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호흡의 영상 콘텐츠인 '숏폼'이 콘텐츠 소비의 표준이 되면서 게임 내러티브 역시 변화를 맞이했다.
강연에서 인용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숏폼 이용률은 70.7%, 유튜브 쇼츠 시청 경험률은 82.7%로 이용자 10명 중 9명에 달하며, 한 화면 평균 집중 시간은 47초로 20년간 3배 이상 줄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모바일 MMORPG의 서사는 자칫 스치듯 지나가는 정보로 전락하기 쉽다.
NDC26에서 데브캣 시나리오 디자인실의 김혜진 팀장(내러티브 제작팀)과 조설빈 팀장(스토리 팀)은 <마비노기 모바일> 메인 퀘스트 제작기를 통해 이 시대의 내러티브 전략을 공유했다.
조설빈 팀장은 "접근성은 높지만 지속성은 낮은 모바일 환경에서 이야기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어야 한다"라며, "스킵 버튼이 있어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핵심 목표였다"고 밝혔다.

▶ 김혜진 데브켓 내러티브 제작 팀장(왼쪽), 조설빈 데브캣 스토리 팀장(오른쪽).
# 익숙함 속의 새로움, IP 활용과 이야기 설계
조설빈 팀장은 숏폼 시대일수록 이미 경험을 통해 데이터가 축적된 IP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존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움을 원하는 유저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다. 데브캣은 <마비노기> 세계관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인물의 역할과 관계를 재설계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 <마비노기>에서 수동적인 조력자였던 '타르라크'를 능동적인 인물로 변화시키고, 계열작들의 설정을 오마주하여 익숙하면서도 낯선 즐거움을 제공했다.

전달 방식에 있어서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뺄 것인가'에 집중했다.
조설빈 팀장은 NPC의 말풍선 대사를 평균 18자, 두 줄 이내로 제한하고 말풍선 하나당 하나의 정보만을 완결 짓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켈트 신화 기반의 복잡한 고유명사를 직관적인 언어로 치환했다. 예를 들어 '포워르'는 '마족'으로, '리아파드'는 '고대의 지혜'로 바꾸는 식이다.
중요한 설정은 텍스트 대사 대신 서적이나 아이템 카드, 배경 오브젝트, 사운드 등 다양한 시청각적 요소로 분산시켰다. 대화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세계관의 깊이를 원하는 유저가 능동적으로 정보를 찾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팔라딘 챕터는 이러한 접근이 구체적인 편집 결정으로 이어진 사례다. 조설빈 팀장은 챕터 설계에 앞서 핵심 경험부터 정의했다고 설명했다.
‘왜 팔라딘이 되어야 하고,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될 수 있는지’가 이 챕터의 본질인 만큼, 플레이어가 팔라딘으로 각성하는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원작에서 다뤄지던 정령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 이상형 찾기 서브퀘스트, 팔라딘 갑옷 제작 파트는 이 흐름과 멀다고 판단해 덜어냈다.
대신 새로 합류하는 기사단 동료들을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여정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존재로 설계해, 챕터 종장에서 각성하는 순간의 성취감이 더 크게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조설빈 팀장은 "사건 중심의 전개는 템포를 높이지만 인물의 감정선이 약해지고, 반대로 감정선을 강화하면 템포가 느려진다"며 모바일 스토리는 몰입감과 템포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조정하는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균형 문제는 이야기를 플레이로 구현하는 단계에서도 이어졌다.



# 이야기를 플레이 경험으로 만드는 세 가지 축
김혜진 팀장은 이렇게 다듬어진 이야기를 플레이어의 경험으로 구현하는 내러티브 제작팀의 전략을 설명했다. 핵심은 짧은 시간 안에도 몰입되는 시퀀스를 만드는 것으로, 서사 연출, 플레이 템포, 플레이 테마라는 세 가지 축을 제시했다.

서사 연출에서는 설명 대신 직접 경험을 유도한다. 단순히 캐릭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서약의 잔을 나누거나 도플갱어를 직접 추적하는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인물과의 유대감과 사건의 실체감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했다.
이러한 시퀀스가 반영된 3장 이후부터 다음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유저 반응이 늘어났고, 신규 등장 인물에 대한 호감도 형성됐다.

플레이 템포 측면에서는 반복적인 플레이 패턴이 지루함을 유발한다는 점에 주목해 '플레이 변주'를 통해 리듬을 환기했다.
플레이 변주란 같은 형식이어도 다르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으로, 수동 조작형 시퀀스, 미니 게임형 시퀀스, 색다른 연출의 세 유형을 활용했다.
다만 서사적 긴장감이 높은 순간에 플레이 유형이 전환되면 흐름이 끊긴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서사 긴장감이 높은 순간에는 환기보다 몰입 유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챕터별 테마 부여다. '선택', '추적', '정화'와 같은 핵심 키워드를 설정해 플레이 자체가 주제를 담아내도록 했다.
추적 테마의 경우 원래 스토리 후반부의 반전 장면을 초반으로 재배치해, 설명 없이도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추적을 시작하도록 유도했다. 선택 테마에서는 정답 없는 딜레마를 선택지로 제시한 것이 유저들의 자발적인 토론과 재플레이로 이어졌다.


# 콘텐츠의 밀도와 역발상의 편의성
발표 후반부에는 시스템적인 개선책도 소개됐다. 김혜진 팀장은 이야기의 규모에 따라 분량을 정하는 대신 그릇의 크기를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 밀도 있게 설계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기존 퀘스트를 제작 난이도와 연출 규모에 따라 등급화하고 챕터 내 구성 비율 기준을 수립함으로써, 챕터 간 경험 품질의 편차를 줄이고 협업 효율도 높였다.

분량 기준을 잡은 다음 고민은 편의성이었다. 김혜진 팀장은 "스킵하고 싶지 않게 만들기 위해 오히려 스킵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야기 건너뛰기 시스템 도입과 필수 선행 퀘스트 축소로 심리적 부담을 낮추고, 놓친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장면 다시 보기 기능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마무리는 조설빈 팀장이 맡았다. "스킵을 하든 하지 않든, 전부 스킵하는 플레이어도, 일부만 스킵하는 플레이어도, 스킵하지 않는 플레이어도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