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뒤 수년에 걸쳐 오래도록 인기를 유지하는 게임을 보면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교차하곤 한다. 꾸준한 업데이트와 DLC로 유저들의 지속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제쯤 전혀 다른 차기작을 내놓을까’ 하는 조바심 섞인 불안감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최근 인디 게임 시장에서도 단일 타이틀로 롱런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그로 인해 정작 신작 출시가 뜸해진 개발사를 지켜볼 때면, 불만을 표하기는 어려워도 내심 아쉬운 복잡한 심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삽질 기사(Shovel Knight)>의 개발사 ‘요트 클럽 게임즈(Yacht Club Games)’ 역시 그런 행보를 보인 대표적인 스튜디오다.
2014년 첫 출시 이래로 레트로 플랫포머의 정점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그 압도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이후 수년간 <삽질 기사>의 DLC와 여러 파생작을 연이어 선보였다(이는 킥스타터 공약의 일환이기도 했다).
도중에 퍼블리셔로 참여한 <사이버 섀도우(Cyber Shadow)>가 있긴 했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실상 <삽질 기사> 프랜차이즈 하나에만 매달린 형국이었기에 완전한 신작을 갈구하던 팬들 입장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그리고 <삽질 기사>가 세상에 나온 지 무려 12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그들의 완전한 신작인 <미나 더 할로워>가 베일을 벗었다. 한때 레트로 게임의 정점에 올랐던 이들이, 과연 이번에도 다시금 그 높은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작성=쿠타르크(블로거), 편집=한지훈 기자

# 레트로 스타일로 그려낸 현대적인 다크 판타지
<미나 더 할로워>는 저주받은 섬의 정화라는 막중한 임무를 띤 명망 높은 생쥐 ‘미나’의 여정을 그리는 탑뷰 시점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참고로 제목의 ‘할로워(Hollower)’는 땅을 파는 자라는 뜻이다.
인게임에서는 '땅굴꾼'이라는 직관적이고 독특한 단어로 번역되었다. 즉, 주인공 미나의 정체성과 '땅을 파고 다닌다'는 핵심적인 게임 플레이를 제목부터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 참고로 게임 제목의 할로워는 '땅굴꾼'을 뜻한다. 처음 들었을 땐 무슨 공허 관련인 줄 알았다.
전작에서 이미 정점을 찍었던 고품격 2D 픽셀 그래픽과 칩튠풍 사운드트랙은 본작에 이르러 한결 무르익었다. 1990년대 게임에서 볼 법한 색상 팔레트, 인터페이스 구성, 캐릭터 및 배경 디자인, 기계음에 가까운 효과음 등은 레트로 게임이 지향해야 할 미덕을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여기에 <삽질 기사>에서 훌륭한 호흡을 보여주었던 작곡가 '제이크 카우프만(Jake Kaufman)'이 다시 한번 음악을 맡아 게임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견인한다. 단독으로 감상해도 엄청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이 음악과 과거 지향적인 비주얼의 결합은 역설적으로 대단히 세련된 인상을 남긴다.
▶ 레트로 명가가 선보이는 픽셀 그래픽과 칩튠 사운드는 그야말로 고품격
<삽질 기사>가 <록맨>과 <캐슬배니아> 등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듯, <미나 더 할로워> 역시 여러 고전 명작의 흔적을 훌륭하게 재해석했다.
탑뷰 시점 및 인터페이스 구성에서는 초창기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문법이, 고딕풍 다크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캐슬배니아> 시리즈의 감성이 엿보이며, 오픈 월드에 가까운 게임 디자인과 장비 및 전투 시스템에서는 <다크 소울> 시리즈의 흔적이 각각 뚜렷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개발진은 기획 단계에서 프롬 소프트웨어의 <블러드본(Bloodborne)>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탑뷰 액션 어드벤처에 소울라이크 요소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나, 본작은 그 본질을 한층 더 깊숙이 파고든다.
▶ 개발사가 직접 인정했듯, <블러드본>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는 게임이다.
전반적인 게임의 분위기는 꽤나 음산하고 우울하다. 전체적인 색감은 우중충하며, 거점 역할을 하는 '오식스 도시'조차 짙은 침체감에 빠져 있다. NPC들의 대사는 대체로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며, 그들의 외형이나 사고방식 역시 어딘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다.
특히 한때 살아 숨 쉬던 생명체의 부산물인 '뼈다귀'를 기본 화폐 및 자원으로 삼고, 이를 다루는 연출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소울라이크를 관통하는 특유의 절망적이고 스산한 감성이 2D 픽셀 안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다.
▶ 가장 편안해야 할 도시조차 활기를 잃어있다. 흘러나오는 음악마저도 우울하기 짝이 없다.
