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번 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단 하나의 세션을 들어야 한다면 <블루 아카이브>와 <림버스 컴퍼니>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던 이 대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넥슨게임즈 김용하 본부장과 프로젝트 문 김지훈 대표이사가 한 자리에서, 각자 어떤 취향과 고집 그리고 인고의 과정을 거쳐 게임을 서비스해왔는지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했는데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팬덤이 많은 게임인 동시에, 창작자의 마음과 소비자의 니즈 사이에서 어떤 조율이 이어져왔을지 관심이 많이 모이는 작품들을 서비스한 디렉터들이라 현장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과연 NDC 2026에서 두 사람은 어떤 시간들을 특히 중요하게 돌아봤을까요. 빠르게 변하는 시장과 AI 기술에 대해서는 어떤 자세로 접근하고 있을까요./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왼쪽부터 대담의 모더레이터를 맡은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편집국장, 넥슨게임즈 김용하 본부장, 프로젝트 문 김지훈 대표입니다.
# 정답은 없었지만 후회 없이 담아내고자 했던 게임들
대담의 부제는 [한국 작가주의 PD의 라이브서비스 운영기]였는데요. 두 게임 모두 스토리, 세계관 등 선이 명확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작가주의처럼 거창한 생각까지는 아니어도 원하는 방향을 담아내고자 하는 최선을 다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김용하 본부장은 "시장에 니즈에 맞추려고 했었다"는 말로 운을 띄웠습니다. "처음에는 시장이 원하는 어떤 게임이든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양한 장르를 누구나 좋아할 법한 공식으로 만드는 걸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이게 좋은 건지를 다른 누구에게 물어보는 상황 속에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걸 경험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실패를 해본 뒤에, 이러다간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게임만 만들다 끝나겠다 싶었어요. 제가 해보고 싶은 걸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그렇게 김용하 본부장이 만든 게임이 <큐라레>였고, 이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성으로도 사람들이 좋아해줄 수 있다는 경험을 쌓게 되었다고 합니다.
▲ <큐라레: 마법도서관>
김지훈 대표 또한 본인이 재밌을 것 같고,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다 보니 좋아해주는 분들이 계셨고 그렇게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상적인 완성형의 게임 같은 게 있었느냐는 질문에 김지훈 대표는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때는 확실히 원하는 방향성이 딱 있었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를 만들 때는 플레이보다는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와 주제를 먼저 생각했던 편이라고 합니다.
▲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프로젝트 문의 게임은 세계관과 서사를 정립한 뒤에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용하 본부장은 게임 안에서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온 편인데,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오며 먼저 결정한 지점들도 그랬을까요?
김지훈 대표는 "만들고 싶어 한 게임이 어떤 모습인지 머릿속에 이미지가 안 그려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세계관이나 특정 부분을 어떤 연출로 보여주고 싶다는 게 그려지고 나면, 전체적인 게임플레이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장면을 어떻게 보여줘야 한다는 이정표는 세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 처했고, 어떤 반전이 있었다,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같은 이미지죠. 그런 중요한 장면을 먼저 떠올려놓고 역으로 가는 편이에요."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때는 얼리 액세스로 스토리를 연재하면서 그 과정에서 배운 지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김지훈 대표가 게임의 구상을 하는 과정은, 중요한 장면과 연출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었죠.
▲ 프로젝트 문 김지훈 대표
김용하 본부장은 "처음부터 체험을 중심에 두고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던 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큐라레> 당시엔 <확산성 밀리언아서>보다 확장된 게임플레이로 미소녀 컬렉션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체험적인 측면은 VR 게임인 <포커스 온 유>를 만들면서 더 생각하게 됐어요. VR에서는 실재감, 프레젠스를 줘야 하는데, 그 세계에 들어간 느낌을 주는 게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VR에서의 1인칭 경험을 만들면서, 어떻게 해야 실재감 있는 세계를 만들고, 어떤 경험이 몰입감을 만드는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현재 IO 본부의 캐치프레이즈가 "들어가고 싶은 이세계를 만든다"인 것도, <블루 아카이브>에서 핸드폰 자체로 선생님이 쓰는 화면을 보여주거나 하는 방식도 같은 맥락입니다.
▲ <포커스 온 유>
# 지킬 건 지키면서도 라이브서비스는 결국 유저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
이렇게 세계관, 서사, 경험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이 있으면, 피드백 앞에서 유연하게 대응하거나, 반응을 마주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까요.
