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작년을 기점으로 AI 기술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막연하게만 다가왔던 인공지능으로 가득한 세상은 어느덧 손을 내밀면 곧바로 잡힐 것 같은 가까운 미래가 되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에 비해 수십 배에 달하는 업무 효율을 자랑하고, 이로 인해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광경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미래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게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동안 인간의 외형과 행동을 모방한 인공적 존재들이 게임 속에 자주 등장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상상력과 게임적 허용을 바탕으로 한 가상의 미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테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가져온 거대한 파도가 이미 우리의 현실을 바꾸고 있다.
현시점에서, 가상 현실 속 미래를 바라보는 유저들의 관점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기술 발전의 이면과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엿보이는 작품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여기 인공지능이 극도로 발달한 낙원을 배경으로 한 신작, <디-토피아(D-Topia)>가 있다. 이 완벽하게 평화로울 것만 같은 낙원 속에서 인류는 진정한 행복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작성= 쿠타르크(게임 리뷰어), 편집=한지훈 기자

# 완벽한 통제와 기괴한 이면, 가짜 낙원의 두 얼굴
<디-토피아>는 최첨단 기술력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 갖춰진 낙원, '디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내러티브 어드벤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디토피아 내에서 세부적인 요소를 조율하는 조율사가 되어 디토피아 속 여러 인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잘 살아갈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디토피아 내부의 규율과 각 구성원의 입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한편,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낙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 최첨단의 끝을 달리면서도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지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떠올릴 만한 미래상
흰색의 비중이 높은 차가운 색감의 비주얼과 낮은 음색, 느린 박자의 감미로운 사운드, 그리고 제한된 구역과 일정한 규율 아래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은 플레이어의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반면에 조율사만이 접근할 수 있는 블록 사이드에 진입하면 밝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디토피아 속에서 인간의 삶을 돕는 드로이드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등, 상당히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딱히 공포 장르를 표방하는 게임은 아니나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이 기괴하고 차가운 광경에서 심리적인 압박이나 두려움을 느낄 여지도 충분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극적인 대비가 최첨단 기술을 통해 철저히 통제되고 만들어진 가짜 낙원이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시사하기도 한다.
▶ 시각적인 보정이 사라진 이면 세계에 진입하는 건 조금 무섭다.
# 두뇌 플레이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퍼즐의 깊이
조율사가 디토피아 내부의 상황을 조율하는 과정은 대개 간단한 퍼즐을 통해 진행된다. 또한 게임상에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때마다 공장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게 된다.
이 공장 업무 역시 전부 퍼즐로 구성되어 있다. 공장 업무 시 퍼즐을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고 추가로 제공되는 업무를 마치면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디토피아 내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할 때도 퍼즐이 동원되며, 퍼즐 해결이 스토리상에서 꽤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디-토피아>라는 게임에서 퍼즐이 가지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퍼즐의 난이도는 크게 어렵지 않은 수준이다.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퍼즐은 크게 네 가지 기믹으로 나뉘는데, 대체로 퍼즐의 크기가 작은 편인 데다가 각 기믹의 응용이 단순해 체감 난이도가 낮고 퍼즐을 푸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 딱 '이제 머리 좀 쓰겠구나' 싶을 때쯤 더 이상 퍼즐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퍼즐의 개수도 그리 많지 않은데, 공장 업무를 기준으로 퍼즐의 개수가 10개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슬슬 본격적으로 두뇌를 활용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그보다 더 어려운 퍼즐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게임을 '퍼즐 게임'으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감이 있다. 퍼즐의 중요성이 결코 낮지 않음에도 퍼즐의 볼륨이나 깊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퍼즐은 게임의 스토리를 위한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는 편이 좋을 듯하다.
▶ 퍼즐의 퀄리티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이걸 퍼즐 게임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모자란 수준.
# 부족한 딜레마와 가혹한 다회차
총 7일이라는 시간 동안 조율사는 디토피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보통 하루마다 한 명의 주민(혹은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을 거쳐 사건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에 대한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이 결단은 이후 스토리 흐름 및 결말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 사고의 흐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는 제법 괜찮게 다가온다.
