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관찰자가 되어 마우스를 딸깍이고, 피지컬 대신 뇌지컬을 쓰며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 우리는 포인트 앤 클릭 게임을 지금까지 이렇게 이해해 왔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개발사 드로우 미 어 픽셀(Draw Me A Pixel)은 이 생각을 부숴버렸습니다. 개발을 주도한 카미조토(KaMiZoTo)의 전작이자 반항아 같은 게임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가 그랬던 것처럼, <크러시드 인 타임>도 익숙하게 여겨 온 전통적인 룰과 관습적인 플레이를 거부합니다.
친숙한 듀오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을 디지털 미궁에 가둬버린 후, 플레이어들에게는 클릭 대신 캐릭터들의 볼을 잡아당기라고 요구하고 관찰 대신 참여가 이끄는 메타 픽션의 지적 유희를 강조하면서요.
여전히 머리를 더 써야 하고 손가락 하나면 충분하지만, 잽싸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피지컬도 필요로 합니다. 그간의 포인트 앤 클릭 게임들과는 다른, 촉각이 생생한 포인트 앤 드래그 게임인 셈이죠./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한지훈 기자

# 시공간을 오가는 홈즈와 왓슨의 만담극
게임은 개발사의 복도에서 시작합니다. 버그와 혹평으로 아수라장이 된 사무실에서 모니터 화면 하나를 비추고, 바탕화면의 아이콘을 클릭이 아닌 드래그로 실행하며 간단히 튜토리얼을 마칩니다.
► 모니터 화면 속 바탕화면을 드래그하면, 핵심 튜토리얼을 간단히 마침과 동시에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게임 속 게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왓슨이 의문의 편지를 받은 후 방문한 저택에서 셜록의 자동차를 도둑맞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캐릭터 묘사도 조금은 뒤틀려 있습니다. 홈즈는 여전히 자아도취적이지만 어딘가 무능한 대장으로, 왓슨 역시 이성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주도적인 인물로 그려지거든요.
시시콜콜한 대화와 시답지 않은 농담은 풀 더빙이 더해져 만담극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가벼운 소동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흥미진진한 전개와 꽤 감동적인 마무리로 탄탄한 서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현지화도 아주 매끄러워 몰입이 깨지는 구간도 없습니다.
► 버그와 혹평에 시달려 망해버린 개발사.
# 개발 프로세스를 탐험하는 참신한 레벨들
타임머신을 타고 이어지는 추격전은 단순한 과거 시점이 아니라 게임의 다른 버전들을 오간다는 점에서 재미를 줍니다. 주인공들이 발견한 문제는 사실 게임의 버그로, 플레이어와 주인공들은 뼈대만 있는 프로토타입부터 베타 빌드까지 개발 프로세스 자체를 탐험하게 됩니다.
삐뚤빼뚤한 모양과 상큼한 색감으로 그린 카툰풍 그래픽의 완성본도 괜찮지만, 덜 구현된 그래픽은 물론이고 소스 코드를 조작하거나 포스트잇이 가득한 스크럼 보드로 탈출하기도 하는 등 온갖 미완성을 소재로 한 레벨들이야말로 멋진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선사합니다. 기발한 상상과 영리한 디자인에 매번 감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 아직 개발 중인 버전들로 시공간 여행을 떠나는 캐릭터들.
► 게임 밖 스크럼 보드로 탈출하기도 한다. 두들이 되어버린 셜록!
# 당기고 또 당기며 제4의 벽을 부수는 손맛
플레이는 마우스로 드래그해 대상을 고무줄처럼 쥐고 늘리는 당기기를 중심으로 합니다. 플레이 내내 당겨야 하니, 적당히 누를 만한 생김새와 또렷한 효과음만 있어도 쉽게 납득되는 클릭과 다르게 당긴다는 체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데요.
오브젝트를 당기면 젤리처럼 떨리며 왜곡되는 연출이 있어 굉장히 실감 났습니다. 볼을 당겼다 놓았을 때 뺨을 때리듯 찰싹하는 효과음도 실수할 때마다 캐릭터들에게 조금 미안해질 정도로 확실한 타격감을 주었고요. 캐릭터들을 건드릴 때마다 나오는 대사들은 당기는 행동을 절대 권력자의 터치로 인식하게 만들어 제4의 벽을 수시로 허무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상호작용을 하는 문법도 완전히 당기기에 최적화했습니다. 열쇠를 당겼다 놓아서 자물쇠로 던진다든지, 촛불의 심지를 당겨 불을 옮기는 식으로요. 메뉴의 버튼조차 당겨야 작동하는 것처럼 모든 문제는 당겨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캐릭터들은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을 절대적이며 알 수 없는 힘으로 인식한다.
# 계속 당기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피로감
하지만 6시간의 플레이 타임 동안 계속해서 마우스에 힘을 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역시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드래그가 아닌 클릭이 일반적인 상호작용 동작이 된 당연한 이유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냥 당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던져 넣을 때까지, 알맞은 순서를 찾을 때까지, 제때 연속적으로 해낼 때까지 반복해서 당겨야 했습니다. 클릭해 보면 곧바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것과 다르게 당기는 방향에 따라 또는 던진 위치에 따라 다른 결과가 일어나기 때문에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단계별 힌트를 제공하지만 워낙 난해하고 초현실적인 퍼즐이 많아 개념에 그치는 힌트는 한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단언할 수 없는 이유는 의도적으로 힌트를 쓰지 않고 플레이를 했기 때문입니다. 힌트 없이 게임을 완료하는 도전 과제가 있었거든요.
스피드런 과제를 포함해 정보 없이 플레이하면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도 많아, 도전 과제를 전부 달성할 생각이라면 다회차 플레이는 필수였습니다.
► 단계별 힌트를 얻을 수 있지만 개념 설명에 그치기는 한다.
► 스포일러를 감수하고 목록을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도전 과제가 여럿이다.
# 총평
<크러시드 인 타임>은 90년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를 독창적으로 비틀고 개성 있는 유머를 활용해 메타적인 재미를 더한 게임입니다.
논리적인 퍼즐을 푸는 과정에 촉각을 자극하는 감각과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소소한 액션도 가미했고요. 참신한 아이디어를 재치 있는 레벨들과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가공한 것도 훌륭합니다. 답을 모르는 상황에선 타이밍이나 진행 순서가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구간이 일부 있고, 후반으로 갈수록 손목과 손가락의 피로감이 누적된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장르를 답습하지 않는 패기를 바탕으로 기발한 콘셉트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준수하게 구현한 게임이라는 것을 부정할 만큼 아쉽지는 않습니다. 두 번을 연이어 기가 막힌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카미조토가 다음엔 어떤 식으로 놀라움을 안겨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남기는 기록이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