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열 안을 유유히 걸어가는 한 남자의 실루엣, 그리고 귓가를 때리는 강렬한 브라스 밴드의 시그니처 테마곡.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이 지닌 마력은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크린 밖 게임의 영역에서 이 치명적인 스파이의 활약상을 직접 조종해 본 것은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다.
무려 14년. 우리가 새로운 007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기다려온 인고의 시간이다. 강산이 한 번 반이나 바뀔 기나긴 공백기 끝에 마침내 베일을 벗은 <007 퍼스트 라이트>(이하 퍼스트 라이트)는, 그래서 그 타이틀이 지닌 무게감만으로도 전 세계 게이머들의 묵은 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첩보 액션의 장인 IO 인터랙티브가 치밀하게 직조해 낸 새로운 기원의 이야기. 과연 14년 만에 돌아온 이 새로운 제임스 본드는 우리의 치솟은 기대감을 완벽하게 쏴 맞힐 수 있을까?

# “한편의 훌륭한 <007> 영화를 경험한 기분”
<007> 시리즈는 단순한 '에스피오나지' 작품이 아니다. 누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시리즈의 영원한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역사가 흐르면서 그 면면이 바뀌기는 했지만, 한 나라와 그 문화를 상징하는 '옴므파탈'의 아이콘으로 굳건히 남아있다.
이러한 상징성을 넘어 <007> 시리즈가 여타 첩보물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현실의 시대상'을 투영한다는 점이다. 제임스 본드가 마주하는 적은 늘 당대 대중이 품고 있던 공포의 표상이었다. 냉전 시대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불씨였고, 디지털 시대에는 사이버 테러와 정보 조작이었으며, 팬데믹 시기에는 무기화된 바이러스였다.
이런 맥락에서 <퍼스트 라이트>의 서사는 더할 나위 없이 "007스럽다". 리뷰에서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하고 싶었으나, 이 작품의 진가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 내용만큼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 <007 퍼스트 라이트>의 악역. 정체는 무엇이고, 어떤 음모를 품고 있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 아래 내용에는 <007 퍼스트 라이트>에 대한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퍼스트 라이트>가 조명한 현대의 공포는 바로 'AI'다. 오늘날 우리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AI에 삶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할 줄 알았던 AI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AI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퍼스트 라이트>의 진정한 악역은 바로 이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공포 그 자체다.
게임의 무대인 영국 비밀정보국(MI6) 지하 깊은 곳에는 양자 컴퓨터로 구동되는 최첨단 AI 'THEIA(테이아)'가 자리 잡고 있다. MI6는 THEIA의 오차 없는 분석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테러와 국가 전복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 왔다. 그로 인해 '00 요원'들의 입지는 현실의 기술 발전이 초래한 변화처럼 점차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 MI6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AI 'THEIA'
하지만 '009' 요원의 배신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드러나는 전말은 꽤나 충격적이다. THEIA는 결코 완벽하지 않았으며, 그 분석에도 분명한 착오가 존재했다. 누군가 배후에서 암약하며 THEIA의 치명적인 오류를 은폐하고, 그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믿게끔 교묘하게 조작해 왔던 것이다.
이 충격적인 진실은 <퍼스트 라이트>의 거대한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 축으로 작용한다. 지면상 자세히 다룰 수 없는 수많은 갈등과 음모, 그리고 반전 요소들이 촘촘하게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
강렬한 인트로부터 대미를 장식하는 시그니처 시퀀스까지, 게임을 플레이한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편의 훌륭한 <007> 영화를 직접 경험한 기분이다."
▶ <007> 시리즈의 백미인 화려한 인트로 영상을 이번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건너뛰지 말고 꼭 감상해보길 권한다.
# 낯설지만 매력적인 반항아 제임스 본드
앞서 <퍼스트 라이트>가 현실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007스러운' 작품이라 평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기존 시리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본작만의 뚜렷한 오리지널리티 역시 존재한다.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묘사하는 방식이 그 대표적인 예다.
