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나치 독일과 일본제국이 항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군수공장이 멈추고 많은 근로자가 해고돼 미국 곳곳에서 파업이 벌어졌어요. 독일 패전 후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된 소련은 유럽과 아시아로 영향력을 넓혔고, 중국에서는 국공내전이 시작됐죠.
트루먼 대통령은 트루먼 독트린에 따라 공산주의 봉쇄정책을 폈고, 파시스트를 감시하던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는 대상을 공산주의자로 옮겼어요.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같은 해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에 승리하자, 미국에선 공산주의 공포와 위기감이 커졌어요. HUAC는 이 분위기에 편승해 정치·문화계에서 전방위로 활동하기 시작했죠.
1950년 2월,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중국의 공산화가 미국 공산주의자 때문이라며 미국 내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발언했고, 정부에도 공산당원이 많다고 주장했어요. 공포에 민감했던 미국인들은 그에게 환호했죠.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매카시와 HUAC는 본격적인 마녀사냥을 시작해요. 이로 인해 많은 정치인, 유명인이 몰락했어요.
원자폭탄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는 모든 정보에서 배제됐고,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이던 찰리 채플린은 미국을 떠났어요. 할리우드는 많은 반공영화를 상영했고, 코믹스 업계도 반공 스토리를 줄줄이 냈죠.
하지만 매카시와 HUAC의 무리한 고발 공세에 국민과 정치계가 염증을 냈어요. 1954년 12월 매카시를 비판하는 결의안이 의결됐어요. 그가 갖고 있다던 명단도 허위로 드러나며 매카시즘은 막을 내렸죠.

▶ 1954년 육군과 매카시 청문회. 무리한 공산주의자 색출은 미국 사회에 큰 후유증을 남겼고, 결국 매카시의 정치적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코믹스 업계의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어요.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 전반에 보수주의와 검열 분위기를 만들었죠.
정신과 의사 프레드릭 워섬은 코믹스가 청소년 범죄의 대표적 원인이라 주장했어요. 훗날 폭력 주제의 게임을 청소년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과 닮은 논리예요. 그는 심지어 배트맨과 로빈을 동성애 관계로, 원더우먼을 레즈비언 판타지로 해석하기도 했죠.
이에 미국 상원의 '청소년 비행에 관한 소위원회'가 청문회를 열어요. 적대적 여론 속에 학부모와 기독교 단체는 코믹스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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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의사 프레드릭 워섬. 그는 자서 <Seduction of the Innocent>를 통해 코믹스 유해론을 주장하며 미국의 반(反)코믹스 운동을 주도했다.
코믹스 업계는 정부 규제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어요. 이미 영화계엔 1930년 미국 영화제작자 및 배급자 협회가 'Hays Code'를 만든 선례가 있었죠.
업계는 이를 참고해 CMAA(미국 코믹스 잡지 협회)를 만들고 뉴욕 치안판사 출신 찰스 머피를 영입한 뒤, 그 산하에 CCA(코믹스 코드 관리국)를 세워요.
이후 출판사는 출판 전 코믹스 전체를 CCA에 제출해 통과되면 표지에 'Approved by the Comics Code Authority' 인장을 받았고, 유통사 대부분이 이 승인이 없는 코믹스를 취급하지 않아 CCA는 사실상 검열기구가 됐죠.
심사관들은 보수주의로 무장해 '도덕적'이고 '건전, 비폭력적'이며 '선정적이지 않도록' 규제했어요. 괴기스러운 내용은 배제되고 선악이 명확히 갈리는 권선징악이어야 했죠.
결국 스토리는 특색을 잃고 캐릭터마다 비슷해져 재미가 없어졌어요. 짧은 기간에 많은 코믹스가 퇴출돼, 1954년 CCA 도입 전 약 650개이던 타이틀이 250개로 급감했고 영세 출판사 도산이 이어졌죠.
매출은 급감하고 코믹스는 침체에 빠졌어요. 올 아메리칸 공동발행인 맥스 게인즈로부터 EC코믹스를 물려받은 아들 윌리엄 게인즈는 CCA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죠.
이 침체를 깬 건 스탠 리의 마블이었어요. 스탠 리는 잭 커비와 함께 결함 있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CCA 규정을 아슬아슬하게 지키면서도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의 길을 열었죠.
작가 덕후들은 CCA가 바로 알아채기 힘든 코드를 담았고, 일부 독자는 이를 해석해 친구들과 공유했어요. 이 혁신은 독자를 다시 불러모아 어린이 시장에 더해 대학·청년층까지 확보했고, TV 연재로 대중문화 아이콘이 된 배트맨 시리즈와는 확실히 달랐죠.
마블의 방식은 독자 간 소통도 낳아, 뉴욕에서는 1964년 인류 역사상 처음 기록된 코믹콘이 소수 10대 팬들에 의해 열려요. CCA는 이후에도 검열을 이어갔지만 2000년대 들어 회사들이 하나둘 탈퇴하고 2011년 DC가 마지막으로 탈퇴하며 사라졌어요.