# 독창적인 '땅파기' 액션으로 완성한 탐험의 진수
전반적인 뼈대는 <젤다의 전설>을 위시한 탑뷰 액션 어드벤처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개성은 주인공 미나의 직업인 ‘땅굴꾼’에서 완성된다.
생쥐 캐릭터가 두더지마냥 쉴 새 없이 땅을 파고드는 광경은 이색적이며, 이를 게임 설정과 플레이 메커니즘에 적극적으로 엮어낸 솜씨가 감탄을 자아낸다.
▶ 생쥐의 외형이지만,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두더지다.
미나는 ‘땅파기’를 통해 단순히 자원(뼈다귀)을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의 공격을 회피하거나, 가속도를 붙여 먼 거리를 도약한다. 또한, 오직 땅파기로만 통과할 수 있는 지형과 지하 출입구가 존재해 조작의 중요성이 대단히 크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를 다방면으로 응용한 기믹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땅을 파헤치는 독특한 조작과 더불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게임 디자인이 실로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이렇듯 땅을 파고드는 조작과 플레이 방식이 전작인 <삽질 기사>와의 연결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비록 두 주인공의 직업은 전혀 다를지라도, 삽질 기사 역시 삽을 들고 부지런히 땅을 파고 다녔으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요트 클럽 게임즈의 진정한 정체성은 어쩌면 '땅을 파헤치는 것'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아가 아직 개발사의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내심 두 게임의 세계관 연동까지도 조심스레 유추해 볼 수 있겠다.
▶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땅을 판다. 이것이 이 개발사의 진정한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
땅을 파고드는 이색적인 메커니즘만큼이나 본작이 구축한 세계관과 탐험의 밀도 역시 남다른 면모를 과시한다. 우선 모험의 스케일 자체가 눈에 띄게 방대하다. 새로운 지역에 들어설 때마다 배경 환경과 아트워크가 완전히 전환되며, 서식하는 몬스터 군상마저 새롭게 재구성된다.
이를테면 레트로 스타일 인디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팔레트 스왑 몬스터를 이 게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각 구역의 크기와 지형지물의 특징은 물론, 등장하는 몬스터의 행동 패턴까지 지역의 콘셉트에 맞춰 완전히 다르게 설계되어 있어 플레이어는 매번 새로운 대처법을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새로운 지역에 진입할 때마다 화면을 채우는 수려한 도트 그래픽 일러스트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새로운 모험의 시작'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인지시키며 탐험의 설렘을 극대화한다.
▶ 발길을 돌릴 때마다 마주하는 낯선 풍경과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적들.
거시적인 모험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탐험의 재미 역시 훌륭하게 설계되어 있다. 맵 곳곳에 숨겨진 비밀 공간의 밀도가 상상 이상으로 조밀한데, 조금 과장을 보태면 두세 구역을 지날 때마다 반드시 비밀 요소가 숨겨져 있는 수준이다.
플레이어는 갈라진 벽면처럼 미묘한 위화감을 잡아내는 눈썰미를 발휘함과 동시에, 땅파기 능력을 극한으로 응용해 이 비밀 구역들을 찾아내야 한다. 비밀 공간을 밝혀낼 때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NPC나 사이드 이벤트, 강력한 정예 몬스터와 마주치거나 희귀한 장비 및 많은 양의 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
즉, 탐험을 통한 발견이 단순히 숨겨진 구역을 밝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주인공 미나의 직간접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곧 탑뷰 액션 어드벤처가 전해줄 수 있는 '미지의 공간을 개척하고 이에 대해 확실하게 보상받는 본질적인 재미', 즉 모험과 탐험의 묘미를 가장 모범적이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구현했음을 의미한다.
▶ 어딜 가나 숨겨진 요소 투성이다. 플레이어의 눈썰미와 탐험욕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 소울라이크의 쾌감과 고전의 불편함이 나란히
이렇듯 훌륭하게 구축된 탐험의 재미 이면에는 플레이어의 손가락을 사정없이 시험하는 '매운맛 전투'가 도사리고 있다.
소울라이크로 분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게임답게 일반 몬스터들조차 대처가 꽤 까다로우며, 대망의 보스전은 한두 번의 시도로는 패턴의 갈피조차 잡기 힘들 만큼 하드코어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일반 적들과 조우할 때도 상당한 체력과 공격력이 요구되며, 때로는 절벽이나 가시 같은 까다로운 환경 장애물 속에서 난전을 벌여야 해 체감 난이도가 한층 더 솟구친다.
보스들 역시 페이즈가 전환될 때마다 템포를 비틀고, 타이밍을 섣불리 잡을 수 없는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압박해 온다. 반면 주인공 미나의 조작은 고전 탑뷰 어드벤처 특유의 '4방향 공격'에 갇혀 있어 조작의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 4방향 고정 조작과 좁은 지형지물은 전투의 체감 난이도를 급격히 끌어올린다.
