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이능력 배틀물이나 판타지 작품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다.
특히나 조작과 피드백의 '타이밍'이 생명인 게임 쪽에서는 이 소재를 적극 활용한 타이틀이 참 많았다. 그런데 그 많은 작품 중에서도 <어센드 투 제로>는 조금 결이 달랐다.
<어센드 투 제로>의 재미는 내가 얼마나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느냐에서 유발되고 있다.
30초라는 제한 시간을 가지고 운명을 바꿔야 하는 상황 속에서, 시간을 멈추고 다시 시간이 흐르게 할 때마다 강력한 공격을 퍼붓기도 하고, 시간 제한이라는 속박 자체도 최대 시간을 늘리거나 남은 시간을 회복하는 식으로 한계를 깨나간다.
참 묘하다. <어센드 투 제로>가 가진 재미의 상당수는 플레이 메카닉과 구성의 촘촘함, 빠른 성장 속도에서 유발되고 있는데, 이게 아는 맛인 듯 하면서도 뻔하지가 않고 손이 계속 가게 만들어져 있다.
이 게임의 매력이 육각형 형태로 꽉 차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진 못하다 말하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처음 손을 얹어볼 용기만 내신다면, 큰 고민이나 부담 없이 매우 직관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되어줄 것이다./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제약을 계속해서 깨트려나가는 게임

'세계 멸망 이후'의 시점에서 <어센드 투 제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간의 틈새로 들어가 제한 시간 동안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인 주인공은, 타임머신에 몸을 맡기며 30초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과거에서 바꿀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 헤맨다.
게임의 플레이 방식은 굉장히 직관적이다. 우클릭을 하는 지점으로 대시를 하고, 최대 6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무기는 자동으로 공격을 해주며,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것으로 시간을 멈췄다 다시 흐르게 만들 수 있다.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시간이 멈춰진 동안에는 (일부 스킬의 지속 딜 등을 제외하면) 직접 공격은 할 수 없지만 이동 및 스킬 사전 시전 등은 모두 자유롭게 가능하다.
시간을 멈추는 길이에는 제약이 없으니, 시간을 멈춘 채 충분히 시간을 써도 되고 이동하고 싶은 지점까지 이동해도 된다.
핵심은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때 시전되는 '아바타 스킬'이 강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탄막이나 패턴 등을 피하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얼마나 적에게 유효타를 잘 넣느냐로 갈리게 된다.

눈썰미가 빠른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30초가 제약이라고 말했으면서 스크린샷에는 최대 시간이 50초 이상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타임머신에 몸을 싣기 전에 여러 형태로 스탯 및 제약을 조정하고 출발할 수 있기도 하고, 게임 진행 중에도 최대 시간을 늘리거나, 보스급 몬스터들을 잡는 것으로 시간을 회복하는 등, 더 긴 플레이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게끔 하고 있다.
게임 후반부로 가면 최대 시간이 250초를 거뜬히 넘기고 시간을 계속 회복하며 플레이를 이어가면 한 번의 런에 30분 이상을 쓰는 일도 흔하다. 그렇다고 게임이 무작정 길어지거나 루즈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체력이 0이 되어도 그대로 죽는 형태가 아니라, 부활에 시간이 대폭 소모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0초에 도달해 강제복귀되는 상황을 마주하기 전까지 넉넉한 시간을 유지만 한다면 여러 목숨을 들고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감각 자체만 남기면 여러 번 죽어가면서도 시간을 계속해서 멈추고 흐르게 만들며 분투하는 모습처럼 다가오게 된다.
▲ 중부반부 전투 장면 중 일부
제약을 깨는 것은 시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가장 자주 보게 되는 화면은 메인 전투 상황을 제외하면 인벤토리일 정도로, 무기를 포함한 여러 장비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센드 투 제로>는 이러한 장비와 관련된 경험 설계가 참 잘 되어 있다고 느껴진 게임이다.
재밌게도 맨 처음엔 '아바타 스킬'(시간이 다시 흐르게 만들 때 발동되는 강력한 스킬)이 더 강하게 다가와서 '장비' 세팅은 수치가 높은 걸 고르는 정도에 그친다. 그런데 오히려 이 '아바타'를 잘 활용하기 위해 장비 세팅에도 다시 신경을 쓰게 만드는 구조다.
