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이어, 6월 12일부터 16일까지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빌리빌리 퍼스트룩(Bilibili Firstlook)' 행사에 다녀왔다. 일반 게이머 대상의 대규모 B2C 행사 '빌리빌리 월드'와 달리 현지 미디어와 인플루언서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자리는, 미국의 대형 게임쇼 '서머 게임 페스트'와 연계하여 글로벌 기대작들을 아시아 지역에 최초로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로 꾸며졌다.

수많은 신작들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타이틀은 세가와 용과같이 스튜디오의 신작 액션 게임 <스트레인저 댄 헤븐>(이하 STH)이었다. 그간 독특한 분위기의 티저 외에는 구체적인 정보가 베일에 싸여 있었던 만큼, 이번 행사에서 공개된 최초의 데모 빌드는 이들이 예고한 '새로운 액션 디자인'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볼 좋은 기회였다.
다만 아쉽게도 솔직히 말하면 시연은 짧았다. 그것도 무척이나. 스포일러 방지 차원이었는지 스토리 관련 콘텐츠는 전무했고, 오직 전투 콘텐츠만 콤팩트하게 공개됐다. 쉬움, 보통, 어려움 난이도에 순차적으로 도전하는 대단히 직관적이고 단순한 구조의 시연 빌드였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들의 전작 <용과 같이> 시리즈의 전투―빠르고 호쾌한 일대다 전투를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또 다른 게임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와 비슷하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대전 격투 게임의 조작 체계에 소울라이크 특유의 묵직한 공방을 절묘하게 결합해 낸 느낌에 가깝달까.

# 격투 게임의 조작, 소울라이크의 공방
<STH>의 조작 체계는 대전 격투 게임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용과 같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존 액션 게임이 1~2개의 버튼으로 미리 짜인 콤보를 발동하는 방식이었다면, <STH>는 왼쪽 약·강공격, 오른쪽 약·강공격 등 총 4개의 버튼을 활용해 유저가 자유롭게 연격을 조합하는 시스템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구현된 액션은 제법 정교하고 또 사실적이다. 가장 기본적인 콤비네이션인 원-투, 즉 왼손 잽과 오른손 스트레이트는 왼쪽과 오른쪽 약공격을 순서대로 눌러야 하며, 오른쪽 버튼만 연달아 입력하면 캐릭터 역시 오른쪽 손발만 휘두른다. 이처럼 입력한 그대로 캐릭터가 정직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유저의 숙련도에 따라 만들어낼 수 있는 콤보의 가짓수도 무궁무진해진다.
▶ 왼쪽 버튼만 입력한 콤비네이션. 왼쪽과 오른쪽 버튼을 어떻게 입력하느냐에 따라 콤비네이션도 달라진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공방의 핵심인 방어와 회피 역시 이 독특한 조작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가령 적에게 오른팔을 붙잡힌 상황을 예로 들면, 이때는 오른쪽 공격 버튼을 아무리 눌러봐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전히 자유로운 왼팔 버튼을 조작해 붙잡은 적의 안면을 흠씬 두들겨 패야 붙잡힌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식이다.
가드와 회피 역시 마찬가지다. 여타 액션 게임처럼 '저스트 가드'와 '저스트 회피'가 존재하지만, 타이밍을 맞추는 것에서 나아가 공격을 받아낸 이후 그에 맞는 방향의 버튼을 입력해야 강력한 반격기가 발동된다. 오른쪽으로 회피한 이후에는 오른쪽 버튼을, 저스트 가드 성공 후에도 피격 방향에 맞는 공격을 이어받아야 카운터가 성립하는 구조다.
▶ 놓으라고! 놓으라고 했다!
이 같은 시스템을 탑재한 탓일까, 공방의 호흡은 상당히 길고 느리다. <용과 같이> 시리즈와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그 체감 속도가 거진 무궁화호와 KTX 수준이다. 첫인상이 일반적인 스타일리시 액션보다 소울라이크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구간이 늘어지는 것은 아니다. 1943년 오사카 스테이지에서 마주한 이름 모를 검객처럼, 앞선 감상을 비웃듯 번개 같은 연격을 몰아치는 적들도 등장한다. 그 짧은 시연에서 피와 땀으로 배운 교훈이다.
이처럼 새로운 조작 체계의 도입과 이를 기반으로 한 사실적인 전투 시스템은 충분히 높게 평가할 만한 시도다. 다만, 패드의 범퍼와 트리거를 주 조작키로 배치한 탓에 적응하기까지 꽤 애를 먹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면 버튼(A/B/X/Y) 배치가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가볍게 '누르는' 느낌이 아니라 측면 버튼 특유의 '당기는' 조작감 탓에 미세한 공방 타이밍을 맞추기가 제법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 그래도 낯선 조작감에만 익숙해지면 이런 호쾌한 손맛도 느껴볼 수 있다.