▶ CCA 승인 인장이 찍힌 1956년 아틀라스 코믹스의 <Apache Kid>. 당시 대부분의 유통사는 이 인장이 없는 코믹스를 취급하지 않았다.
CCA에 적응하며 실버에이지로 부활한 코믹스는 1970년대에 또 위기를 맞아요. 이번엔 경제 환경의 급변이었죠.
1964년 통킹만 사건으로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되고 1965년부터 미군 지상병력이 상륙하면서, 미국이 엄청난 전쟁 비용을 시장에 풀자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어요. 1960년대는 호황기라 군수물자와 민간 생산이 함께 늘어 원자재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는 넘쳐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했죠.
코믹스도 마찬가지였어요. 코믹스 초기부터 1961년까지 10센트였던 한 이슈의 가격은 1962년에 처음 12센트로 인상됐어요. 1960년대 후반부터는 펄프가격과 인건비가 상승하며 1969년에 15센트, 1971년에는 20센트가 되었어요.
설상가상 1973년 오일쇼크가 종이값을 폭등시켜 1970년대 내내 오르더니 1980년엔 50센트에 이르렀죠. 마블 덕에 독자층이 대학생·청소년으로 넓어졌다지만 기본 수요는 어린이였고, 용돈이 빠듯한 아이들이 구매를 줄이며 판매량도 줄었어요.

▶ 1973년 오리건주의 한 주유소. 오일쇼크로 연료 공급이 끊기면서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석유 파동은 종이값과 인쇄비 상승으로 이어져 코믹스 업계에도 큰 타격을 줬다.
한편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문을 연 '만화 전문 서점'은 1970년대까지도 확산되지 않았어요. 1964년 뉴욕 첫 코믹콘에 참여했던 고등학교 교사 필 슬링은 여러 컨벤션에 참여하고 직접 주최도 하다가, 1970년대 초중반 '시게이트'라는 유통회사를 세워요.
그는 코믹스 회사에 반품 없이 직매입할 테니 할인해 달라고 제안했죠. 신문 가판대에선 안 팔린 걸 출판사가 반품받았지만, 그는 그 리스크를 자신이 떠안은 거예요. 코믹스 업계 첫 다이렉트 유통채널이었죠. 1973년부터 시게이트는 전국 소규모 만화 전문 서점에 코믹스를 공급했고, 많은 덕후가 직접 서점을 열어 책을 받았어요.
채널이 늘어 반가운 일이었지만 시기가 나빴어요. 오일쇼크 여파로 1973년 말부터 경기침체가 왔거든요.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자 잡화점, 약국의 신문 가판대가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가격은 오르는데 판매량은 줄고 마진은 그대로인 데다 반품 처리도 번거로웠기 때문이죠. 서점 근처 사람들은 쉽게 옮겼지만, 흔하던 가판대가 사라지자 많은 이의 접근성이 나빠졌어요.

