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궤적>과 <이스>만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팔콤의 세계관과 게임을 더 폭넓게 제공할 준비가 되었다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올해 1월 니혼팔콤의 콘도 토시히로 대표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그리고 이 포부를 증명할 신작 <교토 재너두 -앵화환무->(이하 교토 재너두)가 발매를 앞두고 있다.
'재너두'라는 이름은 팔콤이 1985년 발매한 <제나두>(ザナドゥ)에서 비롯됐다. 이 첫 작품을 시작으로 '제나두 시리즈'라는 별도의 계보가 이어졌는데, 같은 원어를 두고도 국내 표기는 작품마다 갈려서 원조 계보는 '제나두', <도쿄 재너두> 이후로는 '재너두'로 번역됐다.
이름의 뿌리는 같지만, <도쿄 재너두>는 세계관과 시스템 면에서 원작과 궤를 달리하는 독자적인 시리즈로 새롭게 출발했다. 지난 2015년 PS Vita로 발매된 <도쿄 재너두>는 팔콤이 최초로 도전한 현대 어반 판타지 타이틀이다. 이후 2016년 PS4, 2023년 닌텐도 스위치로 완전판인 <도쿄 재너두 eX+>를 이식 및 발매하며 팔콤 라인업의 한 켠을 줄곧 지켜왔다.
<교토 재너두>는 무대를 교토로 옮겨 시리즈의 본격적인 확장을 노리는 작품이다. 과연 <교토 재너두>는 팔콤의 전통적 판타지 라인업을 넘어, 외연을 넓혀줄 어반 판타지 IP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 교토라는 무대, 재너두라는 이공간
<교토 재너두>는 실제 지명 교토(京都)와 다른 한자(亰都)를 쓰는데, 이는 전작 <도쿄 재너두>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작품은 현실 교토와 유사한 가상의 수도 '교토'를 배경으로, 현실 세계와 겹쳐서 나타나는 이공간 미궁 '재너두' 탐색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주인공 '카미야 레이'는 특정 사건을 계기로 영적 무장 '장혼령구'를 현현시킨 소년이다. 그는 이형의 괴물 '괴이'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적격자'로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레이는 수수께끼의 인물 당주와 거래를 맺고 적격자들이 모이는 '히라사카 학원'으로 전학하며, 학교 지하의 '히라사카 대미궁' 돌파를 목표로 삼는다.
게임의 사이클은 행동에 따라 날짜가 경과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플레이어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재너두 공략', '수업', '일상'이라는 세 가지 파트를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 <교토 재너두>의 주인공 '카미야 레이'.

▶ 괴이와 적격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 2D 메트로배니아와 3D 액션의 '듀얼 디멘셔널'
재너두 탐색은 소위 '메트로배니아'라 불리는 2D 횡스크롤 방식으로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맵을 구석구석 탐방하며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승강기를 찾아야 한다. 계층 내 동일한 좌표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영맥'이나 사격으로 활성화하는 장치 등을 활용해 퍼즐을 풀듯 전진하며, 중간 보스급 적과 3D 전투를 벌이는 '괴이문'을 찾아 돌파하기도 한다.
여기에 '소울 포인트' 및 필드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으로 해금하는 '소울 어빌리티'는 전투 및 이동 등 전반적인 능력을 강화해주는 시스템이다. 그중에서도 이단 점프, 점프 대시 등 이동 능력 강화는 층을 내려갈수록 이동 방식을 다채롭게 만들어 지루함을 덜어내는 역할을 한다.

▶ 맵을 탐방하며 다음 계층으로 넘어가는 것이 재너두 공략의 주된 목표다.
진행 템포 조절을 위한 '환소' 시스템도 존재한다.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오브젝트나 오염된 석상을 정화하면 환소 수치가 쌓이는데, 이 수치가 1000을 넘어가면 일정 확률로 '환소 중독'이 시작된다.
환소 중독에 걸리면 체력이 서서히 감소하고 회복도 불가능해져, 이후 진행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각 층의 보스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일정 개수의 오염된 요신상을 정화해야 하는데, 요신상 정화 시 개당 300의 환소를 얻게 되므로 한 번의 공략당 정화 횟수는 2~3개에 그친다.
결과적으로 보스 조건을 채우려면 같은 계층에 여러 번 반복해서 방문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진행도에 맞춰 수주하는 연구동의 '의뢰'(소재 수집), 훈련장의 '과제'(특정 괴이 격파), 예배당의 '요청'(조난당한 학생 구조) 등의 퀘스트 역시 이미 돌파한 계층을 다시금 방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 게임 진행을 조절하는 환소 시스템.
탐색과 전투는 최대 네 명의 파티로 진행되며, '식령'을 통해 각 캐릭터의 속성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2D와 3D 전투 모두 상대방의 약점을 찌를 수 있는 캐릭터로 교체해가며 플레이하는 것이 핵심이다.
2D 탐색 파트의 전투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 일반 몬스터의 패턴은 단순하고, 강적 역시 3D 전투에서 이미 패턴을 파악한 보스가 재등장한다.
또 다른 축인 3D 전투는 노말 난이도 기준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일정 횟수 사용 가능한 ‘회복약’이나 별도로 장비 가능한 소비 아이템 등 회복 수단이 많다.
중후반부에 가면 적들의 개체수가 많아져서 적에게 둘러싸이거나 상태이상에 걸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단, 상태이상에 걸려도 '만능약'으로 즉시 해제할 수 있고, 일정 시간 무적이 되는 '엘릭시르'도 있어 회피 액션에 서툰 유저도 무리 없이 클리어할 수 있다.
개발진은 2D와 3D를 오가는 이 경험을 두고 <교토 재너두>를 '듀얼 디멘셔널 ARPG'라 표현했다. 같은 스킬 구성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시점의 전투를 오가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강화 상태에 돌입하는 '소울 액셀', 쳐내기 후 이어지는 카운터 공격 '일섬', 필살기인 '비연격' 등은 연출과 사용감 모두에서 재미를 더했다.

