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얼라이드 퍼블리케이션즈는 1934년 말콤 휠러니콜슨이 설립한 출판사예요. 전 세계를 누비며 미군에 복무하던 휠러니콜슨은 내부고발을 계기로 1923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군복을 벗어요.
이후 파란만장했던 군 생활을 자양분 삼아 모험 이야기와 밀리터리 에세이를 쓰는 작가가 됐어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그는 작가로서 출판 시장을 접하다 코믹북 시장의 혁신을 만나게 돼요.
'옐로우 저널리즘'이란 단어의 기원이 된 19세기 최초의 코믹 스트립 <옐로 키드>에서 시작된 만화 시장이 1930년대에 엄청난 혁신을 맞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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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옐로 키드>.
1933년, 이스턴 컬러라는 인쇄소의 맥스 게인즈가 이후 미국 코믹스의 표준이 되는 컬러 만화 코믹북 형식을 고안해요. 이 형식으로 '더 퍼니스'에 연재된 코믹 스트립을 엮어 P&G 상품 홍보용으로 배포한 '퍼니스 온 퍼레이드'가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이스턴 컬러는 같은 해 델 퍼블리싱을 통해 'Famous Funnies: A Carnival of Comics'를 출판하는데, 이게 미국 역사상 최초의 코믹북이에요. 이듬해인 1934년에는 다음 호를 무료가 아닌 10센트를 받고 팔기 시작했고요.
휠러니콜슨도 코믹북 출판 시장에 뛰어들기로 결심해요. 아이디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출판하려면 콘텐츠를 확보해야 했죠.
그런데 인기 있는 코믹 스트립은 단행본 인기가 커지면서 이미 다른 출판사들에게 판권이 넘어가 있었어요.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자신도 작가였으니까요.
인기 코믹 스트립을 확보할 수 없다면 오리지널 코믹을 만들자고 결심해요. 다른 단행본들이 모두 검증된 코믹 스트립을 '재인쇄'하던 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는 발상은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그였기에 가능했어요.
1934년 가을 회사를 세운 그는 이듬해 1월 첫 잡지 '뉴 펀 코믹스'를 발행해요. 이때는 대부분의 만화를 직접 기획하고 스토리를 쓰면서, 그림은 외주 작가와 협업해 연재했어요.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의 <닥터 오컬트>가 6호에 실리고, 7호부터 잡지 이름이 모어펀(More Fun)으로 바뀌어요.
1936년, 뛰어난 혁신가였지만 경영자는 아니었던 그에게 위기가 와요. 인기 있던 탐정물 잡지를 만들고 싶었지만 재무 상황이 나빴거든요.
그는 도색잡지로 감옥에 갈 뻔했던 해리 도넨펠드의 '인디펜던트 뉴스'에 손을 내밀어요.
탐정물에 대한 열정 덕에 1936년 연말 '디텍티브 코믹스'라는 회사가 세워지지만, 이 과정에서 도넨펠드와 그의 회계사 잭 리보위츠에게 큰 빚을 지게 돼요. 게다가 디텍티브 코믹스의 소유주로는 잭 리보위츠를 등록해야 했고요.

▶ 군복을 입은 말콤 휠러니콜슨(1922)
디텍티브 코믹스는 이듬해 3월 창간호를 내는데, 표지는 편집장 빈 설리반이 직접 그렸어요. 표지에는 'Sen Yoi'라는 악당이 그려졌는데, 이 잡지의 <Bruce Nelson>에 등장하는 중국인 악당이었어요.
당시 미국은 경제공황을 겪고 있었고, 유럽에서 그 화살이 주로 유대인을 향했듯 미국에서는 값싼 임금으로 일하던 중국인과 이민자들에게 향했어요.
이는 중국인, 황인종 혐오로 이어졌고 푸만추(Fu Manchu) 같은 캐릭터 탄생의 계기가 됐죠. 역사적인 창간호에 인종차별적 표지를 그린 건 이 회사의 흑역사로 남았어요.

