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철갑을 두른 전차들의 묵직한 기동,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치열한 포격전. '전차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단연 워게이밍의 <월드 오브 탱크>일 것이다.
다른 게임에선 만나볼 수 없는 특유의 독특한 감각으로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을 사로잡았던 이 간판 IP가 이번에는 새로운 이름과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26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월드 오브 탱크: 히트>(이하 히트)가 바로 그것이다.
직접 체험해 본 <히트>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오묘했다. 전장에 들어서면 익숙한 화약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막상 조종대를 잡아보면 느껴지는 감각이 전혀 다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히트>는 <월드 오브 탱크>이지만 <월드 오브 탱크>와는 다르다. 대체 무슨 말이냐고? 아래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 '월드 오브 탱크' 이름값은 톡톡히
<히트>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월드 오브 탱크>와 DNA를 공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전차끼리 서로 포탄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모습만 봐도 <월드 오브 탱크> 같은 게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전자천을 다룬다고 해서 모든 게임이 <월드 오브 탱크>와 같거나 비슷한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월드 오브 탱크>를 비롯한 전차전을 다루는 게임의 핵심 요소는 3가지―전차, 전장, 그리고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전차의 제원을 이해하여 알맞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전장의 지형지물과 주요 오브젝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전술적 판단 역시 필수적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월드 오브 탱크> 시리즈만의 차별점은 바로 '아케이드성'이다. 다른 영역에서는 철저히 현실성을 추구하면서도, 전차 간의 교전만큼은 아케이드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슈팅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력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체력 시스템을 추가한 것이 <월드 오브 탱크> 시리즈의 특징이다. 사진은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
<히트> 역시 이러한 전작의 핵심 요소들을 훌륭하게 계승했다. 아케이드성 짙은 전투는 물론, 전차별 특성과 전장을 활용한 전술적 깊이도 충실히 구현되어 있다.
게임 내에는 공격수, 수비수, 저격수로 나뉜 세 가지 포지션이 존재하며, 각 역할에 맞는 전차들의 제원이 세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수비수 포지션의 전차는 높은 생존력을 바탕으로 전선을 든든하게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반대로 저격수 포지션의 전차는 가장 두꺼운 전면 장갑이 중전차의 측면 장갑 두께와 엇비슷할 정도로 얇은 대신, 높은 지대나 은폐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해 원거리 사격을 통해 적을 제거하거나 유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저격수 전차의 가장 두꺼운 전면 장갑이 수비수 전차의 측면 장갑보다도 얇다.
전장 곳곳에는 암벽, 건물, 버려진 전차 등 다양한 엄폐물이 포진되어 있어 이를 활용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진다. 특히 지형이 한층 복잡해지고 이동 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상대 전차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는 정보전의 중요성이 커진 점도 원작과 유사한 특징이다.
<월드 오브 탱크> 유저들에게 친숙한 특유의 전술들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형을 이용해 차체를 숨기고 포탑만 내민 채 교전하는 '헐 다운', 차체를 비스듬히 틀어 도탄을 유도하는 '티타임' 등의 고급 기술들을 <히트>에서도 그대로 구사할 수 있다.
▶ 암벽과 건물, 파괴된 전차의 잔해 등을 활용해 이기적으로 교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 <월드 오브 탱크>인가, <오버워치>인가?
앞서 설명했듯 <히트>는 <월드 오브 탱크>의 DNA를 물려받았지만, 실제 게임플레이를 놓고 보면 두 작품은 확연히 다르다. 비유하자면 성격이 정반대인 일란성 쌍둥이 같달까.
이러한 차이는 원작의 아케이드적인 요소를 한층 더 깊게 파고든 결과물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히어로 슈터' 요소의 도입이다. <히트>에는 기존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스킬 시스템이 존재한다.
<월드 오브 탱크>가 원하는 전차를 선택하는 게임이었다면, <히트>는 전차가 아닌 '요원'을 선택하는 구조에 더 가깝다. 플레이어가 어떤 요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포지션이 결정되며, 각 요원마다 최대 두 대의 전용 전차를 지휘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공격수 포지션인 '켄트'를 선택했을 때 'XM1 90' 전차와 'ALVT' 전차 중 하나를 골라 전장에 나서는 방식이다.
▶ <히트>의 요원 선택 화면. 요원마다 최대 두 대의 전용 전차를 지휘할 수 있다.
스킬은 크게 요원 스킬과 전차 스킬로 나뉜다. 요원 스킬은 요원에 할당된 스킬로 강력한 궁극기와 패시브 스킬로 이루어져 있다. 전차 스킬은 전차에 따라 달라지는 스킬로 주요 스킬과 보조 스킬 등 두 개의 액티브 스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스킬 시스템의 도입이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주포 싸움 만큼이나 중요해진 것이 스킬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수싸움이다. 전차 스킬의 경우, 각각의 스킬이 가진 효과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엇갈린다.