결국 제약이 뚜렷한 캐릭터로 변칙적인 보스를 상대해야 하기에, 소울라이크 고유의 '플레이어 본인의 피지컬 성장'을 강력하게 요구받는다. 이는 분명 호불호가 극렬히 갈릴 만한 불합리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일방적인 불합리함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모험 도중 뼈다귀를 성실히 모아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릴 수도 있고, 곳곳에 숨겨진 다채로운 장신구를 조합하거나 보조 무기를 전술적으로 활용해 전투 난이도를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다.
최초에 선택한 무기 외의 장비들은 맵 곳곳을 뒤져 스스로 찾아내야 하지만, 획득한 이후에는 전투 상황에 맞춰 입맛대로 다룰 수 있을 만큼 무기군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리뷰에서 언급하긴 조심스럽지만, 게임 내 탑재된 보조/보정 기능을 활성화해 난이도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도 가능은 하다).
여러모로 전투의 체감 난이도가 높은 편이나 이를 보완할 구제책들을 마련해 두었고, 수십 차례의 도전 끝에 거대 보스를 정복했을 때 밀려오는 소울라이크 특유의 원초적인 성취감과 희열을 모범에 가깝게 구현해 냈다.
▶ 보스의 패턴은 매우 변칙적이며, 섣부른 예측은 곧장 죽음으로 이어진다.
전투 난이도가 까다롭다는 점만 감안한다면 게임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대단히 뛰어난 편이다.
다만 게임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편의성이 다소 부족하고, 일부 동선 설계에서 직관성이 결여된 듯한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캐릭터 간의 대화나 별도의 안내 문구처럼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흐름을 명확히 인지시켜 주는 장치도 부족한 편이다.
일례로 이 게임에는 세부적인 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미니맵 기능이 아예 없다. 세계의 대략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지도가 있긴 하나 정말 그뿐이라 사실상 장식에 가까운 수준이다.
다음 목적지를 넌지시 알려주는 '신문' 아이템이 존재하지만, 그 지역이 정확히 어느 쪽에 있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도시 부근의 이정표를 통해 대략적인 방향은 알 수 있어도 결국 길은 플레이어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올바른 루트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현대 게이머들에게 과도한 친절과 내비게이션이 도리어 탐험의 재미를 해치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본작의 불친절함은 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
▶ 목적지를 유추하는 데 있어 신문의 비중이 크지만, 구체적인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이는 소울라이크의 장르적 특징과 고전 레트로 게임의 감성을 재현하기 위한 '의도된 불편함'일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러한 불친절함과 부조리함을 헤쳐 나가며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모험의 재미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의성 결여와 복잡한 동선은 대다수의 유저에게 게임을 포기하게 만드는 강력한 진입 장벽이자 피로감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다분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이 지닌 뛰어난 탐험과 전투의 가치가 길 찾기의 맹점 뒤에 가려지지 않도록, 조금 더 합리적이고 직관적인 타협점을 찾았어야 했다고 본다.
▶ 복잡한 맵 구조 탓에 '실용적인 지도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게임 내내 맴돈다.
# 어렵긴 해도 도전해볼 가치는 충분
<미나 더 할로워>는 1990년대를 상징하는 레트로 감성에 현대적인 소울라이크 문법이 절묘하게 맞물려 폭발적인 시너지를 창출해 낸 수작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삽질 기사>에서 이미 완성형에 가까웠던 픽셀 그래픽과 칩튠 사운드트랙은 그 품격이 더욱 향상되었으며, 땅을 파헤치는 이색적인 메커니즘은 다방면으로 응용되며 게임 내내 적극적인 활용을 유도한다.
방대한 세계관과 더불어 끝을 짐작하기 힘든 다채로운 숨겨진 요소들은 탐험과 모험의 재미를 충실히 만족시킨다. 동시에 온갖 변칙으로 가득하면서도 다양한 타개책을 마련해 둔 전투는 짜릿한 정복감과 성취감을 선사한다.
이는 곧 요트 클럽 게임즈가 오래도록 <삽질 기사>를 개발하고 유지 보수해 오며 축적한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결과물이며, 액션 어드벤처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미덕을 두루 갖춘 실로 훌륭한 인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소울라이크 특유의 불친절함과 부조리함을 탑뷰 시점의 2D 액션 어드벤처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위화감은 어느 정도 감내해야만 한다.
어찌 보면 소울라이크를 지향한 게임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태생적인 한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분명 거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초창기 <젤다의 전설>이 가졌던 낭만과 맞닿아 있는 게임인 만큼 조금 더 합리적인 편의성을 챙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은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이 지닌 가치와 완성도는 대단히 높다. 독특한 감각의 소울라이크 액션과 진득한 탐험의 묘미를 갈구하는 이들이라면, 굉장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다.

✍️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