김지훈 대표는 가급적 중요한 뼈대는 지키려 하는 편이지만, 살을 붙이다 보면 바꿔야만 하는 때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의 후반부에서 설정오류가 생겼던 때가 그런 예시 중 하나로 언급됐죠.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리뷰를 보는 게 재미이고,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며, 방송도 하이라이트와 리플레이까지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정도로, 유저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예술 작품은 자기만족으로만 해소될 수도 있겠지만, 상업적 결과도 중요한 게임은 피드백과 반응이 있어야 소비가 되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인터넷에서 목소리가 큰 일부의 의견만 따르게 되는 결과는 가급적 피하려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지훈 대표 본인 또한 댓글은 잘 안 남기고 영상을 보는 경우가 많은 소비자이기 때문에, 직접 글을 남기지 않는 유저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운영하려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 <림버스 컴퍼니>
김용하 본부장은 과거 버추얼 유튜버를 시도했다가 사과를 했던 경험을 반추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라이브서비스 과정에서의 멘탈 스트레스 관리에 대해 김용하 본부장은 "스트레스 관리가 쉽지 않다"고 운을 띄웠는데요.
"사고가 터지는 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항상 터지는데, 멘탈 회복이 쉽진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취미가 하나씩 늘어요. <블루 아카이브> 안정성 문제 당시에도 키보드를 조립하는 취미를 가지게 됐었어요. 그 후 다른 이슈 때는 커피를 내리는 취미를 가지게 됐고요."
▲ 넥슨게임즈 김용하 본부장
#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기? 목표로 한 부분도 있었지만 운도 많이 따랐다
김용하 본부장은 <큐라레> 당시에는 한국 서비스를 먼저하고 일본에 진출했는데, 예상과 달리 잘 안 된 지점이 많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블루 아카이브> 때는 일본에서 먼저 출시했고, 일본 시장 트렌드와의 교집합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하죠.
그런 코드 중 하나가 일본에서는 클래식의 범주에 있는 학원물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특별함을 추가하는 게 매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죠.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2차 창작이 매우 활발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용하 본부장은 일본 퍼블리셔의 노력을 비롯해, 많은 운과 변수가 함께 작용했다고 강조했습니다.
▲ <블루 아카이브>
김지훈 대표 또한 '운'이 많이 따랐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프로젝트 문의 규모가 크진 않아도 자체 번역 팀을 두고 있는 것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한 하나의 요소였다고 언급했습니다.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림버스 컴퍼니>를 서비스하며, 글로벌 시장에 선보이는 과정에서 번역 속도가 중요했고, 외주를 쓰기보단 시나리오 완성과 동시에 같이 번역해줄 수 있는 일본어, 영어 번역 팀을 내부에 뒀다고 하죠.
영어, 일본어에 집중한 이유는 다른 언어의 경우 번역된 결과물을 김지훈 대표가 봐도 그 품질을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하며, 번역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일본어와 영어에 집중해 라이브서비스를 이어왔다고 합니다.
▲ <림버스 컴퍼니>
# 어쩌면 유저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건 피와 땀의 맛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시선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김용하 본부장은 "게임은 기술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루틴한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고, 코딩을 서포트하는 건 충분히 좋을 수 있지만, 예술적인 창작의 영역에는 퍼스널리티가 들어가야 하는데, AI 때문에 이런 결과물이 희석된다면 주의해야 한다는 취지였죠.
개성을 채우는 우리만의 맛을 내야 하는 지점들에선 AI 활용에 대해 엄격한 제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AI의 도움을 더 많이 받는 장르의 게임들도 있을 수 있고, 창작의 허들을 낮춰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의 선택을 받는 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라는 취지였습니다.
▲ 넥슨게임즈 김용하 본부장
김지훈 대표 또한, 공산품이 많아도 핸드메이드나 유기농을 찾아 소비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처럼, 게임에 대해서도 창작자의 시간과 노력, 고통이 얼마나 들어갔는지에 반응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꺼냈습니다.
김용하 본부장 또한 만드는 사람들이 고생을 할수록, 피와 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이기 때문에 좋아해주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대답을 했죠.
두 사람 모두 인간적인 결함과 편향점, 인간미, 취향과 테이스트가 담겨야 개성 있는 창작물이 나온다는 점에 대해 입을 모았습니다.
▲ 프로젝트 문 김지훈 대표
김용하 본부장은 "맛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게임 업계가 아닌 곳에서도 테이스트가 중요하다는 이야길 많이 듣고 있습니다. 취향, 안목 같은 것이겠죠. 게임을 만들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어떤 게임, 장르, 시스템, 세계관 등을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맛을 더 잘 낼 수 있는, 선호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셨으면 합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김지훈 대표는 "돌이켜 보면 운도 참 중요했어요. 저보다 더 열심히 하신 분들에게도 운이 안 따라준 경우도 있었죠. 그러다 보면 운을 탓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는데, 운이 올 때까지 얼마나 남아있을 수 있는지 정신적, 육체적 체력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계속 물 위에 뜨기 위해 물장구를 치고 발을 휘저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리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