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게임 좋아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영광의 시절'을 하나쯤 마음에 품고 있다.
누군가에겐 그게 <유희왕>의 특정 시즌까지일 수도, <하스스톤> 전성기일 수도, <슬더스>(또는 그런 스타일의 게임들)를 즐긴 때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가 제일 재밌었느냐고 물으면 "이제 좀 흐름을 알게 되어, 한 판 한 판을 압도해나간 때"일 것이다.
그만큼 이 장르에선 '적절한 학습 및 마스터 경험'이라는 게 매우 중요하다. 너무 쉬우면 입문만 하다 마친 느낌이고, 너무 어려우면 첫 진입부터 턱턱 막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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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편, 세상 모든 게임이 다 그 '적정선'에 수렴해야 한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모수가 적더라도 마니아들을 위해 더 극한까지 콘셉트를 밀어붙이는 게임이 한 두 개쯤 있어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오늘 소개할 <마녀: 종말의 여행>이 딱 그런 방향성에 있는 게임이다. 명작들의 좋은 요소들을 가져다가 굉장히 비주류의 취향으로 버무려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아쉬운 부분들이 도드라질 수 있겠으나, 어쩌겠는가 기자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카드게임 마니아다. 묘한 중독성과 함께 분명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는 이 게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 분명 좋은 요소가 다 모여있긴 한데...
<마녀: 종말의 여행>은 최근 호평을 들은 덱빌딩 게임들의 장점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게임이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2>가 떠오르기도 하는, 최대 4인 협동까지 지원하는 멀티플레이 PvE도 그 요소 중 하나다.
일단, 기자는 싱글플레이 위주로 즐겨보긴 했지만, 각기 다른 특수능력을 가진 캐릭터 해금, 전략의 방향을 크게 바꿔주는 카드 팩 해금, 여러 능력 및 성장에도 해금이 있어, 서로 다른 캐릭터 세팅으로 함께하면 다채로운 재미가 만들어지는 구성이다.
▲ 보고 계신 캐릭터는 인게임 재화로 해금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마녀마다 액티브, 패시브 능력이 다 달라서 전략적 판단 및 어울리는 덱 구성도 다르다.
▲ 한 번의 '런'(도전)이 시작될 때, 카드팩을 최소 6팩 이상 고르고 시작한다. 로그라이트 진행이지만, 고르고 시작한 팩 풀 안에서 카드를 만나는 식이다. 카드팩도 인게임 재화로 해금해나갈 수 있다.
▲ 일반 전투에서의 공격, 방어 장면들만 보면 캐릭터나 카드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체감이 안 될 수 있는데
▲ 캐릭터 특수 능력으로 이렇게 괴수로 변해 적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해당 능력에는 몇 턴의 쿨타임이 있다)
▲ 상점에서 카드나 유물을 구입하거나, 게임 진행 중에 덱에 카드를 넣고 빼는 것도 꽤 자유로운 편이다.
보통 다른 덱빌딩 게임에선 진행 중 본인이 선택했거나 구매한 카드들에 대해, 한 번 앞서 결정한 내용들을 다시 번복해 덱에서 뺀 채 전투를 진행하려면 상점에서 비용을 들여 제외하는 과정을 거치곤 하는데, 이 게임을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덱 우측에 여분의 공간이 있어서, 몇 장까지는 자유롭게 빼두거나 선택적으로 넣고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게임 진행 중 '운'으로 마주하게 되는 결정들에 상대적으로 더 능동적인 대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 심지어 이런 게임 진행 루트 결정도, 다른 게임처럼 단순 경로 설정을 하는 방식이 아닌, 주어진 운명 카드 더미에서 원하는 순서대로 배치해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덱이 충분히 강하다면 전투와 보상 위주로 가도 될 것이고, 쉬어가는 타이밍이 필요하다면 회복과 이벤트가 있는 운명 카드를 먼저 만나게 배치하면 된다.
▲ 여기에 '빈 카드' 시스템까지 있어, 원하는 이름, 이미지, 타입, 코스트, 어떤 발동 조건에서 어떤 효과를 어떤 대상에게 어느 정도 수치로 적용되게 할 것인지 모두 선택해 카드를 생성할 수도 있다.(주요 선택엔 '진리의 수정'이라는 인게임 재화가 들어간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느끼시겠지만, 굉장히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다.
이 게임을 만든 MeowAlive는 카드게임을 좋아하는 해외 대학생 4명으로 구성된 인디 팀으로, 앞으로의 업데이트 방향도 스팀 창작 마당과 모드를 적극 지원하는 등 자유도를 계속해서 높이는 쪽으로 설정하고 있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도트 그래픽, 전체적인 비주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또한 취향에 맞는 분들이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그렇게 기획의 포텐셜처럼 희망편으로만 갔다면 참 좋았겠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녀: 종말의 여행>에는 덱에 있는 원하는 카드에 추가 효과를 붙여주는 '인장'도 있다. <슬더스 2>의 '인챈트'를 생각하시면 편하다.
카드 코스트를 1 올리는 대신 반복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거나, 카드 코스트의 몇 배수로 체력을 회복해주거나 랜덤한 대상에게 대미지를 주는 등의 효과들이 대표적이다.
▲ 노란 강조 표시를 한 대상들이 인장이다.