▲ '아바타' 예시
가령 '벚꽃 무사'는 시간이 다시 흐를 때 일직선상으로 강하게 적들을 베며 나아가는데, 무기 슬롯 6개 중에 '검' 태그가 붙은 무기가 많을 수록 더 효율이 좋아진다. 무기는 '검', '창', '드론', '총', '대포' 등 다양한 분류로 마련되어 있다.
이건 무기의 '형태'일 뿐이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런' 진행 과정에서 로그라이크 형태로 등장하는 '기술칩'과의 연계를 고려하기 위해 '베기', '범위' 같은 공격 방식, '중독', '마비', '화상' 같은 상태이상도 같이 고려하게 된다.
처음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던 각종 태그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눈에 들어오게 설계된 것이다.
▲ 기술칩 예시
▲ 인벤토리 예시
개발진은 일본의 인플레이션 RPG 스타일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었다. 쉽게 말해 처음엔 매우 낮은 수치에서 시작해, 매우 빠르게 십만, 백만, 천만 단위의 재화나 강력한 전투력으로 진입하는, 성장 커브가 매우 가파른 게임에서 오는 재미를 강조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재화나 기본 수치들에서만 전해지는 게 아니다.
<어센드 투 제로>에서는 반투명한 상태의 장비는 한 번의 런에서 사용하고 나면 파괴되는 비영구 아이템인데, 본진에 돌아오고 나서 특정 재화를 사용하면 '영구 아이템'으로 바꿀 수 있는 변환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한 번의 런에서 굉장히 많은 아이템을 건져서(심지어는 100칸인 인벤토리가 꽉 차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불필요한 아이템은 다 추출해서 재화로 만들어버리고, 필요한 아이템만 영구 아이템으로 바꿔 세팅을 해나가는 방식이 중심에 있다.
중후반부에선 장비 '세트' 조합 효과가 매우 강력하거나, 각종 옵션끼리의 연계 및 시너지를 생각해서 세팅하면 기본 수치로 강해지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상태로 싸울 수 있게 해주는 때가 많다.
▲ 왜 인플레이션 RPG를 벤치마킹했다고 하는지는, 장비의 보너스 효과가 발동되는 코인 보류양 요구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코인 획득을 많이 할 수 있고, 코인 획득량이 공격력과 연계되기도 하는 '냉혈의 해커' 아바타를 쓰면 꽤 금방 도달하는 코인 수치다.
▲ 특정 아바타 또는 장비끼리의 세팅에서 매우 강한 시너지 효과를 가진 장비들도 많다. 이 보너스 효과들이 본래의 효과보다 강한 때도 많아, 파밍에 더 초집중할 수밖에 없다.
아이템 파밍에서 오는 '도파민'이 이 게임의 핵심 재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장감이 일품인 타이틀이다.
특히나 추출, 변환 등에 들어가는 재화도 ('드론'을 중심으로 싸우는 아바타 기준) 아쉬워할 수준보다 훨씬 더 여유 있게 얻어지게 설계되어 있어 답답함이 없는 것도 좋았다.
▲ 적이 얼마나 강해지고 본인이 또 얼마나 강해지는지는 보스 체력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매우 가파른 성장폭을 보여주는 게임인데, 그 과정이 매끄럽게 설계된 게 특징이다.
# 당신이 기대해도 좋은 것, 기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사실 '시간을 멈췄다가 다시 흐르게 한다'는 플레이 기믹을 말로만 들었을 때 기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명작은, 이제는 <하데스>로 너무나도 유명한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의 <트랜지스터>였다.
앞서의 설명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어센드 투 제로>의 경험은 <트랜지스터>의 방향성과는 많이 다른 게임이다.
<트랜지스터>가 스킬과 액션 동선에 치중하면서도, 스토리, 음악, 음성 연기, 아트 스타일, 그래픽 모두 육각형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줬다면, <어센드 투 제로>는 멈추고 다시 돌격하기를 반복하는 쾌속 액션을 중심에 두고 인벤토리 및 스탯 매니징에 집중했다.
