇이 외계인과 지구인의 갈등을 중재하는 외교사절로 나오는데, 만화 제목은 <아톰대사>, 로봇 이름은 <아톰>이었어요.
제목과 달리 아톰이 주인공은 아니었고 출연 비중도 크지 않았지만, 어린이 독자들은 이 소년로봇에 열광했죠. 출판사 광문사의 편집장 가나이 다케시가 아톰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를 제안했고, 이듬해인 1952년 4월 데즈카는 이를 받아들여 <철완 아톰> 연재를 시작해요.
이 만화는 일본 역사상 최대의 흥행을 일으키며 역사적 상징성까지 갖춘 불후의 명작이 됐죠. 이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데즈카가 보며 배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크게 성공해요.
이 성공으로 데즈카의 캐릭터 스타일과 연출 방식은 일본 만화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많은 작가가 그를 따랐고, 작품에 흐르는 휴머니티적 정서마저 데즈카 스타일의 일부로 여겨질 만큼 유산은 거대했죠.
데즈카는 캐릭터의 역할에서도 선구적 방식을 만들었는데, 바로 캐릭터를 '배우'로 활용한 거예요. 히게오야지, 반 슌사쿠, 사파이어 왕자, 레드 공 같은 캐릭터가 다른 작품에선 전혀 다른 '배역'으로 등장해요. 스타배우가 작품마다 다른 배역을 맡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죠.
이전엔 없던 이 방식은 <마징가Z>의 나가이 고, <터치>의 아다치 미츠루 등 많은 후배에게 계승됐어요. 한국에서도 여러 작가가 썼는데, 80년대를 풍미한 오혜성, 독고탁, 이강토, 최강타가 각각 이현세, 허영만, 이상무, 박봉성 작가의 대표적 스타배우였죠.
산업적으로도 데즈카는 큰 영향을 끼쳐요. 철완 아톰이 흥행하던 1954년, 데즈카는 한국에 <사파이어 왕자>로 알려진 <리본의 기사>, <나의 손오공> 등 여러 작품을 연재하고 있었어요. 그가 바쁜 걸 본 아비코 모토오(펜네임 '후지코 후지오 Ⓐ')가 배경 작업을 맡아줬죠.

▶ 데즈카 오사무의 <리본의 기사>를 원안으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리본 히어로>. 2026년 8월 공개를 앞두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 트윈 엔진)
이듬해엔 아직 고등학생이던 이시노모리 쇼타로도 도쿄로 상경해 도왔는데, 배경만 부탁했건만 주요 캐릭터까지 완벽히 그려내 데즈카를 놀라게 했다고 해요. 쇼타로는 이후 <사이보그009>, <가면라이더> 같은 명작을 발표하죠.
1956년엔 데즈카의 메트로폴리스에 감명받아 그를 동경하던 또 다른 젊은 작가가 철완 아톰의 어시스턴트를 맡아요. 이미 '소년' 잡지에 로봇만화 <철인28호>를 연재하던 이 작가는, 이후 데즈카와 여러 분야에서 오랜 라이벌이 되며 함께 일본 만화의 표현 수준을 끌어올린 요코야마 미츠테루예요.
요코야마는 마법소녀물의 원조 <요술공주 샐리>와 <바벨 2세>, <삼국지> 등을 그렸는데, 중국 <중국극화 삼국지>의 그림 스타일을 참고한 그의 삼국지는 게임에도 오래 영향을 미쳐요. 코에이사 <삼국지 시리즈> 등 여러 게임 캐릭터가 그의 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죠.
연재 수가 줄지 않아 배경 등을 돕는 인력이 계속 필요했고, 결국 '어시스턴트 시스템'이 자리 잡아 대량생산이 가능한 만화산업의 근간이 되어 지금에 이르러요.
한편 승승장구하던 데즈카에게 도에이동화가 <나의 손오공>을 <서유기>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화하자고 제안해요.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을 꿈꾼 데즈카는 바로 승낙해 직접 참여했지만, 도에이 측은 원작을 많이 수정했고 특히 결말은 그가 원한 것과 정반대인 해피엔딩이었죠.
낙담한 데즈카는 자신이 원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직접 스튜디오를 세워요. 1961년 6월 설립한 이 스튜디오는 1962년 1월 무시 프로덕션으로 이름 짓고 그해 말 주식회사가 됐죠.
데즈카는 <어느 거리의 이야기>를 제작한 뒤 곧바로 <철완 아톰>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가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산업혁명'이 시작돼요.

▶ 1960~80년대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사용한 35mm 애니메이션 촬영 카메라.
✍️ 스칼렛오하라 - 비덕
덕후는 아니지만 주변에 덕후가 많아 덕후들과 어울리며 결국 그들을 경외하고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해리포터에서의 머글과 같은 포지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