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텀업과 탑다운.
넥슨과 크래프톤이 AI 전환을 시작한 방식은 정반대였다. 한편 NDC 2026 대담에서 드러난 건, 출발점의 차이보다 도착한 곳의 유사성이었다.
경희대학교 김상균 교수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번 대담에서 넥슨코리아 강덕원 AI본부 본부장과 크래프톤 임경영 VP는 각자의 AX(AI Transformation) 과정에서 무엇을 시도하고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공유했다.

# 시도: 서로 다른 출발, 비슷한 방향
넥슨의 AX는 바텀업, 즉 현장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에서 출발했다.
강덕원 본부장은 "처음부터 하나의 표준 방식으로 AX를 추진하기가 어려웠다"며 초기에는 AI 리터러시 교육과 조직별 성공 사례 전파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전사 3,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슬랙 AI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각 조직에서 AX를 주도할 챔피언을 발굴하는 것이 초기 전략의 핵심이었다.
크래프톤은 경영진이 방향을 정해 아래로 내려보내는 탑다운 방식을 택했다. 임경영 VP는 "최상위 조직장의 강력한 의지 표현이 가장 큰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경영진이 AI 퍼스트를 전사 방침으로 공식 선언했고, 올해 2월 전사 서베이에서는 직원의 97.6%가 AI 툴을 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탑다운 선언이 실질적인 사용률 변화로 이어진 셈이다.
다만 크래프톤 역시 단위 업무별 시행착오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인프라 구축을 병행했다. 사내 공통 배포 파이프라인인 '크래프톤 플레이그라운드'와 데이터 파운데이션을 구축해 현업이 AI 툴로 만든 결과물을 자산화할 수 있는 기반을 먼저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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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원 넥슨코리아 AI본부 본부장.
두 기업 모두 가장 뚜렷하게 체감한 변화로 데이터 활용 방식의 전환을 꼽았다. 강덕원 본부장은 "운영 콘솔 구축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라이브 서비스 대응에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하거나 운영 도구를 만들기 위해 별도 조직에 요청하고 기다려야 했다. 이슈가 발생해도 대응이 뒤늦어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AX가 본격화되면서 각 조직이 AI 기반 모니터링 도구와 운영 콘솔을 직접 개발하고 운영하는 구조로 전환됐고, 데이터 리터러시가 높아지면서 신뢰도도 함께 올라갔다. 기존 데이터 분석가들은 단순 추출 업무에서 벗어나 고난도 분석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크래프톤에서는 코딩 경험이 전혀 없는 HR 직원이 Claude Code와 Codex를 사용해 채용 면접 일정 조율부터 이메일 발송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툴을 해커톤에서 직접 만들어낸 사례가 대표적 변화로 언급됐다.
성공 사례와 더불어 실패 사례도 공유됐다. 넥슨의 대표적인 실패는 오픈소스 AI 에이전트 툴인 오픈 클로의 전사 도입 시도였다.
경영진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했지만, 도입 과정에서 보안 이슈가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버전인 'NX 클로'를 개발했다. 그러나 오픈소스 원본이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되면서 따라가는 것 자체가 과도한 운영 부담으로 돌아왔다.
강덕원 본부장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지속 가능한 것은 다르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메일 업무를 오픈 클로로 처리하려 했지만 AI 에이전트가 메일 한 통 보내는 것보다 훨씬 느리게 동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었다. 기존 워크플로우를 그대로 답습한 채 AI만 얹어서는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크래프톤은 대형 엔터프라이즈 툴을 섣불리 도입했다가 회사 고유의 업무 특성에 맞게 세밀하게 조정하기 어려운 한계를 경험했고, AI로 만든 툴이 실제 사용자 수를 늘리지 못한 채 사장된 사례도 있었다.
임경영 VP는 "경험은 남지만 사용되지 않는 툴은 실패한 경험"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어떻게 다음 시도로 연결할지를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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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영 크래프톤 VP.
# 현실: 가능한 것과 지속 가능한 것은 다르다
두 기업 모두 AX에서 가장 큰 허들로 성공 사례를 조직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꼽았다.