스킬은 크게 요원 스킬과 전차 스킬로 나뉜다. 요원 스킬은 강력한 궁극기와 패시브로 구성되어 전황을 뒤집는 데 기여하며, 전차 스킬은 각 기종에 맞춰진 두 개의 액티브(주요/보조) 스킬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스킬 시스템의 도입이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치열한 주포 싸움만큼이나 스킬을 기반으로 한 치열한 전략적 수싸움이 중요해졌다. 각 스킬의 효과가 전투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이를 언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극명하게 갈린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HSTV-L' 전차는 게임 내에서 몇 안 되는 뛰어난 색적 능력을 지녔다. '무인 정찰기' 스킬을 적재적소에 깔아두기만 해도 인근 적들의 위치가 낱낱이 드러나, 은폐가 생명인 저격수 전차의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
여기에 기동성과 화력까지 준수해, 빠르게 우회하여 숨어있는 저격수 전차의 숨통을 끊어놓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저격수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까? 그렇지 않다. 모조 전차를 배치해 적의 시선을 교란하거나, 상대보다 먼저 색적을 시도해 불리한 교전을 회피할 수 있다.
혹은 감지 지뢰(실제로는 지뢰보다는 포탑에 가까운 형태다)를 길목에 설치해 적의 접근을 먼저 알아채고 선공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듯 고유한 스킬들을 맞부딪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카운터 플레이가 바로 <히트>만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 지뢰 스킬로 적 전차의 진입로를 봉쇄하는 모습. 지뢰를 밟으면 일정 시간 동안 이동이 제한되기에 벌집이 되기 마련이다.
▶ 상대 전차의 방어막 스킬을 보고 방향을 돌려 측면을 찌르는 모습.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요원과 전차를 깊이 있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전투를 거듭하며 레벨을 올리면, 요원은 새로운 스킬과 특성을 해금하게 된다.
전차 역시 레벨을 올려 장착 가능한 부품을 해금할 수 있으며 부품에 따라 스킬의 성능과 위력이 달라진다. 플레이어의 지속적인 플레이를 동기부여하는 훌륭한 성장 시스템으로 볼 수 있겠다.
▶ 레벨을 높여 해금할 수 있는 요원의 신규 스킬과 특성.
진행 템포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맵이 방대하고 이동이 무거워 다소 정적이었던 전작과 달리, <히트>의 호흡은 상당히 가쁘고 빠르다. 무엇보다 한 번 파괴되면 끝이었던 전작과 다르게 모든 모드에서 부활(리스폰)이 가능해져, 쉴 새 없이 공격적이고 실험적인 교전이 벌어진다.
4가지 게임 모드 역시 이 같은 난타전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여러 기지를 점령해 점수를 쌓는 '점령전' , 지도 곳곳에 무작위로 생겨나는 거점을 차지하고 방어해야 하는 '거점전' , 2판 3선승제로 단 하나의 구역을 두고 격돌하는 '장악전' , 그리고 적을 처치한 뒤 떨어지는 토큰을 수집해야만 점수가 오르는 '사살전' 등 다양한 모드가 구현되어 있다.
전투 중간중간 판도를 뒤흔드는 특수 이벤트도 존재한다. 점령된 거점 주변에 폭격이 쏟아져 전열을 붕괴시키기도 하고, 제한 시간 내에 적을 전멸시키면 대량의 보너스 포인트를 얻는 섬멸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동시다발적 변수들은 텐션을 한껏 끌어올리며 <히트>만의 개성을 완성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 거점전에서는 점령이 끝난 거점에 폭격이 떨어져 빠르게 대피해야 한다.
# 게임은 가벼워졌지만 전차의 육중함은 그대로
전작 <월드 오브 탱크>와 비교해 <히트>의 전차전은 확실히 가볍고 경쾌해졌다. 하지만 한껏 캐주얼해진 겉모습과 달리, 가볍게 접근하는 플레이어들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드는 몇 가지 진입장벽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불친절한 시스템 설명이다. 전차의 기본 제원은 무척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지만, 정작 게임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킬의 구체적인 성능이나 피해량 정보는 다소 제한적이다. 스킬이 전투의 판도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고려하면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
▶ 전차 제원은 이렇게 상세하게 써놨는데
▶ 스킬 설명은 너무 제한적이다.
원작의 핵심 전술들이 그대로 적용되었음에도 이를 알려주는 튜토리얼이 부실하다는 점도 뼈아프다. 교전 도중 포탄이 도탄되거나 궤도에 막히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러면 전차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적의 어느 부위를 타격해야 유효타를 낼 수 있는지, 상대의 포탄을 비스듬히 맞아 어떻게 튕겨내야 하는지 등 실전 테크닉을 안내하는 심화 튜토리얼의 부재가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트>는 <월드 오브 탱크>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독특한 수작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게임의 전반적인 템포는 한층 빨라졌다.
그럼에도 전차전 특유의 시원한 타격감과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육중한 감각은 훌륭하게 보존되었다. 이토록 빠르고 역동적인 플레이 템포 속에서 묵직한 기갑 전투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작품은 현재로선 <히트>가 유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