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한 용과 같이 스튜디오의 신작 <스트레인저 댄 헤븐>에 이어 지난 6월 '빌리빌리 퍼스트룩' 현장에서 수많은 취재진의 시선이 쏠린 타이틀이 또 하나 있었으니,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작품이 유독 많은 기대를 모은 이유는 명확하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프랜차이즈 <포켓몬스터>를 탄생시킨 개발사, 게임프리크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무려' 게임프리크가 만든 AAA급 게임, 심지어 풀 3D 오픈월드 액션 RPG라니.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지 않은가. 기자 역시 가슴 가득 기대를 품고 시연대 앞에 섰다.
분명 기자보다도 훨씬 더 이번 작품을 기다려온 이들이 많을 것이다. 구구절절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이, 2시간 남짓 진행된 시연의 솔직한 소감을 전한다.

# 첫 술에 배부를리가... 있다!
게임프리크가 <포켓몬스터>의 아버지로 워낙 유명하지만, 사실 그전에도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한 이력이 있다. 다만 대부분 소규모 타이틀이었던 만큼, 이번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이야말로 이들의 첫 AAA급 액션 RPG 도전작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기에 이번 작품의 퀄리티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첫 술에 어찌 배부를 수 있겠는가. 다소 조악하더라도 이들의 첫 시도라는 점을 감안하며 플레이하려 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플레이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기대를 훨씬 웃돌 정도로 액션의 퀄리티는 훌륭했던 것이다.

스토리나 설정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전투와 액션에 집중해 보자. 주인공 '엠마'는 혈혈단신으로 일본도 한 자루에 의지해 강력한 적들을 상대한다.
나무 줄기와 덩굴, 이파리가 촘촘히 얽혀 거대한 동물의 형상을 이룬 '부식몬'과 알 수 없는 힘에 오염된 '골렘'―금속과 케이블로 이루어진 얄쌍한 로봇―의 공세는 매섭고 위협적이다. 보통 난이도 기준으로도 네댓 대만 허용하면 그대로 게임 오버 화면을 마주하게 될 정도다.
이 강력한 적들을 상대하는 핵심 열쇠는 이들의 공격을 타이밍에 맞춰 받아치는 것이다.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공격을 방어하면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공격이 튕겨 나가고, 공격자에게 스태거 게이지가 누적된다.
이 스태거 게이지가 가득 차면 적은 그로기에 빠지며, 이때 강력한 치명타 공격을 꽂아 넣을 수 있다. 액션 RPG 장르의 팬들에게는 익숙한 <세키로>의 문법이다.
▶ 적의 공격을 타이밍 맞게 가드하면 패링이 되고 적에게는 스태거 게이지가 누적된다.
▶ 스태거 게이지가 가득 찬 적에게는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다행히 적들의 패턴이 너무 복잡하지도 않고 정직한 편인데다 패링 판정도 널널해서 받아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패링에 성공하면 화면 하단에 특수 게이지가 한 칸씩 차오르는데, 이를 소모해 불릿 타임을 발동하여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이지를 소모하는 방법은 또 있다. 기본 공격 콤보 도중 특수 공격 키를 입력하면 게이지를 소모해 강력한 필살기를 사용하는데, 이때 발동되는 필살기는 몇 번째 기본 공격 뒤에 연계했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과거 <마비노기 영웅전>의 '스매시' 시스템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 특수 게이지를 소모해 발동하는 필살기. <마비노기 영웅전>의 '스매시'와 매커니즘이 비슷하다.
반려견 '쿠'와의 협공 역시 중요한 포인트다. 쿠는 전투 중 적극적으로 적들을 공격하며, 명령을 통해 쿠의 전용 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다.
쿠의 스킬은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 적의 속성과 상성인 스킬을 사용하면 위력이 배가된다. 게다가 스킬 발동 직후 QTE(Quick Time Event)에 성공하면 엠마의 체력을 일정량 회복시켜 주기까지 해 전투의 난이도를 낮추는 데 일조한다.
그밖에 쇠뇌와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예상했던 것보다 화력이 좋다. 유도탄을 연발로 사격하는 쇠뇌도 그렇고, 직접 조준해야 하는 활도 그렇고 일반 적들 정도는 쉽게 처치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무기와 화살을 강화하고, 스탯을 투자해 원거리 공격의 피해량을 높일 수도 있으니 충분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 명령을 통해 쿠의 전용 스킬을 시전할 수 있다.
▶ QTE에 성공하면 엠마의 체력이 소량 회복된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의 전투는 <세키로>의 문법을 적용한 빠른 호흡의 공방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누구든 익숙해지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딱 "맛있게 매운" 수준의 난이도를 선보였다. 이 같은 전투 시스템에 더해 엠마와 쿠의 액션도 상당히 훌륭했다. 첫 도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다만…