# 제한 없는 무기 사용! 그런데 맨손 공격은...?
앞서 소개한 독특한 조작 체계 만큼이나 흥미로운 <STH> 전투의 또 다른 축은 바로 '무기'다.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도 무기는 등장했으나 대부분 일정 횟수만 사용 가능한 소모품에 가까웠다. 반면, <STH>에서는 대장간에서 원하는 무기를 제작해 장착할 수 있으며 이를 횟수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번 시연 버전에서는 누아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시미 같은 한손검과 묵직한 크로우바(빠루) 형태의 양손 둔기 등 두 종류의 무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두 무기의 크기와 성질이 다른 만큼, 이를 활용한 전투 스타일도 판이하게 갈렸다.
무기를 사용하는 공격 역시 좌우 조작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은 퍽 인상적이다. 예컨대 한손검은 오른손에 쥐어지므로 오른쪽 버튼을 입력해야 한손검으로 찌르거나 크게 베는 공격이 나간다. 한손검을 들고 왼쪽 버튼을 입력하면 맨손으로 적을 공격한다. 이게 왜 필요한가 싶겠지만, 상대의 가드를 무너뜨릴 때 왼손으로 때려야 하는 상황이 있어서 그렇다.
▶ 한손검을 들고 있을 때도 왼쪽 버튼을 입력하면 맨손으로 공격한다. 이유는 칼을 오른손에 쥐고 있으니까.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대로, 한손검은 비교적 피해량이 낮은 대신 모션의 딜레이가 짧고 공격 속도가 빠른 편이다. 약공격은 전방을 빠르게 찌르고, 강공격은 칼을 크게 휘둘러 넓은 범위를 벤다. 공방의 타이밍이 중요한 게임 특성상 약공격을 중심으로 사용하다가 한 번씩 타이밍이 생길 때 강공격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반면 양손둔기는 느린 대신 확실한 피해량을 자랑했다. 대부분의 공격에 전방을 휩쓰는 모션이 있어 주변 적들을 한번에 공격하기에 용이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모션의 딜레이가 너무 길고 무엇보다 연속 공격을 중단할 수가 없어, 다른 적들의 공격에 무방비해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해 자주 쓰기는 힘들었다.
▶ 이미지에서도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
이쯤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럼 맨손 공격은 어디에 쓰이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무기의 사용 횟수 제한도 없고, 성능마저 훨씬 강력하니 맨손 공격의 쓰임새를 찾기가 어려웠다.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맨손 공격의 독자적인 메리트가 드러날지, 추후 공개될 정보를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 한손검으로도 이렇게 빠르고 강력하게 공격할 수 있는데, 맨손 공격은 어디에 쓰일지 의문이다.
# 짧은 시연에서도 확실히 남긴 임팩트
아쉬움을 담아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시연은 무척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남긴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쉬움, 보통 난이도의 전투는 어찌저찌 넘길 수 있었지만, 어려움 난이도는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이름 모를 검객은 찰나의 순간 거리를 좁혀 치명상을 입히는가 하면, 그로기 상태인 척 위장해 방심한 플레이어에게 카운터를 날리고, 때로는 가드 불가능한 일격으로 순식간에 화면을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 아... 가불기는 너무한데...
이 과정이 유독 고달프게 다가온 이유는 게임 내에 어떠한 가이드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저스트 가드에 성공한 직후 어느 방향의 버튼을 눌러야 반격이 나가는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시각적으로 보여줬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런 힌트도 주어지지 않아 온전히 온몸으로 부딪치며 타이밍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되는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상대의 패턴을 완벽히 숙지했을 때의 쾌감은 여느 소울라이크 게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쏟아지는 상대의 연격을 기어코 다 받아내고, 집요하게 빈틈을 파고들어 마침내 쓰러뜨린 순간. 그제야 꽉 쥐고 있던 패드를 내려놓고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안도의 탄성을 뱉어낼 수 있었다.
▶ 와! 다 막았다!!
이번 시연에서 공개된 <STH>는 진입 장벽이 명확한 게임이다. 독특하다 못해 생소한 조작 체계와 높은 전투 난이도는 대중성과 확실히 거리가 멀다. 결국 이 낯선 공방을 충분히 숙지하게 만들어줄 레벨 디자인, 그리고 시행착오에 지치지 않고 게임을 붙들게 만드는 스토리가 정식 버전의 흥행을 가를 열쇠일 것이다. 이 매력적인 도전 과제가 본편에서 어떤 무대와 이야기로 완성될지 차분히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