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모르는 사이 군용 드론 AI를 훈련시킨 셈이 됐다. 포켓몬 고 이용자들이 게임 내에서 촬영한 영상 데이터가 군용 드론 내비게이션에 활용되는 AI 모델 학습에 간접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네덜란드 일간지 트라우가 5일 처음 보도한 뒤 영국 가디언 등 다수 외신이 잇따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포켓몬 고> 이용자들이 수집한 약 300억 건의 스캔 데이터가 미국 방위 소프트웨어 기업 밴터가 개발 중인 군용 드론 내비게이션 시스템 학습에 간접적으로 사용됐다.
<포켓몬 고>는 2016년 출시된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으로,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수가 8억 건을 넘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2020년에는 게임 업데이트를 통해 '포켓스톱 스캔' 기능이 도입됐고, 2021년에는 스캔 횟수에 따라 포켓스톱 보상이 올라가는 업데이트가 이뤄졌다. 이용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주변 실제 장소를 촬영해 제출하면 게임 내 보상을 받는 방식으로, 해당 기능은 선택 사항이었으며 별도의 이용 약관 동의를 거쳤다.
닌텐도 등과의 파트너십으로 <포켓몬 고>를 개발한 나이언틱은 2025년 게임 부문을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게임사 스코플리에 매각하기 전까지 이 스캔 데이터를 축적했다. 스캔 데이터는 나이언틱에서 분사한 나이언틱 스페이셜(Niantic Spatial)이 보유하고 있다.

▶ 포켓스톱 스캔 횟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파워업 포켓스톱' 기능을 알린 2021년 공지. (출처: <포켓몬 고> 공식 홈페이지)
나이언틱 스페이셜은 이를 바탕으로 GPS 신호 없이도 카메라만으로 정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비주얼 포지셔닝 시스템(VPS)'을 구축했다.
VPS는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촬영해 미리 구축된 3D 지도와 대조하는 방식으로 위치를 파악한다. GPS 교란·재밍이 빈번한 현대 전장 환경에서 드론과 로봇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대안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나이언틱 스페이셜은 지난해 12월 밴터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밴터는 방산·정보 분야에 특화된 지리공간 정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올해 2월에는 미 육군과 최대 2억 1,700만 달러(약 3,280억 원) 규모의 훈련 소프트웨어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밴터는 트라우에 "<포켓몬 고> 스캔 원본 데이터 자체는 제공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이언틱 스페이셜 대변인 역시 가디언 오스트레일리아에 "스코플리 전환 이후 포켓몬 고 데이터는 나이언틱 스페이셜과 공유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다만 나이언틱 스페이셜은 해당 스캔 데이터가 자사 AI 기반 모델 학습에 사용됐다는 점은 인정하며,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약관에 따른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해명이 핵심을 비껴간다고 지적한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 기술윤리 교수 예룬 판 덴 호번은 "그 많은 이용자의 스캔 데이터가 없었다면 이 시스템은 결코 이렇게 빠르게 개발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용자들은 간접적으로, 그러나 실질적으로 군용 기술 개발에 기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디지털 권리 감시 단체 디지털 라이츠 워치의 정책 책임자 톰 설스턴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을 하고 싶을 때 방대한 법률 문서를 읽지 않는다"며 "이용자를 착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용자 최선의 이익' 또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감독 당국이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나이언틱 스페이셜은 군사 분야 외에도 미국과 핀란드 등지에서 운영 중인 음식 배달 로봇 기업 코코 로보틱스와도 VPS 기반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