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마블'은 1939년 설립된 포셋 코믹스가 1940년 발간한 <위즈코믹스 #2>에 등장했어요. 두 번째 이슈였지만 이 회사가 제대로 발행한 첫 이슈였죠.
첫 스토리 '캡틴마블을 소개합니다!(Introducing Captain Marvel!)'에서 '빌리 뱃슨'이란 아이가 동굴 속 마법사에게 여섯 장로의 힘을 받아 강력한 초인으로 변해요. 변신 주문이 바로 "샤잠!(Shazam)"이었죠.

▶ "샤잠!"을 외쳐 '캡틴 마블'로 변신하는 '빌리 뱃슨'.
맞아요, 지금 이 슈퍼히어로는 우리에게 '샤잠'으로 알려져 있어요. 현재의 '캡틴마블'은 마블의 여성 히어로죠. 원래의 '캡틴마블'이 '샤잠'으로 이름이 바뀐 데에는 DC의 흑역사가 있어요.
<슈퍼맨>의 대성공 이후 코믹스 회사가 우후죽순 생겼는데, 포셋도 그중 하나였어요. 편집자 윌리엄 파커는 첫 코믹스용 캐릭터들을 창작했는데, 그중 '캡틴썬더'라는 히어로가 신화 속 여섯 영웅의 특성을 한 캐릭터에 결합한 형태였어요.
저작권 문제로 이름을 바꿔야 하자 파커는 한 팀원의 제안으로 '캡틴마블'로 바꿨죠. <캡틴마블>은 '소년이 주인공'인 최초의 슈퍼히어로 코믹스였고, <슈퍼맨>, <배트맨>에 없던 유머가 있었어요. '어린이 상태'라는 약점 때문에 늘 강력하지는 않아 더 긴장감을 줬죠.

▶ 소년 빌리 뱃슨과 초인 캡틴 마블을 함께 담은 <위즈 코믹스> 표지.
어린이층에게 큰 인기를 얻어 1941년 <Adventures of Captain Marvel>로 실사영화화됐는데, 모든 슈퍼히어로 중 첫 사례였어요. 1944년에는 한 이슈가 130만 부를 넘겨 <슈퍼맨>의 흥행기록을 처음 넘기도 했죠.
<슈퍼맨>을 연재하던 디텍티브 코믹스 입장에서 '캡틴마블'은 망토, 강력한 힘, 비행능력, 히어로와 일반인의 두 정체성 등이 '슈퍼맨'과 닮은 '복제품'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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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슈퍼맨의 모습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슈퍼맨: 빌리언 달러 리미티드>(1942)의 한 장면.
1941년 6월, 디텍티브는 표절이니 발행을 중단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포셋이 응하지 않자 9월 5일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했어요. 1946년 디텍티브는 내셔널 코믹스 퍼블리케이션즈(내셔널)로 사명을 바꿔 소송도 내셔널 이름으로 진행됐죠.
그런데 1941년 말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이 2차 대전에 빠지면서 소송이 지연됐고, 그사이 <캡틴마블>은 <슈퍼맨>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어요. 1948년 재개된 재판의 1심 판결(1950년)은 표절은 맞지만 디텍티브 시절 저작권표시를 누락해 '슈퍼맨'이 공공재이므로 무죄라는 결론이었어요.
내셔널은 항소했고, 1951년 8월 항소심은 표시 누락에도 부분적 침해가 있으며 표절이 맞으니 포셋이 내셔널에 손해배상을 하라고 명령했죠.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슈퍼히어로 인기가 시들해졌어요. 1944년 정점을 찍은 <캡틴마블>도 발매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배상 판결 즈음엔 소송을 이어갈 의미가 없어졌죠.
코믹스 외에 유머, 성인물 등을 내던 거대 출판사 포셋은 내셔널과 합의를 택했어요. 1953년 배상금을 지급하고 캐릭터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고, 1954년 마지막 이슈 <The Marvel Family #89>를 낸 뒤 만화 사업부를 폐쇄했죠. 포셋이 사라지자 '캡틴마블' 상표권도 사라졌어요.