대체로 주민들의 고민은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낙원이라는 이름의 규율과 주민 각자의 말 못 할 사정이라는 특수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양상을 보이며, 주인공의 개입에 따라 주민이 맞이할 운명 또한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편으로는 낙원이 최적의 상태로 유지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인 최첨단 기술이 모든 주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걸 암시하고 있어,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에 대한 생각의 여지를 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거대한 집단 속에서 마땅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고민, 그리고 최첨단 기술이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절실히 체감하게 만드는 선택지 시스템은 분명 인상적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양 갈래의 선택지가 어느 한쪽의 옳고 그름을 쉽사리 판단하기 힘든 딜레마가 아니라, 어느 정도 올바른 정답을 정해놓은 상황에서 플레이어에게 판단을 유보하는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특히 이야기의 분기가 나뉘는 최종 사고 흐름 장면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다/아니다로 나뉘는 사고 회로에서 제시되는 문장을 보면 확실히 인위적으로 상황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난다.
최적의 선택지를 정해놓은 느낌이라 원하는 대로 결말을 이끌어 나갈 수는 있겠지만, 반대로 이야기가 뻔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기도 하다.
▶ 다만 답을 어느 정도 정해놓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딜레마가 조금 부족하달까?
<디-토피아>는 스토리의 분기가 존재하고 각 분기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게임이다. 그렇다는 건 분명 다회차 플레이를 통해 여러 분기의 변화와 다양한 엔딩을 감상할 여지가 존재하는 게임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게임이 다회차 플레이에 그리 최적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이전 분기가 이후 분기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게임이라 결국 다른 엔딩을 보려면 사실상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전반적으로 게임의 템포가 느린 데다가 스킵 기능마저 없어, 2회차 플레이라 하더라도 초회차 플레이와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다.
▶ 다른 분기를 보려고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건 어느 게임이든 참 버거울 수밖에 없다.
즉, 이전에 봤던 장면을 그대로 다시 감상해야 하고 한 차례 풀었던 퍼즐도 또 풀어야 한다. 2회차 플레이에 대한 동기 부여는 분명하지만 정작 이에 대한 편의성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심지어 일부 수집 요소까지 존재하는 게임이다 보니 이러한 편의성의 부재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비록 첫 엔딩을 감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4시간 남짓으로 그리 길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결말을 위해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시 플레이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분기별 저장/불러오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게임이 훨씬 더 쾌적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굳이 모든 장면을 다 보고 모든 퍼즐을 다시 플레이할 필요 없이 결정적인 선택지에서 게임을 불러올 수만 있었더라면, 다양한 분기 및 결말 감상이 더욱 편했을 것이다.
▶ 주요 분기를 불러오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게임이었다.
# 시의성 있는 질문과 아쉬운 깊이
<디-토피아>는 '최첨단 시설과 적당한 통제를 바탕으로 한 최상급의 낙원이 정말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무난한 느낌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소코반 기반의 퍼즐은 난이도는 조금 쉬워도 게임의 재미와 흥미를 살짝 끌어올리는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낸다. 주민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 낙원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보는 스토리가 그것이다.
인공지능이 굉장히 많은 각광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분야에 걸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현시점에서의 시의성에 잘 부합하는 한편 플레이어에게 생각의 여지를 충분히 제시한다.
다만 게임상의 날짜가 불과 7일뿐이라 스토리가 그리 길다고 보긴 어렵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이야기 전개 및 결말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스토리의 깊이는 조금 부족하다.
여기에 다양한 스토리 분기와 더불어 약간의 수집 요소가 존재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다회차 플레이에 대한 편의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이로 인해 게임이 다소 가벼워 보이거나 허점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의 기술력과 활용도가 극한으로 올라가 있는 가상의 미래를 다룬 게임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한 번쯤 플레이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편안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힐링 감성 게임을 찾는 이들이나 공상과학을 소재로 한 게임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가볍게 추천할 만한 게임이다.

✍️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