넥슨은 바텀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탑다운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AI 본부가 AX 추진 현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진행이 더딘 조직에는 맞춤형 사례를 제안하며 이미 앞서 나간 조직과 연결해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브릿지 역할을 맡고 있다.
크래프톤은 현업 조직 곳곳에 AI 전문 인력을 파견해 기술·인프라·방법론 관련 문의를 현장에서 즉시 해결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사내 AI 포털을 앱스토어 형태로 구성해 누구든 권한만 있으면 내부에서 만들어진 AI 툴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리더는 게임 산업의 AX가 금융, 유통, 통신 등 다른 산업과 구별되는 지점도 명확히 했다.
강덕원 본부장은 "게임은 재미를 만드는 산업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며 AX를 정의하기 쉬운 영역과 어려운 영역이 다른 산업보다 훨씬 명확하게 갈린다고 설명했다.
창의성과 판단이 중심이 되는 영역에 AX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되면 "AI가 무엇을 대신하는가"보다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과정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임경영 VP는 게임 산업이 AI 도입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이나 커머스는 레귤레이션 이슈로 인해 AI 적용 범위가 제한되는 반면, 게임은 크리에이티브가 중심이기 때문에 AI로 반복 작업을 줄여 절약한 시간을 더 나은 에셋과 더 정교한 게임 경험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AX의 현실적 과제로 비용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넥슨은 초기 바텀업 확산 과정에서 AI 도구 비용이 예상을 크게 초과했다고 인정했다.
강덕원 본부장은 "비용보다 더 큰 과제는 그 비용이 얼마나 가치 있는 업무로 연결되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일"이라며 토큰 사용량·활용 패턴·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종합해 토큰 효용성을 분석하는 모델을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개발 일정이 한 달 단축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토큰 비용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래프톤은 토큰 비용, 엔터프라이즈 시트 비용, 개인 구독 비용 세 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비용 대시보드를 구축했다.
임경영 VP는 "AI 리터러시가 낮은 조직에는 토큰을 많이 쓰도록 장려하고, 어느 정도 성숙한 조직에는 효율적으로 쓰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기업 모두 방대한 게임 데이터를 AI가 활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작업에서도 공통된 고민을 안고 있었다.
넥슨은 모든 게임 데이터를 단일 표준화하기보다 유연한 데이터 구조 안에서 데이터의 위치와 연관관계를 명확히 기록하는 온톨로지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게임 제작 에셋과 비제작 에셋을 분리해 온톨로지 기반 데이터 카탈로그를 구성했고, 유럽·국내·일본·중국 등 지역별 AI 관련 법규를 반영한 거버넌스 체계를 별도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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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균 경희대학교 교수.
# 전환: AI를 얹는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
두 기업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기존 워크플로우에 AI를 단순히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넥슨은 현재 기존 업무를 에이전트가 수행할 수 있는 단위로 분해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강덕원 본부장은 이 과정이 완성되면 AI 네이티브 워크플로우의 전체 그림이 드러날 것이며, 그 시점에서 비로소 사람이 집중해야 할 업무의 본질을 다시 정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크래프톤은 단위 조직에서 인풋과 아웃풋이 연결된 하나의 자동화 덩어리를 만드는 '임팩트 과제'를 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슬랙으로 인입된 업무를 처리해 다시 슬랙으로 회신하는 전체 흐름을 AI로 자동화하는 것이 현재 단계의 목표다.
진척도 평가 기준을 묻는 질문에도 두 기업의 온도 차가 드러났다.
강덕원 본부장은 현재는 업무의 에이전트화 여부를 중심으로 측정하되, 장기적으로는 시간·비용 절감을 넘어 이전에 불가능했던 가치 창출 여부와 혁신 수준까지 평가 기준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경영 VP는 정량적 평가 기준 설정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묻고 설명하는 과정이 활발할수록 유효한 AX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현재 크래프톤의 판단 기준이다.
대담 말미, 임경영 VP는 "넥슨과 크래프톤이 너무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강덕원 본부장은 크래프톤이 조직 성숙도에 따라 AI 활용 방식을 달리하는 접근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밝혔다.
글고 자리를 같이한 2명의 리더는 서로를 같은 고민을 나누는 동료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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