▶ 패트릭 깁슨이 연기한 새로운 얼굴의 제임스 본드.
익히 알려진 대로 본작은 영국 해군 소속이었던 제임스 본드가 MI6 요원을 넘어 코드 네임 '007'로 거듭나는 기원을 다룬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본드의 모습이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전통적인 이미지와 결을 완전히 달리한다는 것이다. 동일하게 007의 탄생을 다뤘던 영화 <카지노 로얄>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가 아는 제임스 본드는 어떤 인물인가. 완벽한 수트 핏과 세련된 위트 뒤에 냉혹한 살인 면허와 인간적인 고뇌를 숨긴, 이른바 '중후한 영국 신사의 정석'이다. 숀 코너리부터 대니얼 크레이그에 이르기까지 이 공식을 크게 벗어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패트릭 깁슨이 연기한 <퍼스트 라이트>의 본드는 이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젊고 수다스러우며, 포멀한 수트보다는 캐주얼한 블루종이 겉돌지 않게 어울린다. 성격 또한 차갑고 이성적이라기보단 다분히 무모하고 반항적이다. 이로 인해 기존의 제임스 본드보다는 오히려 <킹스맨> 시리즈의 '에그시'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 덕분에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꼬인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본드의 '돌발성'이 극 중 사건을 해결하는 핵심 열쇠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첫 임무 당시 THEIA는 그의 성공률을 1% 남짓으로 예측했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뛰어들어 보기 좋게 임무를 완수해 낸다. 이후에도 본드는 자신의 직감과 능력을 믿고 상부의 명령조차 기꺼이 어겨가며 끈질기게 진실을 추적한다.
즉, 본작의 제임스 본드는 'AI가 감히 예측할 수 없는 통제 밖의 변수' 그 자체이며, 이 설정은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AI와 대비되어 작품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층 명료하게 각인시킨다.
▶ 현대 첩보 활동에는 인간적 요소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M의 대사가 이 모든 메시지를 완성한다.
# 훌륭한 서사에 흠집을 내는 얕은 조연 묘사
물론 훌륭한 서사 속에서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가장 뼈아픈 실책은 주인공 본드를 제외한 핵심 조연들의 평면적인 묘사다.
레니 크래비츠가 연기한 '바우마'가 대표적인 예다. 검은돈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무법 도시 '알레프'의 지배자인 그는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할 핵심 악역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서사 내 비중은 미미하고, 그럴싸한 인상조차 남기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페이크 빌런을 연출하고 싶었다 하더라도 이토록 허술한 소모는 없으니만 못한, 명백한 연출의 패착이다.
▶ 처음 등장할 때는 제법 강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본드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 '아이솔라'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본드를 조력하면서도 내면에는 자신만의 은밀한 목표를 품고 있다는 설정 자체는 훌륭했다. 그러나 '속내를 알 수 없는 뛰어난 스파이'라는 기믹에 너무 매몰된 탓인지, 그녀의 동기나 배경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게 주어진다. 이야기 끝까지 맹활약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플레이어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은 크나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사소하지만 몰입을 방해하는 불안정한 번역 퀄리티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동일한 인물의 어투가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구간이 산재하며, 'Perch'라는 단어가 음역인 '퍼치'와 훈역인 '횃대'로 일관성 없이 혼용되는 등 기초적인 검수 부족이 엿보여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 언제는 퍼치라 했다가, 또 언제는 횃대라 했다가.
▶ 크아악 고봉밥 자막이다!!
#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법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스파이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적진 한가운데 침투해 기밀을 캐내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낯선 환경을 빠르게 파악해 단서를 엮어내는 관찰력과 창의력,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와 기회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순발력일 것이다. <퍼스트 라이트>는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이 세 가지 능력을 요구한다. 신분을 위장하고 적진에 스며드는 순간부터, 정체를 드러내고 적과 맞서는 찰나까지 플레이어는 자신이 가진 스파이로서의 감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본작의 게임 플레이는 크게 '정보 수집' 단계와 '잠입 및 전투' 단계로 나뉜다. 대개 원하는 정보를 취득한 후 잠입이나 전투를 통해 해당 지역을 이탈하는 식이지만, 상황에 따라 두 과정이 긴박하게 교차하며 진행되기도 한다.
