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출시된 IO 인터랙티브의 신작 <007 퍼스트 라이트>에 2억 달러(약 3,000억 원)가 넘는 개발비가 투입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는 11월 출시를 예고한 <GTA 6>의 개발비는 무려 10억 달러에서 15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에서 2조 원) 사이일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이렇듯 수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오늘날 AAA 게임 시장에서 수익 모델 다각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임 개발사와 퍼블리셔들이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소액 결제와 라이브 서비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게임 생태계가 기형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웨어에서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를 역임했던 마크 다라(Mark Darrah)는 최근 유튜브 영상을 통해 게임 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모든 대규모 게임이 라이브 서비스 형태로 획일화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게임이 영화와 자주 비교되는 대중 매체인 만큼,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 역시 영화 산업의 구조를 차용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마크 다라 前 바이오웨어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 총괄 프로듀서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Mark Darrah on Games')
# 장르 획일화 부추기는 소액 결제… 구독형 모델도 해답 아냐
마크 다라의 우려는 대형 게임사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딜레마를 짚어낸다. 수천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게임이 단일 패키지 판매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워지면서, 많은 기업이 출시 이후에도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라이브 서비스에 사활을 걸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게임이 라이브 서비스 형태로 운영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라이브 서비스의 핵심 수익원인 소액 결제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특정 장르에만 제한적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치장용 아이템을 판매하거나 새로운 시즌 패스를 추가해야 하는 구조는, 선형적인 스토리 중심의 싱글 플레이 게임이나 실험적인 장르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결국 막대한 개발비를 회수하기 위해 모든 AAA 게임이 라이브 서비스 모델에 억지로 끼워 맞춰진다면, 시장에서 전통적인 패키지 게임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이는 유저들의 한정된 시간과 재화를 두고 벌이는 '제로섬 게임'으로 이어진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기본적으로 유저가 매일 접속해 오랜 시간 머무며 반복적인 지출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게이머의 규모와 이들이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시장에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범람할수록 필연적으로 극소수의 흥행작만 살아남게 된다.
마크 다라는 최근 1~2년 사이 발생한 대형 라이브 게임들의 잇따른 서비스 조기 종료와 스튜디오 폐쇄 사태가 이러한 시장의 한계를 명확히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 2025년 더 게임 어워드의 대미를 장식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출시 이후 단 45일만에 서비스를 종료한 <하이가드>
일각에서는 Xbox 게임 패스나 PlayStation 플러스 같은 구독형 서비스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마크 다라는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다수의 게임이 화제성을 띠며 구독 서비스에 합류하더라도, 플랫폼으로부터 받는 정산금은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일부 구독 플랫폼이 유저의 접속일 수 등 참여도 지표를 기준으로 수익을 배분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러한 수익 분배 구조는 개발사가 유저에게 게임의 재미와 완결성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다. 대신 접속 보상이나 형식적인 일일 퀘스트를 배치해 억지로 매일 접속하게 만드는 '퇴행적인 게임 디자인(Degenerative design)'을 조장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게임의 질적 하락을 불러오고 유저의 피로도만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매일 게임 접속과 플레이를 유도하는 라이브 서비스의 일일 퀘스트는 이제 어느 게임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 해답은 외부 자본 유치… 대안으로 떠오른 'PPL'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타개책은 영화 및 TV 산업의 핵심 수익원인 간접광고(PPL) 모델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그는 게임 산업이 유저 대상의 과금 유도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외부 자본을 유치하는 새로운 수익 창출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2013년 개봉한 실사 영화 <개구쟁이 스머프 2>를 예시로 들었다. 해당 영화는 약 1억 500만 달러(약 1,61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으나, 맥도날드, 토이저러스, 유비소프트 등 100개 이상의 파트너사로부터 1억 5,000만 달러(약 2,300억 원) 이상의 광고 및 마케팅 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게임 내에 적용되는 간접광고의 규모와 퀄리티는 영화나 드라마 매체에 비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고도로 몰입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수십 시간에 걸쳐 제공하는 게임의 특성을 고려할 때, 광고 매체로서 게임이 지닌 잠재적 가치는 매우 높다.
게임의 세계관과 몰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실존 브랜드를 녹여낼 수 있다면, 과도한 소액 결제나 무리한 라이브 서비스 전환 없이도 전통적인 패키지 AAA 게임의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세계적인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는 다양한 게임과 적극적으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특정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처럼 은근하게 게임 내 차량으로 등장하는 PPL 방식의 마케팅도 진행한 바 있다.
# "우리는 라이브 서비스만 남은 세상을 원치 않는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AAA 게임 시장은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소니가 <콩코드>의 흥행 실패 이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온라인>을 포함한 복수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Xbox 역시 제니맥스 온라인 스튜디오의 미공개 MMO 프로젝트 개발을 중단한 사례는 이러한 시장의 위기감을 대변한다. 마크 다라 역시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 홀더들의 노선 변경을 언급하며, 단일화된 비즈니스 모델이 뚜렷한 한계에 봉착했음을 지적했다.
▶ 소니의 라이브 서비스 개발 계획의 변경으로 개발이 중단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온라인>의 컨셉 이미지
따라서 그는 게임 산업이 창작의 다양성을 잃지 않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모델의 과감한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막대한 예산의 압박 속에서 이용자의 직접적인 결제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수익 구조를 탈피하고, 타 매체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유연하게 차용해 수익 파이프라인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끝으로 마크 다라는 "우리 중 누구도 시장에 존재하는 유일한 AAA 게임이 라이브 서비스뿐인 세상에 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획일화의 위기에 처한 게임 산업이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업계 전반이 새로운 돌파구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라고 거듭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