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에서 AI(인공지능)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 입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의 기조강연에서는 AI가 구현해줄 수 없는 '가치'가 특히 강조됐다.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는 "산업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고, AI는 게임산업에도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운을 띄웠다.
강대현 넥슨코리아 공동 대표이사 또한 AI 기술과 함께 '구현이 쉬워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쟁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강조한 것은, AI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에 대한 구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안목과 판단을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함께 만들어가는 '맥락'에 대한 이해였다.
NDC 2026의 문을 여는 기조연설에서 이정헌 대표와 강대현 대표는,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경쟁축이라고 강조했는지 소개한다./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
▲ 강대현 넥슨코리아 공동 대표이사
# 이정헌 대표 "모두가 같은 도구를 쥔 시점에서 중요한 건 안목과 판단"
이정헌 대표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크게 두 가지라고 강조했다.
첫 번째는, AI 시대를 맞이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AI가 사람들이 할 일을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며, AI가 잘 하는 건 답이 정해진 문제들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영역인 사람들이 울고 웃는 감동, 이용자간의 교감과 같은 '맥락'을 읽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AI는 경쟁의 대상이 아닌 훌륭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두 번째는, 모두가 같은 도구를 쥔 시점에서 진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안목과 판단'이라는 것이었다.
이 또한 이용자에 대한 이해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됐다. 무엇에 열광하고 아쉬워하며, 어디에 기꺼이 소비하려 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취지다.
# 강대현 대표 "옮겨간 본질은 이용자들과의 '맥락 자산'에 있다"

강대현 대표는 8년 전 NDC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인용하며 운을 띄웠다. 당시까지만 해도 룰도 잘 몰랐고, 응원할 팀도 크게 없다 느꼈던 '컬링'이 재미없는 스포츠라고 느꼈었다는 고백으로 당시 강연이 시작됐었다.
그러나 컬링의 경기 규칙은 그대로였음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기억하는 "영미~!"라는 외침과 응원할 팀이 생기고, 같이 기뻐하고 아쉬워한 경험이 생기면서 상황과 맥락이 달라졌다. 컬링은 바뀌지 않았지만 보는 사람들은 재밌게 즐기게 된 것이다.
강대현 대표는 게임도 동일한 '맥락'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 사운드, 룰 같은 정적인 내부 요소 외에도, 그 안에서 유저들이 누구를 만나 어떤 사건을 겪는지에 따라 바뀌는 동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재미의 본질은 구현의 밖에도 있다"는 것이 8년 전의 인사이트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급변하는 시대가 됐다. 구현의 밖에 있는 본질을 봐야 할 이유가 더 늘었다.


넷플릭스에 들어가 무엇을 볼까 고민만 한참 하다가 끈 경험이 모두 많지 않았나. 강대현 대표는 이 지점을 짚었다. 게임 산업도 비슷한 공급 과잉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스팀에 출시되는 게임 타이틀의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유의미한 수준(리뷰 1,000개 이상)의 관심을 받는 인기 타이틀은 3% 내외다.
심지어 AI 시대가 오면서 구현은 더 쉬워졌고, 이 도구는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졌다. 단순한 구현의 경쟁에 그쳐선 안된다는 것이다.
강대현 대표가 이번 기조연설 내내 강조한 것은 '맥락', 특히 유저와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산이었다.