▶ 2D 전투 모습. 적들의 패턴이 단순해서 교전이 어렵지 않다.

▶ 3D 전투 모습. 중후반부로 갈수록 적 개체수가 많아진다.

▶ 초반부에는 단순한 패턴의 보스가 주를 이루지만, 스토리상 주요 보스나 후반부 보스는 패턴과 위력 모두 만만치 않다.

▶ 소울 액셀, 일섬, 비연격 등으로 게임을 재밌고 수월하게 즐길 수 있다.
# 대미궁 바깥의 일상
'수업' 파트는 간단한 카드게임 형태로 진행된다. 교류나 자습 등을 통해 얻은 '행동 카드'로 덱이 구성되며, 그중 무작위로 뽑힌 5장을 코스트에 맞춰 3개의 수업에 각각 배분하는 방식이다. 각 등장인물과의 교류를 통해 얻는 '서포트 카드'는 보유 중이라면 덱과 무관하게 코스트를 지불해 사용할 수 있다.
수시로 진행되는 수업과 주기별로 치르는 시험은 '소울 포인트' 획득을 위한 주요 레벨업 수단이다. 구조 자체는 단순하지만, 무작위성과 코스트 계산이 맞물려 가볍게 즐기기 좋은 파트였다.

▶ 수업 파트 진행 모습. 비용(CP)을 고려해 3개의 수업에 적절히 배분하면 된다.

▶ 각 등장인물과 교류하면 서포트 카드를 획득한다.
'일상' 파트는 'AP'와 'FP'라는 두 가지 행동력을 기반으로 흘러간다. AP는 식사나 소울 포인트 획득을 위한 스탯 강화 활동에 주로 사용된다.
이 외에도 대미궁 바깥의 '괴이문' 처치나 지정된 날짜 외 '재너두' 추가 공략에 투자할 수 있다. 한편 괴이문 처치는 수집 요소인 몬스터 정보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라면 필수지만, 재너두 추가 공략은 기자의 경우 지정된 날짜의 공략만으로도 스토리를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FP는 등장인물들과의 교류 포인트를 획득하는 데 사용된다. FP를 소모하면 간단한 상호작용 이벤트를 감상하며 교류 포인트를 얻는다. 이 포인트가 일정 이상 쌓이면 '신변잡기록'을 통해 관련 스토리를 열람할 수 있는데, 캐릭터 스토리는 메인 스토리에 얽힌 인물의 경우 '담가초', 그 외의 인물은 '기연소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총 21명에 달하는 등장인물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교토 재너두>의 줄거리를 한층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해당 스토리 열람 이후에는 '담가초 EX'와 '기연소화 EX'가 추가로 존재하며, 이를 달성하면 장비나 소비 아이템을 보상으로 준다.
일상 파트는 R2 버튼을 통한 빠른 이동을 지원해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다. 다만 NPC 대화를 통해 얻는 수집 요소인 '글귀'를 전부 모으는 게 목적이라면 빠른 이동에만 의존하지 않고 맵을 직접 순회해야 한다. 실제로 빠른 이동 위주로 플레이한 기자는 1회차 동안 총 114종 중 60종을 모으는 데 그쳤다.

▶ FP를 사용해 교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 가끔 여럿과 상호작용하는 이벤트도 존재한다.

▶ EX에 도달하면 등장인물 별 교류 포인트 최종 보상을 받을 수 있다.
# 전형적이지만 직관적인 매력의 캐릭터들
방대한 텍스트를 매력 있게 전달하려면 캐릭터성이 중요하다. <교토 재너두>의 캐릭터들은 전형적이지만 직관적이다.
배경과 성격이 들어맞는 캐릭터가 대부분이라 인물이나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이를 컷신과 연출이 뒷받침했다. 단번에 파악되는 캐릭터성과 걸맞는 비주얼이 결합되어 각 인물의 매력을 곧잘 느낄 수 있었다.
챕터별로 소소한 반전 요소도 존재했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따라가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수준의 반전들이지만,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의도는 엿보였다. 소소한 유머와 패러디도 볼만하며, 등장인물의 배경은 어둡지만 난관을 동료애로 풀어나가는 소년 만화의 정서 또한 느낄 수 있다.