정보 수집은 정교하게 짜인 퍼즐을 푸는 과정과 같다. 특정 장소에 숨겨진 기밀을 찾기 위해 NPC의 대화를 엿듣고, 맵 곳곳의 힌트와 다양한 스파이 가젯을 활용해야 한다. 진행에 필수적인 단서는 시스템적으로 표시되지만, 그 외 사소한 NPC의 대화나 흩어진 문서 속에서도 사건의 진상에 다가갈 핵심 정보가 숨어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 NPC들의 대화를 엿들어서 단서를 얻고 이를 찾는 방식이다.
▶ 중요한 단서는 이렇게 따로 표시된다. 참고로 금고 비밀번호에 대한 힌트인데, 저게 힌트 전부다.
잠입과 전투 단계는 개발사 IO 인터랙티브의 전작인 <히트맨> 시리즈와 닮았으면서도 궤를 달리한다. 가장 큰 차이는 '목표'다. <히트맨>이 특정 대상을 암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퍼스트 라이트>에서 전투란 신분이 탄로 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론상으로는 단 한 번의 전투 없이 순수 잠입만으로 돌파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뼈를 깎는 집중력과 인내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두 단계 모두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어떤 방식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는 오롯이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렸다. NPC들의 대화를 엿들어 단서를 찾는 정보 수집 단계는 보통 3개 이상의 루트가 구현되어 있으며, 잠입 및 전투 단계는 가짓수를 감히 계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갈 수 있는 방향이 무궁무진하다.
▶ 외부 계단부터, 매달려서 이동할 수 있는 난간, 실내의 여러 개의 방과 통로 등 이동할 수 있는 루트가 무궁무진하다.
서두에 언급한 '순발력'은 바로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첫 플레이 시에는 맵 곳곳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백미가 된다. 예컨대 순찰 중인 경비원에게 발각되었을 때, 가젯으로 조용히 무력화할 것인지, 태연하게 관계자인 척 연기해 위기를 모면할 것인지, 아니면 피지컬을 믿고 전면전을 벌일 것인지. 당신의 찰나의 결단이 곧 새로운 길이 된다.
▶ 안심하세요 동료입니다! (아님)
# 총격전 대신 근접전을 요구하는 레벨 디자인
이제는 전투 시스템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퍼스트 라이트>의 전투는 화려한 총격전보다는 묵직한 대인 격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는 나름의 치밀한 설정이 뒷받침된다. 00 요원의 상징인 '살인 면허'는 상대에게 명백한 살해 의도가 있을 때만 행사할 수 있다는 제약이 따른다. 무고하거나 위협적이지 않은 대상을 함부로 살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적이 먼저 총구를 겨누지 않는 한, 본드의 총기 사용은 엄격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개발진이 의도한 레벨 디자인에 있다. 적을 쓰러뜨려 다양한 총기를 노획할 수는 있어도, 쏟아지는 적의 물량과 단단한 방탄 장비 탓에 탄약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이는 곧 "일반적인 3인칭 슈팅(TPS) 게임의 감각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개발진의 묵언의 경고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까? 시야를 넓히면 해답이 보인다. 대부분의 교전 구역에는 파괴 가능한 오브젝트가 배치되어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이를 기폭시키거나 무너뜨리면, 최소한의 탄약으로도 다수의 적을 제압하는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해진다.
▶ 주변 폭발물을 활용하면 적은 탄약으로도 한번에 많은 적들을 소탕할 수 있다.