# 대단히 영화적인 소재, 그렇지 못한 연출
사실 이들의 첫 도전이라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은 따로 있으니, 바로 내러티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통해 꾸준히 노하우를 쌓아왔을 스토리와 서사 측면에서 오히려 아쉬운 부족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의 전작들이 그러했듯, 이번 작품의 세계관은 무척이나 훌륭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딱 2천 년 뒤인 4026년. 인간처럼 사고하는 안드로이드와 거대한 보행병기, 홀로그램 기술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찬란하게 발전했던 인류의 문명.
하지만 '부식몬'이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수도와 콜로니에 모여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대다수의 기술이 유실되면서 이들의 문화 수준은 중세 시대 수준으로 퇴보해 버렸다.
▶ 부식몬의 등장으로 퇴보해버린 인류 문명. 인물들의 복장의 일본의 중세 시대풍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름이 다소 촌스럽긴 해도 부식몬이라는 설정은 독특하고 또 매력적이다. 상술했듯 식물로 이루어진 이들은 발이 닿는 곳을 녹음으로 물들인다.
이들은 100년마다 등장해 세상에 오염된 기운을 퍼뜨렸고, 이에 인류는 이들을 '윤회의 짐승'이라 불렀다. 게임의 제목인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도 바로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주인공 엠마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부식몬의 특성을 지닌 이질적인 존재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잃어버린 상태다. 그녀의 반려견인 쿠 역시 부식몬의 능력을 각성한 상태이며, 둘은 함께 인류를 대신해 괴물들을 소탕하는 일종의 '정화병' 역할을 떠안게 된다.
여기까지의 서사를 훑어봐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명작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부식몬과 인간의 대립은 영화 속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갈등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누시'라 불리는 거대한 부식몬은 숲의 야생신을, 주인공 엠마와 쿠의 관계는 '아시타카'와 '산'의 유대를 쏙 빼닮았다.
▶ 걸음마다 숲을 일구며 다가오는 거대한 부식몬 '누시'. <모노노케 히메>의 야생신이 떠오른다.
이 외에도 게임 곳곳에서 영화적인 설정과 장치들을 엿볼 수 있다. 감정이 거세된 인간과 오히려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기계 골렘의 대비, 그리고 '카구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서서히 알아가는 엠마의 변화 같은 요소들이 그렇다.

▶ 쿠의 꼬리와 쓰러진 엠마의 땋은 머리가 연결되는 장면은 <아바타>의 장면과 상당히 비슷하다.
문제는 이토록 훌륭한 세계관과 설정을 갖춰놓고도, 이를 영화답게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게임은 진행 도중 몇 번의 과거 회상 씬을 통해 엠마의 전사(前史)를 풀어낸다.
다만, 이 연출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워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툭툭 끊는다. 플레이 측면에서도 과거 회상 구간에 진입하는 순간 생뚱맞게 새로운 튜토리얼이 재생되거나 전투 난이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등 흐름상 맞지 않는 이질적인 설계가 이어진다.
더욱 심각한 건 이를 보여주는 연출력이다. 전투 장면의 카메라워크는 무척이나 역동적이고 화려했던 반면, 스토리의 핵심이 되는 컷씬의 카메라워크는 지나치게 정적이고 단조로워 어색함이 감돌 정도다.
시·청각적 효과의 부재도 아쉽다. 거대한 부식몬이 등장해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임에도, 부식몬의 휘두르기 한 번에 인물이 철퍼덕 쓰러지는 장면이 아무런 특수 효과나 극적 연출 없이 밋밋하게 그려진다. 상황의 위중함에 비해 연출이 너무 허무하다 보니 화면을 보다가 되레 실소가 터질 지경이다.
▶ 거대한 부식몬이 등장한 긴박한 상황인데
▶ 정말 이 구도 그대로 부식몬의 발이 쓱 지나가고 맞았는지도 모를 사람이 철퍼덕 쓰러진다. 이게 최선이었을까… ?
정리하자면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이 보여준 탐험과 성장, 그리고 전투라는 게임플레이의 완성도는 첫 AAA급 도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견고하고 훌륭했다. 다만 매력적인 세계관과 설정을 품고서도 이를 흡입력 있는 연출로 풀어내지 못한 점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임이 오는 8월 출시를 앞두고 있는 만큼, 이번 시연회에서 지적된 연출적 한계를 본편에서 완전히 수정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결국 관건은 아직 베일에 싸인 본편의 스토리 전개일 것이다.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충분히 입증했으니, 정식 버전에서는 이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 위에 걸맞은 내러티브가 아름답게 얹어지기를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 그래도 쿠는 엄청 귀여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