▶ 색스 로머의 소설 <더 마스크 오브 푸 만추>.
창간호에는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가 휠러니콜슨의 아이디어로 만든 <슬램 브레들리>도 실렸어요. 슈퍼맨 작가로 유명한 두 사람의 작품이 디텍티브 코믹스에 실린 역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건, '디텍티브 코믹스의 상징과도 같은 유명한 작품'이 27호에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휠러니콜슨은 창간을 준비하면서도 탐정물에 이어 액션을 테마로 한 새 잡지를 구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재무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죠.
인쇄 대금을 빌미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도넨펠드는 휠러니콜슨 부부에게 '워킹 휴가'를 권했고, 부부는 디텍티브 코믹스가 창간되던 1937년 3월 쿠바로 떠나요.
그 사이 도넨펠드는 코믹북을 과다 인쇄하고 장부를 조작해 적자 상황을 만들며 회사를 접수할 전략을 실행했어요. 휴가에서 돌아온 휠러니콜슨을 맞은 건 회사가 떠안은 빚이었죠.
그해 말, 도넨펠드는 빌려준 대금을 근거로 채무 불이행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내셔널 얼라이드 퍼블리케이션즈를 파산 법정으로 몰아넣어요.
재판은 도넨펠드의 정치적 인맥인 에이브 메닌(Abe Menin) 판사가 진행했고, 당연히 절차는 철저히 도넨펠드에게 유리했어요. 1938년 초, 도넨펠드와 잭 리보위츠는 파산 경매로 회사를 헐값에 사들여 소유권을 완전히 장악해요.
회사를 장악한 리보위츠는 휠러니콜슨이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새 잡지 출간을 결정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액션 코믹스'예요.
설리반은 액션에 어울리는 만화를 서둘러 찾았고, 때마침 맥스 게인즈가 슈퍼맨을 보여줬어요. 마감이 다가오도록 원고가 부족했던 그에게 슈퍼맨은 '매우' 적합했죠.
설리반이 경영진에게 소개하자, 잭 리보위츠는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에게 단돈 130달러를 주고 판권을 사들여요. 1938년 3월 1일의 일이에요.
1938년 4월 18일, 액션코믹스가 출간돼요. 20만 부 인쇄한 초판은 바로 매진됐는데, 당시 코믹스 시장에서 이례적일 만큼 반품 없는 매진이었어요. 비운의 휠러니콜슨이 쫓겨난 지 겨우 3개월 만이었죠.
창간호 표지는 조 슈스터가 그린 슈퍼맨이었어요. 이 표지는 지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코믹스 표지이자 슈퍼 히어로 장르 탄생의 상징이에요.

▶ '액션 코믹스'.
이 창간호의 경매가는 늘 만화책 경매가 1위를 경신해 왔는데, 2024년 4월 600만 달러를 기록했어요. 이 기록은 2025년 11월 다른 코믹북이 912만 달러에 낙찰되며 깨지는데,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슈퍼맨 단행본 첫 편이에요.
처음에 도넨펠드는 이 표지를 매우 싫어했어요. 사실 대박이 난 이유를 당시 회사의 누구도 몰랐죠.
도넨펠드는 설리반에게 다시는 슈퍼맨을 표지에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고, 실제로 한동안 슈퍼맨은 표지에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들은 만화 보는 안목은 모자라도 비상한 장사꾼이었어요. 잡지가 왜 잘 팔리는지 조사한 결과, 독자들이 '액션코믹스'라는 이름이 아니라 '파란 옷 입고 날아다니는 남자 나오는 만화책(the one with the guy in the blue suit who flies)'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마음을 바꾼 이들 덕에 슈퍼맨은 7호 표지에 다시 등장했고, 나중에는 표지를 독차지하다시피 했어요.
그리고 이듬해 1939년 5월 18일, 최초의 슈퍼히어로 코믹북 슈퍼맨이 출간돼요. 슈퍼맨의 엄청난 흥행은 이후 미국 대중출판 업계 전체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만들게 돼요.

▶ 912만 달러에 낙찰된 슈퍼맨 단행본 첫 편. (출처: 헤리티지 옥션)
✍️ 스칼렛오하라 - 비덕
덕후는 아니지만 주변에 덕후가 많아 덕후들과 어울리며 결국 그들을 경외하고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해리포터에서의 머글과 같은 포지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