▲ <트랜지스터>
▲ <어센드 투 제로>
두 게임을 이렇게 나란히 놓고 비교를 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선 기자 본인도 조금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트랜지스터>를 만든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의 대표작은 <배스천>, <하데스> 등으로 인디게임 개발사들 중에선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 소위 명가다.
<어센드 투 제로>의 플라이웨이 게임즈는 크래프톤의 자회사 중 한 곳으로, 개발 단계에서 빠르게 테스트 단계에 진입해 피드백을 기반으로 게임을 깎아나가는 데 특화된 곳 중 하나다.
<어센드 투 제로> 데모 버전 또한 스팀의 별도 페이지를 통해 올라와 386개 리뷰 중 92%가 긍정적인 호평을 받은 바 있고, 테스트 과정에서 받은 피드백으로 살을 많이 붙여온 게임이다.

<트랜지스터>의 예술성과는 조금 다른 결이지만, <어센드 투 제로>의 비주얼과 사운드도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각진 복셀 그래픽 위에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굉장히 화려한 이펙트와 빠른 속도감으로 전투는 또 멋지게 풀어내고 있다.
로그라이트 게임 특성상 여러 차례 반복 도전을 하게 되는데, 음악이나 사운드가 빈약하면 이런 도전 과정에서 금세 질리기 마련이지만, <어센드 투 제로>는 적절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면서도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드는 음악 및 템포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음성 더빙 지원을 해준 점도 좋았다. 한국어 음성도 좋은 편이고, 특히 일본어 음성은 키토 아카리 성우(<귀멸의 칼날> 네즈코)가 열연했다.
다만, '시간'을 멈추거나 과거로 회귀한다고 해서 엄청난 스토리나 굉장한 서사적 연출이 뒷받침 되어줄 것이라 기대하면 조금 곤란하다.(보통 이런 소재를 다루는 소설, 애니, 영화 중에 스토리 명작이 많으니 하는 얘기다)
물론 <어센드 투 제로>에도 큰 스토리 줄기는 있고, 본진에서 다른 NPC들과 대화를 하거나 교감할 때 '시간을 멈춘 채' NPC들의 소지품이나 캐비닛 등을 건드리면 '재화'를 훔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등 재치 있는 연출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핵심 재미는 스토리 감상보다는 '도전' 과정과 '빠르게 강해지는 순간'들에서 나오는 도파민 쪽에 더 집중되어 있다.
사실 평소 기자의 개인적인 게임 취향으로만 놓고 보면, 완전한 육각형까지 바라진 않더라도 이런 설정이라면 서사가 조금은 더 있어줬으면 하고 바랐을 법도 한데, 이 게임을 하는 동안엔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이 시스템 안에서 강해지는 과정 그 자체를 그냥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레벨디자인이 절묘했기 때문이다.
장비 세팅하고 스탯 등에 재화를 투자한 뒤 도전하는 것의 반복이라는 게, 사실 단순할 수 있는 구성인데도 질리는 감이 없이 쭉 밀고 나가게 만드는 힘이 계속해서 있었다.
아는 맛을 맛있게 만드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건, 구태여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센드 투 제로>는 재미 하나만 놓고 보면 참 높이 평가할 만한 작품이라 본다.
▲ 트레일러 갈무리
오늘(13일) 정식 출시된 시점에서, 메타크리틱에 등록된 <어센드 투 제로> 평점들도 90점 한 개 80점 세 개로 꽤 준수한 편이다.
스팀에서 판매되고 있는 정가도 13,000원으로 저렴한 축에 속하며, 현재 출시 할인이 20% 적용되어 10,400원에 판매되고 있으니 가격 부담도 거의 없는 편이다.
기자 또한 20시간이 넘게 플레이를 하면서, 평소 그리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의 게임임에도 꽤 재밌게 즐겼다.
만약 당신이 단순한 조작으로도 빠른 쾌속 액션을 즐기고, 장비 세팅으로 이전보다 엄청나게 강해지는 감각을 손쉽게 느낄 수 있는 게임을 찾고 있다면 <어센드 투 제로>를 한 번쯤 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