▶ 1939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잡지 가판대. <액션 코믹스>와 <디텍티브 코믹스> 등 당시 코믹스는 만화 전문점이 아닌 동네 뉴스스탠드를 통해 판매됐다.
설상가상 1970년대는 또 다른 덕후 문화상품이 쏟아진 시기였어요. 경쟁미디어가 대거 등장한 거죠.
1972년 아타리가 <퐁>을 내놓고 가정용 게임기가 보급되며 아이들은 만화 대신 게임을 즐겼고, 1970년대 말엔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아이들을 오락실로 끌었어요. 35센트짜리 만화 대신 25센트를 내고 게임을 한 거죠.
1977년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개봉했는데, <스타트렉>과 달리 미국 대중을 사로잡으며 슈퍼히어로는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맞았어요. 코믹스 수익성은 해가 갈수록 나빠졌죠.
1978년, 판매 악화를 견디지 못한 DC가 전체 코믹스 타이틀의 40%를 한꺼번에 폐간하는 사건까지 벌어져요. 6개월 뒤 개봉한 슈퍼맨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쳤지만, DC는 이미 대대적 구조조정을 마친 뒤였죠.

▶ 1977년 할리우드 맨스 차이니즈 극장(현 TCL 차이니즈 극장). 극장 전면에 영화 <스타워즈> 간판이 걸려 있다.
반전은 만화 전문 서점에서 시작됐어요. 필 슬링의 유통 혁신이 시장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죠.
1980년 '캐피탈 시티 디스트리뷰션', 1982년 '다이아몬드 코믹 디스트리뷰터스'라는 다이렉트 유통채널이 잇따라 생겨요. 이 다이아몬드는 2000년대까지 시장 독점적 지위를 지키다가 2025년 파산해 자산이 다른 회사에 인수돼요.
만화 전문 서점은 1970년대 초반 미국 전역에 수십 개뿐이었지만, 후반엔 북미 최소 400개 이상, 1980년대엔 수천 곳, 코믹스 버블기였던 1993년엔 1만 개에 이르렀다고 해요.
이 체제는 CCA 심의 없이도 코믹스를 유통할 길을 열어 다양한 콘텐츠를 다룰 환경을 만들었고, 유통시장이 안정되며 출판사도 다시 늘었죠. 1986년 창립된 다크호스 코믹스는 창작자 소유권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DC, 마블과 다른 길을 걸었어요.
<헬보이>나 <신시티> 등이 여기서 나왔고, 일본 만화를 본격적으로 들여온 곳이기도 하죠. 대표 리처드슨은 정기적으로 일본을 방문해 <우주소년 아톰>, <아키라>, <공각기동대> 같은 만화를 미국에 냈어요.
일본 만화회사가 미국에 직접 투자해 출판사를 세우기도 했어요. 소학관(Shogakugan)은 도쿠시마현 출신 미국 이민자 세이지 호리부치에게 20만 달러의 창업자금을 대 비즈 커뮤니케이션(Viz Communication)을 세우게 했는데, 이 역시 1986년이었죠.
<Area 88> 유통으로 시작한 비즈는 <란마½>, <드래곤볼>, <나루토>, <원피스>, <원펀맨> 등을 미국에 공급하는 대형 미디어사로 성장했어요.
사실 미국에 먼저 진출한 일본 콘텐츠는 코믹스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었어요. 1963년 새해 일본에서 방영을 시작해 성공한 테츠카 오사무의 <철완아톰>은 그해 9월 미국 전역에서도 방송돼 크게 성공하며 '아니메'를 알렸죠.
이후 간간이 문을 두드리던 일본 아니메는 1995년 <세일러문>과 <드래곤볼>의 북미 방영으로 본격 확산됐어요. 매니아가 늘며 2000년대에는 일본 '망가'가 미국 그래픽노블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했고, 이들 매니아를 일컫는 와패니즈(Wapanese)라는 말까지 생겼죠.

▶ <우주소년 아톰>의 작가 테츠카 오사무(1951).
이제 일본 만화의 힘은 북미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막강해요. <포켓몬>은 현재 세계 최고 매출 IP이고, <원피스>는 <슈퍼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만화죠.
일본은 오타쿠라는 단어가 태어난 곳이자, '덕후' 이미지를 가장 잘 떠올리게 하는 '아니메'가 늘 극장 개봉 순위 1위를 지키는 나라예요. 그런데 이렇게 융성해 북미까지 상륙한 일본의 망가와 애니메이션도 근원을 거슬러 오르면, 북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어요.
✍️ 스칼렛오하라 - 비덕
덕후는 아니지만 주변에 덕후가 많아 덕후들과 어울리며 결국 그들을 경외하고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해리포터에서의 머글과 같은 포지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