구현을 돕는 AI 기술은 누구나 돈으로 구매해 사용할 수 있지만, 게임이 쌓아온 스타일, 취향, 경험에서의 '맥락'은 사람이 알고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똑같은 생성형 AI를 사용하더라도 결과가 다르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메이플스토리> 캐릭터에게 씌울 모자를 AI에게 그냥 생성해줄 것을 요구하면, 그럴듯한 모양의 단풍잎이 들어간 모자가 나오긴 하지만 개성도 없고 열광할 지점이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반면, <메이플스토리>의 20년의 시간에 대한 맥락을 입력해주면, NPC에게 바로 씌워도 괜찮은 수준의, 그리고 이용자들이 반응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강대현 대표는 이러한 맥락 자산, 맥락 자본은 '콘텐츠를 만드는 쪽'과 '즐기는 쪽' 양쪽 모두에서 쌓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쪽의 맥락은, 라리안 스튜디오가 쌓아온 CRPG의 감각, 프롬소프트웨어가 만들어온 난이도 철학, 닌텐도의 손맛에 대한 집착과 노하우 등이다. 경험, 기술, 데이터의 축적이자, 취향과 장르에 대한 이해의 전승이다.
즐기는 쪽의 맥락은 게임 안팎에서 모두 만들어진다. <다크소울>의 '유다이' 밈, <젤다의 전설>의 스피드런 문화 등이 대표적인 예시고 유저들끼리 맺은 관계, 커뮤니티가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 모두 포함된다.
넥슨 또한 <메이플스토리>와 BTS 진 이벤트에 15만 명의 동시 접속자가 몰리고, 롯데월드 콜라보가 30초 만에 매진되는 경험을 했다. 이 또한 즐기는 이용자들의 '맥락'인 셈이다.


그는 이렇게 시간 위에 쌓이는 맥락을 단리와 복리에 비유했다. 맥락을 연결해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취지였다.
가령 한 게임에서 어떤 보스 난도가 높아서 유저들이 계속해서 재도전을 하고 공략을 계속해서 찾고 공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데이터만 봤을 때는 난도를 낮추는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유저들이 '도전하고 끝내 해내는 이야기'를 즐긴다는 맥락을 보게 됐을 땐, 다음 업데이트의 방향성도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축구'를 즐기는 방식도 수많은 경험의 '맥락' 위에 있다고 말했다.
직접 경기를 뛰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기만 하는 사람들도, 유니폼만 구매하고 응원만 하는 사람들도, 중계나 결과만 보는 사람들도, 특정 선수만 좋아하는 사람도, 심지어 축구 게임으로 축구를 접하거나 즐기는 사람도 있다.
비슷한 흐름에서 '아이콘 매치'가 큰 감동을 줬던 것도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긴 시간 쌓아온 '맥락'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는 맥락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다시 세계의 가치를 키우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축구를 즐기는 사람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스포츠가 아니라 축구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메이플>이요, <던파>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에겐 그 타이틀들이 게임의 범주를 넘어 하나의 독립된 세계가 됐다는 것이다.
AI와 함께 구현이 아무리 쉬워져도 복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이라는 취지다.
과거 <메이플스토리>에서 한 유저가 검은 보따리를 커닝시티에 풀어 주니어발록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던, 그리고 그 상황이 계속 전설처럼 회자되어 왔던 것도 하나의 '맥락'이 되었다. 유저들은 이제 <메이플 월드>, <메이플 랜드>에서 이를 재현하고 있다.
결국 이런 맥락은 개발사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유저와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소설, 영화 같은 콘텐츠에도 팬덤이 있지만, 팬이 직접 그 안에 들어가 콘텐츠 자체를 바꾸고 교감하며 미래를 바꿔가는 건 게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보면 오래 서비스를 이어온 회사, 장수 IP만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는 복리의 비유를 다시 들며, '이자율' 경쟁이 핵심이라 비유했다.
라리안 스튜디오 또한 한때 파산 위기를 겪었지만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정상에 올랐고, 엄청난 이용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 <로블록스> 또한 처음에는 무명으로 시작했었지만 유저들의 경험을 흘려보내지 않아 지금의 모습까지 왔다는 것이다.

끝으로 강대현 대표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AI는 두 가지라고 말했다.
하나는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인 '인공지능'(아티피셜 인텔리전스)이고, 다른 하나는 '축적된 지능'(어큐뮬레이티드 인텔리전스)이었다.
구현 비용을 낮춰주는 기술적 도구는 모두에게 주어졌지만, '축적된 지능' 다시 말해 유저와 보낸 시간, 운영을 이어가며 쌓아온 판단, 커뮤니티가 콘텐츠를 즐기며 만든 여러 문화 등은 '복리로 이어진 맥락 자본'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구현과 전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제 진짜 '맥락'을 찾아 그에 맞는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된 기조연설처럼, 앞으로의 게임 산업에서는 팀 단위, 회사 단위의 의사결정이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는 흐름이 이어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