▶ 직관적인 캐릭터성은 익숙한 매력을 선사한다.

▶ 중간 중간 등장하는 컷씬과 연출이 스토리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팔콤의 다른 시리즈를 해봤다면 반가울 부분도 있다. 등장인물이 메신저에서 쓰는 이모티콘이 전작 캐릭터고, 외형과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캐릭터도 등장한다.
그렇다고 다른 시리즈나 전작 <도쿄 재너두>를 몰라도 플레이에 지장은 없다. 1회차를 진행하는 동안 게임에 언급되지 않은 설정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경우는 없었다.
한편 게임 내 고유명사가 상당한 편이라 초반부는 내용을 따라가는 데 약간의 수고가 들 수 있다. 그러나 세계관과 설정에 익숙해지고 나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부분이다.

▶ <궤적> 시리즈의 캐릭터가 이모티콘으로 등장한다.

▶ <이스> 시리즈의 등장인물 '도기'. 재너두 세계관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 즐거움 뒤에 남는 호불호 지점들
앞의 경험을 종합하면, <교토 재너두>는 시스템과 캐릭터 양쪽에서 고루 즐거움을 안겨준 JRPG였다. 다만 즐겁게 플레이한 것과 별개로, 플레이 전반에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우선 날짜 진행 방식의 안내가 균일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날짜는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일정을 확인하는 지표 역할도 겸하는데, <교토 재너두>의 날짜는 전자의 역할에 그치는 인상이다.
중간·기말고사 같은 시험 일정은 사전에 명시되지만, 메인 스토리의 굵직한 사건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는지는 알려주지 않거나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알려준다.

▶ 날짜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지만, 시험이나 일부 행사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일정 안내가 명확하지 않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폭도 취향이 나뉠 수 있다. 조작 가능한 캐릭터 수가 적어 각각을 깊이 파고들기엔 좋지만, 더 볼륨감 있는 로스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아쉽게 다가올 수 있다. 담가초나 기연소화 등 서브 스토리에서 주변 인물들의 무기 개성이 뚜렷하게 묘사되는 만큼, 그런 다양성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 외팔이라는 설정과 함께, 왼팔을 대신하는 귀수형 장혼령구를 다루는 등장인물 '아카조메 소시'. 흥미로운 무기를 설정으로만 두고 직접 플레이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부가 콘텐츠의 단순함도 짚을 만하다. 퀘스트는 수집, 퇴치, 탈출이 요구하는 수량과 위치만 바뀔 뿐 고정된 패턴으로 반복되며, 장비 강화나 식령 교체 역시 구조가 단순한 편이다.
재너두 공략과 전투에 집중하고 그 외의 피로도를 낮추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만큼 파고들 여지는 적게 느껴진다. 특히 식령은 별도의 전용 연출이나 특수 능력 없이 속성과 외형 차이 정도로만 갈릴 뿐이어서 개성이 아쉬운 편이었다.

▶ 외형과 속성 외에는 개성이 없어서 다소 아쉬웠던 '식령'.
다회차 플레이의 매력은 어떨까. 환소 업적이나 금액 관련 업적은 기준치가 다소 높게 설정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한 번 더 플레이하게 만드는 느낌이 든다.
노말 난이도 이하로 첫 플레이를 마쳤다면 더 높은 난이도에 도전하는 것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 1회차에 다 채우지 못한 수집요소를 마저 채우는 것도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참고로 노말 난이도 기준, 대사를 스킵 없이 빨리감기로 감상하며 진행한 기자의 1회차 플레이 타임은 약 30시간이었다.
한편 회차 플레이를 하더라도 탐색 기동성을 높여주는 소울 어빌리티가 스토리 진행도에 묶여 해금되는 구조라, 초반부 계층에서는 다시금 비교적 답답한 이동 방식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 걸린다.

▶ <교토 재너두>는 진행에 따라 이동 기술이 해금되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다회차 플레이 시에도 특정 구간에 다시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전 회차에서 익힌 이동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 적당한 재미, 확실한 시작
<교토 재너두>는 가볍게 즐기기 좋은 JRPG다. 액션과 캐릭터에 집중하고 그 외 시스템은 단순화해, 플레이 부담이 크지 않다. 플레이타임도 적당한 편으로, 수집 요소와 다회차 플레이까지 고려하면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이다.
스토리와 캐릭터의 매력도 분명하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소한 반전과 뚜렷한 캐릭터성이 감상하는 재미를 더한다.
단, 액션 파트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게임 전반에 대한 평가 자체가 크게 갈릴 수 있다. 적은 플레이어블 캐릭터 수와 단순화된 부가 콘텐츠 역시, 더 볼륨감 있는 경험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교토 재너두>에 대한 만족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이번 작품으로 <재너두>가 팔콤의 또 다른 시리즈로 자리 잡을 가능성만큼은 보여줬다.

▶ 호불호 요소는 존재하지만, 시리즈로 자리 잡을 만한 매력은 확실히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