근접 전투(CQB) 상황에서도 전략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방탄복으로 덮인 머리나 가슴을 노리기보단, 방어가 취약한 다리를 쏴 적의 자세를 무너뜨린 후 거리를 좁혀 제압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본드가 근접 격투를 시도하면 주변의 적들 역시 사격을 멈추고 맨몸으로 덤벼든다는 것이다. 더불어 제압 액션 중에는 플레이어에게 완전한 무적 판정이 주어지므로, 이 찰나의 순간을 체력 회복을 위한 귀중한 유예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시원시원한 총격전의 쾌감은 훌륭했다. 하지만 게임의 전반적인 흐름은 앞서 말했듯 근접 전투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 그렇다면 이 근접 전투 중심의 플레이 경험이 과연 유쾌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단호히 "아니오"다.
▶ 총알을 맞아도 끄떡없는 중장갑 적들도 근접 전투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 깊이 없는 전투와 밋밋한 카 체이싱
스토리 서사에서의 맹점과 마찬가지로,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명백한 아쉬움들이 존재한다. 앞서 근접 전투 중심의 플레이가 유쾌하지 않았다고 단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타격감 자체는 훌륭하게 구현되었으나, 턱없이 부족한 모션과 액션 연출이 발목을 잡는다. 근접 공격의 선택지가 기본 공격과 잡기뿐이다 보니, 동일한 애니메이션이 쉴 새 없이 반복된다. 근접 전투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게임의 구조상, 초반의 훌륭했던 타격감은 이내 짙은 피로감과 지루함으로 변색되고 만다.
더욱이 전투의 긴장감을 증발시키는 원흉은 지나치게 친절한 회피 시스템이다. 적의 일반 공격은 노란색, 잡기는 빨간색 전조광으로 표시되는데, 불빛이 번쩍이는 타이밍에 맞춰 횡이동만 입력하면 싱거울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이처럼 긴장감이 결여된 단조롭고 반복적인 메커니즘이 앞서 언급한 '유쾌하지 않은' 전투 경험의 실체다.
▶ 근접 전투가 재밌진 않다.
물론 눈을 즐겁게 하는 뛰어난 영화적 연출들도 존재한다. 화약통을 기폭시켜 적들을 일망타진하는 시퀀스나,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탈출하며 허공을 가르는 자동차의 열린 문 사이를 통과하는 곡예에 가까운 장면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007> 시리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카 체이싱' 연출만큼은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직접 운전대를 잡는 구간이 몇 차례 등장하긴 하나, 대부분 임무 전후로 캐릭터 간의 대화를 조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모될 뿐이다.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추격전마저도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쾌감을 전달하지 못한다. 첩보물 특유의 박진감을 살릴 수 있는 역동적인 연출이 더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강하게 남는 대목이다.
▶ 속도감이 아쉬운 카체이싱 구간.
# 기꺼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성공적인 '007'의 귀환
약 20시간의 여정 끝에 엔딩 크레딧을 마주했을 때의 여운이 아직도 생생하다.
<퍼스트 라이트>는 새로운 얼굴의 제임스 본드가 '007 요원'으로 거듭나는 기원을 다루면서, 동시에 유서 깊은 프랜차이즈의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게임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비유하자면 <007>이라는 이름의 '최고급 맞춤 수트'에 어울리는 체격을 갖추기 위해 치열하게 단련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군분투 끝에 근사한 수트를 걸쳐 입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몸에 완벽하게 감기는 핏을 완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앞서 지적한 단조로운 액션이나 조연 서사의 부재라는 얕은 주름이 잡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구김살은 기꺼이 눈감아줄 수 있다. 게임은 '007'이라는 거대한 이름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졌으며, 장장 14년 만에 등장한 신작을 향한 팬들의 오랜 갈증과 높은 기대감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성취를 이뤄냈다.
"제임스 본드는 돌아올 것이다(James Bond Will Return)." 시리즈의 전통적인 맺음말처럼, 그가 다음에는 얼마나 완벽한 수트 핏을 자랑하며 돌아올지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기다려봐도 좋을 것이다.
▶ 기대했던 총열 시퀀스가 나왔을 때의 감동이란...