▶ <The Marvel Family #4>(1946) 표지. 포셋은 1954년까지
이때 내셔널이 상표권을 확보했다면 미래가 달랐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슈퍼보이', '지미 올슨'(슈퍼맨의 친구인 사진기자) 등으로 세계관을 넓히던 <슈퍼맨>의 인기는 여전했고, 1966년 <배트맨> TV판이 공전의 히트를 치자 내셔널은 <슈퍼맨>, <배트맨>에 더 집중했어요.
상황을 바꾼 건 일러스트레이터 카마인 인판티노였어요. 마블의 전신 타임리와 힐만, 프리즈 코믹스를 전전하다 1956년부터 내셔널의 2대 '플래시'를 전담했고, 1964년 새 '배트맨' 디자인으로 TV시리즈를 흥행시키자 1967년 아트디렉터, 같은 해 편집국장, 1971년 발행인까지 올랐죠.
그는 과거 '슈퍼맨'을 압도한 유일한 캐릭터가 '캡틴마블'임을 잘 알았고, '슈퍼맨'과 경쟁, 협력하는 계획을 세웠어요. 1972년 포셋과 라이선스 계약으로 '캡틴마블'을 가져왔지만, 이미 그 이름의 주인이 따로 있었어요.
타임리는 1951년 아틀라스로, 1960년대엔 마블 코믹스 브랜드를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포셋의 '캡틴마블'에 무심했지만, 1966년 한 작은 출판사가 <캡틴마블>을 잠시 연재하자 자기 브랜드 이름이 남의 손에서 나오면 안 된다고 판단했죠.
마블은 1967년 12월 크리족 전사 마-벨 설정으로 '캡틴마블'을 서둘러 데뷔시켰는데, 흥행보다 상표권 확보용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인판티노는 '캡틴마블'을 못 쓰고 변신 주문 "샤잠!(Shazam!)"을 제목으로, 로고 아래 'The Original Captain Marvel'이란 부제를 달았죠.
그러나 마블이 가만 두지 않아 이 부제마저 바꿔야 했죠. 인판티노가 <캡틴마블>을 낼 무렵 마블은 이미 DC를 추월한 상태였어요.
애초에 내셔널이 인판티노를 영입한 이유가 바로 마블의 추격이었어요. 1939년 타임리로 시작한 마블은 그해 <마블 코믹스>를 처음 냈고 1941년 <캡틴 아메리카>로 큰 성공을 거뒀어요. 하지만 짧은 전성기 뒤 긴 암흑기를 겪었고, 1951년 아틀라스로 바꾼 뒤엔 슈퍼히어로물을 포기하고 서부극, 공포물 등 여러 장르를 양으로 승부했죠.
1957년 여름 유통사가 파산하자 아틀라스는 내셔널의 유통 채널 인디펜던스 뉴스와 급히 계약했는데, 내셔널은 월 발행 타이틀 수를 제한했고 사장 굿맨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1941년 19세에 마블 편집장을 시작해 당시에도 그 자리에 있던 스탠 리는 이 제한 탓에 선택과 집중을 강요받았죠. 그는 로맨스, 서부극과 함께 SF 앤솔로지 4종을 만들었는데, '그루트'(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그 그루트) 같은 거대 괴수가 표지를 장식했고, 이 4종이 1960년대 마블의 도약을 이끌어요.

▶ 미 육군 복무 시절의 스탠 리(1942).
1960년 암흑기가 끝나갈 무렵 내셔널은 'JSA(Justice Society of America)'를 'JLA(Justice League of America)'로 리브랜딩해 인기 히어로를 총동원했고 곧바로 성공했어요. 굿맨은 때가 됐음을 깨닫고 1961년 스탠 리에게 "우리도!"를 주문하며 사명을 마블 코믹스로 바꿨죠.
그해 11월 첫 '팀 슈퍼히어로' <판타스틱 포>가 나왔지만, 스탠 리는 월 타이틀 수 제한에 발이 묶여 고민하다 약점과 인간적 고뇌가 담긴 입체적 히어로들을 만들어 앤솔로지로 데뷔시켰어요. <Tales of Suspense>에선 '캡틴 아메리카'가 귀환하고 '아이언맨'이 탄생해 둘의 경쟁이 여기서 시작돼요.
<Journey into Mystery>에선 '토르', <Tales to Astonish>에선 '앤트맨', <Strange Tales>에선 '닥터스트레인지'가 등장하죠. '캡틴 아메리카'를 빼면 모두 1962~1964년에 첫 데뷔했고, '헐크'와 '닉 퓨리'는 각자 잡지로 데뷔한 뒤 1960년대 중반 앤솔로지에 합류했어요. 2000년대 마블을 지금에 있게 한 어벤저스 대부분이 이때 등장했죠.
앤솔로지 외에 1962년 '스파이더맨'이 <어메이징 판타지>로, 1963년 <엑스맨>, 1964년 <데어데블>이 나와요.
'완벽하지 않은 히어로'들은 대중적으론 내셔널보다 인기가 덜했어요. 하지만 1950년대 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과 함께 10대를 보낸 이들이 청년이 됐고, 이 청년층에서 비전형적인 마블 캐릭터가 '마블 매니아'를 만들며 큰 인기를 끌었죠. 마블에 Geek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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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유없는 반항>(1955)의 제임스 딘.
1968년 굿맨은 회사를 모두 Perfect Film & Chemical Corporation에 매각했는데, 사장 마틴 애커먼은 몇 달 전 유통사 Curtis Circulation Company 사장도 겸임하던 차였어요. 애커먼이 마블과 커티스의 유통 계약을 맺으면서 마블은 드디어 내셔널에서 벗어나 유통의 자유를 얻었죠.
마블은 1968년 초부터 인디펜던스를 압박하며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를 앤솔로지와 합본하는 편법으로 독립을 시도했는데, 자유를 얻자 앤솔로지의 모든 영웅을 단독 코믹스로 독립시켰어요.
스탠 리의 영웅들은 처음엔 Geek 청년층의 지지를 받다 점차 대중적 인기를 얻어 1972년 마침내 내셔널을 밀어내고 판매량 1위를 차지해요.
그러나 1970년대는 코믹스 시장이 역사적으로 겪은 몇 번의 암흑기 중 하나예요. 그리고 코믹스의 암흑기도 슈퍼히어로의 황금기와 마찬가지로 시대환경에서 비롯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