이렇게 자유도가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술적 선택폭도 넓다. 이런 카드게임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이 정말 잘 어우러지기만 했다면 유저들에게도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 아쉽게도, 요소요소들이 가진 포텐셜에 비해 이를 시스템적으로 잘 정돈해 탄탄하게 받쳐주진 못했다는 인상이다. 스팀 평가도 703개 리뷰 중 82%가 긍정적인 선에 머무르고 있다.
일단, UI/UX가 발목을 잡고 있다. 각각의 항목에 진입하는 방식도, 각 건물 또는 공간에 할당을 해놓았는데, 그리 직관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필요한 요소를 찾으려 하면 다 둘러보게 되는 식일 때가 많았다.
▲ 메인 화면에선 각 공간의 아이콘으로 진입을 쪼갰다가, 들어가면 좌측의 탭으로 다시 모아두고, 결국 탭 안에서 대화나 이벤트를 아주 간략한 텍스트 대사 처리로만 보게 하니, 스토리의 매력을 느끼기도 쉽지 않았다.
정작 진입해야 할 중요한 항목(성장 및 해금 등)들은 탭 안에서 다시 우측의 붉은 책갈피를 눌러야 들어가는 구성이다.

'마니악'한 방향성을 지향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키워드를 너무 남발하고 있다는 것도 직관적이지 못해 아쉽다. 하나의 카드에 마우스를 올리면 몇 개의 설명창이 뜨는지 한 번 보시라.
예를 들어, Poised 스택이 있는 상태에선 어떤 형태로든 대미지를 받으면 Counterattack 스택이 쌓인다. Counterattack 스택이 있으면 적에게 대미지를 받았을 때 해당 스택만큼 대미지를 준다.
Elements 키워드가 있는 카드를 내서 Elements 스택이 쌓이면, 이 스택이 있을 때 행동하면 Extraordinary 스택이 쌓인다. Extraordinary는 각 스택마다 기본 대미지를 1% 증가시킨다.
위의 설명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미지 및 반동을 준다는 것에 대해 키워드를 너무 세밀하게 쪼개고 있고, 어떤 것은 스택의 수 그 자체에 의존하고 어떤 것은 %로 증감해, 이를 바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편이다.
개발진이 추후 한국어 지원을 예고하긴 했지만, 현재는 영어 지원 상태 안에서도 일부 메뉴에서 한자가 혼용되어 나오는 구간이 있는 등 언어 지원이 아주 매끄럽지 않은 것도, 이런 다소 아쉬운 경험이 한몫을 하고 있다.

이 게임에는 수많은 키워드가 있고, 버프 디버프, 캐릭터의 스탯 개념, 주사위 던지기를 통한 운으로 결정되는 영역, 유물, 인장 등 기본적인 카드 효과 외에도 신경써야 할 요소가 정말 많다.
이에 비해 전투 인터페이스에서 보여지는 정보 표시는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구성이다. 이 대미지가 왜 이만큼 증가한 것인지, 정확히 어떤 버프와 어떤 디버프가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인지 알기 쉽지 않다.
지금 보여드리고 있는 상황은 게임 중후반부의 모습이 아니다. 초기 덱 구성으로도 초반 몇 번의 도전 안에서도 이런 복잡성을 가지고 있어, 이런 부분들은 아쉽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전투를 보여주는 연출 방식도 각 카드의 특성과 행동에 맞게 더 시각적으로 잘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본다.

참 재밌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기를 끈 게임들의 여러 요소를 기획 단계에서 잘 끌어오려 한 노력이 있어서인지, 묘한 중독성 자체는 있다는 것이다.
게임을 개발한 MeowAlive 팀이 단순 출시에 그치지 않고 게임의 업데이트를 계속해서 예고한 만큼, 앞으로 더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하며 기다려보셔도 좋겠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마녀: 종말의 여행>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게임들이 이렇게 이미 여러 카드게임에서 검증된 인기 요소들을 잘 차용해 '진짜 매니악하면서도 동시에 잘 정돈된 형태의 게임'을 선보여줬으면 좋겠다. 기자를 포함해 카드쟁이들 모두의 염원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